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02, 2025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아트 신에는 수많은 젊은 작가가 매일같이 등장하며 ‘새로움’을 말한다. 새로운 예술이란 어떤 걸까? 최근 신간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를 낸 김도훈 영화평론가는 ‘물건’이나 ‘작품’을 고르는 취향을 남에게 빌리지 말고 제발 ‘자신에서부터’ 출발하라고 말했는데, 예술도 마찬가지다. 보는 관점에서도 작가들의 진실성과 그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게 가장 와닿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는 이유는 그 알 수 없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외의 것들은 결국 중요하지 않다.” 영화 〈데미지〉의 대사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삶을 이해하게 하는 회화의 힘 #그룹전 〈Next Painting: As We Are〉 국제갤러리 K1, K3
AI가 그리는 그림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회화’나 ‘미래의 회화’에 대해 궁금해진다. 디지털 회화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수공예적 감각을 경험하고, 직접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예술을 그리워할 게 분명하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인 작가 고등어, 김세은, 유신애, 이은새, 전병구, 정이지 작가가 이에 응답했다. 그룹전 에서 작가들은 각각 회화 매체 특유의 느린 시간성과 물질성에 주목해 ‘밀레니얼 세대의 회화는 디지털 이미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지만, 우리에게 제시되는 작업의 최종 귀결은 여전히 물리적 사물이자 형상’임을 보여준다.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매년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를 모아 기획하는 전시 〈젊은 모색〉에 선정되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고등어(b. 1984) 작가는 일상의 사건들을 화면에 콜라주하는데, 화면 속 풍경이 마치 작가의 현실과 상상이 결합된 일기장처럼 보인다. 역동적인 도시라는 공간을 본인이 온전히 받아들이는 감각으로 표현하는 김세은(b. 1989) 작가는 도시의 변화하는 풍경을 순간 포착하는 듯한 시선으로 ‘도시의 시간’을 화면에 붙잡아둔다. 지난 몇 년간 네덜란드에 체류했던 이은새(b. 1987) 작가의 회화는 작가의 에너지가 그대로 느껴질 만큼 풍경이나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얼룩, 타박상, 상처부터 남은 음식, 부스러기 등 표면에 부딪히거나 미끄러진 모든 흔적을 수집하고, 심지어 표면 아래 좌절이나 분노까지 회화로 표현할 만큼 독창적인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스위스 베른 응용과학대학교 현대미술과를 졸업한 뒤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유신애(b.1985) 작가는 마치 도예가처럼 장인 정신이 배어 있는 고전적 화풍을 추구한다. 정이지(b. 1994) 작가는 직접 본 풍경이나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화폭에 담아내는데, 스냅사진 같은 장면들이 마치 명화처럼 한번 더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으로 바뀐다.
전시명 〈Next Painting: As We Are〉 전시 기간 7월 20일까지 전시 장소 국제갤러리 K1, K3
1, 4 그룹전 〈Next Painting: As We Are〉에 참여한 정이지 작가 작품과 김세은 작가의 작품이 보이는 전시장 모습.
2 ‘다음 회화’에 대해 고민한 젊은 작가들은 가장 오래된 매체인 회화의 물질성과 역사성에 대해 각각의 수공예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했다.
3 이은새 작가의 회화와 설치 작품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내밀한 세상을 보여준다.
※ 1, 2, 3 이미지 제공_국제갤러리
2 ‘다음 회화’에 대해 고민한 젊은 작가들은 가장 오래된 매체인 회화의 물질성과 역사성에 대해 각각의 수공예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했다.
3 이은새 작가의 회화와 설치 작품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내밀한 세상을 보여준다.
