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ghtful & masterful exub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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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4, 2022

글 고성연

interview with_ 래리 피트먼(Lari Pittman)


대부분의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래리 피트먼(Lari Pittman) 같은 작가가 빚어내는 섬세한 회화의 세계는 정말이지 눈을 제대로 맞대고 ‘직관’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이미지 파일로만 접했을 때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복잡한 세계관의 소유자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도 조수 한 명 두지 않고 밑그림도 없이 그 대담하고도 정교한 구성을 소화해내는 래리 피트먼의 ‘수작업’은 몹시 경이로웠다. 그렇다고 그저 빼어난 ‘작업 테크닉’만으로 그를 재단할 수는 없다. 눈을 황홀하게 하는 시각적 풍부함의 기저에는 마치 ‘혼돈 속 질서’ 같은 구조미와 철학이 자리하고, 언뜻 과한 듯하지만 볼수록 부담스럽지 않은 감성이 흐른다. 한마디로 ‘볼매’다. 게다가 그의 작업 세계처럼 ‘래리 피트먼’이라는 작가 자체도 몸소 마주할 때 예상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지난 3월, 서울 이태원의 아담한 건물로 확장 이전한 글로벌 갤러리 리만머핀(Lehmann Maupin) 서울의 첫 전시를 수놓은 주인공으로서 한국을 찾은 래리 피트먼과 영감 만발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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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기치 못했던 팬데믹 시대로 접어들기 직전인 2019년 이른 가을, 필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여행을 갔다. 자주 그러하듯 당시에도 ‘나 홀로 미술관 투어’를 했는데, 방문 목록 중에는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자주 인용되는 래리 피트먼(Lari Pittman)의 대대적인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었던 해머 뮤지엄(Hammer Museum)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주일 정도의 시간 차이로 그의 전시를 놓쳤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쳐버렸고, 래리 피트먼은 지구인들의 손발을 묶어버린 시기를 겪으면서 열심히 작업한 신작을 들고 서울을 찾아왔다. 먼 여정을 위해 부스터 샷을 포함해 네 차례의 백신 접종을 마쳤다는 70세의 작가는 한 번도 와본 적 없었다는 서울에서의 첫 전시에 다분히 설렘이 느껴지는 눈빛을 발했다. 그런데 그 자신도 몰랐던 재미난 발견은 가로 6.5m나 되는 피트먼의 커다란 회화가 서울을 찾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1993년 서울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 출품작으로 그가 AIDS 위기, 동성애와 젠더 문제 등 사회·정치적 이슈를 다룬 ‘A Decorated Chronology of Insistence and Resignation’ 시리즈에 속하는 두 점이었다. 당시 피트먼은 미국 아트 신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40대 초반의 작가였는데,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니멀한 우아함에 무게를 두는 시대 감성에서 일부러 벗어난 듯한 장식적인 화풍과 동시대적인 주제 의식으로 비평가의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청년 시절부터 일찌감치 커밍아웃한 ‘퀴어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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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하고 유쾌한 로스앤젤레스발(發) 예술혼

