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beg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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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2, 2020

에디터 고성연 | 글 윤다함(아트조선 기자)

Interviewwith_최울가

어린아이의 자유분방한 낙서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화법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과 원초적인 의식을 캔버스에 담아온 최울가. 사람, 동물 같은 생명체든 사물이든 가릴 것 없이 큰 눈이 달린 ‘존재’, 그리고 질서 없이 놓인 뜻 모를 기호와 문자는 인류의 욕망을 수다스럽게 구현하는 그만의 조형 언어다.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열정적으로 활동해온 그가 코로나19로 한국에 발이 묶이자 나름대로 소통을 위한 돌파구를 찾았다. 파주 헤이리마을에 자리한 자신의 아틀리에를 활짝 개방해 신작을 내걸고 미술 애호가들을 맞이하기로 한 것. 시원시원하게 솟은 층고 높은 건물, 전면창으로 자연광이 흠뻑 스며드는 근사한 아틀리에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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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집, 자동차, 배, 동식물, 의복 등 다양한 이미지가 평면의 화폭을 거침없이 가로지른다. 이미지를 둘러싼 위계질서나 순서, 제약이 느껴지지 않는 어지러운 조형 배치. 최울가(Woolga Choi)의 작업을 두고 ‘아나키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무질서에서 오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원초적인 자유로움이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색적인 강렬함이 리듬감 있게 흐르는 가운데 똑같은 조형이 없는 그의 그림은 십인십색 군상이 엉켜 돌아가는 세상사와도 같다. 이처럼 겹침 없이 다채로운 형상의 표현은 원시주의 미술과 샤머니즘에 대해 그가 평생 품어온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찾은 답은 동굴벽화에 있었다. “질주하는 말, 상처 입은 들소 등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 행위에서 시작된 벽화는 눈으로 관찰한 형상을 세밀하게 재현하고자 한 인류 최초의 예술 행위라고 하잖아요. 언어가 없던 원시시대에는 인간과 사물이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무게감을 지녀 각자의 언어적 역할을 수행했을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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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그리는 언어 이전의 세계, 대표 연작 ‘블랙’과 ‘화이트’ 시리즈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 표현에 목말라 하던 최울가가 샤머니즘적 원시성을 색면화하는 작업에 천착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그는 문명 이전의 존재하지 않았던 언어를 오늘날 그림으로 대신 읊어내려면 ‘흑과 백’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지만, 모든 것을 해체하면 흰색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그는 검은색과 흰색을 배경색 삼아 자신의 대표 연작으로 통하는 ‘블랙 시리즈’와 ‘화이트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20년 전쯤의 일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가 눈이 달릴 만하지 않은 곳에 눈을 그려 넣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사람 눈을 한 동물을 등장시킨다든지 물병, 유리잔, 시계 같은 데 눈을 붙여 넣어 의인화하는 식이다. 눈을 장착한 사물은 생명을 얻고 할 말이 생긴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대화할 거리’가 넘쳐나고, 골똘히 마주하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기도 한다. “원시의 동굴벽화를 오늘날 보더라도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건 그것이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동굴에 그림을 그렸듯 저는 캔버스에 그림일기 쓰듯 현대의 기록을 남기는 거죠.”
또 한 가지, 모양은 달라지더라도 최울가의 작품마다 색면 도형이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는 이를 ‘세이프티 가드(safety guard)’라고 부르며 작품을 감상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 설명한다. “이런저런 이미지가 어지럽게 산재돼 있는 가운데, 도망가는 형상을 어떻게 붙잡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것이 저 도형이었어요.” 이 같은 의도를 잘 반영하듯, 견고하고 뚜렷한 색면 도형은 에너지가 거리낌 없이 뻗치는 화폭의 한구석을 묵직한 문진처럼 눌러주며 중심을 잡아주는 듯하다. 원시적인 소재들이 맘껏 뛰놀 수 있도록 지켜주는 문지기이자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정표인 셈이다. 자유로움과 엄격함은 일견 상극 같아도 끝과 끝은 만난다는 말이 있듯 그 둘이 이룬 ‘합일’을 최울가의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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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인 순수함과 자유의 정서를 품은 ‘레드 시리즈’

최근에는 ‘블랙 시리즈’와 ‘화이트 시리즈’에 이어 ‘레드’를 캔버스에 새롭게 펼쳐내고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근원적인 자유, 순수함을 구현하는 데 제격이죠. 빨강은 색의 정점이에요. 수많은 색깔 중에서도 가장 높은 꼭대기에 서 있는 늠름한 대장 같다고나 할까요. 짧은 시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감명을 주는 색이니까요.” 다른 색을 혼합해 만들 수 없는 ‘일차색’인 빨강은 가장 원초적인 색으로 꼽힐 만하다. 사람이 이름 붙인 최초의 색이자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도 자취가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색이기도 하지 않은가.
무수한 점으로 바탕을 붉게 물들인 최신작 ‘레드 시리즈’와 대표 연작인 ‘블랙 & 화이트 시리즈’를 비롯해 처음 시도한 세라믹 오브제도 선보이는 최울가의 개인전 <인 더 비기닝(In the Beginning)>은 9월 8일부터 19일까지 그의 파주 작업실에서 열린다. 오픈 스튜디오형 전시로 기획된 ‘아트조선 아뜰리에 프로젝트’ 1탄이다. 최울가의 국내 작업실이 대중에 처음 공개되는 만큼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에게는 작가와 직접 소통하며 작업 세계를 들여다보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뉴욕 도심에 있는 아틀리에와는 달리 파주에서는 매일 푸른 자연을 보며 작업할 수 있었어요. 코로나가 준, 생각지 못한 긍정적 경험이었죠. 이런 작업실이 뉴욕에 있다면 천만불짜리였을 텐데요. 하하.” 문의 02-724-7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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