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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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 2014

에디터 고성연

근대 사회학의 거장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 연대는 개인들의 유사성에 기초한 기계적 연대, 그리고 노동의 분화와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상호 보완성에 바탕을 둔 유기적 연대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보다 이상적인 형태의 연대는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오늘날엔 유기적 연대의 궁극으로 진화된 듯한 창의적 협업이 주목받고 있다. 세상에는 홀로서기로도 버텨나가는 이들이 많지만 ‘혼자서는 반으로 잘린 수레바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영혼의 단짝처럼 일에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십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 아닐까. 고군분투하지 말고 주위를 잘 둘러보라!


‘협업적 창의성(collaborative creativity)’에 대해 많은 글을 쓴 영국의 저널리스트 출신 학자 찰스 리드비터는 창의성이란 다양한 기술과 관점,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공동 작업을 펼치며 개발하는 끊임없는 사회 활동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창의성이란 기본적으로 협업과 관련돼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모두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인터넷이야말로 이런 협업 활동을 증진시키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한다는 부연 설명이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상당수 학자들이 서비스와 정보의 유통 방식이 달라진 21세기에는 한 사람이 다채로운 영역을 아우르면서 1인 기업을 운영하고, 개개인의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1인 시장이 형성되는 이른바 ‘네오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바로 협업이 뒷받침돼야 한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현 시대에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조율하는 내공을 갖추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 같은 크리에이터 사이에 창조적인 협업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례가 눈에 많이 띈다. 듀엣도 있고, 트리오도 있고, 4인조도 있는 뮤지션처럼 말이다. 심지어 세계 최초의 심리학 듀오를 표방하는 독일의 작가 2인조도 있다. 폴커 키츠와 마누엘 투쉬라는 심리학자들인데, 이들은 최근 공동 저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물론 불세출의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와 그를 아낌없이 후원한 구엘, 고전 명작인 영화 <길>에서 펠리니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이자 연인, 배우자였던 줄리에타 마시나, 또는 팀 버튼 감독과 조니 뎁 같은 형태의 파트너십은 아니다. 예술가와 후원자, 감독과 배우, PD와 작가의 관계처럼 하나의 작업 영역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면서 서로에게 필수적인 존재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역할을 함께 수행해나가는 진정한 파트너십을 말한다. 그렇다고 빛과 그림자처럼 한 사람만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다른 이는 부각되지 못하는, 다시 말해 힘의 균형에서 한쪽이 심하게 기울어지는 관계도 아니다. 따로 또 같이, 즉 전체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동시에 각각의 구성원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대우를 받는다.

협업의 불문율, ‘나 혼자만의 공’은 없다

사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서로가 힘을 합치면 당연히 효과가 커지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처럼 모든 게 간단하다면 누구나 쉽게 옆 사람 손을 잡을 것이다. 실제로는 개성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한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타협하지 못해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아이디어 주창자인지를 놓고 자존심이 걸린 미묘한 신경전이 불거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협업의 달인’은 대체 어떤 식으로 시너지를 낼까? “혼자 작업하면 단일한 관점에 얽매이기 쉬운데, 셋이 함께하기 때문에 서로의 아이디어에 대해 더욱 도전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관점을 제시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갑니다. 따라서 사실상 누가 최초의 아이디어를 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을 만큼 협업 체제가 돈독한 것이지요.” 최근까지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혼성 3인조 크리에이터 그룹 트로이카(Troika)의 세바스찬 노엘은 방한을 기념해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분명히 특정한 지점에서 누군가 더 많이 기여했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파트너십이란 굳이 그렇게 공을 따지지도 않으며, 공헌도를 계산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협업의 면면이 공고하고 유기적인 것이 아닐까.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삼총사’로 활동하는 트로이카는 런던의 왕립예술학교(RCA) 동창생으로 이뤄져 있다. 지금도 런던을 무대로 활약하고 있지만 영국 출신은 아무도 없으며, 전공도 저마다 다르다. 이 중 ‘청일점’인 세반스찬 노엘은 프랑스 출신으로 엔지니어링과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RCA에 입학하기 전에 안토니오 치테리오, 마리오 벨리니 같은 이탈리아 거장들의 스튜디오에서 경험을 쌓았다. 에바 루키와 코니 프리어는 둘 다 독일 출신. 네덜란드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RCA에서 커뮤니케이션 아트 &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딴 에바는 디자이너와 에디터 경력이 있다. 코니 역시 다문화적 경험이 풍부하다. 대학 시절 몬트리올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사진을 전공한 그녀는 캐나다와 독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이처럼 특색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은 분업이 아니라 철저한 협업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많이 싸우기도 하지요. 각자 아이디어를 내면 그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적인 토론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우리 작업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공동의 탐색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코니 프리어의 말이다.

