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5, 2025
글 고성연(난징 현지 취재)
더지 미술관(Deji Art Museum)_주목할 만한 난징(Nanjing)의 문화 예술 플랫폼
한국인들에게는 당분간 무비자 여행으로 한결 가볍게 길을 떠날 수 있게 된 중국의 수많은 도시 가운데, 필자의 첫 행선지는 난징(南京)이었다.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를 비롯해 무려 10개 나라의 수도였던 만큼 찬란한 문화유산을 지닌 고도(古都)이고 ‘매화’를 상징으로 내세운 이 도시는 난징조약, 난징대학살 같은 근현대사의 가슴 아픈 상흔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풍운’의 이미지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난징은 풍부한 교육 인프라와 첨단 산업을 토대로 중산층의 동력이 부각되고 있는 도시다. 자연스럽게 문화 향유와 소비 잠재력도 커져가는 상황에서, 시민은 물론 다국적 여행자에게도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는 한 미술관이 빚어내는 ‘예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매화의 기상을 품은 고도(古都)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인 양쯔강(長江)이 흐르는 장쑤성의 성도인 난징은 베이징, 뤄양, 시안과 함께 중국 4대 고도(古都)로 꼽힌다. 이 역사적인 도시의 황금기 중 하나는 육조 시대로 동오(东吴), 동진(东晋), 송(宋), 제(齐), 양(梁), 진(陈) 등 여섯 왕조가 3세기에서 6세기까지 난징을 수도로 삼으며 이어진 시기를 말한다. <삼국지>에 나도는 그 유명한 적벽대전을 치르고 동오의 기반을 다진 손권이 당시 말릉이라 불리던 강남(양쯔강 남쪽)의 난징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새 나라의 기상을 일으켰고, 물산이 풍부하던 이 도시는 중국 경제의 중심이 됐다. 난징의 오랜 역사를 들여다보면 손권을 비롯해 명나라의 주원장 같은 인물들이 주로 회자되지만 기원전 춘추 시대로 올라가노라면 훗날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진 오나라의 부차와 월나라의 구천이 등장한다. 춘추 시대에 난징은 오나라 땅이었는데, 기원전 333년 월나라를 무너뜨린 초위왕이 점령하면서 초나라 땅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애칭처럼 자주 쓰이는 난징의 옛 이름인 금릉(金陵, 진링)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더지 미술관(Deji Art Museum)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기획전 <An Era in Jinling>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시민의 놀이터, 메가 콤플렉스 내에 자리한 사립 미술관
물이 풍부하고 곳곳에 수목이 우거진 자연환경을 갖추고 글로벌 기업들의 전초기지로 부각되면서 전성기의 영광을 조금씩 되찾고 있는 듯한 난징은 인구 1천만의 메가 시티를 향해 가고 있다. 도심의 번화가인 신제커우에 자리한 더지 플라자(Deji Plaza)는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 숍이 들어서 있는 쇼핑몰, 5성급 호텔(리츠 칼튼 난징), 다채로운 세계 미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인프라 등을 고루 갖춘 메가 콤플렉스다. 쇼핑몰을 찾는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중화장실’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클럽 스타일, 젠 스타일, 몰입형 정원 스타일 등 층마다 다른 자인 콘셉트로 꾸며져 있는데, 그저 단순한 화장실이 아니라 다목적 럭셔리 공간이다.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입구부터 화려한 장식의 복도, 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는 파우더 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한 소파와 의자로 가득한 라운지, 성인과 아동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편리하고 아름다운 세면대 등 여러모로 차별된 면면으로 일부러 찾는 이들이 많은, 일종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더지 미술관은 8층에 자리하는데, 쇼핑몰의 유동 인구와 더불어 동서양, 그리고 고전과 첨단을 넘나드는 다양한 전시 콘텐츠로 문화 소비자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평일에는 2천5백 명 이상, 그리고 주말이면 평균 1만 명의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는다. 연간으로 따지면 1백만 명이 훌쩍 넘는다. 더지 그룹에서 비영리 기반으로 운영하는 이 사립 미술관은 2017년 문을 연 이후 시민이 다채롭고 깊이 있는 풍부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놀이터이자 글로벌 플랫폼을 지향해왔다. 이를 위해 30년 가까운 시간을 연구와 수집 활동에 쏟아부으면서 무려 2만 점이 넘는 방대한 컬렉션도 꾸려놓았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 미술, 각 주제에 기반한 동시대 미술, 디지털 아트 등에 이르는 폭넓은 콘텐츠를 버무리면서 다양한 기획전과 소장품전을 연다.
