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kutake Soich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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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2, 2015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이제는 멀리 유럽에서도 일부러 찾아온다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던 일본 중부 가가와 현의 작은 섬마을이 세계적인 문화 명소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후쿠타케 소이치로 고문이 이끄는 베네세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과 뚝심이 버티고 있다.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소외된 마을 사람들을 위해 현대미술을 곳곳에 심었다는 후쿠타케 고문. 그의 나이 불혹에 시작해 어느덧 거의 30년이 된 ‘재생 마을’ 스토리. 그 어떤 창조 도시 사례와도 다른 얘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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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천 명 남짓의 외딴섬 나오시마. 이 한적한 곳에 해마다 섬 인구의 2백 배가 훌쩍 넘는 7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나오시마를 비롯해 데시마, 이누지마 등 인근에 자리한 3개의 세토내해 섬들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황홀하게 펼쳐진 대자연과 건축,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예술의 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오시마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놓인 구사마 야오이의 ‘호박’ 시리즈,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지추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 등으로 이미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여행지다. 사실 나오시마는 1970년대에 제련소로 발전을 거듭하다가,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며 폐허가 되다시피 한 섬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출판 기업 베네세홀딩스가 섬 전반을 문화촌으로 재생시키는 대형 프로젝트에 발벗고 나서면서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어째서 한 기업이 그처럼 낙후된 곳을 예술로 재생시키고자 막대한 자금과 공을 쏟아부었을까?
“대학(와세다대 공대)을 졸업하고 도쿄에서 일하다가 베네세 창업주인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향이자 회사가 있는 오카아먀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에서 대도시의 긴장과 경쟁이 아닌 자연, 여유, 삶의 아름다움을 느꼈죠. 그래서 삶의 터전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나오시마에 캠핌장을 짓고자 한 선친의 뒤를 이어 아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산업이 아닌 예술을 통해 아름다운 삶을 유지하기를 바랐습니다.” 서울시 초청으로 방한한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 그룹 고문(70)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나이 불혹에 시작한 나오시마 재생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개발’이 아니라 예술을 벗 삼은 ‘공생’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그래서 섬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이 다소 훼손되는 일은 불가피한 희생이며,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면 경제적인 이익으로 보답받는다는 논리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마을 사람들이 대자연 속에서 문화와 더불어 잘 살기만 바랐다. ‘후쿠타케 퍼블리싱’이라는 회사명을 미술관 프로젝트 이름을 따라 잘(bene) 산다(se)는 의미의 ‘베네세(Benesse)’로 바꾼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노인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다
“처음에는 섬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미술관과 호텔을 지음으로써 섬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섬으로 만들 것이라고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마을 주민들도 이해해주었어요. 비록 오래 걸렸지만, 모든 것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죠.” 마을 사람들은 작품 제작에도 참여한다. 이름깨나 날리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방문해도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그저 ‘낯선 이가 왜 여기 왔지?’ 하는 식으로 순수한 호기심으로 대하면서, 점차 그들에게 밥도 차려주고 마을도 안내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시작된다. 