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hind of New Classic

조회수: 2851
3월 19, 2014

에디터 배미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전설적인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의 만남. 패션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도 쉽게 상상하지 못한 조합, 지금 그 놀라운 세계가 패션계를 물들이고 있다.



1
2
3
이탈리아 클래식의 정수 제냐, 필라티를 만나다
타닥타닥 돌아가는 제냐의 유서 깊은 방직 기계들의 움직임, 세심하고 배려 깊은 클로즈업 영상이 쇼장을 가득 메우고, 모두가 기대했던 우아한 디테일이 숨겨져 있는 스테파노 필라티의 첫 번째 제냐 쿠튀르 컬렉션이 등장했을 때 밀라노 쇼장은 감탄과 안도의 한숨으로 가득 찼다. ‘역시 필라티’라는 찬사와 함께. 2014 S/S 컬렉션을 통해 보여준, 거대한 패션 유산과 창의력으로 가득한 엘리트 디자이너가 만났을 때 창출된 시너지는 생각보다 파급력이 컸다. 어깨 심을 뺀 유려한 실루엣, 핵심적인 의상에 저지 소재의 소매를 레이어링했을 뿐 아니라 ‘제냐’라는 브랜드 네임에 걸맞은 신중한 소재의 선택까지 ‘전략가’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필라티+제냐’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이자 세계관이 남다른 캐릭터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자’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패셔너블하지만 대중 앞에 주인공으로 나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8세에 패션 하우스 세루티(Cerruti)에서 인턴으로 일한 것을 시작으로 패션계에 입문한 이후,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라다를 거쳐 톰 포드와 함께 구찌 그룹의 디자인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4년 입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필라티는 열렬한 마니아층을 거느린 독보적인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 2013년 1월,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의 컨설팅을 시작하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


4
5
6
제냐의 진정한 조력자
필라티의 새로운 발걸음은 이번 시즌 제냐 광고 캠페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인터뷰를 잘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조력자’의 위치에 서고 싶어 하는 필라티의 조용한 발걸음이 광고 캠페인의 주제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번 광고 캠페인의 주제는 배후 인물이라는 독특한 설정. 쿠튀르 컬렉션의 이면을 파워풀하게 보여주는 이 주제의 본래 의미는 17세기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의 측근이었던 프랑수아 르클레르 뒤 트랑블레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중세에서 모티브를 얻어 새롭게 해석한 현대의 ‘배후 인물’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인물을 뜻한다. 강력한 배후 인물은 스스로의 능력과 전문 기술, 문화 등을 통해 성공을 얻었으며 테일러링과 스타일에 대한 이들의 럭셔리하고 우아한 취향은 이번 시즌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 컬렉션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광고 비주얼에서 쿠튀르 컬렉션을 입고 등장한 매력적인 피사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크리스찬 그레이를 연기한 제이미 도넌. 하지만 필라티는 자신이 제이미 도넌의 역할이 아닌, 그 옆에서 뒷모습을 보이는 조력자라 이야기한다. 필라티가 제냐 그룹에 입성한다는 이야기가 알려지자마자 수많은 매체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오직 자신의 언어인 컬렉션으로 이야기하길 원했다. 이번 광고는 심미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다. 필라티가 오직 제냐의 상위 라인인 쿠튀르 컬렉션만 디렉팅하기 때문에 제냐 전체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패션계의 의문을 이번 캠페인을 통해 명쾌하게 답했기 때문이다. 질도 제냐 회장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이기에 광고 속 쿠튀르 컬렉션을 입은 주인공을 도와주는, 클래식한 제냐 수트를 입은 조력자라는 콘셉트가 지금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그대로 상징한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제냐를 강조하기 위해 쇼의 시작부터 럭셔리한 원단을 만들어내는 기계의 요소들이 등장하는 영상을 만들어 텍스타일 제조업체로서 제냐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했다. 여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범하는 실수, 기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바꾸어 자신의 역량만 돋보이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탈바꿈하려는 섣부른 시도는 하지 않았다. 남성복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가장 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제냐라는 브랜드가 노선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정하기보다는 제냐가 지닌 전통적인 남성복이라는 유산에 자신만의 터치를 담아 현대화하는 진정한 디자이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제냐 광고 비주얼이 고급스러운 제품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필라티는 제냐의 스토리, 쿠튀르와 클래식 수트 컬렉션의 차이점, 그리고 그 미묘한 가치를 올바르게 표현한 제냐 테일러링의 완벽성을 그대로 전한다. 이번이 첫 번째 시즌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제냐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새롭게 해석한 필라티의 세계가 앞으로 풍부한 자양분을 통해 어떤 우아함과 새로운 클래식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