피트먼이 태어난 로스앤젤레스는 개방성이 절로 연상되는 다문화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196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래리 피트먼(1952년생)에게는 성 정체성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많았을 것 같다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피트먼의 부모가 상당히 진보적이고 포용적이었던 덕에 적어도 집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고 한다.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와 이탈리아 혈통이 섞인 콜롬비아 출신의 어머니를 둔 그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함께 쓰면서 자랐는데,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라티노’ DNA를 주로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일상 언어로는 스페인어가 편하고, 사유의 언어는 영어라고). 피트먼은 부친의 일 때문에 어린 시절 콜롬비아에서 살기도 했는데, 투마코(Tumaco)라는 작은 도시에서 아주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교육할 만한 환경을 찾다가 카탈루냐 출신의 다른 두 가정과 힘을 합쳐 교실 하나짜리 작은 학교를 만들었다(당시 사진을 보면 단 6명의 아이들이 해맑게 놀고 있다). “우리 선생님이 우연히도 화가였어요. 맞아요, 아마도 그렇게 (화가로서의) 영감을 처음 얻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답니다.” 피트먼은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에 빠졌고, 바깥세상에서 ‘호모포비아’도 경험했다. 그래도 그에게 깊은 상흔이 없는 이유에 대해 “우리 가족은 항상 제가 정상적이라고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예술 대학교인 칼아츠에 다니던 시절 페미니즘과 개념 미술을 접하면서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에 휩싸인 덕분이기도 했다. 그의 멘토인 페미니즘의 대모 미리엄 샤피로는 유일하게 남성인 그를 제자로 받아줬고, 평생의 반려자가 된 동창생 로이 다월(Roy Dowell)을 만나 당당히 커플로 인정받았으니 그가 칼아츠 시절을 오히려 ‘온실 속에서’ 보호받은 행운의 시기라고 표현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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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라틴계 혈통으로서 2개 언어를 구사하면서 열려 있는 환경에서 성장한 ‘문화적 정체성’을 피트먼은 자신의 주요한 ‘자산(asset)’이라고 여긴다. “(작품에서 드러나듯) 저는 색에 대해서도 장식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어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지적인 ‘개념’에도 관심을 지녀왔죠.” 실제로 흔히 ‘데코럼 회화’라고도 일컬어질 정도로 장식적이고 표현적인 스타일을 지녔지만 그에게 있어서 작업의 출발점은 주로 ‘단어’나 ‘개념’이다. ‘장식’ 자체도 하나의 뚜렷한 개념이자 이념이자 철학적 요소인 것이다. “개인 취향으로 (장식적인) 회화를 한다기보다는 회화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런 장식적인 요소가 개념적인 정확성을 지닌다는 걸 깨달았고, 그것을 작품에 담으려고 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아와 문화를 표현하고 화풍을 발전시키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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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을 이끄는 용광로 같은 대도시에 대한 오마주

스스로의 묘사처럼 한 사람(연인)에게 충실한 모범생 같은 삶을 이어갔지만 젊은 피트먼에게 빈 구석은 있었다. 워낙 작업(회화)에 대한 열망도 컸던지라 그는 현대미술사에서 자신을 반영해볼 수 있는 단서를 찾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여성’과 ‘퀴어’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는 일생일대의 충격적인 사건을 맞닥뜨린다. 1985년 여름, 자택에서 강도한테 총을 맞아 장기를 크게 다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몇 차례 수술을 거쳤음에도 당시의 상처가 아직도 물리적인 고통을 줄 만큼 중상을 입었고, 심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피트먼에게 오히려 작업에서도 인생에서도 긍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저 자신에게 말했어요. 이대로 가라앉아 익사를 하든지, 아니면 살아남든지 할 거라고요. 그런데 저는 회복 탄력성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엄청난 에너지를 얻게 됐죠.” 죽을 고비를 넘긴 피트먼은 작업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를 일궈낸다. 기존에는 추상적 전통을 장식적으로 변용하는 느낌의 작업을 했다면 남근을 연상시키는 조롱박에 그림과 단어를 적어 넣은 작품(‘메멘토 모리(Memento Mori)’)처럼 보다 노골적이고 퀴어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직설적이어도 잃을 게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 자신만의 스타일과 메시지가 뚜렷해진 피트먼은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초청을 받으며 전성기를 맞게 된다.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제2의 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평론이 존재할 만큼 피트먼의 요즘 행보는 의미 있는 변화와 완숙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L.A. 미술의 전형’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동시대의 역사화’라고 칭해지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그의 작업이 폭력적인 현실과 잔인함, 트라우마를 다루더라도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 ‘대도시에 대한 오마주’를 주제로 선보인 신작들은 그러한 긍정의 면모를 드러내듯 한층 밝으면서도 정돈된 느낌을 뿜어낸다. 욕망과 적의와 애증이 들끓는 용광로에 비유되곤 하지만 그는 L.A. 같은 대도시가 지닌 활력과 역동성, 밀도를 사랑한다고 한다. 신작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공통분모는 누가 봐도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느껴지는 ‘알(egg)’의 존재인데, 알의 진화를 암시하는 듯한 전시 제목처럼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단계를 보여준다. 불투명한 알의 내부에서 투명도가 살짝 더해진 알의 바깥, 그리고 18세기 건축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기념비들과 나란히 하며 투명한 빛을 발하는 단계별 진화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래서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코로나를 도구화하는 이들이 있어요. 전 우리 삶에 드리운 멜랑콜리를 끄집어내 반전시키고 싶었어요. 바로 ‘알’이 등장하는 이유죠.”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자라났다’고 말하는 피트먼에게 알은 도시에 ‘여성성’을 불어넣어주는 은유적 존재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현대의 화가는 무엇보다 도시와 그 거주자들을 그린다’라고 했는데, 결국 피트먼은 우리네 멍든 영혼을 위로하는 창조적 선물을 건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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