예컨대 나오시마에 있는 2백 년 된 전통 가옥을 예술을 담는 전시장으로 바꾸는 이에(家)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여기에 참여한 작가 미야지마 다쓰오는 마을 주민 1백여 명을 불러 모아 함께 설치를 진행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선조가 살던 옛집에 숫자판 작품을 심으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주인공이 됐다. 후쿠다케 부자의 바람대로 지난 30여 년 동안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예술이 들어섰다. 일례로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돌담 위에 호박을 연상시키는 구사마 야요이의 예쁜 조각 두 점을 올려놓은 민가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구사마의 작품이 아니어도 그저 귀엽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노라면, 문을 열고 나서는 집주인과 마주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며 짧지만 행복한 만남을 가진다. 후쿠타케 고문은 특히 노인을 강조한다. “섬에 남아 있는 노인들이 활기를 찾고, 얼굴에 미소가 돌게 되어 정말 좋습니다. 작가는 떠나가지만, 작품 제작 과정을 관찰했던 섬 노인들이 다음 방문자들에게 마치 자신이 작가인 양 여러 에피소드를 전해줍니다.” 그는 이러한 참여 방식을 ‘나오시마 메소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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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과 보존의 딜레마

이처럼 현지인들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철학 때문에 방문객이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다. 나오시마 일대를 방문하면 기존의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다소 느리고 갑갑할 수도 있는 스타일에 적응해야 한다. 영어도 잘 통하지 않고, 미술관에 들어갈 때면 작품 관람 지침만 10여 분간 들어야 하며, 관광 서비스 인프라도 부족한 편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3년마다 나오시마 일대에서 열리는, ‘동양의 베니스 비엔날레’라고 일컬어지는 예술 축제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가 열렸을 때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작품을 보려고 날마다 100m도 넘는 줄이 서기도 했던 데시마 해변. 횟집이 늘어설법도 한데 가게 하나 찾아보기 어렵다. 작은 식당 주인들은 단체 예약을 신청하면 몹시 난처해하며 다른 식당을 소개해준다.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식당 문을 열기 시작한 단계이다 보니 단체 손님을 감당할 능력도 안 되는 데다,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른 곳으로 손님을 분배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오시마에 있는 택시는 오로지 한 대. 방문객 수요를 감안하자면 차량 수를 늘리고 직원을 둘법도 한데,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아예 처음부터 맡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덕분에 어제 탔던 택시가 지나가자 왠지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게 되고, 택시 아저씨도 함께 반가워하며 차 안에 우산을 두고 내렸다며 창문을 열고 전해주고 간다. 나오시마를 한문으로 쓰면 直道. 이 마을 사람들이 워낙 정직하고 순수해 임금님이 붙여준 이름이라는 일화가 자아내는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다.
후쿠타케 고문 또한 “마을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외부 방문객들이 마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가운데 만남이 이뤄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나오시마 일대의 섬들이 관광과 개발이라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싸이지 않도록 보호하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느리게 사는 삶의 여유를 만끽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제임스 터렐은 이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예 작품 제작 단계에서부터 ‘느림’을 집어넣었다. 작품 관람에만 무려 15분 이상이 소요되지만, 작가는 반문한다. “여기까지 와서 15분 더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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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종교를 대체하는 곳, ‘가와이 문화’는 없다
나오시마를 다른 문화 재생 도시와 구분 짓는 또 하나의 특징은 ‘콘텐츠’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그림으로 장식한 ‘가와이 스타일’의 귀여운 벽화가 아니라, 난해하기 일쑤인 현대미술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의 진실을 말하는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다시 말해 ‘정신성’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이 모여 있다. 히로시 스기모토의 이에 프로젝트 작품인 고오 신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본래 이 지역에 남아 있던 사당에 크리스털 계단을 만들어 지하 세계까지 연결시키는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 세계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길을 비추는 하늘의 빛은 깨달음의 여정을 보여준다. 