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in Style Chosun
_Portraits of Our Times_서문(Intro)
● 인물을 표현한다는 것, 즉 누군가를 그리거나 조각하거나 텍스트로 풀어내는 것에는 어떤 의도가 담긴 걸까? 예술과 상업의 영역에서 인물을 다룬 역사는 길고, 지금도 온갖 얼굴로 넘쳐나는 이미지 과잉 시대는 이어지고 있다. 초상을 빚어내려는 동기도 그만큼 다양하다. 미모나 개성, 신분, 권위 등을 나타내는 개인의 초상일 수도, 현 사회상을 반영하는 집단적 군상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 기록의 초상일 수도, 내면적 진실을 끌어내고 담아보려는 심리적 초상일 수도 있다.
●● 무엇이 됐든 초상의 근저에는 뭔가를 끄집어내려는 속성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초상(portrait)이라는 단어가 라틴어로 ‘발견하다’, 끄집어내다’, ‘밝히다’라는 의미를 지닌 ‘protrahere’에서 유래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진짜(authentic)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애초에 가능한 것일까? 언젠가부터 과다하다 싶을 만큼 애용되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원래 예술 작품을 가리킬 때 모사품이나 복제품이 아닌 ‘진짜’라는 맥락에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진짜’는 한 가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자아에는 여러 모습이 있는 법이고, 애써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인간이 쓴 가면이 반드시 가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 소설가이자 미술 비평가 존 버거는 예술가에게 ‘진실’이란 가변적인 것으로, 그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바라보기의 특정한 방식이라고 했다. 보는 이들도 저마다 바라보는 방식이 있기에, 예술가의 초상이 내게 건넨다고 생각되는 대화에 대한 반응도 천만 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건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게 아닐까? 나 자신의 자화상이든 누군가의 초상이든 자세히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눠보고자 하는 관심은 곧 에너지이고 어쩌면 애정일 테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창의적인 집중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비범함과 유사한 면이 있다”는 시몬 베유의 생각과 비슷한 맥락에서 말이다. <스타일조선>의 ‘지상(紙上) 갤러리’에 등장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초상을 바라보는 필자들의 저마다 다른 시선에서도 그러한 애정 어린 집중력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Alex Katz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선보인 신작 ‘밀짚모자 3’ 작업 중인 알렉스 카츠(2021).
Photo ©Juan Eduardo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 London·Paris·Salzburg·Seoul |
Andy Warhol
‘SELF-PORTRAIT IN A FRIGHT WIG’(1986), 폴라컬러/Polacolor 10.8 X 8.5cm,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Photo credits ©Primae / Louis Bourj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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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 Wook-Kyung
자화상(푸른 모자를 쓰고)’(1967),종이에파스텔,61X 46㎝,개인소장
이미지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
Anne Collier
자신의 작업을 살펴보는 작가(앤 콜리어)의 뒷모습. 이미지 제공_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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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Zangewa
‘Family Ties’ (detail, 2021), hand-stitched silk collage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
Florin Mitroi
‘Untitled’ (2000), Zinc plate, 103.5 X 64cm
Courtesy The Estate of Florin Mitroi and Esther Schipper, Berl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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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은록(동국대 겸임 교수·리좀-심은록 미술연구소 소장)
이미지 제공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THE SHADOW’(1981), 뮤지엄 보드에 실크스크린/Silkscreen on museum board, 102.5 X 102.5cm, Photo ©Primae/Louis Bourj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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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1978),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03 X 203cm, Photo ©Fondation Louis Vuitton/Martin Argyrog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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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드루 워홀라(Andrew Warhola Jr., 1928~1987)는 미술 애호가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앤디 워홀의 본명이라고 하면, 그제야 잘 안다는 표정으로 안도한다. 실제 인물 ‘앤드루 워홀라’보다 더 실제 같은 앤디 워홀은 워홀라가 만들어낸 ‘하이퍼리얼리티 이미지’다. 현재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진행 중인 전시 <앤디 워홀: 앤디를 찾아서(Andy Warhol: Looking for Andy)>(2021. 