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s in our DNA

조회수: 5310
1월 02, 2019

글 고성연

Brands & Artketing series_1 페르노리카(Pernod Ricard)


Art is in our DNA


우리는 예술성이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는 소비사회의 일원이다. 산업의 예술화 경향은 20세기 초반부터 일찌감치 지적되어왔지만, 요즘은 기업 같은 조직이나 개인이나 예술적 요소를 배제한 채 존재하기 힘든 것 같다. 향유자로서든 소비자로서든 말이다. 이것이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럭셔리 브랜드가 문화 예술과 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똑똑한 브랜드는 저마다 어떤 문화 예술적 행보를 펼치고 있을까?


1
01
2
02
3
03
4
04
5
051
6
061
7
071
8
081
9
091
10
101
11
샤넬, 브랜드가 아닌 예술로 중국을 사로잡다
지난 1월 16일 광저우에서 만난 <문화 샤넬(Culture CHANEL)>전시는 이번 광저우 전시 이전에 이미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개최한 이력이 있는 연결성 있는 전시다. 모두 샤넬의 특정 제품에 대한 소개가 아닌 샤넬의 발전 과정과 시대적인 영향, 아티스트와의 교류를 다루고 있다. 2011년 상하이에서는 현대미술관, 2012년 베이징에서는 국립예술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올해는 광동미술관(Goangdong Museum of Art)과 공동 주관해 자하하디드가 설계한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에서 개최했는데, 시대를 초월하는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이상향을 펼친 샤넬의 작품을 전시하기에 알맞은 장소라는 이유로 선정되었다. 샤넬의 창의적 세계와 가치를 표현한 사진, 그림, 글, 책, 필름, 패션 작품, 주얼리, 워치, 향수 등 4백여 가지 아이템을 통해 다루는 것은 물론 마드무아젤 샤넬과 교류한 파블로 피카소 작품 중 개인 소장품인 30여 점과 <푸른 기차>의 주인공을 그린 아메데오모딜리아니의 작품도 공개됐다. 발레 <푸른 기차>의 상징적인 이미지인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이라는 피카소의 작품을 필두로 21세기를 지배하는 20세기 예술가들이 꿈꾸고,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샤넬의 아카이브와 함께 소개한다. 이렇듯 샤넬의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추진력이 없었다면 중국 대륙에서 이 수많은 작품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거나 예의 주시하는 브랜드들, 특히 ‘럭셔리’ 브랜드들은 아마도 ‘문화 예술’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깝게 지내지 않을까 싶다. 이 둘의 밀접한 관계는 기업 활동의 한 축으로 전해져 내려온 메세나(mecenat)에 가까울까, 아니면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높이는 차원에서 시대의 흐름, 대중의 기호를 아주 영민하게 읽어내는 전략적 마케팅에 가까울까? 전자라면 ‘절친’, 후자라면 ‘공생’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테지만, 어쨌거나 함께 걸어가는 파트너이기는 하다. 게다가 삶에서 관계란 하나의 결로 단정 짓기에는 훨씬 더 복잡하다.
사실 전통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소수이기는 해도 여러모로 예술성을 추구해왔고, 창업자 가문에서 순수하게 문화 예술을 후원해왔다. 게다가 DNA 자체에 예술이 흐르기도 한다. 1세기도 더 전에 당시의 ‘아트’라고 여겨질 수 있는, 장인 정신이 깃든 공예 예술에 뿌리를 둔 브랜드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자본의 힘으로 돌아가는 이 시대에 럭셔리 브랜드들은 ‘아케팅(artketing)’이라는 합성어가 잘 어울릴 만큼 미술, 디자인, 건축 등 문화 예술의 속성을 담은 활동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굵직굵직한 문화 예술 행사에 스폰서로 참여하는 일 은 흔하고, 아예 자사 브랜드를 영감으로 삼거나 전혀 다른 주제의 전시 콘텐츠를 내놓거나 예술 분야의 상을 제정해 아티스트를 지원하기도 한다. 통 크게는 아예 재단을 설립해 웬만한 국공립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 공간을 꾸리기도 한다. ‘돈은 사회의 언어이고, 럭셔리는 그 문법’이라는 표현에 ‘럭셔리의 문법은 예술’이라는 말을 덧붙여도 어색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강도와 스펙트럼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그런데 기업도 유기체적인 성격을 띠다 보니, 문화 예술을 둘러싼 행보를 펼치는 데 있어 저마다의 색깔과 방식이 다르다. ‘아트’가 대세라고 하니까 그저 남들을 따라 하는 데만 급급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 철학과 역사, 그리고 조직의 전략과 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브랜드만의 고유한 개성을 펼쳐내는 사례도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2019년 <스타일 조선일보>에서는 문화 예술을 유달리 사랑하고, 그 본질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브랜드의 아트 경영 시리즈를 전개한다. 첫 주자는 타 브랜드에 비해 문화 예술 활동이 덜 알려진 편인 프랑스 주류 기업 페르노리카(Pernod Ricard)다.