지추 미술관은 각각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을 모신 제단처럼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네의 작품을 전시한 여러 미술관 중에서도 이곳의 분위기가 독특한 것은 오로지 자연광에만 의지한 안도 다다오 건축의 신비로운 빛의 움직임과 70만 개의 대리석을 2cm 사이즈로 깎아 넣은 바닥의 구성 덕분이다. 그림 한 점, 조각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데시마 미술관은 또 어떤가. 바람의 방향, 물방울 하나의 움직임에 모든 정신을 기울이며 세상의 번뇌를 씻을 수 있는 치유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본래 섬은 자연의 위력 앞에서 약한 인간의 존재를 여실히 느끼게 되는 곳이라 종교가 발달한 경우가 많다. 특히 나오시마 섬이 있는 가가와 지역에는 승려들의 성지순례 여행이 이어질 정도로 절이 많다. 후쿠타케 고문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종교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작품 선정에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선친은 대단한 예술품 컬렉터였고, 저도 어릴 때부터 미술과 함께 자랐지요. 예술의 명상적이고 철학적인 면을 존중하기 때문에 귀엽고 예쁜, 장식적인 그림은 배제하고, 미술의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전시하고 싶었습니다. 또 자연과 함께하는 예술이라는 콘셉트 아래 대지 미술 작품을 다수 선택했고요.” 특히 그는 산업적 폐해가 많았던 시골 마을에 현대미술을 보여줌으로써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길 바랐다고 했다. “현대사회에는 많은 문제와 모순이 있고, 현대미술에는 그 문제를 예술로 표현한 작품이 많으니까요.” 제련소를 미술관으로 바꾼 이누지마 세이렌쇼 미술관은 후쿠타케 고문의 설명에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경제가 문화 위에 있지 않고, 문화에 종속돼야 한다

그의 신념이 통한 것은 이 모든 아트 프로젝트가 철저히 베네세 그룹의 후원으로만 이뤄진 덕분일지도 모른다. 민관 합동 프로젝트가 아니라 나라의 보조를 전혀 받지 않는 덕분에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네세 그룹을 세운 후쿠타케 가문이 회사 지분 24.5%, 별도로 운영되는 후쿠타케 재단은 회사 지분 6.35%를 각각 소유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배당을 받는다. 후쿠타케 가문은 후쿠타케 재단에 기부하고, 재단은 후쿠타케 가문의 열망을 실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매년 후쿠타케 가문이 재단에 기부하는 금액은 연간 5억엔, 한화로 50억원 규모다. 이와 별도로 베네세 아트사이트(나오시마, 데시마, 이누지마 섬을 중심으로 한 미술관 외 전시장을 통칭한다)의 운영 수익(입장료와 아트 상품 판매 수익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70억원 규모다. 따라서 연간 1백20억의 예산으로 인건비, 작품 구매 등 미술관 운영 비용을 충당한다(공익 재단은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30~40%에 해당하는 법인세는 면제받는다). 후쿠타케 고문은 이처럼 지속 가능한 운영 체제를 가리켜 ‘공익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2010년부터 시작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나오시마가 속한 가가와 현을 비롯해 주변 지역의 협조를 받아 개최된다. 하지만 그 역시도 베네세의 주도로 이뤄졌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나오시마 방문이 예정돼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취소되자 후쿠타케 고문이 직접 편지를 썼고, 이에 고이즈미 총리가 지역 진흥비를 편성하면서 가가와 현 전체를 관통하는 예술 진흥이 시작된 것이다. 나오시마 섬으로만 몰리는 관광객을 주변 섬으로도 분산하고, 나오시마 섬에서 이룬 기적이 다른 섬으로도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예술 축제는 세토내해 주변의 섬 10여 곳에서 약 1년에 걸쳐 봄(3월 20일~4월 14일), 여름(6월 18일~9월 4일), 가을(10월 8일~11월 6일)로 나누어 진행된다. 2016년부터는 일본어, 영어 외에도 한국어, 중국어(2종류) 등 총 5개 국어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이토록 치밀하고 바지런하게 움직여왔기에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문화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일까. 후쿠타케 고문 역시 자신이 해온 일을 현대미술을 무기 삼아 싸우는 ‘레지스탕스’의 활동에 비유하면서 기업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나 지역 정부가 잉여 자본으로 숙제를 하듯이 문화를 채워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기업은 문화를 우선순위로 둬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경제를 모든 것의 우위에 놓고 있지만, 그 때문에 인간성이 파괴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요. 경제는 문화에 종속돼야 합니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섬을 ‘소비’하지 않고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해 ‘있어야 할 것’을 만들어내는 것, 그럼으로써 모두가 행복하게 공생하는 것. 아마도 이것이 바로 나오시마의 기적이 주는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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