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roll in Gwa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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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 2021

글 고성연 | 이미지 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2021 광주비엔날레가 선사하는 미술 산책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축제 광주비엔날레가 코로나19 여파로 두 차례나 행사를 연기한 끝에 지난 4월 1일 드디어 막을 올렸다. 국가별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먼저 공개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주 무대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비롯해 도시 곳곳의 전시장에서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라는 대주제로 39일간의 여정을 펼치고 있다(5월 9일까지). 광주비엔날레는 25년이 넘도록 대부분 짝수 해 가을에 치러졌는데, 13회를 맞이한 올해는 홀수 해에 꾸려지는 ‘봄의 제전’이라 더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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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을 ‘아트’로 다채롭게 수놓다

고별 무대가 될 (구)국군광주병원의 찬란한 봄

1995년 첫 단추를 꿸 때만 해도 의심쩍은 눈빛이 많았지만 광주비엔날레는 어느새 아시아 지역을 상징하는 현대미술 축제이자 담론의 장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예향’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역사의 깊은 상처를 문화 예술로 치유하고 승화한다는 취지를 꾸준히 살리다 보니 속도가 빠르지는 않아도 관련 인프라와 콘텐츠가 차츰 쌓여가는 모양새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irits Tuning)’을 주제로 내건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확장된 시각과 대안적 지성으로 ‘연대’와 ‘치유’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팬데믹으로 얼룩진 우리의 일상을 감안할 때, 시의적절하고 반갑게 느껴진다. 69명(팀)의 다국적 작가가 참여하고 40점 정도의 커미션 신작을 포함해 4백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규모는 예년의 절반 수준이나 콘텐츠의 내실이나 다양성을 보면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전시 장소의 다채로움도 커가는 듯하다. 호오(好惡)가 엇갈릴 수 있겠지만 옛 국군광주병원은 ‘비엔날레 산책’의 필수 코스가 아닐까 싶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의 치료소이기도 했던 이 병원 부지는 평소에 개방되지도 않거니와 올해를 끝으로 전시 무대로는 ‘작별’을 고해야 하기 때문(‘국립 국가트라우마 치유센터’로 거듭날 예정이라고). 깨진 유리창과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병원 건물은 해맑게 핀 개나리 덕분인지 훨씬 덜 스산해 보이고, 더 감동적이다. 현재 광주를 기반으로 한 작가 12인이 참여한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전이 진행 중인데, 이 중에도 꽃을 활용한 작품이 있다. 과거 중환자실로 향하던 통로 바닥에 5천 포기의 옥스아이 데이지가 꽃길을 이루고 있고, 이 꽃들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퍼진다.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라는 작품으로 작가가 유년기에 5.18을 겪은 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지금 광주에 사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담아냈다고. 이렇듯 지역 작가들의 역량이 고루 돋보이는 기획전 말고도 이불, 지하루 시오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참여한 ‘GB커미션’ 작품도 일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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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듣고, 햇살과 바람을 맛보고… 공감각의 미학

폐허나 다름없는 옛 병원에도 봄기운이 흐를진대, 건축물들이 저마다 맵시를 뽐내는 문화 예술 지구는 두말할 필요 없을 터. 광주비엔날레 주 전시관을 비롯해 여러 미술관이 모여 있는 북구의 ‘미술관 구역’에도 봄 내음이 물씬 풍긴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죽음과 사후 세계, 육체의 한계성 등의 개념을 다루는 주제전이 열리고 있는데, 신작 커미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입구에 있는 꽃잎으로 점철된 설치 작품을 지나 본전시관에 들어가면 이번에 공개된, 테오 에셰투(Theo Eshetu)가 박물관에서 촬영했다는 ‘유령의 춤’을 만날 수 있다. 과거 식민지화된 영토에서 약탈한 유물들이 놓여 있는 박물관에서 번갈아 춤사위를 펼치는 두 무용수의 움직임에 절로 눈이 고정된다. 박물관 전시에서 선보이는, 시신들의 사후 삶을 고찰한 갈라 포라스-킴(Gala Porras-Kim)의 철기시대 인골과 페이퍼 마블링 작품이라든지 여러 해부학 책과 그림, 해몽을 바탕으로 한 역학 당사주 등 이곳의 전시작들은 ‘박물관’이라는 정서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야외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자칫 모르고 지나칠 법한 신작 커미션이 있다. 녹색 잔디 위에 평온하게 솟아 있는 정자에 설치된 사운드 시(sound poem)로, ‘칠레 출신 예술가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n˜a)의 ‘소리로 꿈꾼 비: 차학경에 대한 경의’(2021)란 작품이다. 차학경은 1982년 비운의 사건으로 요절한 이민 1.5세대 재미 예술가로 사후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두 차례 회고전이 열린 바 있다. 미술가이자 시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비쿠냐와 차학경은 각각 칠레와 한국에서 뉴욕으로 이주했고, 시와 즉흥 퍼포먼스를 통해 샤먼적, 모계 중심적 전통과 연결되고자 했다고. 비쿠냐는 ‘무(nothingness)’로 돌아간 먼 친척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음성을 들었다”(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면서 음악가 리카르도 갈로(Ricardo Gallo)와 협업해 차학경의 명저 <딕테(Dicte′e)>를 소개했다. 잠시라도 정자에 앉아 그들이 빚어낸 ‘소리의 만남’에 스며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밖에 근처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또 다른 맥락에서 감각을 일깨울 수 있는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일과 삶의 역학 관계를 지적,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영국 작가로 아시아권 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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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각양각색의 샤머니즘, 결국 ‘치유’를 위함이다

