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éri Sa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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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5, 2017

글 고성연

컨템퍼러리 아트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수호자 역할을 해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서울시립미술관과 손잡고 펼치고 있는 소장품 기획전 <하이라이트(Highlights)>전. 오는 8월 15일까지 열리는 이 흥미로운 전시에 소개된 아티스트들은 현대미술사에서 나름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실력자들이지만,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도 많아 작가의 면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중 파리를 묘한 ‘핑크’로 표현할 정도로 개성 있는 색채 감각과 풍자적이고 위트 있는 텍스트를 가미한 화법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콩고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 셰리 삼바(Che′ri Samba)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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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게 아이였을 때 제게는 막연한 직감이 있었어요. 어른이 되면 큰 인물이 될 것 같았고, 세계 여기저기로 여행을 많이 다닐 것 같았고, 커다란 집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당시만 해도 저처럼 미래에 대한 직감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꿈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렸죠. ‘신의 선물’을요.”
저 멀리 아프리카 콩고에서 온 60대 화가의 나지막한 회상을 가만히 듣다 보니 절로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게 하는 대목을 맞닥뜨린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어린 시절 스스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어도 결코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다는 얘기를 주로 접하기 때문이었을 터다. 활기 넘치는 동그란 눈매의 소년이 떠오르며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순진무구한 자신감과 당찬 신념의 소유자였던 이 소년은 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됐고, 지구촌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자주 비행기를 탄다. 한국은 와봤지만 서울은 이번이 첫 방문이라는 셰리 삼바(Che′ri Samba)의 얘기다. 그렇다고 그가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팔짱 끼고 기다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1956년 콩고의 작은 마을 킨토 므빌라(Kinto M’Vuila)에서 대장장이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고 자란 셰리 삼바는 언제나 적극성이 돋보이는 총기 넘치는 소년이었다. 그는 이렇다 할 장난감이 없었던 터라 드로잉을 즐겼는데, 10대 초반부터는 잡지에 실린 만화를 모방한 그림을 그렸고, 주위에 돈을 받고 팔면서 종종 ‘매진’시킬 만큼 인기를 모았다. 여러모로 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정원과 연못을 관리하는 일까지 맡으면서 가족을 부양하기에 이르렀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증을 느낀 그는 마침내 학교를 그만두고 콩고의 수도인 킨샤사(Kinshasa)로 향했다. 광고나 로고를 제작하는 소위 ‘간판장이’로 직업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그의 나이 열여섯이었다.


