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展 _이것이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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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6, 2022

글 천수림(미술비평)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展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미디어 작가이자 영화감독, 비평가, 저술가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그동안 베니스 비엔날레 (2019, 2015, 2013), 카셀 도쿠멘타(2007), 파리 퐁피두 센터(2021) 등에서 전시를 열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아왔고,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지난겨울 야심 차게 선보인 또 다른 베를린 기반의 아티스트 아이웨이웨이에 이어 올여름에는 ‘히토 슈타이얼’을 내세웠다.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작가의 초기 영상 작품부터 디지털 기반의 데이터 사회를 성찰하는 주요 작품을 아우르는 대표작 23점을 접할 수 있다. 디지털 사회의 이면과 그 속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새로운 문법을 추적하고 기술, 자본, 예술, 사회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비평적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과 저술 활동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의 면면을 심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밀도 있는 작품이 전시 공간을 구석구석 채우고 있기에 ‘시간’도 ‘품’도 많이 들지만 마치 영화 세트 같은 이색적인 관람 환경으로 그 ‘노고’를 달래준다. 오는 9월 18일까지.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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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코프먼의 1978년 영화 <외계의 침입자(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에는 이제껏 인간이 보지 못했던 신비한 식물이 등장한다. 샌프란시스코에 내리는 비에는 외계에서 온 식물의 씨가 섞여 있었다. 이 씨는 분홍색 꽃을 피운 예쁜 식물로 자라나 사람들의 몸을 복제하는데, 사람들의 겉모습뿐 아니라 기억과 정신을 모두 복사해버린다. 이 복제인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복제 인간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이야기는 SF 영화의 흔한 클리셰이지만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지점을 발견한 이들이 있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피셔는 자신의 저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복제용 씨앗을 재배하는 부둣가 공장을 주목했다. “인간이 자동화된 시스템 간의 보이지 않는 연결기로만 존재하는 컨테이너항과 펠릭스토우의 항구가 효과적으로 대체하게 된 오래전 런던 부두의 떠들썩함 사이의 대조는 지난 사십 년 동안의 자본과 노동의 이동에 대해 많은 부분을 말해준다. 항구는 금융자본이 이룬 승리의 흔적이며, ‘비물질화된’ 자본이라는 착각을 가능케 하는 육중한 물리적 기반 시설의 일부이다. 이는 현대 자본의 단조로운 광택 밑면에 존재하는 으스스한 것이다.”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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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자주 꼽히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1966~ )만큼 현대사회의 난제에 탁월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는 드물다. 그녀는 지구 내전, 불평등의 증가, 독점 디지털 기술 등 지구 곳곳에 산재된 문제에 직면한 현대인들을 현미경처럼 미세하게 들여다본다. 자본주의, 파시즘, 역사, 미술 제도, 이미지, 재현, 주체, 실재, 사물이라는 작가의 키워드는 우리의 현재이자 과거, 미래를 예측하게 만드는 언어다. 그런데 슈타이얼은 자신의 힘으로 모순을 풀어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지난 4월 말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열린 공동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했다. “20세기 인류의 역사는 외계인들만이 알 것입니다. 지금도 외계인 고고학자가 지구인이 라디오 송출처럼 내보낸 이야기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 데이터들은 우주 어디엔가 가득 쌓여 있을 것입니다.” 지구인이 쌓아놓은 이 지독한 난제에 질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히토 슈타이얼을 보면 그녀가 외계에서 보낸 외계인 고고학자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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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예측 알고리즘, 미래 예견 프로그래밍에 대한 제언
고인이 된 마크 피셔가 만약 살아 있다면 신경 네트워크와 인공지능이 예견한 미래 정원에 관한 이야기인 슈타이얼의 작품, ‘이것이 미래다(This is the Future)’(2019)를 보고 굉장히 반가워하지 않았을까. 현재 MMCA 서울에서 진행 중인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展에서 이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에 들어서면 ‘If you use the extract, it will poison autocrats’라는 부드럽고 매혹적인 AI 음성이 들린다. 꽃 추출물을 사용하면 독재자를 독살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것이 미래다’는 전시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다채널 비디오 설치물인 ‘미션 완료: 벨란시지(Mission Accomplished: Belanciege)’가 포함된 3부작 전시의 일부다. 초자본주의, 세계화, 디지털화, 증강현실 및 데이터 마이닝 등 그녀가 탐구하는 문제 중 일부분을 담고 있다.