공동의 작업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이다

협업적 창의성이 얼마나 근사하게 펼쳐질 수 있는지는 트로이카의 작품 세계를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공항의 풍경을 수천 개의 플립 장치를 달아 움직이는 구름 모양으로 표현한 설치 작품 ‘클라우드(Cloud)’, 빗물처럼 내리는 빛의 방울을 기계장치로 구현한 ‘폴링 라이트(Falling Light)’, 목재 구조와 파라핀 양초를 활용해 미로 속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아가는 검은 그을음을 그려낸 ‘래버린스(Labyrinth)’. 테크놀로지와 인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과 통찰을 첨단 기술과 아날로그적 느낌을 조화시키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작품에 투영하는 그들의 공동 작업은 확실히 다면적인 매력과 깊이를 동시에 품고 있다. 3인조의 주장대로 각자 지닌 특장점을 한데 녹여내되 공통된 관점을 갖고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과정이 집약된 결과물다운 오라가 풍겨난다. 스웨덴의 여성 3인방으로 유명한 디자인 그룹 프런트(Front)도 뱀이 똬리를 튼 모양을 연상케 하는 곡선의 옷걸이처럼 범상치 않은 발상을 과감히 실행으로 옮기는 창조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 이들 역시 발상부터 생산까지 셋이 다 같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마음을 잡아끄는 실험적인 감각이 또다른 생명체처럼 불거져나온다고. 물론 작품의 성격에 따라서는 혼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적인 역량을 갖춘 인물도 고도로 복잡해진 오늘날의 세계를 다층적인 시각과 방식으로 담아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트로이카의 나머지 한 멤버인 에바 루키는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점에 동의를 표했다. “우리는 같은 문제로 똑같은 영향을 받지만, 그 문제를 한 사람이 해결할 순 없어요.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토론해야 하고, 그 과정이 예술이지요.” 스승과 제자로 만난 인연을 ‘영혼의 파트너’ 관계로 승화시켜 인터랙션 디자인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런던의 2인조 스튜디오 러키바이트(Luckybite)도 비슷한 경우다. 이 사제 듀오는 끊임없이 대화를 해가며 창조하는 과정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좋은 직장까지 박차고 나와 작은 인터랙션 회사를 차렸다. 띠동갑이 넘는 나이 차에도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는 대등한 파트너로서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타인의 장점을 존중하며 공동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 자체를 진정으로 즐기는 태도야말로 협업의 요체일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거의 바닥까지 드러내면서도 대등하게 작업하려면 서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뒷받침돼야 한다. 서로의 창조적 영혼을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인 요소 말고도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는 지속적인 관계의 핵심이니 말이다. 크리에이터 그룹에 형제나 연인, 부부, 사제, 동창생 같은 끈끈한 인연이 많은 것도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형제는 닮았다, 유기적인 연대의 바탕은 굳건한 믿음일까

