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에서 영화와 샴페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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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4, 2013

에디터 고성연

태조 이성계가 원대한 꿈을 품고 대풍가(大風歌)를 불렀다는 곳, 해맑은 봄맞이를 하기에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전주는 적소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영화와 샴페인까지 곁들인다면 그 즐거움은 증폭된다. 전주의 명소 한옥마을 내,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 옆에 곱게 들어서 있는 부채문화관에서 달밤에 펼쳐진 제2회 모엣 라이징 스타 어워드(Moet Rising Star Award). 신인 배우와 감독을 후원하는 이 뜻깊은 시상식의 갈라 디너는 달밤의 정취와 샴페인의 흥취, 그리고 ‘달콤 쌉쌀한’ 봄바람으로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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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카와 기소라는 일본의 건축가는 ‘도시의 세기’로 일컬어지는 21세기에 중요한 요소는 인구가 아닌, 창조성을 지닌 인재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창조적인 문화가 도시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 창조란 마냥 새로운 걸 일궈내는 게 아니라 적절한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때, 후백제의 수도였던 ‘천년 고도(千年古都)’ 전주는 꽤나 큰 잠재력을 보유한 고장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미식과 예술, 학문이 번창했던 이 도시에 미묘한 활기를 선사하는 ‘봄의 축제’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어느덧 14회를 맞이했다. 가을을 수려하게 장식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우리나라 최대 항구도시다운 규모와 정열을 뽐내는 거대한 불꽃과 같다면, 해마다 4월이면 스크린의 영감으로 전주를 데우는 미온의 열기는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을 닮았다.
“걷는 것은 맑은 즐거움(淸福)”이라고 했던 정약용의 명언이 어울리는 전주. 영화제가 개최되는 장소로서 전주의 매력 중 하나는 ‘느리게 걷기에 알맞은 도시’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동선의 편리함일 것이다. ‘영화의 거리’가 위치한 고사동 일대에는 최신 시설을 갖춘 극장들이 밀집해 있기에 웬만한 곳은 거의 걸어 다니며 축제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아기자기하고 이색적인 맛집과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오감의 만족을 배가시키는 ‘쇼핑의 재미’도 누릴 수 있다. 4월 25일 로랑 캉테 감독의 작품 <폭스파이어>를 개막작으로 시동을 건 전주국제영화제. 1950년대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상처받은 소녀들의 얘기를 다룬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 대한 호평과 함께 기분 좋게 출발선을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6일 밤, 영화의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명소인 한옥마을에서는 또 다른 축제의 향연이 펼쳐졌다. 주목할 만한 국내 신인 영화배우와 감독을 지원하는 시상 프로그램인 제2회 ‘모엣 라이징 스타 어워드(Moet Rising Star Award)’가 바로 그 멋진 야연(夜宴)이었다.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1회를 치른 뒤 올해 전주로 무대를 옮긴 이 행사의 개최 장소로 한옥의 예스러운 멋이 풍기는 부채문화관을 선택한 건 탁월한 결정이었다. 은은한 달빛이 조명처럼 비치는 밤, 한옥 문살의 격자무늬가 돋보이는 이 건물 앞뜰에 마련된 시상식 풍경은 운치를 자아냈다. 특히 갈라 디너에서는 이날의 ‘드레스 코드(블랙 타이)’에 맞춰 검은색 옷차림을 한 남녀가 후원 업체인 모엣&샹동의 샴페인이 등장할 때마다 화려한 샴페인 병을 높이 치켜든 채 줄지어 걸어 들어오는 ‘서빙 의식’이 흥을 돋우었다. 홍시 소스를 곁들인 분죽채 요리와 로제 임페리얼, 궁중잡채와 그랑 빈티지 2002, 전복갈비찜과 그랑 빈티지 로제 2002 등 모엣&샹동을 대표하는 4종류의 샴페인과 풍성한 한식의 만남이 은근한 조화를 빚어낸 이 만찬은 롯데 호텔 한식당 무궁화와의 합작품이었다. 그리고 ‘전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 수정과가 대미를 장식했다.
개막작의 주인공 캉테 감독을 비롯해 배우 안성기,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인 배우 정우성과 류승완 감독 등 국내외 영화인 1백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는 <러시안 소설>, <배우는 배우다>의 신연식 감독,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출연한 정은채가 각각 올해 신인 감독상과 신인 배우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축하 공연을 맡은 이는 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적인 가수 호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곡 ‘문 리버’가 울려 퍼지자 달밤의 정취가 한층 더 무르익었다. ‘바람의 땅’이라는 별칭을 지닌 고장답게 제법 쌀쌀한 밤바람을 동반했지만 그마저도 청신하게 느껴졌던 건 분명 영화와 샴페인이 배가시킨 봄의 흥취 덕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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