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lles & Boiss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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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15

에디터 고성연(파리 현지 취재)

요즘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러브콜을 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듀오가 있다. 10여 년에 걸친  파트너십을 다져온 파트리크 기(Patrick Gilles)와 도로시 부아지에(Dorothee Boissier)다. ‘기 & 부아지에’ 스튜디오라는 간판을 내걸고 활동하는 이 파리지앵 크리에이터 듀오는 이국적인 색채와 자신들의 디자인 감각이 어우러진 레스토랑부터,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부티크 호텔과 럭셔리 브랜드 매장,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홈 인테리어와 초특급 프리미엄 호텔의 인테리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파리지앵다운 도도한 세련미가 뚝뚝 떨어지지만 지나치게 장식적이지 않고 따스한 자연스러움이 공존하는 디자인 세계가 꽤나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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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화유산 덕분에 건축업자들이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파리는 조심스럽게 새로 단장하는 건물을 보는 재미가 있는 도시다. 큰 뼈대를 건드리는 대신 은근하고 세심한 손길로 새로운 느낌의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환골탈태 프로젝트’가 더러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파리 중심가인 9구에 자리 잡은 오페라하우스와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근처 거리에도 주목할 만한 최신 사례가 생겨났다. 번잡한 도심에서 세련되면서도 고요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체스 호텔(www.thechesshotel.com)이다. 특히 이 매력적이고 아담한 부티크 호텔은 최근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자신들만의 세련되고 우아한 ‘파리지앵’ 스타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 & 부아지에(Gilles & Boissier)의 작품이라 더 눈길을 끈다. 파리를 기지 삼아 세계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부부 디자이너 파트리크 기(Patrick Gilles)와 도로시 부아지에(Dorothee Boissier)가 꾸리는 건축·인테리어 스튜디오다.
파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고요한 휴식처, 떠오르는 부티크 호텔 ‘체스’

“우리는 가장 북적거리는 파리 중심가에 고요함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공간을 창출하려고 애썼죠.” 이들의 설명처럼 몹시도 복잡한 도심에 위치한 체스 호텔은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풍경이 확 바뀌는 느낌이 들 정도로 꽤나 ‘사적인 적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체스(Chess)’라는 이름은 로비 플로어의 블랙 & 화이트 무늬에서 영감을 받아 붙인 것이다(다이닝 공간이기도 한 로비에서는 실제로 체스를 둘 수 있다). 객실은 고급스러운 진갈색 우든 플로어와 세련된 가구, 단아하면서도 앙증맞은 소품이 전반적으로는 시크하고 모던한 느낌을 창출하면서도 살짝 자연미도 풍긴다. 모든 객실에는 깔끔한 호텔 로고가 들어간 하얀색 몰스킨 노트가 놓여 있다. 목재와 대리석의 조화가 돋보이는 최신식 욕실 역시 이 호텔의 장점이다. 럭셔리한 분위기가 풍부하면서도 부담스럽지는 않은 절제미와 실용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균형의 미학. 이것이 바로 기 & 부아지에 듀오의 ‘언어’다.
사실 이들은 세계를 무대로 호화로운 호텔이나 ‘핫한’ 고급 레스토랑, 부호들의 저택을 주로 담당하는 ‘럭셔리 프로젝트’에 익숙한 크리에이터들이다. 그런 배경에서 볼 때, 50개 방을 갖춘 아담한 4성급 호텔인 체스 호텔 프로젝트에는 제약이 꽤 많이 따른 편이었다. 이 자리(6 rue du Helder 75009)에 원래 버티고 있던 낡은 호텔을 재건하는 프로젝트였던지라, 파리의 까다로운 건축 규제 때문에 큰 골격을 뜯어고치지 못한 데다 재료나 요소에서도 ‘넘치지 않는’ 수준에서 잘 추슬러야 했다. “파리에서 진행한 첫 번째 호텔 프로젝트가 체스였는데, ‘백지 위임장’ 같은 창작적 자유를 부여받았어요. 우리는 이 공간에 특별한 콘셉트나 주제를 불어넣고 싶지는 않았고, 그저 고요하고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되 우리 특유의 창조적 욕구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죠. 그래서 예산의 큰 부분은 맞춤형 가구와 아티스트 작품 등 다분히 예술적인 요소에 할애했어요. 순수하게 우리가 선호하는 프렌치 스타일을 구현하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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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스탁과 크리스티앙 리에거의 장점과 자신들만의 개성이 결합된 창조 세계