디자인업계 큰 별인 브라질 출신의 캄파냐 형제. 뱀이 엉켜 있는 듯한 소파, 짚 더미를 연상케 하는 옷장 등 전위적인 분위기 물씬 나는 독특하고 기발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 형제는 원래 각자의 길을 걷다가 합친 사례다. 예술에 관심이 무척 많았던 형 움베르토 캄파냐는 원래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이지만 혼자 조각 작업을 할 만큼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건축을 공부한 동생 페르난도는 이를 지켜보다 형을 돕게 됐고, 결국 둘은 ‘시너지’를 택했다. 형이 법조계를 떠나 동생과 함께 스튜디오를 차리면서 국보급 디자인 듀오가 탄생하게 되었다. 페르난도 캄파냐는 웹진 <디자인붐>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형의 작품에 기능성을 불어넣으면서 작품 세계에 성숙도가 더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매는 드물지만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형제 크리에이터들은 캄파냐 형제 외에도 많다. 미술계에서는 꽤 드물게 ‘스타 브러더스’로 자리 잡은 영국의 채프먼 형제가 있고, 세계적으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2인조 산업 디자이너 로낭 & 에르완 부룰렉도 친형제 사이다. 20세기 최고의 디자인 아이콘이었던 필립 스탁의 시대가 저물면서 생겨난 빈자리를 부룰렉 형제가 채워주고 있는데, 1999년 스튜디오를 차린 뒤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유기적인 형태의 디자인을 주로 선보이는 부룰렉 형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인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 속 남자 주인공의 집 다이닝 룸에 걸린 패브릭 작품 ‘클라우즈(Clouds)’로 은근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영화계로 넘어가면 좀 더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띈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가끔 공동 작업을 펼치고, 김곡과 김선 감독이 형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외로 시선을 돌려보면 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매트릭스>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남매), 코미디 장르의 황제로 여겨지는 패럴리 형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명실공히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코언 형제가 있다. 뉴욕대 영화과를 졸업한 형 조엘 코언이 B급 호러 영화를 편집하는 등 업계에 먼저 뛰어들었고, 프린스턴대 철학과를 나온 세 살 터울의 동생 에단 코언이 합류했다. 공식적으로 감독은 형이, 프로듀셔는 에단이 맡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작업을 공동으로 한다고. “서로 머뭇거리는 상대의 말을 알아서 마무리해주고, 무채색 옷을 입고, 같은 상표의 담배를 피우는 코언 형제는 점점 더 구별하기 불가능해지고 있다.”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둘을 쌍둥이처럼 닮아가는 진정한 짝꿍으로 묘사하고 있다. 활발한 성격의 조엘과 달리 에단은 몹시 내향적인 괴짜인 데다 둘은 나이는 물론 키 차이도 제법 나는데도 말이다. 오죽하면 코언 형제의 대표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출연한 배우가 ‘몸은 하나, 머리는 둘인 괴물’이라고 표현했을까.

모든 ‘케미스트리’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예술은 팀 스포츠다.” 지구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조직 중 하나로 꼽히는 영화 스튜디오 픽사(Pixar)에서는 이런 말로 협업의 미학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굳이 픽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창의적 재능이 즐겁게 노니는 놀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를 옆에 두었다는 건, 고단하고 외로운 인생에서 얼마나 큰 행운이겠는가? 그러므로 개인이든, 팀이든 자신과 ‘긍정적인 케미’를 창출하는 영혼의 단짝을 찾는 건 분명 좋은 생각일 것이다. 영화감독이나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회사의 팀 내에서 ‘짝짓기’를 제대로 하면, 즉 좋은 동료(workmate)만 잘 만나더라도 참신한 ‘아웃풋’이 쏟아져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대니얼 맥팔랜드(Daniel McFarland) 교수는 ‘행복한 컬래버레이션의 비결’이란 글에서 귀 기울일 만한 조언을 내놓았다. “가장 성공한 조직의 핵심에는 단짝처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버티고 있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동료들 간의 파트너십이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굉장한 보탬이 된다는 설명이다. 맥팔랜드 교수는 이처럼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상호 보완적인 조합이 많은 조직일수록 생산성이 높고 이직률은 낮다면서 이런 관계가 무력감에 빠질 경우를 대비해 가끔 서로의 역할을 바꿔보거나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게 함으로써 ‘건강한 결혼’의 구도를 유지할 필요성도 강하게 어필했다. 이처럼 건강한 파트너십의 수명을 늘리려면 픽사가 설파하고자 하는 혁신의 원칙을 새겨들어야 할 듯하다. <픽사웨이>라는 책에서 저자 빌 캐포더글리는 창의적인 재능은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려면 어린아이 같은 몽상가와 업무 지향의 실행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직의 구성원이 몇 명이든, 협업의 시너지를 오래도록 지속해나가고 싶다면 금과옥조처럼 새겨둘 대목이 아닐까 싶다. 소규모 그룹이라면 서로 다잡아주는 식으로 구성원 각자가 나름의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을 테고, 좀 더 큰 규모의 조직이라면 인재들이 현실과 몽상의 균형을 유지하고 지나치게 익숙해져 관성에 젖지 않으면서 창의성을 키워나도록 ‘시스템’으로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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