※ 1, 2, 3 이미지 제공_국제갤러리
모두의 ‘몸’이 숭배의 대상으로 거듭나는 순간 #소피아 미촐라 〈Astropoodles〉 P21
소셜 미디어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몸’의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기준으로 ‘좋아요’를 누른다. ‘수많은 몸’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몸’에 대한 자유로움을 선언하는 작가 소피아 미촐라(Sofia Mitsola, b. 1992)는 모든 몸을 숭배하는 것 같다.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나고 자라 최근에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소피아 미촐라의 한국 첫 개인전 . 물 흐르듯 유연하고 성별과 시대를 넘나드는 몸, 먼 미래에서 도착하거나 고대 신화에서 깨어난 듯한 부드럽고 흐릿한 신체가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그녀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Astropoodles(그리스어로 ‘별’을 뜻하는 Astro와 Poodle를 결합한 단어로 작가가 창조해낸 세계)’부터 우주의 요염한 여성, 공상 과학 속 목욕하는 요정, 우주로 뛰어오르는 푸들 등을 상상하며 유머러스하게 신체를 변형했다. “미촐라의 작업은 구스타프 클림트, 페르낭 크노프,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관능적인 인체 표현의 회화에서부터 존 갈리아노의 런웨이 스타일, 타마라 드 렘피카의 아르데코 미학, 1980년대 플레이보이,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 문화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박신영 큐레이터의 설명처럼 소피아 미촐라는 신화적 모티브부터 현대적 아이콘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한다. 다양한 신체는 몽롱한 상태에 있기도 하고 변신을 앞둔 찰나의 순간에 놓여 있기도 한데, 모두 해방된 듯한 포즈를 하고 있다. 소피아 미촐라는 “욕망하는 몸, 욕망 받는 몸으로 살아간다는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각자가 자신의 몸을 투영하고 두려움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고 했다. “인간의 치수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수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처럼 소피아 미촐라가 전하고자 한 건 어떤 형태든 간에 우리 몸에는 아름다운 기억과 욕망이 존재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전시명 〈Astropoodles〉 전시 장소 P21 전시 기간 7월 12일까지
1 우주 같은 소피아 미촐라 전시. Photo by 고성연
2 소피아 미촐라의 영상 작업의 한 장면.
3 소피아 미촐라가 창조해낸 신화적 종의 이름이자 세계 ‘Astropoodles’(2025), Watercolour on paper, 56×75cm.
※ 2, 3 이미지 제공_P21
2 소피아 미촐라의 영상 작업의 한 장면.
3 소피아 미촐라가 창조해낸 신화적 종의 이름이자 세계 ‘Astropoodles’(2025), Watercolour on paper, 56×75cm.
※ 2, 3 이미지 제공_P21
시간의 흔적을 아름답게 새기기 #그룹전 〈Tenses〉 갤러리 휘슬
“베르그송(프랑스 철학자) 같은 이는 시간을 순간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삶의 흐름과의 연관성에 입각해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시간이란 단순한 양적 개념이 아닌, 내적 경험의 질적 측면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우 큐레이터가 쓴 전시 서문처럼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사색을 위한 전시 〈Tenses〉에서 만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여름의 나른함을 단숨에 날릴 만큼 위트 있고 낭만적이었다. 김세은(회화), 김유자(사진), 로와정(설치), 문이삭(조각), 한우리(영상) 등 5인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미술이라는 매체가 시간을 어떻게 포착하는가 혹은 연장하는가, 확장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신화에 기반한 서사를 영상으로 만들어 매끄러운 평면의 디지털 패널에 내보내는 방식, 〈시네마 천국〉의 할아버지 알프레도와 토토가 생각나는 영사기를 그대로 노출하며 아름다운 화면을 리드미컬하게 만들어낸 한우리(b. 1986) 작가의 작품은 알 수 없는 미래 세계와 과거의 노스탤지어 사이 어딘가를 연결하며 시간의 감각을 몽환적으로 느끼게 한다. 실제로 자신이 흙과 퇴적물을 수집하고 이를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문이삭(b. 1986) 작가의 조각은 작가가 경험한 시공간을 그대로 눈앞에 펼쳐놓는다. 한강을 거닐며 채집한 흙과 퇴적물을 재료로 조각하는 등 작가의 사소한 경험은 기념비적인 조각이 된다. 항상 어딘가 시적인 여운을 주는 로와정(b. 1981) 작가는 이번에도 아름다운 시간의 흔적을 만들어냈다. 패널에 새긴 ‘poetic’이라는 글자가 점차 흩어진 검은 자국으로 변해가는 삶의 흔적을 아름답게 새기며, 현재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가만히 응시하게 만든다. 형체가 없는 과거라는 무정형의 덩어리에 프레임을 주어 잠시 고정시키는 것. 로와정 작가의 ‘회상법’이다.
전시명 〈Tenses〉 전시 장소 갤러리 휘슬 전시 기간 7월 5일까지
1 문이삭 작가의 ‘윤슬 53’(2025), 조형토, 한강에서 수집한 흙과 나무, 유리로 만든 유약, 1,250℃ 소성, 175×43×38cm. Photo by 고성연
2 한우리 작가의 ‘포털(Portable Version)’(2025), OLED 패널, 돌(대리석과 희토류), 5분 30초, 가변 설치. 이미지 제공_휘슬
2 한우리 작가의 ‘포털(Portable Version)’(2025), OLED 패널, 돌(대리석과 희토류), 5분 30초, 가변 설치. 이미지 제공_휘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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