빛과 색채, 메시지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리암 길릭의 전시가 펼쳐지는 몰입형 공간에서 도보로 5분 정도만 가면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라 쓰인 큼지막한 간판이 걸려 있는 광주비엔날레 메인 전시관이 나온다.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로 무료로 개방한 1전시실을 위시해 모두 5개 전시실이 있는데, 샤머니즘과 생태주의, 토착 생활 문화와 제도로 규정할 수 없는 연대 의식, 모계 문화 등 ‘비주류적 유산’을 탐색하는 예술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터키 출신 데프네 아야스(Defne Ayas)와 인도 출신 나타샤 진발라(Natasha Ginwala)가 공동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이들은 “우리는 내부자와 외부자, 법과 불법, 남성성과 여성성을 철저히 구분 짓는 이분법을 넘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확장하고 포용적인 실천을 지속해온 예술가, 사상가와 함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동시대를 둘러싼 비판적 담론을 부각하는 비엔날레다운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인종이든 국적이든 관계없이 대다수가 혼돈에 빠지고 경솔한 모습을 보인 팬데맥을 계기로 전 인류적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작금의 상황에 잘 맞는 주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공격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화합과 포용의 정신을 끌어내며 ‘치유의 연대’를 꾀하고자 하는 이번 비엔날레의 궁극적인 방향성은 우울하고 답답하고 억울한 우리네 지구인을 어느 정도 보듬어주고 뭉치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포용과 연대를 제안하는 모성의 손길

그리고 중요한 점은 비(非)서구적 시각으로 제3세계의 철학적 방향을 한데 모아 소개한다고 해도 크게 산만하지 않고, 스타 작가들이 즐비하지 않아도 충분히 작품이 흥미롭다는 호평이 주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1전시실부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이 펼쳐지는데, 돌 부적, 민화 등 한국적 샤머니즘을 비롯해 무속의 의식 체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이 놓여 있다. 서구형 대형 마트에서 들여온 카트에 부적과 꽃 장식을 붙여 고인을 떠나보내는 ‘상여’로 탈바꿈시킨 김상돈의 작품 ‘카트'(2021), 그리고 정중앙에 매달린 붉은색과 노란색 계열의 실로 만든 매듭 조형물도 눈길을 절로 잡아끈다. 후자는 소수 유목민인 사미족 출신 핀란드 작가 오우티 피에스키(Outi Pieski)의 커미션 작품 ‘함께 떠오르기’(2020)다. 사미족 전통 의상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아름다운 작품은 여성의 연대를 상징하는데, 공동체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2전시실로 이어지는 복도의 벽에 작품이 걸린 ‘더 배드 피지 걸스’ 듀오 역시 선조의 수공예 기술을 되살려 아플리케 장식, 자연 염색, 자수를 사용한 일련의 배너를 제작했고, 3전시실을 수놓은 세실리아 비쿠냐의 패브릭 페인팅 작품(‘베트남에 대한 경의’ 시리즈)들도 비슷한 맥락의 울림을 준다. 콜롬비아부터 칠레에 이르는 안데스 철학과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문화를 꾸준히 탐색해온 비쿠냐는 환경,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 제기는 물론 여성의 연대를 상기시키는 제의적인 작품도 많이 해왔다. 5전시실은 아예 ‘행동하는 모계 문화’로 꾸려졌다.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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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매력 돋는 ACC 일대와 양림동

