8월 06, 2025
글 김수진(객원 에디터)
Artist in Focus
예술가의 혁신이란 무엇일까? 혁신가들은 남들보다 선구자적인 위치에서 깃발을 꽂는 게 아니라 “예술은 자연이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부분을 완성시킨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처럼 예술과 자연,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구조와 흐름을 표현하고 미래의 ‘우리’에게 닿길 원하며 작품 자체보다 그것을 ‘보는 방식’에 주목해 관객이 그 의미를 구성하는 능동적 존재이길 바란다. 각자의 ‘몸’에 참여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것과 연결하는 안토니 곰리(뮤지엄 산)와 미래를 위한 회화를 선보인 힐마 아프 클린트(부산현대미술관), 하나의 기호를 무한하게 해석하는 료지 이케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 3명의 혁신적인 예술가의 이야기가 뜨거운 한여름에 도착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영화감독 할리나 디르슈카는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의 전시회를 다녀온 뒤 2019년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을 제작했다. 그녀가 실제로 생활하고 지냈던 곳들도 함께 보여주며 1천 점이 넘는 그림을 홀로 실험한 생애를 조명했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힐마 아프 클린트 대규모 회고전 <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위한 회화>를 열었고 당시 60만 명 넘는 관람객이 모였는데, 전시를 본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도대체 그녀가 누구인지 묻기 바빴다. 2023년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는 힐마 아프 클린트와 몬드리안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Forms of Life〉를 열었다. 올해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전시에 이어 국내로 온 그녀의 대규모 회고전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을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다(10월 26일까지). 이렇듯 ‘힐마 열풍’이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드디어 도착했다
스웨덴 출신인 힐마 아프 클린트는 무려 한 세기 동안 미술사에 호출되지 않은 작가다. 생전 그림을 꽁꽁 숨겨왔고, 자신의 사후 20년 동안 작품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는데, 뒤늦게 그녀의 방대한 작업이 공개되면서 미술계의 이목이 쏟아지게 된다(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은 1972년에 설립되었다). 게다가 그녀가 추상화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바실리 칸딘스키보다 5년 앞서 추상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나오면서 미술계는 고민에 빠졌다. 원자의 개념, 영적인 세계, 자연과 과학, 신지학과 인지학 등에서 영감받아 그린 그녀의 작품은 영적 계시를 받아 그저 ‘영매’로서 그려나갔을 뿐이기에 과연 힐마를 진정한 추상화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다(그녀의 회화는 여전히 연구되고 있다). 그녀를 둘러싼 ‘신비’라는 키워드가 정말로 시대를 앞선 감각 때문인지, 미완의 상태를 보완하려는 수사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어쨌거나 그녀가 자신의 작업을 정신적인 세계가 가득한 새로운 시공간으로 펼쳐냈다는 점만은 분명한 듯 보인다. 그녀의 기념비적인 추상화 연작인 ‘10점의 대형 회화’는 화면마다 자연에서 따온 곡선과 상징, 기호와 문자로 가득한데, 3m가 넘는다(홀로 작업했다). 정신, 감정, 세계의 질서, 영혼 같은 개념을 선과 도형으로 바꾸어 표현한 힐마 아프 클린트의 사유가 집약된 이 시리즈는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녀를 과도한 신화나 소비가 아닌 책임 있는 시선으로 다시 보고 감각하기 위해 제목에 ‘적절한 소환’이라는 문구를 넣었다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생애와 작업의 흐름을 따라 구성된 1백39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거대한 존재를 향하는 것 같은 ‘신전을 위한 회화’는 그녀가 당시 심취해 있던 신지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불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와 고대 종교적 사상을 아우르는 신지학의 인기는 당시 굉장히 높았다). 이에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1908년 그녀는 저명한 신지학자이자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를 초대해 은밀히 자신의 작업을 보여줬다고 한다. 당시 슈타이너는 “앞으로 50년 동안 누구도 이 그림들을 봐서는 안 된다”라고 했고, 그녀는 자신의 회화가 도달해야 할 시점은 ‘미래’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리하여 자신의 작품을 더욱 꽁꽁 숨기며 ‘신전을 위한 회화’ 연작이나 인지학을 파고들고 글쓰기와 기록 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녀의 후반기(1930년대) 작품은 처음에 빠졌던 꽃과 나무로 다시금 향하는 것 같다. 단순해진 기호와 물감의 느슨한 흔적으로 자연과 인간 내면의 연관성에 몰두한 작품을 들여다보면 불완전한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와 영혼을 추구했던 작가의 초월적인 생애와 예술이 여전히 물음표처럼 스쳐 지나간다.
1 힐마 아프 클린트의 대표작인 ‘10점의 대형 회화’를 볼 수 있는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실. 인간 생명의 흐름과 의식의 진화를 거대한 화면에 단계적으로 구성한 연작이다.
2 힐마 아프 클린트의 ‘나선형 계단에 관한 조형 습작(빛과 그림자)’(1880), 종이에 목탄, 흑연, 62×49cm,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제공. 힐마 아프 클린트는 초기에 자연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 세밀한 묘사를 많이 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요 회화 연작을 중심으로 드로잉과 기록 자료를 포함해 총 1백3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3 힐마 아프 클린트의 ‘No.1, 백조’, 그룹 IX파트 I, SUW 연작(1914~1915), 캔버스에 유채, 150×150cm,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제공. 힐마 아프 클린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그림에만 몰두했다.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힘이나 흐름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작업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2 힐마 아프 클린트의 ‘나선형 계단에 관한 조형 습작(빛과 그림자)’(1880), 종이에 목탄, 흑연, 62×49cm,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제공. 힐마 아프 클린트는 초기에 자연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 세밀한 묘사를 많이 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요 회화 연작을 중심으로 드로잉과 기록 자료를 포함해 총 1백3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3 힐마 아프 클린트의 ‘No.1, 백조’, 그룹 IX파트 I, SUW 연작(1914~1915), 캔버스에 유채, 150×150cm,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제공. 힐마 아프 클린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그림에만 몰두했다.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힘이나 흐름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작업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Artist in Focus
01. Antony Gormley_ 안토니 곰리 보러 가기
02. Ryoji Ikeda_ 료지 이케다 보러 가기
03. Hilma af Klint_ 힐마 아프 클린트 보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