10. 1~2022. 2. 6)의 자화상처럼 워홀의 작업 공간인 ‘팩토리’에서 만들어낸 이미지 그 자체가 워홀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와 저서 <앤디 워홀의 철학(The Philosophy of Andy Warhol)>에서 자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작업에서 드러나는 걸 보면 되고, 그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왜 이처럼 친숙한 ‘앤디’를 또 찾으려는 것일까? 우리는 또다시 ‘앤드루’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소용 가치가 아니라 ‘기호 가치’를 소비한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에 공급이 수요를 넘어섰음에도 소비는 지속되고 있다. 이를 영속화하는 최대 동력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광고’다. 워홀 역시 광고 분야에서 먼저 인정받아 그래픽 디자이너로 성공했고 <보그>, <하퍼스 바자> 등 유명 잡지사의 일을 맡았으며, 상업 디자인 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최고작도 대부분 매스미디어와 소비 제품을 대상으로 했다. 그는 영화,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를 적극 활용하고, 광고 스타일을 미술에 도입했다. 소비자가 가방이 아니라 루이 비통이라는 고상한 ‘이미지’를 착용하고, 자동차가 아니라 벤츠라는 사회적 지위의 ‘이미지’를 소유한다는 것을 일찍 간파했기 때문이다. 워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활발해진 이러한 흐름을 실제 캠벨 수프 캔(1962년 당시 29센트)에는 없는 하이퍼리얼리티 이미지(‘캠벨 수프 캔’ 32점, 당시 각각 1백 달러)로 제작하며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 소비사회 이론으로 유명한 장 보드리야르는 ‘그 신화와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워홀을 가장 좋아한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에 관한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더 이상 근본적인 기능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예술의 ‘제의 가치’ 상실과 더불어 현재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인한 ‘전시 가치’의 상실도 추가된다. 보드리야르는 워홀의 작업을 포함해 “현대 예술의 모든 이중성은 무가치(nullite´), 무상함(insignifiance), 무의미(non-sens)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가치’라는 무거운 윤리적 코드에 짓눌리면서도 그 관습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예술로부터 다다는 이를 해체했고, 워홀은 거기에 ‘무가치’를 도입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무가치’에 다시 ‘가치’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고, ‘앤디’가 아니라 ‘앤드루’를 찾고 있다.
<앤디 워홀: 앤디를 찾아서(Andy Warhol: Looking for Andy)>,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전시 모습(2021). Exhibition view at Espace Louis Vuitton Seoul (2021)
‘SELF-PORTRAIT’(1967),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182.9 X 182.9 cm ‘SELF-PORTRAIT’(1986),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74.3 X 274.3 cm Photo ©Kwa Yong Lee / Louis Vuit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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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명(미술비평ㆍ미학ㆍ동양학)
이미지 제공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 London·Paris·Salzburg·Seoul
● 인물화(portrait)의 어원은 13세기 프랑스 고어 ‘portret’다. 그리거나 묘사한다는 뜻의 ‘portraire’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원래 인물화는 권위의 표현이었는데, 13세기 유럽 화가들은 관심의 대상을 기독교 도상인 성상화(聖像畵, icon)에서 살아 있는 사람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상, 기독교의 성인 등 종교적 인물을 그린 성상화는 정확한 묘사보다 마음에서 우러난 경배심을 어떻게 담아낼지에 집중했다. 이후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정확한 묘사가 화가의 일급 과제가 되었다. 주 대상은 왕족, 귀족, 특권층이었고, 표정, 제스처, 손짓, 배경, 메시지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관념(idea)에서 사실(reality)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파와 형식이 태어난다. 그러나 화가들이 인물화를 다룰 때 변하지 않았던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인물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다.
●● 20세기는 모더니즘의 세기였다. 모더니즘 회화는 사실(事實)의 재현으로부터 회화의 본질(本質)이 무엇인지 탐험하는 과정으로 관심의 방향을 바꾼다. 외부 세계를 묘사하거나 마음속에 떠오른 형상을 나타낼 때도 그림이라는 매체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사유해 완성했다. 따라서 1960년대까지 세계 미술은 추상미술이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 알렉스 카츠(1927~)는 이때 다시 인물화를 내세운 영웅이자 전설이다. 온화한 미국 동부의 야외를 탐사하면서 사람들과 풀꽃, 나무숲을 묘사했다. 웻투웻(wet-to-wet) 기법으로 물감이 채 마르기 전 화면을 습윤(濕潤)하게 처리하면서 미국인들의 일상을 그렸다. 가족과 친지를 그림의 대상으로 삼은 가운데 변치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경탄의 마음이다. 작가의 경이로운 화면에서 주위의 모든 인물들은 아름다움으로 재탄생된다. 화면이 평면적이면서도 발랄하고 온화한 분위기는 자유로우면서도 절도 있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성공적으로 묘사했다.
