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로 ‘작은 메뚜기’라는 뜻을 지닌 두바이(Dubai).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성수기인 3월의 봄날, 마치 메뚜기처럼 팔짝팔짝 뛰어다니면서 봐도 모자랄 만큼 다채롭고 풍성한 예술 행사가 활발하게 벌어진 ‘두바이 아트 위크(Art Week)’ 현장을 찾았다. 2020년 월드 엑스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두바이는 이제 현대미술, 디자인 애호가들의 행사 캘린더에 따로 표시해둘 만큼 무럭무럭 성장해가고 있으니 아랍 문화권의 ‘크리에이티브 허브’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2 올해 11회를 맞이해 국제적인 아트 페어로 성장하고 있는 아트 두바이(Art Dubai). 아랍에미리트연방(UAE)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공간. Courtesy of Photo Solutions
3 UAE 문화청소년지역사회개발부 장관 셰이하 나흐얀(Sheikh Nahyan, 중앙)을 비롯해 전시장을 방문한 주요 인사들.
4 아트 두바이는 매년 3월 마디낫 주메이라(Madinat Jumeirah)에서 열린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구도가 살짝 달라지기 시작한 듯싶다. 다국적 갤러리와 경매 회사가 속속 진출하고 있는 데다 각종 아트 페어가 꽃피고 있다. 그 중심에 2020년 월드 엑스포를 앞두고 진정한 ‘크리에이티브 허브(creative hub)’로의 도약을 꿈꾸는 두바이(Dubai)가 있다. 아부다비(Abu Dhabi), 샤르자(Sharjah) 등 인근에 있는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다른 토후국들, 그리고 카타르의 수도 도하(Doha)와 나란히 경쟁과 협력을 거듭하면서 ‘아라비안 문화’를 전파하고 융성시키기 위한 행보를 적극 펼치고 있다. 관광, 쇼핑, 식도락에 머무르지 않고 미술, 디자인, 문학, 캘리그래피 등 동시대 문화·예술인을 폭넓게 포용할 수 있는 창의적 콘텐츠 발굴과 개발에 힘쓰는 모습이 눈에 띈다. 특히 쟁쟁한 글로벌 아트 도시들과 겨룬다는 포부를 갖고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을 글로벌 맥락에서 풀어가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6 현지의 신진 작가들이 주로 참가하는 시카 아트 페어(Sikka Art Fair). 두바이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문화 지구 알 파히디(Al Fahidi)에서 3월 아트 주간에 개최된다.
7 금융 허브’인 DIFC는 내로라하는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명소.
8 아트 두바이는 매년 3월 마디낫 주메이라(Madinat Jumeirah)에서 열린다.
지난 3월 16일 70대 중반의 노장인 렘 콜하스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던 콘크리트의 첫 전시는 <Syria: Into the Light>. 내전과 난민 문제으로 고통받는 시리아의 근현대미술을 후원해온 아타시(Atassi) 가문이 소장한 컬렉션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지라, ‘개관’이라는 타이틀에 무게를 더해줬다. 또 세계적인 영상 예술가 빌 비올라의 전시를 개최한 레일라 헬러(Leila Heller), 튀니지 출신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칼레드 벤 슬리마네를 소개한 엘마르사 갤러리(Elmarsa Gallery),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80대 거장 사미아 할라비의 전시를 연 아얌 갤러리(Ayyam Gallery) 등도 꼭 들러야 할 공간이다. 이 밖에 알세르칼 거리에 전시 공간을 마련한 비영리재단 아트 자밀(Art Jameel)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발표와 함께 내년 말 두바이에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을 열겠다는 계획으로 또 다른 주목을 받았다.
11 세계적인 영상 예술가인 빌 비올라의 전시를 개최한 레일라 헬러 갤러리. 영상 컷은 ‘Bill Howard’(2008).
12 두바이 아트 주간에 DIFC에 자리 잡은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에서 진행한 이집트 아티스트 아델 엘-시위(Adel El-Siwi)의 작품 ‘Girl with a Flower in Mouth’(2016).
13 아트 두바이는 매년 3월 마디낫 주메이라(Madinat Jumeirah)에서 열린다.
꼭 아트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두바이 현대미술의 다면적인 면모를 접하고 싶다면 서로 대조적인 분위기를 띤 두 곳을 추천할 만하다. ‘올드 두바이(old Dubai)’의 정취가 남아 있는 문화 지구인 알 파히디(Al Fahidi District, 또는 바스타키야로 불린다), 그리고 세련된 건물들 사이로 말끔한 복장의 비즈니스맨들을 마주칠 수 있는 ‘금융 허브’인 DIFC(두바이 국제 금융 센터)다. 오래된 모래빛 건물들의 자태만으로도 매혹적인 알 파히디는 두바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갤러리 중 하나인 마즐리스(Majlis) 갤러리를 비롯해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여행객들에게 입소문이 난 갤러리 호텔 겸 카페 XVA 등이 모여 있는 동네다. 또 이 지역의 신진 작가들이 주로 참가하는 ‘시카 아트 페어(Sikka Art Fair)’도 매년 3월 열리는데, 아트,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콘텐츠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행사다. DIFC에는 런던 금융가를 연상시키는 쾌적한 공간에 아트 스페이스(Art Space), 오페라(Opera), 아트 사와(Art Sawa), 아얌 같은 명성 높은 갤러리를 비롯해 예술 잡지의 본사, 경매 회사도 들어서 있다. 일찌감치(2006년) 두바이에 진출한 크리스티도 있고, 이번에 처음으로 두바이에 지사와 전시 공간을 마련한 소더비도 이곳에 있다. 한 지역 신문에 따르면 소더비는 지난 5년 동안 이 지역 고객 규모가 30%나 증가했다는 사실에 고무돼 직접 진출하기로 결정했는데, 보석, 현대미술, 인상파 작품, 피카소, 고흐 같은 거장의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DIFC에 간다면 주마(Zuma), 라 프티 메종(La Petite Maison),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에서 운영하는 브랜드 체험 공간이자 카페 인터섹트 바이 렉서스(Intersect by Lexus) 같은 갖가지 미식 공간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으로는 발품을 열심히 팔아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감상 거리’가 풍부해진 두바이의 문화 풍경. 단지 아랍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들의 눈에 ‘달라 보여서’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 그리고 동시대의 생기 넘치는 영혼이 조화롭게 담겨 있기에 매력적으로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