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에서 경험한 유려한 펜의 움직임과 피렌체의 장인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가죽 공방의 섬세한 공정은 명품에 대해, 그들의 열정에 대해,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꼿꼿하게 걸어온 몽블랑의 정도(正道)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명품 브랜드에 역사가 왜 중요한지, 최상의 퀄리티를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몽블랑과의 특별한 여정.
3 펜촉에 미흡한 점이 있는지 써보고 또 써본다. 테스트를 위해 잉크를 사용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투명한 잉크로 쓰는 작업이 이어진다.
4 몽블랑의 아티산 컬렉션은 원하는 그 어떤 디자인이라도 오더메이드가 가능하다. 제작 공정을 웹캠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치 하이 주얼리와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처럼 만년필 역시 장인 정신과 노력으로 완성하는 예술품이다.
5 피렌체 익스트림 레더 컬렉션 론칭 행사에 참석한 몽블랑 CEO 제롬 램버트와 휴 잭맨.
7 붉은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땋은 여성 기수가 말을 타고 베키오 궁전 안으로 입장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펜 공방 투어를 마치고 이탈리아 피렌체까지 긴 구간을 이동한 것은 몽블랑의 새로운 가죽 라인 론칭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독일에서 시작한 브랜드지만, 가죽 제품은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과 가치를 이어받아 피렌체의 공방에서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개발한 ‘익스트림(Extream)’이라는 새로운 가죽 라인을 공개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는 피렌체에서 가장 유서 깊은 장소인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이 궁전에서 이러한 행사가 열린 적이 거의 없는 만큼 몽블랑 측은 피렌체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행사를 시작했다. 성문이 열리자 베키오 궁전을 가로지르는 말 한 마리가 등장했다. 놀라운 것은 말을 탄 기수가 붉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땋은 여성이라는 사실. 말은 드라마틱한 배경음악에 맞춰 리듬감 있게 발굽을 움직였다. 이 놀라운 퍼포먼스는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도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았다. 몽블랑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초청된 할리우드의 스타 휴 잭맨(Hugh Jackman)도 이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연신 자신의 휴대폰 셔터를 눌러댔다. 끊임없이 이어진 이 퍼포먼스는 음악과 공간과 어우러져 더 큰 드라마를 만들어냈고,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몽블랑의 레더 컬렉션, ‘익스트림’의 의미는 이 퍼포먼스 자체라고 이야기해도 될 만큼 열정적인 순간이 이어졌다.
몽블랑의 익스트림 컬렉션은 얼핏 보면 가죽이 아닌 단단한 알루미늄이나 철 소재처럼 보인다. 몽블랑의 혁신을 향한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이번 익스트림 컬렉션은 1926년 독일에서 시작된 몽블랑 가죽 공방의 역사와 이탈리아 피렌체 펠레테리아 공방의 새로운 기술을 결합해 완성했다. 가죽의 성능과 지속성을 위해 소재의 혁신을 꾀한 것. 물과 열, 그리고 마찰에 강한 소재를 만들기 위해 수년간 노력을 거듭했고, 남자들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카본 소재의 느낌을 더했다. 특수 소재처럼 느껴지는 이 멋진 가죽은 몽블랑 가죽 공방 장인들의 오랜 노력과 몽블랑의 파격적인 테크놀로지가 탄생시킨 놀라운 결과물이다. 검은색 송아지가죽으로 짠 듯한 패턴이 선사하는 반짝이는 느낌은 양극산화(anodized)된 알루미늄 때문인데, 그 느낌을 극대화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가죽을 만들었다. 이러한 가죽을 만든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지속성’을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로 삼는 몽블랑은 수천 번의 테스트를 거쳐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수명이 길고 끝까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제품, 이것이 몽블랑이 생각하는 진정한 ‘익스트림’인 것이다.
9, 10, 11 몽블랑 제품은 피렌체 근교의 펠레테리아 몽블랑 가죽 공방 장인들의 손을 통해 완성된다.
함부르크의 펜 공방과 피렌체의 펠레테리아 가죽 공방, 그리고 몽블랑의 역사를 되짚어본 이 여정을 통해 발견한 것은 바우하우스(Bauhaus,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는 의미)의 정신과 꼭 닮은 몽블랑의 정신이었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몽블랑은 1924년 탄생한 이후,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설립된 조형 학교인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사조가 널리 퍼진 시기와 정확히 같은 때를 보냈다. 독일 모던 디자인의 대표 격인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몽블랑의 제품에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예술성’을 완성하기 위해 ‘실용성’을 경시한다면, 독일 실용주의의 선구자인 바우하우스는 실용성과 예술성의 완성도를 동일한 가치로 평가한다. 실용성을 생각하지 않은, 겉보기에만 화려한 제품을 만드는 명품 브랜드가 많은 현실에서 몽블랑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예술을 완성하는 대학의 형태로 존재한 바우하우스는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그 실체가 사라졌지만, 똑같은 기조를 추구하며 펜을 만들어 상업 활동을 펼친 몽블랑은 긴 역사를 만들어냈다. 이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랜드의 힘 때문일 것이다. 만일 21세기에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을 찾으라면 그 기반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알려진 시카고의 미술 대학도, 독일의 예술 학교도 아닌 몽블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몽블랑이 세계적으로 성공하고 명품 브랜드이면서도 대중성을 갖춘 이유는 명백하다.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초기의 뛰어난 가치를 지켜온 노력과 인내, 장인 정신이 있었기에 이 위대한 유산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몽블랑의 장인 정신은 펜을 타고 흐르고, 가죽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시계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것이 분명한 몽블랑의 남다른 품질과 실용성으로 완성한 예술적 고집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