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몸짓이 ‘무위의 미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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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3, 2025

글 고성연

Brands & Artketing_12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_서울 편

반클리프 아펠은 뭇 브랜드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탁월한 스토리텔링의 원천을 뽐낸다. ‘벨 에포크’로 불리는 찬란한 문화 예술 황금기에, 프랑스 보석 가문 자제들의 낭만 어린 러브 스토리에서 비롯된 시초(1906년)부터 남달랐다. 게다가 창조적 영감을 다른 영역에서 발산하는 역량도 빼어난데, 여기엔 현대무용의 영역을 넓히는 브랜드 차원의 축제형 플랫폼도 큰 지분을 차지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다채로운 무용의 세계를 선보여온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 페스티벌이다. 지난가을 드디어 서울로도 찾아온 이 역동적인 축제의 끝자락에 전체 프로그램을 이끄는 세르주 로랑 디렉터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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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동시대의 극장을 찾는 이유는 교양을 쌓으려는 게 아니라 ‘충격’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던가.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Dance Reflections by Van Cleef & Arpels)’ 프로그램과 처음 만난 작년 가을의 공연 ‘사람들(Crowd)’은 분명 좋은 의미의 ‘자극’으로 다가왔다.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배경으로 몸의 근막을 활용하는 댄서들의 세밀하고 절제된 움직임이 자아낸 극도의 몰입! 그 신선한 감동은 올가을 서울을 무대로 3주(10. 16~11. 8)에 걸쳐 이어진 댄스 리플렉션 페스티벌의 흥미로운 라인업을 대부분 소화해보자는 결심으로 이끌었다.
무용수들이 빚어내는 ‘몸의 언어’가 리듬을 타고 무대의 음향, 그리고 그네들의 호흡과 함께 공명하는 순간은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 듯하다. 묘한 해방감을 선사하는 그들의 몸짓을 온 감각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느새 의도나 목적 없이 펼쳐지는 ‘무위의 미학’을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장소는 의식적 노력의 바깥에 있다”는 말에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고마운 경험이다. 서울의 가을을 수놓은 9팀이 선사한 무용의 파노라마는 저마다의 방식과 결이 매우 다르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기승전결’을 지닌 매혹적인 작품 같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첫 주의 공식 개막작 ‘룸 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는 날카롭게 울부짖는 기계음에 둘러싸인 채석장을 배경으로 23명의 마르세유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마치 혁명의 전사처럼 강렬하게 춤사위를 벌이는 스펙터클을 선사했는데, 다음 공연은 서양 무용계의 전설적 인물인 로이 풀러의 서펜타인 댄스에서 영감받아 대나무 막대를 안으로 집어넣어 길게 연결한 실크 천을 활용한 독특한 독무 ‘로이 풀러: 리서치’(안무가 올라 마시에예프스카)와 무릎을 구부린 채 빙글빙글 도는 이탈리아 민속 무용인 폴카 치나타를 계승한 듀엣의 춤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안무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였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 단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발놀림을 이어가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얀 마르텐스의 ‘도그 데이즈 오버 2.0’과 뮤지컬처럼 경쾌한 춤과 노래가 흥을 돋우는 로빈 올린의 ‘바퀴를 두른 사람들’(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줄루족을 말처럼 인력거로 부렸던 슬픈 서사와 저항의 미학을 품은 작품이다)의 대조적인 느낌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저항의 메시지를 표현해낸 ‘카르카사’, 피날레 공연다운 전율과 오라를 선사한 ‘900 며칠, 20세기의 기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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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축제’로의 초대장을 내미는 세르주 로랑
“사람들을 무대로 초대할 때 단순히 작품만 보러 오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잠시 멈추고 조용히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갖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어떤 예술이든 사색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행위니까요.” 개성이 확연히 다른 여러 공연을 토대로 하나의 시퀀스처럼 서사의 리듬이 느껴지는 구성으로 엮어낸 반클리프 아펠의 댄스·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세르주 로랑(Serge Laurent). 미술사와 박물관학을 전공하고,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퐁피두 센터에서 다학제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그는 무용이라는 장르에 대해 “음악도, 대사도 없이, 오직 공간 속에서 몸의 순수한 움직임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형식이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예술 형식을 통합할 수 있는 분야”라면서 이처럼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 예술로서의 면모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언어, 텍스트, 영상, 패션, 시각예술 등 모든 요소가 무대 위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침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창조적 연대로 발레 작품 ‘주얼스(Jewels)’를 창작했을 정도로(1967년 초연) 무용과 깊은 인연을 지닌 브랜드인 만큼 세계 유수의 안무가들, 그리고 댄서들과 함께 동시대의 다면성을 반영하는 ‘댄스 플랫폼’을 만드는 일은 그에게 반가운 도전이었다. “2개의 다른 세계관 속에서 중재자(mediator)로서의 제 역할을 발견하고 흥미롭게 느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행사’를 맡는 것이 아니라, 무용이라는 예술 장르 자체를 지원하고, 그 예술에서 영감을 얻고자 합니다. 저는 예술 작품이 관객과 연결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댄스 리플렉션이 좋았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이니까요. 제가 하는 일의 본질은 ‘공유’입니다.”
2022년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여러 도시에서 펼쳐져온 댄스 리플렉션 페스티벌의 글로벌 스펙트럼 덕분에 그는 ‘어제는 파리, 오늘은 서울, 그다음엔 뉴욕으로 가는’ 일정을 소화한다. 이 축제에 동참한 댄스 컴퍼니들 역시 ‘느슨한 연대’를 통해 지구촌을 누빈다.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치러진 행사에서 지구온난화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담은 ‘1도씨’라는 작품의 초연을 선보인 허 프로젝트(안무가 허성임)도 그 여정에 첫발을 내디뎠다. ‘위하여’라는 목적과 효용으로부터의 해방은 인간의 실존에 축제성과 찬란함을 부여한다고 했다(조르조 아감벤). 댄스 리플렉션의 향후 여정도 그렇게 빛나는 축제로 진화해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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