더지 미술관은 8층에 자리하는데, 쇼핑몰의 유동 인구와 더불어 동서양, 그리고 고전과 첨단을 넘나드는 다양한 전시 콘텐츠로 문화 소비자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평일에는 2천5백 명 이상, 그리고 주말이면 평균 1만 명의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는다. 연간으로 따지면 1백만 명이 훌쩍 넘는다. 더지 그룹에서 비영리 기반으로 운영하는 이 사립 미술관은 2017년 문을 연 이후 시민이 다채롭고 깊이 있는 풍부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놀이터이자 글로벌 플랫폼을 지향해왔다. 이를 위해 30년 가까운 시간을 연구와 수집 활동에 쏟아부으면서 무려 2만 점이 넘는 방대한 컬렉션도 꾸려놓았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 미술, 각 주제에 기반한 동시대 미술, 디지털 아트 등에 이르는 폭넓은 콘텐츠를 버무리면서 다양한 기획전과 소장품전을 연다.
#’꽃’ 컬렉션과 첨단 NFT 작가 기획전, 그리고 방대한 불교미술
“더지 미술관은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이야깃거리가 많으니까요. 전시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지만, 저희도 관람객의 호기심과 반응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그걸 토대로 부단히 연구해나가지요.” 2017년 더지 미술관에 합류한 아이린(Ai Lin) 관장은 늘 전시 덕분에 신선한 관점을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아이린 관장의 주도 아래 다양한 소장품전과 기획전이 꾸려졌는데, 현재진행 중인 전시는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An Era in Jinling>은 누적 1백만 명 넘는 관람객을 동원한 디지털 전시로, 미술관 소장품 중 보물인 청나라 궁정화가의 긴 두루마리 회화를 바탕으로 삼았다. 송나라의 생활 풍습을 담아낸 ‘금릉도(金陵图)’가 원본인데, 세 가지 판본 중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두 점을 제외하면 청나라 궁정화가 펑닝(Feng Ning)이 그린 더지 미술관 소장품이 중국에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더지 미술관의 전시실에는 벽 전체를 디지털 캔버스 삼아 이 그림을 생동감 있게 펼쳐놓았는데,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기반이라 자신의 아바타를 스크린에 등장시켜 역동적으로 즐길 수도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송나라의 인물들과 거리를 유유자적 노니는 느낌이랄까.
필자가 지난해 12월 초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NFT(Non-Fungible Token) 아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미국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개인전이 막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부를 향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 기술 발전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 등을 아우르는 ‘현실’을 실시간 채집하면서 2007년 5월 1일부터 13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한 결과물인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로 2021년 봄 크리스티 경매에서 6천9백만 달러(약 9백90억 원)의 낙찰가를 기록한 화제성 넘치는 작가지만 비플의 미술관급 전시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이 작품의 현재 버전부터 ‘HUMAN ONE’ 같은 또 다른 대표작, 그리고 난징 방문을 계기로 제작했다는 다양한 비플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꽃 컬렉션’ 전시는 2023년 개막한 주제가 있는 소장품 전시다. <Nothing Still About Still Lifes: Three Centuries of Floral Compositions>라는 긴 제목을 단 이 전시는 동서양을 포용하는 더지 미술관의 화려한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기획전이다. ‘꽃’을 공통분모로 자우키, 산유, 나라 요시토모 같은 동양 대가의 작품은 물론 클로드 모네, 구스타브 카유보트, 페르난도 보테로, 루이즈 네벨슨 등 서양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이 펼쳐져 있다. 아이린 관장의 설명처럼 어쩌면 진부하게 바라보거나 별 생각이 없이 스치던 ‘꽃 그림’은 사실 중국을 비롯한 인류사에서 중요한 함의를 품고 있는 소재이자 주제임을 상기하게 되면서, 의외로 집중해서 보게 된 전시다(누적 관람객 50만 여 명).
더지 미술관의 당찬 행보는 더지 플라자에 머물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난징 시내에는 셴린(Xianlin)에 세계적인 건축가의 설계로 미술관을 짓고 있어 수년 내 또 다른 랜드마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석가모니의 두정골 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3대 불교 성지로 일컬어지는 불정궁이 자리한 우수산(牛首山) 부지에도 전시 공간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불교 건축의 색다른 화려함을 품은 불정궁과 미술관의 조화라니, 궁금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필자가 지난해 12월 초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NFT(Non-Fungible Token) 아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미국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개인전이 막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부를 향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 기술 발전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 등을 아우르는 ‘현실’을 실시간 채집하면서 2007년 5월 1일부터 13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한 결과물인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로 2021년 봄 크리스티 경매에서 6천9백만 달러(약 9백90억 원)의 낙찰가를 기록한 화제성 넘치는 작가지만 비플의 미술관급 전시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이 작품의 현재 버전부터 ‘HUMAN ONE’ 같은 또 다른 대표작, 그리고 난징 방문을 계기로 제작했다는 다양한 비플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꽃 컬렉션’ 전시는 2023년 개막한 주제가 있는 소장품 전시다. <Nothing Still About Still Lifes: Three Centuries of Floral Compositions>라는 긴 제목을 단 이 전시는 동서양을 포용하는 더지 미술관의 화려한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기획전이다. ‘꽃’을 공통분모로 자우키, 산유, 나라 요시토모 같은 동양 대가의 작품은 물론 클로드 모네, 구스타브 카유보트, 페르난도 보테로, 루이즈 네벨슨 등 서양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이 펼쳐져 있다. 아이린 관장의 설명처럼 어쩌면 진부하게 바라보거나 별 생각이 없이 스치던 ‘꽃 그림’은 사실 중국을 비롯한 인류사에서 중요한 함의를 품고 있는 소재이자 주제임을 상기하게 되면서, 의외로 집중해서 보게 된 전시다(누적 관람객 50만 여 명).