●●● 가장 미국적인 회화를 구축한 카츠 작품의 특성은 1976년 완성된 ‘말을 탄 진(Jean on Horse)’이라는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호수와 하늘은 맞닿아 있으며 푸른 들판을 거니는 말 위에 올라탄 진이라는 여성은 청바지와 흰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다. 이토록 단순하게 절제된 화면에서 자유롭고 거칠 것 없되 한없이 사람 좋은 한 인물의 영혼을 모두 표현했다. 옛 인물화에서도 말 위의 인물을 묘사하곤 했다. 그런데 그 주제가 권위였다면, 카츠가 그린 것은 무한한 자유와 공평무사한 평등이다. ‘컷아웃(cut-out)’ 시리즈도 그의 인물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스테인리스 강판에 에나멜로 인물을 그리고 인물의 형상대로 강판을 오려내 실내나 실외에 설치하는데, 이 시리즈로 카츠는 회화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2016년에 완성한 ‘찬스(Chance)’라는 작품을 보자. 수영복을 입은 세 여성이 물놀이 공을 들고 노니는데, 각자 독립된 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한다. 이들은 화사하되 사치스럽지 않고 당당하되 분위기를 깨지 않는다. 실제 물놀이장에 설치되어 회화 속 인물들이 사실과 가상의 경계를 사뿐히 넘나든다.
‘Jean on Horse’(1976), Oil on linen, 75 X 120inches © Alex Ka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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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ce’(2016), Porcelain enamel on steel, 77 1/4 X 142 X 15 3/4inches © Alex Ka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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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에르빈 케슬러(Erwin Kessler, 미술 사학자)
이미지 제공 Courtesy The Estate of Florin Mitroi and Esther Schipper, Berlin
‘5.IX.1985’ (1985), India ink on paper, 35.4 X 24.7cm (unframed), Photo ©Andrea Ross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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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India ink on paper, 35.2 X 25.1cm (unframed), Photo ©Jens Zie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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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마니아 작가 플로린 미트로이(1938~2002)는 1961년 부쿠레슈티 예술 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조교수로 임용됐다. 온화하고 겸손했던 미트로이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야망이 크지 않았던 그는 루마니아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경력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다. 1960년대 중반, 루마니아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떨어져 나왔고, 곧 지역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서구 개방 흐름을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됐다. 이 혁신은 국수주의적 문화 부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반드시 새로운 양식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미트로이는 당시 존재했던 신아방가르드와 공산주의풍 중 하나를 받아들이는 타협을 하지 않았다.
●● 1974년, 인생 대부분을 작은 작업실에서 보낸 그는 상식적인 모더니즘을 버리고 오랫동안 잊혔던 전통인 카제인 기반의 템페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손수 준비한 나무, 유리, 캔버스, 종이에 손으로 혼합한 색소를 얹었다. 탄탄하고 정교하지만 공허한 작품에서 그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여겨지는 자살 행위, 유해하다고 여겨진 에로티시즘 등을 무자비하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사후에 발견된) 7천3백여 점에 이르는 미트로이의 작품은 그의 위대한 상상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절묘한 슬픔에 메스를 대듯, 각 작품에서는 가학, 비극, 예술적 완벽에 대한 황홀한 갈망이 묻어난다. 전시나 판매에는 관심이 없었던 미트로이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작업했다(생전의 개인전은 1993년 열린 전시가 유일했다). 당시 정권이 통제하는 예술에서 섹스뿐만 아니라 죽음도 완전히 금기시하는 주제였다.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의 비밀스러운 작품은 루마니아 전후 예술의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졌다.
●●● 미트로이의 초상화는 정면 또는 측면을 그린 여성과 남성의 형상을 보여준다. 이 초상화들은 같은 시기에 제작한 작가의 사진 작업을 반영하는데, 대개 루마니아 시골에서 찍은 두건을 쓴 나이 든 여성들의 흑백사진 등을 묘사한다. 짙은 단색 배경 위에 드리운 강렬한 검은 선이 개개인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한다. 이 삭막한 검은 윤곽을 만들어내는 붓질은 독일 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반면 상반신만 드러낸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은 종교적 모티브, 전통문화 요소 등을 갖추었다. 단조로운 배경에 공허한 표정을 한 눈 큰 인물의 시니컬한 표정은 신비로워 보인다. 미트로이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 속 숨겨진 ‘진실’의 이면에 주목했다.
