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18 SUMMER SPECIAL] Design thinking : the Eindhoven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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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4, 2018

글 김민서

실용적이고 간결한 북유럽 디자인이 휩쓸고 간 자리에 화려하고 장식적인 이탈리아 디자인이 몰려왔다. 세계 디자인 트렌드는 마치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듯 바뀌지만, 네덜란드는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치 디자인(Dutch design)’은 단순히 ‘네덜란드 디자인’이 아니라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면서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는 디자인적 태도를 말한다. 더치 디자인은 디자인 학당으로 명성 높은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곳에서 더치 디자인의 정신을 이어받되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펼치면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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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서울에 ‘드로흐(Droog)’라는 다소 낯선 단어가 등장해 문화 예술계를 술렁이게 했다.당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네덜란드 디자인 그룹이자 브랜드인 드로흐의 탄생 10주년을 기념한 전시가 열린 덕분이었다. ‘No Design, No Style’을 내세우며 외형이 아닌 사물의 본질로 다가간 드로흐의 디자인 전시는 지금보다 인터넷 환경이 덜 발달했던 2000년대 초반의 한국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고, ‘더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효과도 자아냈다. 그러나 사실 네덜란드는 이처럼 한국 대중의 관심이 불거지기 이전부터 이미 꽤 오랫동안 문화 예술 강국으로 자리 잡고 있던 나라이며, 디자인사에서도 한 축을 담당했다. 20세기 초반에는 미술, 디자인, 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 이른바 신조형주의를 주창한 ‘데 스틸(De Stijl)’ 그룹을 결성했던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게리트 T. 리트벨트(Gerrit T.Rietveld)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다. 데 스틸 운동은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에도 영향을 주면서 모더니즘 미학을 구현해나간 역사가 있다.
더치 디자인을 이야기하자면 에인트호번(Eindhoven)을 빼놓을 수 없다. 에인트호번은 인구 22만여 명의 중소 도시지만 유럽의 주요 디자인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더치 디자인 위크(Dutch Design Week)가 매년 열리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디자인 친화적인 도시다. 드로흐의 본사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또 에인트호번의 명문 디자인 학교인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Design Academy Eindhoven)은 마르텐 바스(Maarten Baas)와 막스 램(Max Lamb) 같은 빼어난 디자이너를 여럿 배출하며 네덜란드 디자인계의 든든한 중추 역할을 맡아왔다. 정부 차원에서 디자인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도 큰 보탬이 됐다. 에인트호번 출신 디자이너들은 단지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인간을 둘러싼 사물과 현상 등을 먼저 고민하고 이를 디자인으로 해석하도록 교육받는다. 결과적으로 더치 디자인은 네덜란드라는 지역적 태생보다는 비판, 실험, 탐구와 같은 디자인적 태도에 가깝다. 2003년 당시 드로흐 디자인에 강력한 영향과 인상을 받은 한국의 많은 디자인 학도가 에인트호번으로 유학을 떠났다. 에인트호번 출신 디자이너들은 물성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실험하며 디자인에 접근하고, 주제 의식을 가진 작가주의적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고 작가로서 커리어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박 원 민
Wonmin Park
2013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iSaloni)에서 한국인 디자이너의 작품이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대모로 통하는 로사나 올란디(Rossana Orlandi) 갤러리를 통해 선보인 박원민의 ‘헤이즈(Haze)’ 시리즈다. 반투명한 성질의 레진이란 재료를 거의 완전한 비율과 색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일반인은 물론 디자인 전문가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실 디자인을 조금 안다는 사람들에게 레진은 아주 낯선 재료가 아니다. 