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밀리 브랜드의 아트 활동과 사회 공헌 실천자 Anna Zeg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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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1, 2017

에디터 배미진(밀라노 현지 취재)

“사회에 공헌한다는 것은 희생이 아닌 기쁨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따뜻한 표정, 깊은 눈빛의 안나 제냐는, 제냐 가문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의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라는 브랜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아트, 그리고 브랜드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제냐 재단 활동까지, 이 모든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패밀리의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패션 브랜드를 넘어 사회적인 기업,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정적인 이탈리아 패밀리 브랜드에서 패션 브랜드의 의미 그 자체를 신장시키고, 본질을 추구하는 패밀리 정신을 이어가며 뜻깊은 가교 역할을 맡고 있는 안나 제냐를 이탈리아 밀라노 제냐 본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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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84년 이미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의 광고와 기업 홍보 부문 수장으로 시작해, 그룹이 지속적으로 진행한 예술 후원과 자선사업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를 통해 패션 브랜드의 도덕과 비즈니스, 미학이 함께하는 회사를 만들고자 한 창업주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비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나 제냐로서 어떤 역할로, 어떤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는지? 브랜드에서 무엇보다 다양한 일을 한다는 데 만족합니다. 또 제냐라는 가문에서 자란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할아버지는 그 시대에 누구도 보지 못하는 비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저희 아버지와 삼촌들 모두가 할아버지의 트래디셔널한 마인드를 유지하면서도 각자 세대에 맞는 일을 전개해 2017년 현재에도 맞는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패밀리 브랜드는 이탈리아의 장점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죠. 패밀리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DNA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피 속에 흐르거든요. 이탈리아뿐 아니라 아시아에도 그런 마인드가 있지 않나요? 당장 브랜드에서 나의 역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 패밀리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것이 중요해요. 저의 남자 형제 중에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있는데, 우리는 모두가 각각의 악기라고 생각해요. 가장 아름다운 심포니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악기가 하모니를 맞춰야 하겠죠. 우리 제냐 그룹이 하모니가 잘 맞는 그룹이지 않을까요. 각자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모니를 맞추며 하나를 이루지요. 누군가는 아트를 생각하고, 누군가는 스타일을 생각하고. 우리는 그런 점에서 매우 강력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요.


Q 설립자의 가족이 이어오는 패밀리 브랜드는 이제 점점 귀해지고 있다. 콘셉트와 기획으로 운영되는 브랜드가 많은 이 시대에 패밀리 브랜드의 강점은 무엇인지? 불행하게도 1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브랜드는 많지만, 지금까지 가족 경영을 유지한 패밀리 브랜드는 너무 적어요. 그리고 첫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브랜드는 더욱 드물죠. 오늘 저녁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토리의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일 텐데(인터뷰는 2017 F/W 컬렉션을 보기 전에 진행했다), 우리는 컨템퍼러리하면서도 제냐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죠. 기대하셔도 좋아요. 사실 패밀리 비즈니스가 아니라면 모든 것을 통합하기 어려워요. 이번 컬렉션 역시 패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백 년간의 역사를 함축해서 보여주려고 해요. 오랜 브랜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유구한 제냐의 스토리에 모던함을 더해서 보여주는 것, 이번 2017 F/W 컬렉션은 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죠.