앤디 워홀이 다가 아니야, 예술적 감각이 배어 있는 조직
“1985년 스웨덴 브랜드를 소개하는 자리에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이 없었다면 앱솔루트 보드카는 어떻게 됐을까?” 럭셔리 경영 분야의 구루 장 노엘 카페레(Jean Noe··l Kapferer)와 벵상 바스티엥(Vincent Bastien)의 공저 <럭셔리 비즈니스 전략>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앤디 워홀의 얼굴이나 디자인이 담긴 보드카 병으로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대표 사례로 자주 소환되는 앱솔루트는 페르노리카가 보유한 브랜드 중 하나다(2008년 인수했다). 앤디 워홀 효과는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지만, 마케팅의 흐뭇한 성공 사례일 뿐이다. 알고 보면 페르노리카는 문화 예술과 훨씬 더 친밀한 동행을 해오고 있는 기업이다. 페르노리카의 창업자로 지금은 고인이 된 폴 리카(Paul Louis Marius Ricard)가 “예술은 우리 DNA 안에 흐르고 있다(Art in our DNA)”라고 한 말을 되새기듯 꾸준한 아트 경영을 해오고 있다. 1975년 동종 업계 경쟁자인 페르노(Pernod)와 합병해 페르노리카라는 기업을 탄생시켜 로얄살루트,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 등 술 애호가라면 익숙한 브랜드를 다수 거느린 굴지의 주류 기업으로 키워낸 폴 리카.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공부한 그는 화가에 뜻을 둘 정도로 예술에 관심이 컸지만, 가업인 와인 사업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폴 리카는 큰 조직을 운영하면서도 자신의 예술 DNA를 심어놓았다. 친구, 가족, 직원 초상화를 3천 점 넘게 그릴 만큼 스스로 예술혼을 발휘했을뿐더러 딱딱한 형식이 일반적인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 디자인을 유명 아티스트에게 맡겨 일러스트를 담아냈다. 1975년 시작된 ‘아티스틱 캠페인(Artistic Campaign)’이다. 페르노리카는 선대 회장의 예술 사랑과 뜻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의미로 이 캠페인을 40년 넘도록 이어오고 있다. 2010년부터는 아티스트가 직접 촬영한 전 세계 페르노리카 직원들의 모습을 연례 보고서에 수록해오고 있다. 대개는 골치 아픈 숫자와 기록으로 점철된 터라 투자자들 빼고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게 연례 보고서의 숙명이지만, 페르노리카의 경우는 다르다. 커버 페이지만 봐도 ‘힙한’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보듯 세련된 감성이 넘친다. 2015년 캠페인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중국의 사진작가 리웨이(Li Wei)가 ‘vision’이라는 주제로 담아낸 페르노리카 임직원 40명의 사진은 파리 본사와 각지의 양조장 건물 위로 사람들이 둥둥 떠 날아다니는 모습이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 사진 작품들은 세계적인 사진 전시회인 <파리 포토(Paris Photo)>에 출품됐고, 이를 계기로 페르노리카 캠페인은 매년 <파리 포토>에 참가하고 있다.