똑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마련인데, 박원민의 작품에는 레진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고민한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무는 목공소, 철은 철공소가 있지만 레진은 작가가 직접 작업에 관여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에 다루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헤이즈 시리즈는 2014년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즈, 2015년 메종 & 오브제 라이징 아시아 탤런트 어워즈 등에서 수상하며 ‘박원민’이란 이름을 세계 무대에 널리 알렸다(그의 작품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이 작품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박원민을 ‘레진으로 작업하는 작가’로만 섣불리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지난해 파리, 런던, 뉴욕 개인전에서 선보인 신작 ‘플레인 컷(Plain Cuts)’은 알루미늄을 사용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스펙트럼을 확장해나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스케일이 커지고 기술에 디테일함이 더해지면서 이제 그의 작품은 기능적 조각품(functional sculpture)이라 표현해도 손색이 없다. “좋은 작가는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요리사가 재료 본연의 맛을 이끌어내듯이 작가도 재료의 원초적인 면을 잘 살려내야 한다. 물성을 잘 활용해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극대화해서 재료의  원초적 미를 잘 끄집어내야 한다.” 지난 2016년 월페이퍼 호텔 프로젝트에서 대리석으로 만든 리셉션 데스크의 조형미 역시 이러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3년 세계적인 디자인 행사인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 이후 그는 현재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CWG) 소속 작가로 파리에 거주 중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작업’이라고 강조하는 박원민은 신작을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다음 행보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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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bricks wo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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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emist's furni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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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재
Woojai Lee
어릴 때 종이로 탈을 만들던 기억이 있다면 이우재의 작품이 더 친숙하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단어 그대로 종이로 만든 벽돌 ‘페이퍼브릭(Paperbricks)’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던 중 떠오른 아이디어다. 종이탈처럼 신문지와 물, 풀을 섞어 종이죽으로 만든 후 틀에 넣어 모양을 잡고 말려 완성한다. 과정은 단순하다. 브릭 하나는 80g 정도로 들기에 매우 가뿐하고, 단단하지만 촉감이 부드럽다. 이 브릭을 조립해 커피 테이블과 벤치를 만든다. 이우재는 재료의 성질을 완전히 바꾸어 사용할 때 흥미를 느낀다. 종이죽을 러프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살린 ‘알케미스트 퍼니처(Alchemist’s Furniture)’는 종이의 또 다른 느낌을 보여주기 위한 두 번째 작업이다. 2016년에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을 졸업한 뒤 약 2년 동안 종이 작품 ‘페이퍼브릭스’와 ‘알케미스츠 퍼니처’ 시리즈를 선보인 이우재는 양승빈과 함께 7명으로 구성된 다국적 디자이너 그룹 ‘더 머티리얼리스츠(The Materialists)’로도 활동 중이다. 이들은 정해진 재료를 가지고 각자 나름대로 해석해 작품과 큐레이팅을 통해 보여주는데, 지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종이를 소재로 한 전시 <The Materialists Present Paper Extended>를 개최했고, 오는 10월 열리는 더치 디자인 위크에서는 가죽을 사용한 작품 세계를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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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승 빈
