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도보로 3~4분 거리에 자리한 1백50년이 훌쩍 넘은 유서 깊은 미색 저택. ‘Heidi Horten Collection’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 이곳은 한 컬렉터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아트 스페이스다. 2022년 6월 초 문을 열었는데,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 전시 공간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오스트리아 억만장자인 하이디 호르텐(1941~2022)이 마련한 공간이기도 하고, 당시 81세였던 그녀가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헬무트 호르텐이라는 거부와 결혼한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뒤 본격적으로 ‘아트’에 큰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됐고, 되도록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움직이기는 했지만 차츰 미술 시장의 큰손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6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독일어를 쓰는 신원을 파악하기 힘든 여성 고객이 무려 2천2백만 달러 규모의 작품을 사들였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 하이디 호르텐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그녀의 소장품 규모 자체는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지만 (현재 기준 7백 점 이상) 그 목록에 있는 작가들의 이름은 입이 떡 벌어질 만했다. 파블로 피카소, 장-미셸 바스키아, 마르크 샤갈, 앤디 워홀, 이브 클랭, 프랜시스 베이컨,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굵직한 작가들이 포진해 있었고, 경매에서 이슈가 됐던 흥미롭거나 주요한 작품도 보였다. 이미 2018년 레오폴드 뮤지엄에 자신의 소장품 1백70여 점을 전시했던 그녀는 현재 아트 스페스의 부지(2,000㎡)와 건물을 구입해 2019년 자신의 미술관을 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동시대의 세련되고 독창적인 감각을 반영하겠다는 포부로 비엔나의 건축 설계 사무소 더 넥스트 엔터프라이즈(the next ENTERprise)를 발탁해 인상적인 내부 공간을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사망한 뒤에 소장했던 보석들이 경매에 나오면서 호르텐 가문의 재산이 나치 시대에 거둔 그릇된 이익으로 쌓은 것이라는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는데, 이 전시 공간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2 1백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저택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하이디 호르텐 컬렉션.
3 하이디 호르텐의 소장품과 더불어 기획전도 활발하게 열리는데, 아그네스 후슬라인-아르코(Agnes Husslein-Arco) 디렉터가 총괄하며 컬렉션 확장과 전시 기획에 힘쓰고 있다.
4 하이디 호르텐 컬렉션 내부에 있는 미장센이 돋보이는 티 룸.
※ 1~4 이미지 제공_하이디 호르텐 컬렉션
● 알베르티나가 근대 명화와 더불어 방대한 드로잉, 그리고 올드 마스터 프린트 작업을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대형 미술관이라면 현대미술을 집중적으로 품어낼 분관으로 2020년 알베르티나 모던(Alberina Modern)이 문을 열었다. 여기서 ‘현대미술’이라 함은 주로 1945년 이후의 작품을 말한다. 알베르티나 본관에서 도보로 10분 내에 다다를 수 있는 알베르티나 모던의 소장품은 에슬과 자블론카(the Essl and Jablonka)라는 2개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하는데, 5천여 명 작가의 작품 6만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목록 역시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스타인 같은 팝아트 작가부터 개관전 작가인 마리아 라스니그, 피필로티 리스트, 데이미언 허스트, 안젤름 키퍼 같은 동시대의 주요 작가들로 이루어졌으며, (당연하게도) 현재 오스트리아-독일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작가들의 수작을 보는 재미가 있다.
●● 마침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오스트리아-독일’을 공통분모로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이 지역권 대표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미술사 공부를 실제 작품을 앞에 놓고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기획전이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그마 폴케, 프란츠 웨스트, 마르타 융비르트, 게오르그 바젤리츠, 카타리나 그로세, 마리아 라스니그, 젤리틴 등의 전시였다. 알베르티나 모던이 몰고 온 또 다른 화젯거리는 2021년 가을 독일 출신의 40대 여성 큐레이터 앙겔라 슈티프(Angela Stief)가 관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었을 것 같다. 럭셔리와 스트리트 패션을 재미나게 섞은 듯한 튀는 패션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할 말을 다 하는 이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관장은 여성 팝 아티스트, 퍼포먼스, 퀴어 문화 등 다양성의 폭을 넓히는 기획을 시도하고 있다. 큐레이터로서 알베르티나의 카타리나 그로세 전시도 진두 지휘했는데, 올해 열리는 <The Beauty of Diversity>라는 기획전도 주목해달라고 필자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2 오스트리아 출신의 예술가로 조각과 설치로 유명했던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 1947~2012)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3 알베르티나 모던 건물 외관. Photo by 고성연
[ART + CULTURE ’23-24 Winte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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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세상의 시선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예술 보러 가기
06.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고전부터 컨템퍼러리까지 아우르는 월드 클래스 컬렉션과 기획전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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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차근차근 보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는 미술 시장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