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ing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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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2, 2020

글 윤다함(아트조선 기자) | 에디터 고성연 | 인물•작품 사진 제공 소피 창

Interview with_Sophie Chang


오는 12월 중순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대만 추상화가 소피 창(Sophie Chang). 그는 미술가로서의 경력이 그리 길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등 상대적으로 인지도를 꽤 빠르게 쌓아온 작가다.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추상화로 명성을 얻은 그에게는 작가로서의 이력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TSMC 창업주 모리스 창(Morris Chang)의 부인이라는 점이다. 현재 대만에 거주하며 작업 중인 소피 창이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앞둔 소감을 영상을 통해 전해왔다. 화상 통화로 만난 그의 인상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쏘쿨(so cool)’이었다.




영상 통화가 연결되자 웃음 가득한 소피 창의 모습과 더불어 그의 뒤로 벽을 빼곡하게 메운 대작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트북을 든 채 직접 스튜디오를 안내하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고 쾌적해 보이는 작업실 환경을 언급하자 “남편이 마련해준 곳”이라며 미소 지었다. “제가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뒤 헤매지 않도록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해준 사람이 바로 남편입니다. 저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지요.”
소피 창이 처음 미술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부터다. 친구가 운영하는 미술 학습반이 정원에 미달되자 머릿수를 채워주기 위해 들은 수업이었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창작의 기쁨을 온전히 경험한 그는 ‘운명의 업’을 찾게 됐다. 그리고 70대 중반인 지금껏 14년째 화업을 이어오고 있다. 우연히 미술의 길에 들어진 이래 자연을 소재로 한 추상 산수화 작업에 꾸준히 몰두해온 소피 창은 아침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단다. 그만의 창작 리추얼인 셈이다. “작업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예요. 작업할 때면 늘 보살의 마음을 연상하며 임하려고 합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를 화면에 옮기고 싶거든요.” 다년간의 명상은 그에게 감정을 포착하고 세속 너머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의식을 깨닫게 해줬다. 명상에서 시작해 작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수련을 통해 내면의 불안과 화합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화면을 구현해낼 수 있었다고.

‘Dancing Wind I'(2020), 227X182cm, Ink,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 ‘The Immeasurable IV'(2018), 72.8X60.5cm, Acrylic on canvas / ‘Flowing World'(2020), 227X182cm, Oil, ink and acrylic on canvas
수묵 아닌 유화로… 전통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추상 산수화

이렇듯 불교 수행 방식을 따르는 작품 철학을 바탕으로 하지만 소피 창의 작품 내용과 형식을 보노라면 동서양을 자유로이 오간다. 동양 산수화의 기법에 캔버스, 아크릴, 오일 등 서양 재료를 접목해 독창적인 화면을 창조한다. 이를테면 먹과 한지를 유화와 캔버스로 대체하고 아크릴과 아교를 섞고 금박을 콜라주하는 식이다. 동시에 전통 기법을 적극 활용하기도 하는데, 그중 핵심 기법은 ‘지묵법(漬墨法)’이다. 먹의 수성에 따라 스며드는 특성을 강조하는 이 기법을 통해 자연의 역동성과 생동하는 듯 강한 에너지를 표현한다. “전통 중국화 이념에서의 ‘기운생동(氣韻生動)’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지묵법을 차용하게 됐죠. 제 작업 과정에서 ‘기’는 붓의 속도감, ‘운’은 전체 화면의 리듬이라면, ‘생’은 화면 공간의 확장인 생장(生長)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은 바로 생동하는 에너지의 표현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와도 같아요.”
전통 산수화의 현대화를 위한 도전에 골똘한 만큼 그가 작업에서 가장 중시하는 지점은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다. 중국 산수화에 여백이 존재한다면 작가는 공백을 콜라주로 채우길 택했고, 더욱 유연하고 밝은 느낌의 화면을 위해 흑백이 아닌 색채를 도입했다. 유화와 수묵을 함께 사용해 전통화와 서양화의 화합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그가 화려하고 강렬한 컬러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채로운 색을 통해 생명력을 균형 있게 드러내고자 노력합니다. 제게 있어 색깔이란 저 자신에 잠재된 내면의 균형이에요.”


<스며들다, 점점 더: 소피 창>,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첫 개인전

오는 12월 18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트조선 기획전 <스며들다, 점점 더: 소피 창>은 한국 관람객과 처음 마주하는 자리다. 작가가 10여 년간 몰두해온 추상화의 새로운 변주를 보여주며 근작부터 신작까지 6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타이틀은 작가 고유의 화법을 뜻하는 동시에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은 것이다. “전시명은 제 작업 방식과 태도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스며들다’가 지묵법과 관련된 기법이라면, ‘점점 더’는 불교 수행의 점수(漸修)에서 따온 것으로 예술적 수행을 의미하죠. 제겐 지묵법 자체가 예술 창작의 중심부로 더욱 심도 있게 들어가는 과정과 같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방한이 어려운 탓에 소피 창은 이번 전시에 몸소 발걸음을 옮기지는 못한다. 그러나 전시 오프닝 리셉션을 인스타그램 라이브와 줌을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다. 따라서 행사 당일 전시장에서 온라인으로 작가와 만날 수 있다.
문의 02-724-7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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