신진 예술가, 큐레이터, 집필가를 아우르는 ‘토대’를 생각하는 예술 재단
현대미술을 후원하는 재단 활동은 이제 20년이 됐다. 1989년 페르노리카 그룹의 후원으로 필리프 사비넬(Philippe Savinel)이 설립한 예술 재단인 리카 재단(Fondation d’entreprise Ricard)은 주로 프랑스의 신진 작가와 큐레이터를 지원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마다 신진 큐레이터를 초청해 5~6차례의 기획전을 개최한다. 커뮤니케이션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1989년 리카 재단 설립과 함께 디렉터로 합류한 콜레트 바비에(Colette Barbier)는 “우리는 프랑스의 아트 신에서 풍부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이 세계로 진출하는 걸 돕는 데 의의를 둔다”라고 강조하면서 “퐁피두 등 다른 기관과도 협업을 벌이고 있고, 젊은 아티스트들뿐만 아니라 이론과 담론을 뒷받침하고 주도하는 작가(writer)도 중요하기에 단행본과 공동 작업물 출판에도 자금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또 타국의 예술 비평가와 큐레이터를 초대해 그들이 프랑스 내 현대미술 관련 종사자들과 국제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Curators Invitational(CI)’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리카 재단 활동의 꽃은 아무래도 ‘미술상’이다. 1999년 제정된 리카 재단상(Fondation d’entreprise Ricard Prize)은 프랑스 예술계의 신진 예술가에게 헌정하는 최초의 상. 예술 평론가와 수집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해마다 동세대를 가장 잘 대표하는 예술가 1명을 선정해 리카 재단상을 수여하고, 재단은 수상자의 작품 중 한 점을 구입해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에 영구 소장품으로 기증한다. 이렇게 기증된 작품은 퐁피두 센터 내 국립현대미술관(Muse´e National d’Art Modern)에 전시되는 기회도 얻는다. 수상자는 매년 파리의 주요 아트 페어인 FIAC(국제현대미술박람회)과 함께 진행하는 발 존(Bal Jaune) 시상식에서 소개되는 영광도 누린다. 리카 재단은 젊은 재능을 양성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프랑스 정부에서 문화계 후원자에게 수여하는 ‘그랑 메세나 훈장’을 받기도 했다.


소란스럽지 않게 파리의 유산을 지키는 행보, 빌라 바실레프(Villa Vassilieff)
‘조직’을 내세우기보다는 ‘사람’에 더 초점을 맞추는 연례 보고서나 리카 재단의 예에서 봤듯이 페르노리카가 예술을 대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그다지 거창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예술가를 후원하는 방식 중 하나인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그렇다. 페르노리카는 2015년 다국적 예술가, 큐레이터, 연구원을 선정해 이들이 3개월가량 파리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각자의 작업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페르노리카 펠로십(Pernod Ricard Fellowship)’ 프로그램을 발족했는데, 그 장소가 흥미롭다. 2013년까지 유서 깊은 파리 15구 몽파르나스 뮤지엄으로 운영되다가 베통살롱(Be´tonsalon) 예술연구센터의 주도 아래 아티스트와 연구가가 거주하며 작업하는 공간으로 거듭난, 파리의 ‘숨겨진 명소’ 빌라 바실레프(Villa Vassilieff)다. 러시아 출신의 큐비즘 화가로 20대 초반에 파리로 이주해 몽파르나스의 일원으로 살아간 마리 바실레프의 자취가 묻어 있는 곳이다. 마리 바실레프는 예술적 기운이 넘쳐 흐르는 몽파르나스에 아틀리에를 꾸려 동료 아티스트들과 활발한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웃과 예술가에게 수프를 제공하는 작은 캔틴도 운영했다. 이처럼 예술혼과 동지애가 묻어 있는 빌라 바실레프가 현대의 젊은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페르노리카 펠로십 프로그램을 운영한 첫해에는 촉망받는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전소정이 선정돼 빌라 바실레프에서 머물며 작업을 했다. 또 다른 한국 작가와의 인연으로는 강서경 작가가 빌라 바실레프 개관전인 <Groupe Mobile>에 초청된 사례가 있다. 2016년 가을에는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전소정, 강서경 2인전이 페르노리카 코리아(PRK)의 후원으로 열리기도 했다. “자금 지원은 공공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지난 10여 년에 걸쳐 프라이빗 섹터의 미술 후원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라고 한, 빌라 바실레프에서 만난 프로그램 디렉터의 말을 들으면 이 같은 행보를 단순히 ‘아케팅’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듯하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