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05, 2023
글 고성연
Exhibition in Focus
일상에서 비롯된 소재를 도구로 삼아 인간의 현실과 정체성을 곱씹어보는 회화를 만날 수 있는 전시 2선을 소개한다. ‘제유법’ 시리즈로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얻은 뒤 차곡차곡 작가 커리어를 쌓아오고 있는 바이런 킴(국제갤러리 부산점), 그리고 요즘 미술계에서 부쩍 관심을 받고 있는 테일러 화이트(지갤러리)의 개인전이다. 각각 ‘바다’와 ‘집’이라는 매개체를 들고 나와 자신만의 사유와 스타일로 담아낸 회화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바다와 나, 자연과 인류 #바이런 킴, <Marine Layer>展
저마다 색상이 다른 단색조의 사각형이 빼곡하게 캔버스를 메운 작품 ‘제유법(Synecdoche)’ 연작은 바이런 킴(Byron Kim, 1961년생)의 대표작으로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인상적으로 첫선을 보였다. 언뜻 모노크롬 회화처럼 보이지만 한 인물의 고유한 피부색을 재현했다는 각각의 화면이 모여 다인종 사회를 표현한다. 재미 교포로서 미국에서 여러 인종과 섞여 자란 작가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대학 시절 문학을 전공한 작가는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수사법인 제유법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파편화된 신체의 미니멀한 표현을 통해 개개인이 각각 중심이 되어 사회가 돌아간다는 관계의 미학을 짚어본다. 형식적 독창성과 개념적 정밀성의 균형이 빼어난 추상 작가라는 평을 얻고 있는 바이런 킴은 구상적인 소재를 끄집어내 우리가 맺는 관계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5년 전 국제갤러리 서울점에서 ‘하늘’을 소재로 선보인 <Sky>전에서도 그랬고, ‘바다’를 매개체로 택한 신작을 들고 나온 이번 전시 <Marine Layer>에서도 그러하다. 표면적으로는 다분히 일상적인 장면을 포착한 듯하지만 그 안에서 복잡다단하게 연결되어 작동하는 우리네 삶의 관계성, 그리고 현실을 둘러싼 이슈를 들여다본다. 전시명 ‘Marine Layer’는 바다에 대한 상상을 수중, 수면, 바다 위(하늘)로 나눠 기록한 데서 나온 것이고, 이번에 내놓은 신작의 시리즈명인 ‘B.Q.O’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호머의 <오디세우스> 등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Berton, Queequeg, Odysseus)을 각각 딴 것이라고 한다. 팬데믹 여파로 미국 플로리다주 외딴섬에서 머물며 다시 읽게 된 소설들이 상상력을 자극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에게 바다가 인간의 고군분투를 은유하는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한다고. 수영이라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활동으로 물과 다시 조금씩 가까워진 작가가 광활한 바다에서 위안을 찾게 되었다고 하듯, 그의 작업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근원적인 힘이 잔잔하면서도 강력하게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듯하다.
전시명 <Marine Layer> 전시 장소 전시 장소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 기간 2023년 4월 23일까지 홈페이지 www.kukje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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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는 바이런 킴(Byron Kim) 개인전 <Marine Layer> 설치 모습. 이미지 제공_국제갤러리
2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Marine Layer>를 위해 한국을 찾은 바이런 킴(b. 1961) 작가. 전시는 오는 4월 23일까지 계속된다. 사진_안천호 이미지 제공_국제갤러리
3 바이런 킴, ‘B.Q.O. 31(Canyonview, UCSD)’(2022), Acrylic on canvas, 208 x 152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_안천호 이미지 제공_국제갤러리
2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Marine Layer>를 위해 한국을 찾은 바이런 킴(b. 1961) 작가. 전시는 오는 4월 23일까지 계속된다. 사진_안천호 이미지 제공_국제갤러리
3 바이런 킴, ‘B.Q.O. 31(Canyonview, UCSD)’(2022), Acrylic on canvas, 208 x 152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_안천호 이미지 제공_국제갤러리
고군분투하며 버텨내는 집과 우리네 삶 #테일러 화이트, <House Mind>展
‘집’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그리운 안식처라고 답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어린아이의 숙제에 자주 등장할 만한 고정관념이다. 미국 작가 테일러 화이트(Taylor White, 1978년생)의 전시 <하우스 마인드(House Mind)>에서 선보이는 작업 세계에 담긴 집은 언뜻 봐도 심상치 않다. 작품마다 집이 홀로 등장하는데, 한쪽 방향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간신히 지탱하고 있거나,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될 위험에 처해 있는 등 저마다 맞닥뜨린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위태롭고 쓸쓸해 보인다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2019년 이래 국내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을 맡은 지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설명하듯 오일 파스텔로 그어 내린 획들은 거칠고 혼란스럽고, 어두운 기색마저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집들의 고난이 ‘파국’을 예고하는 건 아니다. 작가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집’은 역경에 굴하지 않고 현실과 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매개체다. “이 그림들 중 상당수는 외부의 힘과 거센 바람, 불에 맞서 바로 서 있기 위해, 파손되지 않기 위해, 진실되기 위해,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다소 삐딱한 모양새와 기운을 품고 있지만 어쩐지 정이 가는 테일러 화이트의 집은 지구촌을 심하게 멍들게 한 팬데믹의 강타 속에서도 지난한 투쟁의 여정을 이어가는 우리네 삶과 어딘가 모르게 닮은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세계적인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가 지원하는 협업 플랫폼에서 선정한 ‘유망 아티스트’ 대열에도 오른 테일러 화이트는 원래 특유의 강렬한 미감이 담긴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2022년부터 실험적 성향이 강한 방식에서 한 발짝 벗어나 유년 시절에 자주 그리던 집, 차 같은 소재를 되짚어보며 구상적인 드로잉을 활용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집’을 소재로 한 작업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건 이번 지갤러리 전시가 처음이라고. 글 고성연
전시명 <House Mind> 전시 장소 지갤러리(G Gallery) 전시 기간 2023년 4월 29일까지 홈페이지 www.ggalle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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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지갤러리(서울 삼성로)에서 선보이고 있는 미국 작가 테일러 화이트(Taylor White) 개인전 <하우스 마인드(House Mind> 전시 풍경. 오는 4월 29일까지.
3 Taylor White, ‘A Party Maximum’(2022). Oil and oil stick on canvas, 162.56 x 137.1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 Gallery 이미지 제공_
3 Taylor White, ‘A Party Maximum’(2022). Oil and oil stick on canvas, 162.56 x 137.1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 Gallery 이미지 제공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