더지 미술관의 당찬 행보는 더지 플라자에 머물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난징 시내에는 셴린(Xianlin)에 세계적인 건축가의 설계로 미술관을 짓고 있어 수년 내 또 다른 랜드마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석가모니의 두정골 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3대 불교 성지로 일컬어지는 불정궁이 자리한 우수산(牛首山) 부지에도 전시 공간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불교 건축의 색다른 화려함을 품은 불정궁과 미술관의 조화라니, 궁금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1 더지 미술관(Deji Art Museum) 입구. 중국 난징의 번화가 신제커우에 있는 더지 플라자 8층에 자리한다. 야간 개장(밤 10시 30분까지)하며, 현재 ‘꽃 전시’는 새벽3시까지 연장 운영 중이다.
2 청나라 궁정화가인 펑닝(Feng Ning)이 그린 긴 두루마리 그림으로 더지 미술관의 소장품을 애니메이선 형식을 가미한 스크린에 펼쳐 몰입형 전시로 선보이고 있다. “金陵图数字艺术展”展厅现场©️德基艺术博物馆
3 NFT(Non-Fungible Token) 아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미국 아티스트 비플(Beeple, 본명 마이크 윈켈먼) 개인전에서 선보인 대표작 ‘Everydays’
시리즈. 정치적 소용돌이, 기술 발전에 대한 집착과 공포, 부에 대한 열망과 분노 등 미국 현대 역사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디지털 작품이다.
4 Beeple, ‘In Nanjing(在南京)’, 2023.
5 ‘꽃’을 주제로 한 더지 미술관의 소장품 기획전 전시 모습.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증손주이자 미술사가 호아킴 피사로(Joachim Pissaro)가 기획을 맡았다. 더지 미술관의 동서양을 아우르는 꽃 컬렉션은 현재 4백여 점 규모다
6 René Magritte, ‘La Naissance des fleurs’, 1929.
7 Lalan, ‘Dance of Flowers’, 1970.
8 Sanyu, ‘Vase of Flowers in Blue’, 1956.
9 Piet Mondrian, ‘Chrysanthemum’, 1909.
10 Beeple, ‘FULL CIRCLE.’ ©️Beeple
11 Beeple, ‘Human One’, 2021, 221×121.9×121.9cm, Ryan Zurrer Collection.
12 석가모니 두정골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불정궁 내부 모습.
13 솟아오른 봉우리가 소 뿔을 닮아 이름 붙여진 우수산(牛首山)은 남송 때부터 중국 불교 역사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우수산 부지에는 불정궁과 더불어 사진 오른쪽 위에 보이는 불정탑 등이 있다.
※ 1, 2, 4~11 이미지
제공_Deji Art Museum
※ 3, 12, 13 Photo by 고성연
2 청나라 궁정화가인 펑닝(Feng Ning)이 그린 긴 두루마리 그림으로 더지 미술관의 소장품을 애니메이선 형식을 가미한 스크린에 펼쳐 몰입형 전시로 선보이고 있다. “金陵图数字艺术展”展厅现场©️德基艺术博物馆
3 NFT(Non-Fungible Token) 아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미국 아티스트 비플(Beeple, 본명 마이크 윈켈먼) 개인전에서 선보인 대표작 ‘Everydays’
시리즈. 정치적 소용돌이, 기술 발전에 대한 집착과 공포, 부에 대한 열망과 분노 등 미국 현대 역사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디지털 작품이다.
4 Beeple, ‘In Nanjing(在南京)’, 2023.
5 ‘꽃’을 주제로 한 더지 미술관의 소장품 기획전 전시 모습.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증손주이자 미술사가 호아킴 피사로(Joachim Pissaro)가 기획을 맡았다. 더지 미술관의 동서양을 아우르는 꽃 컬렉션은 현재 4백여 점 규모다
6 René Magritte, ‘La Naissance des fleurs’, 1929.
7 Lalan, ‘Dance of Flowers’, 1970.
8 Sanyu, ‘Vase of Flowers in Blue’, 1956.
9 Piet Mondrian, ‘Chrysanthemum’, 1909.
10 Beeple, ‘FULL CIRCLE.’ ©️Beeple
11 Beeple, ‘Human One’, 2021, 221×121.9×121.9cm, Ryan Zurrer Collection.
12 석가모니 두정골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불정궁 내부 모습.
13 솟아오른 봉우리가 소 뿔을 닮아 이름 붙여진 우수산(牛首山)은 남송 때부터 중국 불교 역사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우수산 부지에는 불정궁과 더불어 사진 오른쪽 위에 보이는 불정탑 등이 있다.
※ 1, 2, 4~11 이미지
제공_Deji Art Museum
※ 3, 12, 13 Photo by 고성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