시적 감수성과 울림 있는 메시지가 돋보이는 콘텐츠의 향연

동구에 자리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도 시원시원한 건축물이 남다른 공간감을 선사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주요 전시 장소다. 올해에는 국내외 미술 기관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 그리고 GB커미션 작품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파빌리온으로 참여한 나라는 스위스와 대만이다. 스위스 파빌리온 무대가 된 은암미술관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연결과 고립 등을 다룬 안무가 안나 안데렉(Anna Anderegg)이 주도한 퍼포먼스 <얼론 투게더>의 세계 초연을 바탕으로 한 비디오 설치 작품과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대만 파빌리온의 경우, 동시대문화실험장(C-LAB)이 기획한 <한 쌍의 메아리>라는 전시가 ACC 문화창조원 건물에서 진행 중인데, 비슷한 역사적 질곡을 거친 대만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짚어본다는 맥락에서 붙인 타이틀이다. 무고한 대만 시민들이 탄압당했던 ‘백색 테러’ 시대의 피해자들이 남긴 유서를 바탕으로 한 설치 작품 ‘나의 소중한 사랑, 작별의 입맞춤과 안녕’(왕딩예)을 비롯해 시적인 감수성이 묻어 있는 수작들이 모여 있다. 장리런, 청위안, 루이란신이 협업해 작업한 ‘FM100.8’은 개인적인 ‘최애’ 작품이다. 탁자와 소파, 라디오 등이 구비된 옛 가정집의 거실을 연상시키는 설치 공간에 갑자기 불이 꺼지고 “삐이~” 하는 경고음과 함께 스크린에서 자막이 흘러나온다. ‘지금부터는 등화관제 시간이다. 모두 빠짐없이 불을 끄고 창문을 닫아라.’ 그리고 풀잎 나부끼는 스크린을 통해 잔잔하게 회상의 독백을 시작하는 여성의 목소리. 그녀는 “한때 사상은 범죄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동안 정말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는 뜻일까?”라고 자조 섞인 문장을 내뱉는다. 마치 서사에 빨려 들어갈 듯 26분이 흘러버린다. 이 밖에 20세기 초 조선 땅에서 하와이로 이주한 이민자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적 논제들과 연결하는 김성환의 싱글 채널 영상 작품 ‘머리는 머리의 부분’(2021), 북한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참여해 화제가 된 호 추 니엔의 2채널 영상 작품 ‘49번째 괘’(2020)는 ACC 공간에서 선보인 GB커미션 작품들이다. 인간과 환경문제를 다룬 ACC 자체 기획전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도 비엔날레 기간까지 계속된다. 마지막으로 ACC 일대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단관 극장인 광주극장(동구)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비엔날레 전시도 열지만 장소의 미학을 살려 라이브 오케스트라 공연도 시도했다.


골목마다 채워지는 아기자기한 문화 예술의 향기

근사한 맛집과 카페가 많기로 유명한 ACC 일대를 거닐면서 미술 산책을 한다면 행정구역상 남구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양림동 일대까지 한데 묶은 노선을 염두에 둘 만하다. 올해 처음 광주비엔날레 전시 공간으로 합류한 앙림동의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1904년에 정착한 서양 선교사 사택을 개조해 문화 예술 공간으로 만든 ‘잇 플레이스.’ 작은 공간으로 잘 구획되어 몰입도가 높다. 독특한 냄새를 입힌 둥근 현무암을 활용해 4·3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제주인들의 일기를 읽게 하는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의 ‘_EQ_IQ_EQ_’라든지 지하에 시각적 강렬함으로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파트리샤 도밍게스(Patricia Domnguez)의 다양한 작품 등 놓치면 아쉬운 콘텐츠로 채워져 있다. 근처에는 지난해 문을 연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의 복합 문화 공간 ‘이이남스튜디오’를 비롯해 여러 작가의 작업실과 다양한 문화 예술 아지트가 포진했다. 골목마다 ‘역사’와 ‘문화 예술’이 숨 쉬는 이 매력적인 동네에서는 비엔날레 기간에 발맞춰 ‘양림골목비엔날레’ 1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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