‘22.III.1994’ (1994), Tempera on paper, 92 X 65cm (unframed), Photo ©Sang T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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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with Burgundy Background’ (1986),Tempera on plywood, 46 X 38cm (unframed), Photo ©Alexandru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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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덱스터 윔벌리(Dexter Wimberly, 독립 큐레이터)
이미지 제공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The Pleasure of a Child’(2021), Hand-stitched silk collage, 111 X 152cm.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빌리 장게와의 실크 콜라주 작품. 작가의 개인전 <흐르는 물(Running Water)>과 <혈육(Flesh and Blood)> 이 리만머핀 런던과 서울에서 순차적으로 열린다. 서울 전시는 1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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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한 손바느질로 엮은 실크 천 조각으로 이뤄진 빌리 장게와(1973~)의 우아한 콜라주는 믿기지 않을 만큼 로맨틱하다. 평범한 가정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구성한 그의 작업에는 노동과 놀이, 일과 여가의 경계가 흐릿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풍경이 담겨 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상에 꼭 들어맞는 것이기도 하다. 장게와는 만물을 관통하는 ‘상호 연계성(interconnectedness)’이라는 요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삶의 다양한 측면을 포용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떠받치는 힘과 목적의식을 얻었다. 작가 개인의 우선순위는 모성, 가족, 집, 자유, 마음의 평화와 같은 소재 선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 장게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관람자에게서 어떠한 반응이나 동의도 바라지 않은 채 자신의 삶에 오롯이 몰두하고 있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보다 단단한 내면의 힘을 갖게 된 작가 개인의 성장과 성숙을 반영한다. 이 같은 변화는 작품 속 인물의 배치와 그들의 몸짓에서도 나타난다. 장게와가 담아내는 (천 캔버스 속) 인물들은 어떠한 연기도 하지 않는다. 관람자는 그저 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을 제공받을 뿐이다.
●●● 장게와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영감 넘치는 방식으로 재봉을 하는 아프리카 남부 국가 보츠와나(Botswana)의 여성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이 여성들의 바느질 작업은 삶과 가정,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 전체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근간임에도 때때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비가시적 노동에 대한 물리적 증거가 되었다. 이 같은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장게와의 마음속에 줄곧 머물러왔다. 작가는 “사회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뒷받침하는 동력이지만, 자주 간과되고 경시되거나 무시되곤 하는 여성의 일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고치에서 뽑아낸 생사(生絲)로 짠 천과 바늘땀, 해진 천 가장자리 같은 요소는 모두 이러한 상징성을 강화하며, 항상 해낼 일이 더 남아 있다는 느낌을 증폭시킨다.
‘In Times of Trouble’(2021), Hand-stitched silk collage, 136 X 26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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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ing Eyes’(2021), Hand-stitched silk collage,153 X 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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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수진(디블렌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미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Baton, Seoul; Anton Kern Gallery, New York; Galerie Neu, Berlin; Gladstone Gallery, Brussels; and The Modern Institute/ Toby Webster Ltd., Glasgow
지난해 갤러리바톤에서 한국 첫 개인전(2021년 11월 19일~12월 23일)을 가진 사진작가 앤 콜리어의 전시 풍경. 작가의 신작 ‘Woman Crying(Comic)’ 작품들(왼쪽 #35, 오른쪽 #34)이 보인다. Photo by Jeon Byung C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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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아날로그 사진 촬영 과정과 제작 과정을 꾸준히 탐구해온 작가 앤 콜리어(1970~). 그녀의 초상 작업은 수많은 미디어를 ‘응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기억, 상실, 우울 같은 감정을 내포하는 다양한 미디어(미국 빈티지 로맨스 코믹 북, 영화 포스터 등)의 이미지를 본인만의 시선으로 다시 촬영하는데, 그 위에 컬러 필터를 덧씌우고 이미지 주위로 프레임을 조성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해나간다. 대체로 격앙된 감정을 묘사하는 원본 이미지와 작가가 차용한 이미지 간에는 끊임없는 긴장이 조성된다. 이렇게 앤 콜리어 식의 재미난 초상이 탄생하는데,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묘하게 매혹적이다.
