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ernative thinking_<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展_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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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1, 2023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디블렌트 CD)

시대를 꿰뚫는 비범한 통찰력을 지녔던 이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궁금할 무렵, 2008년 패션계에서 은퇴했던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가 돌아왔다. 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2019)에서 예술계를 통한 복귀를 암시했듯, 마르지엘라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 현대미술가로 돌아왔다. 20주년 기념 쇼를 마지막으로 패션계를 떠난 이래 시각 예술 작업에 전념해온 그가 선보인 첫 번째 개인전은 2021년 파리에서 열린 <마틴 마르지엘라 엣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Martin Margiela at Lafayette Anticipations)> 전시. 이후 순회전 방식으로 중국 베이징 엠 우즈(M Woods)에 이어 지난 12월 말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대규모 개인전의 막을 올렸다. .


“마르지엘라는 패션계에서 마지막 혁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의 쇼는 충격적이고 심란해요. 패션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단아죠. 패션계가 그를 받아주었을 때도 아웃사이더였고, 패션이 앞으로 나아가는 현재에도 아웃사이더예요.” ‘천재 패션 디자이너’로 불렸던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가 은퇴한 이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패션인들은 이렇듯 그를 회상하고 그리워했다. 마르지엘라가 관심을 갖는 ‘흔적과 시간’을 키워드로 우리는 그의 흔적을 찾기 바빴고, 그의 부재와 침묵을 몹시 궁금해했다.
스스로 실체를 드러낸 적이 없는 마틴 마르지엘라가 10여 년 만에 ‘아티스트’로 돌아온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해체주의적인 패션은 상식과 경계를 뒤엎는 ‘예술’이었으니까. 그래도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이유가 좀 더 명확해진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나의 유일한 매개체인 인체가 너무 좁게 느껴지고 시스템이 답답해졌습니다. 나는 창의적인 표현의 완전한 자유와 함께 더 넓은 스펙트럼이 필요했고, 경계 없는 순수한 창작을 즐기며 미술 학교에서 ‘소년’의 뿌리를 재발견했습니다.”
1957년 벨기에 루뱅에서 태어난 마틴 마르지엘라는 앤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에서 패션을 전공한 후 장 폴 고티에의 첫 번째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이후 1988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창립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1997년 에르메스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2003년까지 총 12시즌의 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1988년 파리의 한 카페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쇼를 보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수석 큐레이터 헤럴드 코다는 ‘간단한 전략으로 옷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영리한 방법’이라고 평한 적이 있는데, 현대미술가로 돌아온 마르지엘라의 이번 전시에 대해 코다의 말을 잠시 인용하고 싶다. ‘간단한 전략으로 아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영리한 방법’이라고. 예를 들어 작품이 변형되는 과정을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차용해(‘바디 파트 블랙 앤 화이트(Bodypart B&W)’) 기존 미술관의 엄격한 작품 보존 방식으로부터 작품을 해방시킨다든지, 오프화이트 색으로 칠한 미술관 벽에 드로잉을 한다든지, 작품의 네임 태그마저도 구깃한 종이로 만들어 붙이는 식이다. 모든 게 하다 만 듯 대충한 것 같아 오히려 ‘쿨’해 보이지만, 마르지엘라라는 크리에이터의 정수를 안다면 이 완벽주의 은둔자의 정교한 연출법이라는 것쯤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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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예술 작품들
이번 서울 개인전을 앞두고 유일하게 짧은 인터뷰를 진행한 롯데뮤지엄 수석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마르지엘라는 가장 중요한 건 ‘본래성(authenticity)’이라고 강조했다. “2008년 패션계를 떠난 후, 시각 예술 아티스트로 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거의 10년 동안 제 작품들은 완전히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아무도 볼 수 없었죠.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에서 전시 제안이 왔을 때, 저는 지금이 적기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일 준비가 되었죠.” 전시장에서 바로 옆에 서 있다고 해도 지나칠 수 있을 만큼, 그는 스스로는 단 한 번도 대중과 언론에 얼굴을 공개한 적이 없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심지어 컬렉션 쇼 피날레에서조차 인사를 하지 않았으며, 20년 동안 단 한번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꼭 필요한 건 팩스로 주고받았다. 16년 동안 그의 홍보 담당 디렉터로 일한 패트릭 스칼롱은 “마르지엘라는 자극적인 뉴스가 아니라 옷 자체와 브랜드의 철학에 반응해주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이 갤러리의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팀원과 작업하는 일원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전시장에서도 이런 그의 철학이 어느 정도 느껴진다.
그의 작품들은 애써 ‘작품’이라고 외치지 않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평균’이나 ‘정상’이나 ‘관습’에 의문을 던진다. 대표작 ‘데오도란트(Deodorant)’에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일상적인 물건이지만 데오도란트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체취를 인위적으로 은폐한다고 봤다. 위생에 대한 관념도 산업화되어버린 지금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토르소 시리즈’는 언뜻 보면 고대 조각상 같은 오라를 지녔지만 사실은 인체의 일부를 3D 스캔해 만든 실리콘 조각으로, 만지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게 흐르는 조각은 인체의 어느 부분인지 추측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젠더의 의미에도 의문을 갖게 하고, 조각과 받침대의 경계까지 허물며 물음표를 만든다.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아름다움은 그러한 상황에서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속성이다”라고 한 그의 말이 전시장 곳곳에 배어 있는 듯하다.
머리카락에 관련된 작품들에서도 한결같은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머리카락 색상만으로 유년부터 노년까지 나타내는 ‘바니타스(Vanitas)’는 작가가 인공 피부를 입힌 실리콘 구체에 자연 모발을 이식해 완성했고, ‘카토그래피(Cartography)’는 정수리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자라나는 자연 모발의 방향을 작가가 연구한 과정을 담았다. 두피의 정수리 부분이 존재의 기억과 경험이 저장된 하나의 지도라고 생각했다니, 예측하기 어려운 인생과 삶의 흔적을 고민했을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마르지엘라스러운’ 이 모든 작품들은 역시 오프화이트로 칠한 ‘미로’에 숨겨져 있다. 롯데뮤지엄의 공간은 마치 미로처럼 느껴지는 특성이 있는데, 마르지엘라는 이 전시장의 평면도를 보면서 또 다른 ‘미로’를 떠올렸다고 한다. 간격을 두고 작품을 배치해 거기 담긴 의미를 반추할 수 있는 공백의 순간을 만드는 것, 그가 전시에 항상 사용하는 버티컬 블라인드 등 전시 연출의 작은 부분까지 마르지엘라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디블렌트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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