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몽블랑의 신제품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블랙 앤드 화이트 위크’가 올해는 브랜드 창립 1백10주년을 맞아 더욱 풍성하게 꾸며졌다. 이 특별한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몽블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임 카말과 함께 몽블랑이 걸어온 1백10년의 발자취를 되짚어보았다.
2 몽블랑의 블랙 앤드 화이트 위크 행사장 내부. 몽블랑의 2016년 신제품 펜으로 꾸몄다.
3 브랜드 창립 1백10주년을 맞아 선보인 ‘루즈 앤 느와’스페셜 에디션.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고 들었다. 한국을 찾은 소감은?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길에 차창을 통해 예스러운 건축물과 고층 빌딩이 나란히 들어선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경계 없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유럽은 뮤지엄에서 사는 것과 같은 분위기죠.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려 하고 모든 게 그대로예요. 그 때문에 이런 모습들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누군가 저에게 무언가를 완성하면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것에 집중하라고 했는데, 고작 3시간밖에 머물지 않은 이곳, 한국에서 그 말에 대한 긍정적인 예를 찾았습니다.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린 마인드가 바로 제가 아시아 시장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사실 이전의 몽블랑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된 이유가 있는가? 그렇습니다. 이전의 몽블랑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존재를 사람들에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3년 전 몽블랑에 합류했지만, 대중 앞에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요. 일단 제가 하는 일은 메종의 현주소와 과거,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펜과 시계, 가죽 소품 등의 신제품을 기획하고 구상할 땐 그 안에 스토리와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담아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곤 하죠. 하나의 제품에 장인 정신과 헤리티지, 그리고 최고의 품질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고요. 올해 선보인 다양한 신제품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팀을 대표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작년에 이어 국내에 두 번째로 ‘블랙 앤드 화이트 위크’가 1백10주년 기념까지 더해 더욱 풍성해졌다. 힘주어 자랑하고 싶은 컬렉션이 있는지? 신제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기보단, 1백10주년이라는 의미를 더해 브랜드의 역사와 개척 정신 등을 더욱 부각하고자 했습니다. 바로 이 ‘루즈 앤 느와’ 컬렉션이 아무래도 가장 파워풀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바로 이 제품에 장식된 서펀트(serpent,뱀) 디자인은 몽블랑의 탄생 1백10주년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죽과 시계 카테고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백10주년 기념 컬렉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디자인 테마가 ‘뱀’이다. 영생, 풍요, 치유의 의미를 지닌 뱀은 주얼리 & 워치 메종의 주요 모티브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뱀’에 대한 몽블랑만의 해석은? 올해 창립 1백10주년을 맞아 이를 어떻게 기념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단순하게 숫자에만 집착하지 않고 몽블랑의 역사가 담긴 아카이브를 찬찬히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예전에 사용한 서펀트 모양의 클립을 발견했죠. 단순히 그때 사용했기 때문에 그 문양을 차용한 게 아닌, 몽블랑 메종 창립 당시의 그 시대, 모든 것이 격변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개척 정신이 여기저기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시대에 집중한 것입니다. 메종이 탄생한 그 시기(1900년대 초반)에는 개척 정신이 단지 몽블랑만의 정신이 아닌 그 시대의 정신이었습니다. 새로운 예술 사조와 철학 등이 격변하던 시기,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시의 예술가인 에곤 실레,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술뿐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닙니다. 파리에서 활동한 알폰스 무하는 당시 그래픽 아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후 건축, 가구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주기도 했죠. 이런 시대적 상황과 시대적 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서펀트는 몽블랑 내부에서도 당시 사용된 테마이긴 하지만 외부에서도 문화 예술적으로 아르누보 양식과 함께 가장 사랑받던 심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몽블랑 창립 1백10주년 기념을 서펀트로 장식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항상 펜을 몸에 지니고 다닐 텐데, 오늘은 어떤 제품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은 루즈 앤 느와 코럴 컬러 펜을 가지고 왔습니다. 항상 똑같은 펜을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고, 평소에는 드로잉을 많이 하기에 그럴 때는 몽블랑의 샤프펜슬이나 몽블랑 M의 아트 파인라이너를 즐겨 사용합니다. 또 기분에 따라 어느 날은 마이스터스튁을, 어떤 때는 헤리티지 컬렉션 등 다양하게 사용하는 편입니다. 몽블랑 하면 아무래도 만년필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필기’야말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변화되는 디지털 시대에 맞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몽블랑은 지난 1백10년 동안 핸드라이팅 컬처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도 ‘필기 문화가 계속될 것 같은가?’인데, 항상 답은 ‘당연하다!’입니다. 제 개인적인 사례를 예로 들어보면, 전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니는데, 여행 중 영감이 떠오르면 평소처럼 노트에 스케치를 한 후, 디지털 디바이스를 이용해 사진을 디자인 팀에 전송합니다. 그럼 그들이 시안을 잡아 저에게 PDF 파일을 보내주고, 전 그 위에 PC용 터치 펜을 이용해 코멘트를 적어 다시 보내죠. 이게 바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서로 만나는 접점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는 아날로그만 사용한다, 나는 디지털만 사용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보다 더 좋다거나, 디지털이 아날로그보다 더 좋다는 말 역시 하기 어렵고요.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두 가지의 조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듯 비즈니스 환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이에 우리 메종은 이 두 가지를 함께 향유하는 삶을 받아들이고 이들의 접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솔루션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핸드라이팅에 대한 몽블랑의 의지와 집념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그 바탕에는 이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