●● 현재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첫 개인전을 비롯해 작가가 수년간 지속해온 시리즈 작업을 보면 언뜻 페미니즘이나 특정 사조에 의미를 부여하기 쉬울 법하다. 눈물을 흘리는 여성 같은 만화 캐릭터를 차용한 팝아트의 전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초기 작업을 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장기인 1970년대는 젠더 이슈에 민감한 시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그보다 한 발자국 떨어진 위트 혹은 궁금증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빈티지 코믹 북스에 자주 등장했던 ‘여자의 눈물’에 담긴 감정이 전혀 다른 맥락이나 시대에서는 어떤 식으로 보일지 궁금했던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기도 한 ‘Woman Crying’과 ‘Tear’ 연작을 제작하게 됐다. “젠더가 작품의 시작점이기도 하지만 그 주제에 매몰되기보다 단지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사실 그런 이미지들이 공허하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잖아요. 그 이미지들을 현재 시점으로 가져오고 싶었죠”라고 서울에서 만난 작가는 설명했다.
●●● 여자들의 다양한 얼굴, 눈을 모티브로 담은 구체적인 이미지는 그녀의 시선에 의해,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마치 추상화처럼 번진다. 작품을 응시하다 보면 대상의 윤곽, 눈썹, 속눈썹의 디테일을 넘어 어느 순간 마치 평행 세계처럼 아득해져 시공간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눈물이 가득 찬 여성의 눈을 극도로 확대하고, 이로부터 이미지를 분리했으며, 각각의 눈물을 그래픽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레이 존슨이 ‘우편 아트’라는 장르를 창시하며 40년간 거의 매일 예술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듯, 앤 콜리어도 오랫동안 여성들의 ‘눈’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 같다(실제로 작가의 대표작 중 한쪽 눈을 감은 채 사진을 찍는 여자를 촬영한 ‘Women with Cameras’ 같은 시리즈도 있다).
지난해 갤러리바톤에서 한국 첫 개인전(2021년 11월 19일~12월 23일)을 가진 사진작가 앤 콜리어의 전시 풍경. 작가의 신작 ‘Woman Crying(Comic)’ 작품들(왼쪽 #35, 오른쪽 #34)이 보인다. Photo by Jeon Byung C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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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Book (Waves) 2’(2016), C-Print, 143.3 X 12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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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유신(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최욱경의 대규모 회고전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전시 풍경. 미발표작을 포함해 작품과 자료 2백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오는 2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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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욱경(1940~1985)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196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와 브루클린 미술관 미술학교 등에서 수학한 다음 1968년 뉴햄프셔에 위치한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의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화가이자 미술 교육자로서의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은 작가’ 혹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추상미술가’로 주로 소개되어왔지만, 사실 최욱경은 추상에 대한 다채로운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구상적인 작업 역시 지속적으로 해온 작가다. 구상 작업의 기초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 최욱경의 자화상은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듯 그린 작품부터 재료의 사용과 기법적 실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띤다.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는 종이를 잘라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인데, 본인의 영문 이름과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3 Eyes I Do Have)’라는 영문 텍스트를 도입한 점 등에서 1960년대 중엽 최욱경이 시도했던 재료와 기법적 실험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동시에 이 작품은 아시아 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 신의 존재를 세 개의 눈을 가진 것과 다름없는 이질적인 존재로 표현한 점에서 미국 체류 시기의 최욱경을 가장 잘 포착한 자화상으로도 볼 수 있다. 자신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자화상 중에서는 초상 사진을 이어 붙이거나 여러 각도에서 본 자신의 모습을 함께 그린 경우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여러 얼굴을 한 화면에 그린 자화상이 인상적이다. ‘자화상 연작-계속되는 나와 나의 생각들’(1976)은 어린 시절의 모습부터 이 작품을 제작한 1976년까지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연속해서 그린 작품이다. 당시 자신의 생각을 일기 쓰듯 자화상 옆에 써 내려간 독특한 형식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품들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지역을 오가면서 화가이자 미술 교육자, 시인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채 활동했던 최욱경의 복합적인 모습을 반영하는 듯하다.
●●● 최욱경에게 자화상은 전시용 작품이라기보다는 그가 시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던 것처럼, 그 시기의 자신을 시각적으로 포착해 기록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자화상을 주로 제작한 1960~70년대에 그는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미국적인 작가로, 미국에서는 아시아 출신의 외국인이자 여성 작가라는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정됐다. 그가 다수의 자화상을 그린 것은 어쩌면 자신을 평가하는 여러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바라본 본인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자화상은 최욱경을 비췄던 과거의 시선을 벗어나 작가 자신의 시점에서 그리고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그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할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 종이에 그래픽 잉크, 105 X 105.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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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연작-계속되는 나와 나의 생각들’(1976), 모눈종이에 연필, 200 X 91㎝, 뮤지엄 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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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21-22 Winter 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