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Packe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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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1, 2022

글 고성연

Collector’s Space in Busan_ 류지혜


“미술 시장은 본래 소수의 선택된 개인을 위한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세계적인 갤러리스트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의 말처럼, 요즘 미술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컬렉팅(collecting)’이라는 결코 녹록지 않은 취미가 많은 이들의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전속 어드바이저나 대리인을 두기 전에는, 아트 컬렉팅이 제대로 된 취미가 되려면 돈과 시간을 지속적으로 들여야 한다. 작품을 사는 데 돈만 쓰고 마는 게 아니라 정보를 모으고 네트워킹을 하고 ‘발품’을 파는 시간을 투자하는 등 다각도로 정성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충실한’ 컬렉터는 드물다고들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올해 아트부산 2022에서 현대미술을 진지하고 충실하게 ‘즐기는’ 한 컬렉터의 공간은 그래서 몹시 반가운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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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 작품을 방 안에 둔 개인 소장가

바다 전망을 품고 있긴 하지만 습한 해변을 아주 가까이 두지는 않은, 그래서 일상을 살아가기에 쾌적해 보이는 해운대의 조용한 아파트 단지. 오래됐지만 잘 정돈된 이 단지에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미디어 작업이 설치된 아파트가 있다는 게 살짝 신기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히토 슈타이얼 전시가 대규모로 진행 중인데, 마침 거기서 선보이고 있는 ‘파워 플랜트(Power Plants)’라는 2019년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암실처럼 어둡게 해놓은 아파트의 한 방에 마치 ‘디지털 병풍’처럼 자리한 이 작품은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 피어날 가상의 식물 이미지를 자동 생성해 ‘무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소셜 미디어 중독에 대한 치료’, ‘독재자에 대항하는 독살’ 등을 뜻하는 라틴어 이름을 갖고 있다고. 아트부산 YCC(Young Collectors Circle) 세미나 1기 회원인 40대 컬렉터 류지혜 씨의 공간은 어쩌면 히토 슈타이얼의 영상(film) 작업은 몰라도 이러한 유형의 멀티 채널 비디오 작업을 미술관이나 재단 차원이 아닌 개인이 소장한 국내 유일의 사례일 수도 있을 듯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아트 페어 프리즈 런던에서 2019년 구매했는데, 사실 개인 소장이 가능한지 몰랐기에 의외였다고. “직업도 물어보고, 무기 사업이나 마약 거래를 하는지 여부도 작가 측에서 확인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한민국 주부라고 했죠.(웃음)” 전문 엔지니어가 해외에서 몸소 와서 아파트 방 크기에 맞춰 설치했다. 이렇듯 히토 슈타이얼을 비롯한 그녀의 미술품 컬렉션이 구석구석 알차게 전시된 이 아파트는 남편의 일 때문에 부산에서 살던 집이었는데, 서울로 이주한 지금은 정기적으로 방문해 ‘작품’을 돌보고 지인들과 함께 ‘감상’하는 공간으로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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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컬렉팅도 나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는 충실한 컬렉터의 수집 미학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던 류지혜 씨는 미술사, 미학 등의 강의를 듣다가 자연스레 각종 비엔날레나 아트 페어를 찾아다니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한창 사춘기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던 무렵 눈 오는 도시 풍경이 마음에 와닿았던 박병일 작가의 한국화를 시작으로 약 15년간 컬렉터의 삶을 꾸려오고 있다. 현재 1백여 점의 소장품이 있지만 아직 한 점도 시장에 판매한 적은 없고, 당장 그럴 계획도 없다고.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에 대한 애정이 많은 그녀는 “컬렉팅 기준이나 원칙은 따로 없지만 작가와 큐레이터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보고 진지하고 꾸준히 작업하겠다 싶으면 마음이 간다”고 했다. “과거에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에 눈길이 갔다면 지금은 세상에 궁금함을 갖고 있어요. 기억, 경계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데 장르, 매체는 가리지 않아요.” 단지 물리적 공간이 제한되다 보니 앞으로 동영상 작업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실제로 그녀의 공간에는 옥승철, 이희준, 유예림, 정희민 같은 MZ 세대 작가들의 회화 작품과 대형 TV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는 로와정의 미디어 작품, 추상화 대가 에텔 아드난의 평면 작업, ‘번역된 도자기’로 유명한 작가 이수경의 조각 등 다양한 구성이 어우러져 있다. 또 아트부산에 수년째 참가하고 있는 독일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애드 미놀리티, 도나 후앙카 같은 작가들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제 인식이나 가치가 좁아지는 걸 느끼는데, 그 틀을 깨는 데 미술 작품만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가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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