Q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의 이미지 어드바이저로서 예술 활동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제냐에서 아트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저는 아트와 관련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어요. 물론 그 이전에 패션 브랜드이니 디자인 팀이 가장 먼저 원단을 디자인하거나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이 기본인데, 제냐는 이 부분에서도 조금 다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arte minore’라고 하는데, 텍스타일 혹은 디자인 요소를 레노베이션할 때 항상 문화와 예술에서 받은 영감을 활용한다는 의미예요. 예를 들어 이번 패션쇼 로케이션 장소에서 독일의 설치미술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Seven Heavenly Palaces’라는 아트 작품을 볼 수 있어요. 이번 컬렉션 디자인은 이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어요. 패션 자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트와 접목했을 때 새롭기 때문이죠. 이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더해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것이 이탈리아 사람들의 특징인 듯해요. 한 분야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다른 분야까지 확장해가는 거죠. 제냐의 본류인 트리베로(Trivero)에 가보신 적 있죠? 그곳에서도 역시 저희 할아버지 때부터 이미 많은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해온 것을 알 수 있어요. 물론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죠. 많은 아티스트, 포토그래퍼, 조각가, 화가 등 손끝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모든 분야 작가들과 항상 가깝게 지내며 제냐의 DNA에 접목해왔어요. 이곳(제냐 밀라노 본사)에 들어올 때 입구에 큰 사과 모양의 아트 작품을 보셨나요?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의 작품이에요. 20년 전부터 컬래버레이션해왔지만, 실은 그의 아버지가 저희 할아버지와 이미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죠. 트리베로에 과거의 작품도 여전히 전시되어 있어요. 이렇듯 오랜 전통과 세대를 잇는 스토리까지 가치가 크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아트에서 영감을 받아 이탈리아 런던, 파리, 뉴욕, 두바이, 일본 매장도 모두 아트와 접목해서 오픈했어요. 그런데 또 재미있는 건 아티스트들이 제냐에서 디자인한 옷의 원단과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이죠. 가장 최근에 런던에 있는 매장은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작품으로 꾸며서 오픈했어요. 제냐의 고향인 트리베로에서 받은 영감을 반영했죠. 주로 카펫 같은 작품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작가이기에 원단을 생산하는 제냐의 아이덴티티와도 일맥상통해요. 이러한 서로의 연결 고리를 항상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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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탈리아환경기금(FAI: Fondo per l’Ambiente Italiano)의 디렉터와 유로파 노스트라(Europa Nostra)의 의원직까지 겸한다고 알고 있다. 제냐의 사회 공헌 활동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최근 주목하는 이슈가 있는지. 제냐의 재단 활동과 구호 활동은 지금 활동하는 제냐 그룹과는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사회 공헌을 하는 제냐 패밀리와 제냐 재단(Fondazione Zegna)이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예요. 사회 공헌은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것인데,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어요. 가장 대표적인 트리베로의 개척 활동은 할아버지가, 오아시 제냐(Oasi Zegna, 오아시스라는 의미로 제냐에서 추진하고 있는 환경보호 프로젝트의 이름이다)는 할머니 때 시작했기에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활동이라 할 수 있죠. 본래 제냐의 사회 공헌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었는데, 최근 이탈리아 지진 이후로 최대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어요. 지진 이후에는 이탈리아를 위한 사회 활동이 풍요로움이 아닌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되고 있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중부 지역을 찾았는데, 지진으로 많은 유산이 손상되었어요. 최근에는 이러한 것들을 복구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어 구체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Q 어린아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지원한다고 들었다. 제냐의 사회 공헌 활동이 남다른 점은 단순히 재활을 돕는 것이 아닌, 삶을 연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에요. 과거에는 돈이나 자원을 제공하는 직접적인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독립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본질적인 자원을 제공하려고 해요. 일이 없어 사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을 위해 일자리를 찾도록 돕기도 해요. 그런데 단순히 일자리 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기술을 이어받아 독립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고 자발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죠. 이 인터뷰를 하기 바로 직전에 아뇨나(Agnona, 제냐 그룹에서 전개하는 여성복 브랜드) 프리컬렉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왔는데, 이 프레젠테이션에서 중요하게 소개한 내용이 어린이 마약 중독자를 재활시키는 재단 활동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이탈리아의 ‘산 파트리냐노(San Patrignano)’라는 커뮤니티가 있는데, 이곳에서 마약에 중독된 젊은이들이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함께 돕고 있어요. 2012년부터 제냐 재단에서 이 단체에 텍스타일 핸드메이드 기술을 전수하고 있죠. 그때만 해도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총 40여 명이 활동하고 있어요. 이들은 아뇨나의 옷에 사용하는 재료를 생산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새로운 일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새 생명을 얻죠. 자존감을 잃고 밖에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아이들이 3~4년간 이러한 과정을 겪고 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에요. 이번 프레젠테이션에서 그들이 완성한 스카프, 캐시미어, 카펫 등 아뇨나를 통해 판매할 작품을 전시했어요. 이 프로젝트는 정말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요. 제냐의 문화와 스토리, 그리고 사회적인 요소를 더한 작품이 탄생했고, 그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죠. 단순히 예쁜 직물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다시 태어나듯,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의미를 준 작품들이기 때문이에요. 처음 이 커뮤니티의 젊은이들은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어요.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죠. 하지만 작품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결국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경제적인 지원을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찾도록 지원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해요. 지난 1월에 2명의 젊은이가 커뮤니티에서 나와 일을 찾고 일반인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마치 겨울에 죽은 듯 보인 꽃이 봄에 살아나 활짝 피는 모습과 같아요. 이 모든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큰 감동이에요.



Q 다른 기업의 자선 활동과 달리 구체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인데? 다른 기업과 차이가 있다면, 단순한 후원이 아닌, ‘인생의 변화’를 준다는 것이에요. 지금의 삶에서 나아가, 성장한 이후의 삶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고, 삶의 가치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죠. 사회 공헌 활동의 중심이 되는 제냐 재단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돌아오는 이득이나 관심을 전혀 바라지 않아요.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제로라고 생각하고 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은 희생이 아닌 기쁨이에요. 현대사회는 ‘give & take’ 경향이 강하지만, 우리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러한 활동을 이어나가기로 했어요. 다 같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순수한 목적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죠. 지금 이 인터뷰도 일종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러 활동을 하고, 에디터가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훌륭한 컬래버레이션 아닐까요? 또 제가 여자이기에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기도 해요. 물론 마초적인 여성도 있겠지만, 여성에게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부분이 있잖아요. 이러한 성향이 보다 부드럽게 세상을 바꾸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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