Seungbin Yang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의 졸업 전시는 전 세계 디자인 관련 종사자들이 방문해 재능 있는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자리다. 신진 디자이너 양승빈에게도 졸업 전시가 작가로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중요한 시발점이 됐다. 당시 그의 작품이 여러 매체의 편집장과 갤러리 큐레이터,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끌면서 잇따라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 2016년 졸업한 이래 에인트호번에서 스튜디오를 열어 활동하고 있는 양승빈은 유럽 사람들에게는 조금 이질적인 옻칠 작업을 한다. 오랜 유학 생활 동안 정체성 고민에 빠졌는데, 그러던 중 전통으로 회기하며 유럽과 한국의 공예를 작업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옻칠은 손바닥만 한 물건을 완성하기까지 1~2개월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오히려 가치를 높인다. 사실상 옻칠은 색상 표현에 한계가 있기에 양승빈은 제작 과정에 더 중점을 둔다. 전통 마감법인 옻칠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좀 더 현대적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 3D 모델링과 레이저 커팅을 이용했다. ‘21g’은 혼이 들어갔다는 뜻(영혼의 무게가 21g이라는 맥두걸의 실험에서 차용)과 종이를 기본으로 하여 무게가 가볍다는 뜻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작품명이다. 이후 21g은 점차 스케일을 키워 ‘Lacquered Forms’, ‘Simulacre’ 같은 작품 시리즈로 이어졌다. 실용성이 돋보이는 양승빈의 작품은 온라인으로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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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철 안
Chulan Kwak
얼마 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편집숍 챕터원 에디트. 이곳에는 마치 먹으로 흘려 쓴 듯 굵직한 선의 오브제가 자리 잡고 있다. 곽철안이 선보인 신작 ‘드래건(Dragon)’ 시리즈다. 한복 원단인 오간자의 물결무늬와 색상을 살린 ‘모아레(Moire)’ 시리즈와 미묘하게 색이 다른 전통 기와를 자르고 짜 맞춘 ‘기와(Kiwa)’ 시리즈 등 꾸준히 새로운 재료를 탐구하던 그가 이번에는 나무로 다시 돌아왔다. 직선의 단순한 조형미가 특징인 전작 모아레나 기와 시리즈와는 다르게 드래건 시리즈는 한자를 흘려 쓴 초서에서 차용한 형태로, 선이 부드러우면서 묵직하다. 수직 수평의 비율로 간결한 조형미가 휩쓸던 요즘 추세에 마치 반기를 드는 듯 검고 굵은 곡선의 덩어리가 인상적이다. 합판 위에 오간자의 자연스러운 물결무늬를 살려 투명한 막을 입힌 모아레, 기와를 자르고 면을 다듬어 이어 붙여 완성한 기와 시리즈와 전혀 다른 미감을 보여주는 드래건 시리즈는 합판을 구부려 형태를 만들고 먹으로 마감해 전작에 비해 큰 도전이 필요한 작업은 아니었다. 곽철안은 에인트호번에서 돌아온 후 한동안 사로잡혀 있던 재료와 기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자 이번 작업은 의도적으로 순수하게 조형적으로만 접근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드래건은 자신에게 정말 잘 맞는 옷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를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현재 상명대학교 생활예술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기도 한 곽철안은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며 작가로서 나아갈 방향성을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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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정 화
Jeongwha Seo
서정화는 다른 성질의 재료를 조합하며 작품을 구상한다.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서울 성수동 작업실은 딱히 용도가 없는 자그마한 돌멩이와 나무 등 다른 물성이 부딪히며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의 작품이 주는 느낌이 딱 그렇다. 2013년, 다섯 종류의 재료를 조합한 9점의 스툴 ‘소재의 구성(Material Container)’은 국내외 여러 매체와 2014년 런던 디자인 위크, 더치 디자인 위크 같은 전시에 소개된 터라 비교적 눈에 익숙한 작품이다. 제기(祭器)를 닮은 컨테이너는 스툴로서 효율적인 동시에 상판에 여러 재료를 접목해 보기에도 가장 적합한 형태다(구매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재료의 조합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 ‘소재의 구성’ 스툴은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하남 스타필드에서 접할 수 있다. 이후 소개한 작품 ‘사용자를 위한 구조(Structure for Use)’는 비슷한 조형미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활용도를 높였다. 서정화는 에인트호번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그의 작품에서 금속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지원받아 제작한 스테이셔너리 시리즈 ‘바살트(Basalt)’는 제주 현무함을 사용했으며, 가구 브랜드 휴(HUE)와 협업해 만든 ‘에이지드 블록(Aged Blocks)’ 시리즈는 메이플과 구스 원목에 알루미늄, 황동을 더했다. 본래 다른 소재를 매칭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는 서정화는 코르크, 아크릴, 완초 등 다양한 소재를 시도한다. 앞으로 어떠한 재료들의 새로운 조합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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