‘이것이 미래다’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주인공 헤자(Heja)의 이야기를 다룬다. 쿠르드족 여인 헤자는 감옥 앞마당에 날리는 씨앗을 잡아 종이 위에 싹을 틔웠지만 교도관들은 이 씨앗을 모두 없애버렸다. 이후 신경 네트워크는 미래에 꽃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 헤자는 미래 정원에 꽃을 숨겨버린다. 미래 정원의 식물들은 SNS 중독으로 뇌가 병든 사람을 치유하거나, 독재자를 독살하기도 하는 등 마술적인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전시장 안쪽에 자리한 또 다른 멀티채널 비디오 작품 ‘파워 플랜츠’는 인공지능, 예측 알고리즘, 미래 예견 프로그래밍에 의해 재생된 꽃과 나무가 등장하는데, 이 꽃들은 0.04초 뒤에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다. 불확실한 미래의 징후이자, 가짜 뉴스에 대한 언급을 통해 결국 헤자는 관객이자 보편적인 개인임을 깨닫게 된다. 자연과 도시 풍경의 기이한 이미지, 최근 독일의 극우 시위를 포함한 사건 영상을 통해 극우의 부상, 지구온난화를 예측하지만 무시되는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안하고 현실적이면서도 암담한 현재의 비전을 통해 미래를 점치는 슈타이얼의 작품은 우리를 끝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그녀는 이렇듯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이미지, 사운드, 에세이, 강연, 멀티미디어 설치 등을 활용해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강력한 스토리텔러다. 가속화된 글로벌 자본주의와 디지털 사회, 포스트 인터넷 시대 이미지의 존재론과 그것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분석하면서 미디어, 이미지, 기술에 관한 주요한 논점을 제시해왔다. 이번 MMCA 서울 전시는 작가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으로 거의 30년에 걸친 작업 중 ‘독일과 정체성’(1994)과 ‘비어 있는 중심’(1998) 등 다큐멘터리 성격의 초기 영상 작품부터 알고리즘,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 디지털 기술 자체를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조명하는 근작 ‘소셜심’(2020)과 MMCA 커미션 신작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2022) 등 23점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명 ‘데이터의 바다’는 슈타이얼의 논문 <데이터의 바다: 아포페니아와 패턴 (오)인식>(2016)에서 인용한 것으로, 오늘날 또 하나의 현실로 여겨지는 디지털 기반 데이터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 기획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MMCA 학예연구사는 관람객들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각종 재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디지털 시각 체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지구 내전, 불평등의 증가, 독점 디지털 기술로 명명되는 시대에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 작가가 건네는 질문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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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패션, 야생적 자본주의 시장 고찰

‘미션 완료: 벨란시지’라는 3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2019)은 럭셔리 패션 하우스 발렌시아가를 정치, 문화, 포퓰리즘에 대한 성찰의 중심에 두고 있다. 베를린 N.B.K에서 강연-퍼포먼스로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슈타이얼, 조르지 가고 가고시츠(Giorgi Gago Gagoshidze), 밀로스 트라킬로비치(Milosˇ Trakilovic´)가 공동으로 저술, 제작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 구소련 영토의 전제정치, 그리고 발렌시아가 사이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벨란시지’라는 용어는 ‘발렌시아가 방식’을 뜻하는 것이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이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기까지 30여 년 동안을 고찰하는 이 작품은 정치, 대중문화, 경제의 영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션 데이터’의 파급 현상을 추적한다. 패션 데이터는 무기화된 내러티브로 선거,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소셜미디어, 브랜딩, 정체성 정치, 자본주의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신작 ‘야성적 충동’은 ‘미션 완료:벨란시지’에서 더 나아가 야생적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논의를 더 깊이 전개한다. 작가는 인간의 탐욕이나 두려움으로 시장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상황을 ‘야성적 충동’으로 명명했다. 이 개념은 거시경제학의 대부로 불리는 영국 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개념을 인용한 것으로, 구석기시대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중심으로 스페인 양치기들의 생태학적 힘과 비트코인이나 대체 불가능 토큰(NFT) 등 새롭게 등장한 야생적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논의를 교차시키고 있다.
데이터, 인공지능, 알고리즘, 메타버스 등 디지털 기술 기반의 네트워크 사회에서 이미지 생산과 순환, 데이터 노동, 동시대 미술관의 상황을 소개하는 작품으로는 ‘깨진 창문들의 도시’(2018), ‘태양의 공장’(2015), ‘소셜심’ 등이 있다.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2013)에서는 데이터가 대량으로 수집·등록되고, 감시 카메라가 도처에 널려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위계’를 논한다. ‘타워’(2015), ‘헬 예 위 퍽 다이(Hell Yeah We Fuck Die)’(2016)는 기술과 전쟁의 이면을 다룬 작품이다. 성전으로 치부되는 오늘날의 미술관은 어떤 장소인지 보여주는 ‘면세 미술’(2015)과 ‘경호원들’(2012)도 히토 슈타이얼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이다. 독일 통일 이후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등 불평등의 문제를 다룬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작가의 초기 다큐멘터리적 영상 실험인 ‘비어 있는 중심’, ‘독일과 정체성’, ‘11월’(2004)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의 예술적 태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작품의 면면도 존재감을 뿜어내지만, 관람 환경 자체도 주목할 만한다. 각 비디오에 대해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객석까지 하나의 설치 작품처럼 연출해 특별한 관람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전시관에서 선보인 ‘태양의 공장’은 해변의 비치 의자에 누워서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상과학 매트릭스로 빨려 들어가도록 만든다. 글로벌 이민과 재정적 불평등을 다룬 비디오 ‘유동성 주식회사(Liquidity Inc.)’(2014)도 푸른 물결 모양의 편안한 좌석이 설치된 공간에서 볼 수 있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조금 헷갈리는 지점에 도달하곤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현실이 아니고 매트릭스 공간이라면? 우리를 통제하는 빅브러더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도 그녀가 던지는 질문들을 다듬자면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 누가 그 권력에 의해 학대를 받는가?’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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