그들이 사랑하는 프렌치 스타일이란 무엇일까? 이들은 “프랑스 문화는 다양한 영향이 병치된 편인데, 18세기 파리에서는 베르사유의 영향이 굉장히 크게 확산됐지요. 응용미술이 문학, 철학, 회화, 음악 등 모든 영역에 반영됐고, 그런 전통이 파리 스타일에 강하게 배어 있어요. 저희에게는 이러한 파리지앵 스타일이 프랑스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기 & 부아지에는 프랑스식 바로크와 르네상스 스타일을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풀어내고, 비잔틴과 오리엔탈 스타일을 현대식 미니멀리즘에 접목하는 식으로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한다. 하지만 그들만의 스타일로 과하지 않게, 그러나 대담하게 녹여낸다. ‘건축적(archietectural), 관능적(sensual), 진정성 있는(authentic)’이라는 형용사가 이 듀오가 직접 고른 단어들이다. 이 커플은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긴 세월에 걸친 파트너십을 자랑한다. 둘 다 20대 초반이던 1995년 프랑스의 저명한 가구·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리에주르 스튜디오(Christian Liaigre Studio)에서 일하게 되면서 처음 만났다. 프랑스 인테리어업계 최고의 장인으로 평가받는 리에주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파트리크는 2002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리면서 독립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도로시는 크리스티앙 리에주르를 떠나 프랑스가 자랑하는 디자인 거장 필립 스탁 스튜디오로 옮겨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고 있었는데, 결국 2004년 둘이 힘을 합쳐 기 & 부아지에 스튜디오(www.gillesetboissier.com)를 설립했다. “파트리크는 원래부터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을 했고, 저는 원래 정치학을 전공했다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게 됐어요. 파트리크는 처음부터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방식이 독특했는데, 매우 예술적이었어요. 함께 일하면서 우리 둘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많은 전문가들은 기 & 부아지에의 공동 작업에는 ‘스승’인 크리스티앙 리에주르의 품격 있으면서도 단아한 감각, 섬세한 디테일과 완성도, 그리고 필립 스탁의 감성 지능까지 반영돼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만의 우아한 감각이 두드러지기에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아무리 ‘커플’이라지만 상당히 주관이 강한 아티스트 2인의 가치관과 스타일을 어떤 식으로 조화시켜나갈까? “저희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성향이 강한 편이에요. 그리고 안주하게 만들 수도 있는 ‘안전지대’에서 빠져나오라고 서로를 격려하고 채찍질하죠. 저는 아이디어를 말로 풀어내는 걸 좋아하고 파트리크는 그걸 그림으로 옮기는 걸 좋아하고요.” 도로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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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어에서 바카라 뉴욕까지, 럭셔리업계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는 환상의 듀오
이들이 처음으로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계기는 뉴욕에 있는 부다칸(Buddakan)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찾아왔다. 미국 레스토랑계의 거물 스티븐 스타가 오픈한 이 레스토랑은 ‘모던 아시안’을 지향하는 이국적인 스타일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기 & 부아지에 스튜디오는 그 뒤로 레스토랑 디자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크리에이터 그룹 중 하나로 떠올랐다. 부티크 호텔의 선구자 중 하나로 불리는 이언 슈레거와 손잡고 뉴욕 그라머시 파크 호텔의 레스토랑인 와키아(Wakiya, 2007)를 디자인하면서 명성을 쌓았고, LA, 샌프란시스코, 뉴욕, 뭄바이, 아부다비 등 세계 주요 도시에 있는 중식 레스토랑 브랜드 하카산(Hakkasan)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식당 키누가와(Kinugawa), 헥사곤(Hexagone) 등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에서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저희는 초반부터 글로벌 프로젝트를 많이 했는데,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방법론을 배우는 일을 정말로 즐겨왔어요. 글로벌 프로젝트를 하려면 일단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또 저희에게는 아트가 중요해요. 그래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우리 인테리어에 접목하면서 풍성함을 더하는 일이 작업의 핵심을 이루지요.” 이들의 세련된 예술 감각과 절제된 디자인의 조화로운 감각을 사랑한 브랜드 중에는 명품 패딩으로 유명한 몽클레어도 있다. 기 & 부아지에 스튜디오는 서울 청담동 매장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 있는 몽클레어 주요 매장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고, 올해와 내년에 걸쳐 리뉴얼 프로젝트 결과물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몽클레어의 CEO 레모 루피니(Remo Ruffini)의 의뢰로 스위스 생모리츠와 이탈리아 코모에 자리 잡은 별장의 인테리어, 그리고 요트 인테리어까지 담당하기도 했다. 최근 이들이 가장 역동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분야는 단연 럭셔리 호텔이다. 체스 호텔을 비롯해 역시 파리 마들렌 지역에 있는 하얏트 호텔의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고, 멕시코 포시즌스와 뉴욕의 바카라 호텔 프로젝트도 맡았다. 최상급 호텔을 담당하더라도 이들이 추구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손님을 초대하고 싶은 자신의 집처럼 꾸민다는 것이다. “호텔도 집과 같은 곳이잖아요.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해 자신의 집에 며칠 동안 머물도록 할 때, 편안하면서도 손님의 주의를 끄는 여러 요소를 갖춘 공간으로 환영하고 싶지 않나요. 그런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죠.”
예술 감각과 자연애, 그리고 감성 지능이 빚어내는 세련된 앙상블
실제로 파리에 있는 파트리크와 도로시 부부의 자택 사진이 의도치 않게 공개된 적이 있는데, 훨씬 단순하고 편안한 분위기일 뿐이지 특유의 예술적이면서도 과하지 않게 자연미가 흐르는 디자인 감성은 그들의 작업과 비슷했다. 블랙 & 화이트 색상이 전반적인 배경을 이루지만 딱딱하거나 차가운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목재를 풍부하면서도 세련되게 사용했다. 거기에 주로 원목을 재료로 한 아트 퍼니처와 사진, 그림, 오브제 등 예술 작품을 곳곳에 놓아 풍요롭지만 과하거나 느끼하지는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실 저희 집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공간이라 대중에게 알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상당히 단순한 느낌으로, ‘팬시함’을 배제하고 인테리어 작업을 했어요. 다만 우리가 진행하는 상당수의 고객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뭔가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죠. 뭔가에 끌려다니지도 않고요.” 많은 이들에게 ‘살고 싶은 집’이라는 찬사를 받는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대해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기 & 부아지에 듀오가 갈수록 많은 러브콜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집이든 호텔이든 레스토랑이든 “그냥 우리 자신의 창조적 욕구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라는 신조를 갖고 작업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그들의 말처럼 원칙은 있어도, 억지스러운 꾸밈이 없는 디자인에 공감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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