독특한 문화적 활력의 도시 킨샤사에서 꽃을 피우다
킨샤사는 흔히 ‘콩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콩고민주공화국(DRC)의 수도로 인구가 1천만 명 가까이 되는 꽤 큰 도시다(DRC는 ‘자이르’라고 불리던 옛 벨기에령 국가이며,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던 콩고공화국과는 다르다. 둘 다 1960년에 독립했다). 벨기에 식민지 시절부터 킨샤사는 문화적으로 독특한 활력이 흐르는 도시였고, 1920년대에는 근대 회화가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콩고로 이주해 살던 프랑스 화가 피에르 로맹-데스포세(Pierre Romain-Desfosse′s)의 활약은 더 기름진 거름이 됐다. 그가 차린 ‘아틀리에 격납고 (Atelier du Hangar)’라는 이름의 미술 작업실에서 저마다 독창적인 스타일을 지닌 ‘컬러풀’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벨라 사라(Bela Sara), 므웬제 키브완가(Mwenze Kibwanga), 필리 필리 물롱고이(Pili Pili Mulongoy) 같은 현지 아티스트들이 나왔다. 재즈, 솔, 랩, 대중 댄스음악 등 도시 곳곳에 흐르는 음악도 역동성을 더했다. 이처럼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바탕으로 1970년대 칸샤사에서는 셰리 삼바를 비롯해 셰리 셰린(Che′ri Che′rin), 모케(Moke)등이 포함된 예술가 그룹이 새롭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의 존재감이 현지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된 계기는 1978년 킨샤사에서 열린 전시회 <도처의 예술(Art Partout)>. 사람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일상적, 정치적, 사회적 사건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풍자적이면서도 위트 있게 다가갔기에,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앞선 시대를 살다 간 여러 고마운 선배 아티스트들이 있었죠. 저희는 거기에 고춧가루, 소금 등 앙념을 뿌려 맛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은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대로 따라 하지 않고 나름대로 스타일을 개발했고, 그런 도전이 콩고 현대미술을 더 발전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셰리 삼바의 경우에는 텍스트를 가미한 뚜렷한 색감의 스타일이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의 시선을 빨리 끌 수 있을 뿐 아니라 난해하지 않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저는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코드가 아니라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죠.” 미술을 잘 아는 소수가 아니라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추구했기에 그는 스스로와 동료들을 ‘대중 화가(popular painter)’라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의 팝 문화와는 다른 의미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합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파리로 내디딘 첫 발걸음, 세계로 도약하는 토대가 되다 
아무런 미술교육도 받지 못했던 작은 마을 출신의 간판장이에서 어느덧 자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거듭난 셰리 삼바. 1980년대에 접어들어 그는 드디어 그토록 꿈꿔온, 해외 출장을 다니는 역동적인 인생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프랑스의 한 언론 매체에서 주관하는 전시에 초대받아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간 것. 그가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결정적인 기회를 선사한 도시 역시 파리였다. 1989년 퐁피두 센터에서 <지구의 마법사들(Les Magiciens de la Terre)>이라는 전시에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톈안먼 사건, 베를린 장벽의 붕괴, 냉전 체제의 종식 등 국제사회에 일어난 대대적인 변화를 반영하듯 ‘비서구’를 조명하고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평가받는 전시다. 이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후원하는 작가 레시던시 프로그램을 거쳐 2004년 개인전을 가졌고, 이어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그는 ‘아프리카 미술의 외교관’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유명세를 꿰차게 된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2년 전인 2015년, 거의 한 세기에 걸쳐 진화해온 콩고 미술과 셰리 삼바를 비롯해 미술사를 다채롭게 수놓은 아티스트들을 되짚어보는 전시 <아름다운 콩고(Beaute′ Congo 1926-2015)>를 개최하기도 했다.
셰리 삼바의 매력은 당대 현실에 대한 신랄한, 하지만 유머가 깃든 풍자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2007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Les Tours de Babel Dans le Monde’라는 작품을 보면 인간의 오만함 때문에 언어가 달라지면서 소통이 불가능해진 바벨탑 얘기를 빗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중앙아프리카의 혼돈을 얘기한다.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림 자체는 무겁지 않고 묘하게 경쾌하다. “제 예술 철학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진실을 말할 것, 두 번째는 정치 이슈처럼 많은 이들이 말하기 두려워하는 얘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사실 우리의 일상은 정치와 무관할 수 없잖아요. 다만 되도록 유머를 갖고 그려내려고 하는 게 마지막 원칙이죠. 아이들한테 야단을 칠 때도 유머 있게, 부드럽게 하면 더 잘 알아듣는 것 같거든요.” 그는 네덜란드의 프린스 클라우스 재단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에게 주는 상을 자신이 받은 적이 있다며(2005년) 슬쩍 자기 자랑을 보탰다.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을 깰지어다!
이번에 그를 서울로 불러들인 <하이라이트(Highlights>전에 소개된 두 작품도 흥미롭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나는 색을 사랑한다(J’aime la Couleaur)’(2010)는 스스로의 모습을 마치 둥그런 햄 조각처럼 자른 강렬한 그림으로 단연 눈길을 잡아끈다. 그는 “뇌는 주변의 영향을 받아 회전하는 거라고 상상해 머리부터 어깨까지 나선형으로 잘라봤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그림은 다채로운 색상의 물감을 뚝뚝 흘리는 긴 붓을 입에 문 모습도 인상적이다. 셰리는 이 작품을 통해 ‘피부색’을 표현하는 세상의 편견 어린 습속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제 피부가 짙기는 하지만 ‘블랙’은 아니죠. 마찬가지로 완전히 ‘화이트’라고 할 만한 색상의 피부도 없고요.” 그는 흔히 쓰이는 ‘유색(colored)’이라는 표현을 의식한 듯 ‘피부에 색깔이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면서 과학자들이 색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1년 작인 ‘진짜 세계지도(La Vraie Carte du Monde)’라는 작품에 등장한 인물에 시선이 쏠리지만(이 역시 셰리 자신이다)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에 등장한 대륙들의 크기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보다 아프리카 대륙이 크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제가 그저 괜한 자부심이나 욕망에 불타 아프리카 대륙을 크게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많은 이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세계지도는 좋은 지도가 아닌 것 같아요. 현재 지도를 그리는 방식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이 실제 크기보다 축소된 게 사실이거든요.” 그는 잔잔하게 웃으면서 설명했다.
‘진짜 지도 찾기’라는 맥락에서 그와 뜻을 같이하는 인물 중에는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끈 전설적인 수비수 릴리앙 튀랑(Lilian Thuram)도 있다. 튀랑은 은퇴한 뒤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로 변신해 전시, 행사 등을 기획하고 있는데, 아프리카의 실제 면적을 제대로 측정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고.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는 데 자신이 지닌 역량을 한껏 활용하고 있는 셰리 삼바. 일각에서 그를 가리켜 ‘화가-저널리스트(painter-journalist)’라고 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올해 말 대선이 있는데,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요. 그런데 콩고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모든 지도자들이 권력을 한번 쥐면 거기에 집착하고 절대로 그걸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조셉 카빌라 대통령의 불법 집권 영장으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콩고의 현 상황을 개탄하면서 말했다. “계속해서 이렇게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는 한 페인터-저널리스트라는 저의 소명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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