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20 Summer SPECIAL] 창조적 지평을 넓히는 ‘진심의 공간’, 챕터투 야드+챕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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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20

글 고성연

건축가 알도 로시는 건축은 ‘도시의 기억’이라고 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전시라는 콘텐츠는 ‘공간의 기억’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젊은 미술가나 기획자에게 그러한 기억들을 의미 있게 채워갈 수 있는 비영리 공간을 상업 화랑인 갤러리바톤에서 선보여 눈길이 간다. ‘서울의 브루클린’이라 부를 정도로 문화 예술 공간이 쏟아지고 있는 서울 성수동에 터를 잡은 대안 예술 공간 챕터투 야드(Chapter II Yard). 먼저 생긴 연남동의 챕터투(Chapter II)에 이은 두 번째 공간이다. 열린 문을 형상화한 로고의 로마자 ‘II’는 미술가들에게는 작가 활동의 제2장이, 그리고 문화 예술 향유자에게는 개방된 교류의 장이 되는 공간이기를 바라는 비전을 담았다고. 해외에서 인지도와 명망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국내의 역량 있는 신진·중견 작가에게도 주목해온 갤러리바톤이 추구하는 ‘진심의 공간’! 그 면면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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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낡은 공장 지대에서 매혹적인 문화 예술 지구로 거듭나고 있는 서울 성수동. 이 동네를 거닐자면 한눈에 봐도 세련된 감각이 묻어나는, 하지만 강남 한복판의 뭔가 매끈한 분위기와는 결이 다른 운치와 활력을 풍기는 거리와 골목이 갈 때마다 생겨나는 듯 느껴진다. 지난 늦은 봄에도 평범한 듯 평범치 않은 공간이 새롭게 들어섰다. 언뜻 흔해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인데, 자세히 보면 범상치 않은 요소가 여기저기 묻어 있다. 뜻 모를 공식이 건물 외벽을 제법 크게 수놓고 있는 데다, 입구의 문에도 수수께끼 같은 수식이 새겨져 있다.
창문과 문을 감싸는 가라앉은 초록빛 틀도 은근히 시선을 잡아끈다. 상업 화랑 갤러리바톤이 한 문화 예술 후원자에게 힘입어 오래된 건물을 탈바꿈시킨 대안 예술 공간 챕터투 야드(Chapter II Yard)의 모습이다. 4년 전 서울 연남동에 의료 기기업체인 (주)유파인메드와 함께 꾸린 챕터투(Chapter II)에 이어 국내외 신진·중견 미술가의 활동을 위해 만든 비영리 미술 공간 2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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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술가 리암 길릭의 손길이 깃든 작지만 알찬 대안 공간
챕터투 야드의 전시 공간 자체는 반지하에 그다지 크지 않은 면적으로 펼쳐져 있다. 지난 5월 중순 열린 개관전인 주세균 작가의 개인전을 예로 들자면 형형색색의 깃발이 펼쳐진 대형 설치 작품 ‘Notional Flag Series’가 전시실 하나를 꼭 채운다(작은 옆방이 하나 더 있다). 하지만 신진 작가와 어울릴 법한 아기자기한 공간 자체의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건물 안으로 이끄는 문 손잡이, 그리고 외벽을 장식하는 이색적인 요소들 덕분인지, 타인의 공간 앞에서 느끼는 낯선 긴장감이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뀌게 하는 장점이 있다. 이 요소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영국 현대미술가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작품들이다. 먼저 문에 반복적으로 새긴 공식은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 만든 행동에 관한 방정식 ‘B=f(P+E)’를 바탕으로 한 ‘Behavior Personality Environment’라는 작품이다. 인간(P)과 환경(E)이 결합된 ‘생활 환경’이 인간의 행동(B)을 결정한다는 행동의 장(場) 이론을 반영한 작품으로, 공간에서 맺어지는 관계의 역학에 주목한다. 또 건물 파사드를 감싸는 3.4m의 공식은 발성법과 연관된 ‘소리’에 관한 방정식을 활용한 작품 ‘And Houses Can Speak’이다. 성악가가 올바른 발성 기술을 체득하려 훈련을 거치듯,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갤러리바톤의 전속 작가이도 한 리암 길릭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지는 성수동의 지리적 특징을 토대로 지역 일대와 조선 시대 성덕정(聖德亭) 터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맞닿을 만한 두 작품을 만들어냈다. 성덕정은 선조 임금이 업무를 보고 문인들이 산책을 하고 시를 읊었던 곳. 작가는 우리네 역사 속 기억과 풍류를 국제공통 용어인 수학 공식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현재로 불러옴으로써, 이 공간이 지역의 문화 예술과 상생에 보탬이 되기를 바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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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공간과 보조를 맞추는 연남동의 챕터투, 그리고 작은 책방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챕터투 야드와 짝을 이루는 또 다른 ‘원조’ 대안 공간 챕터투는 일찌감치 연남동에 들어섰다. 2016년 11월 문을 연 챕터투에서는 신진 작가들의 전시만 열리는 게 아니라 1년에 3명씩 선발하는 작가 레지던시,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다. 주세균 작가 개인전이 성수동에서 개최되기에 앞서 올 초 챕터투 본관에서 열렸듯, 때로는 두 공간을 거치는 순환 전시를 꾸리는 연계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 또 작은 전시 공간 옆에는 레지던시와 이어지는 아담한 ‘아트 카페’ 벌스 투(Verse II)’가 자리한다. 입주 작가들은 각종 작품이 걸린 이곳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사색을 즐기기도, 미팅을 가지기도 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작가들도 즐겨 찾는다. 이번 ‘아트+컬처’호에 ‘크루 컬처’로 활약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잠깐 언급된 아크로바틱 코스모스의 장서영 작가도 2018년 입주했던 작가 중 한 명이고, 다른 두 멤버(윤지영, 손현선)도 챕터투에서 전시를 했다. 챕터투를 운영해온 나윤정 실장은 “아크로바틱 코스모스는 손현선 작가의 챕터투 개인전 뒤풀이 자리에서 결성됐답니다”라고 귀띔하면서 그들이 꾸준히 전시를 이어나가 뿌듯하다고 미소 짓는다. 혹시 연남동 챕터투를 찾는다면 건너편에 자리한 아담한 책방 스프링 플레어(Spring Flare)도 기억해둘 법하다. 젊은 예술가와 애서가에 대한 마음을 담아 이름 지은 이 서점은 ‘봄이 불꽃처럼 번져나간다’는 뜻을 지닌 후원자 최춘섭 (주)유파인메드 회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 에세이는 물론 챕터투에서 진행한 전시 도록 등도 접할 수 있으며, 미술 분야 서적은 도록 한 권도 ‘디테일의 미학’이 느껴지도록 세심하게 만드는 갤러리바톤에서 ‘큐레이션’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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