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Perf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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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4, 2013

에디터 권유진

2.55백과 트위드, 명품이라는 키워드만으로 샤넬을 떠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가브리엘 샤넬이라는 한 여자의 일생, 그 속에 살아 숨 쉬던 사랑, 예술가들과의 교감, 그리고 그녀가 남긴 수많은 아카이브를 직접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지난 5월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전설의 향수 N°5가 탄생하는 데 영향을 준 <N°5 문화 샤넬전>의 막이 올랐다. 오로지 향수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한다는 것은 신선한 시도다. 이는 샤넬다운, 샤넬이기에 가능한 창조적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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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이 예술이 되기까지
이번이 4회째다. 하나의 브랜드에서 오로지 아카이브만으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수차례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11년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그리고 2013년 3월 광저우에서을 개최한 샤넬은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사랑한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한 번 샤넬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전시를 통해 영감의 원천을 공개했다. 컬트적이고 파격적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리 현대미술의 결정체인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명품 브랜드 샤넬이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규모 전시를 개최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유명한 작가도 한 달이라는 전시 기간이 부담스러울 법한데, 그것도 ‘향수’ 하나로 전시장을 꾸민다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 대중적인 시선에서는 패션 브랜드가 패션쇼가 아닌 문화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수 있겠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가브리엘 샤넬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이런 시도와 접근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 시대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독창성과 스타일을 창조한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이지 않은가. 가브리엘 샤넬은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이단아로 비쳤을 것이다. 화려하고 과장된 모자가 유행이었던 시절에 샤넬은 모던하고 미니멀한 모자를 디자인했다. 장례복에 불과하던 길고 검은 원피스를 무릎 길이로 잘라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블랙 미니드레스로 탄생시킨 것도 바로 샤넬이었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수십 년 전 사진 속 그녀의 스타일이 촌스럽거나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녀의 삶, 그리고 사랑, 그녀가 창조한 스타일 자체가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샤넬의 삶은 파란만장하고도 진취적이었다. 사랑에 있어서도 열정적이고 자유로웠다. 만약 그녀가 남자에 의지해 성공한 신데렐라였거나, 부유한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 저절로 부와 성공을 거머쥔 여자였다면 우리는 더 이상 샤넬을 논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 입장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싶어 한 샤넬의 삶 자체가 대담한 야망이었다.을 비롯해 그동안 개최된에서는 샤넬의 친구였던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기욤 아폴리네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과 서로 주고받았던 사진, 드로잉, 시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그녀가 당대의 영향력 있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고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샤넬의 대담함과 창조적인 능력이 그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샤넬의 아카이브는 샤넬이 동시대 예술가들과 만나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보여주는 가치 있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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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가 아닌 예술적 창조물, N°5
기존의 전시가 샤넬의 발전 과정과 창의적 세계, 시대를 초월한 아이콘의 탄생 과정 등을 보여주었다면은 시대를 초월한 특별한 향수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왜 N°5인가? 사실상 모든은 가브리엘 샤넬이 평생 동안 창조하고 발전시킨 브랜드 문화와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회다. 큐레이터 장-루이 프로망은 이번 전시회의 이름을이라 칭한 데 특별한 의미를 두었다. N°5는 단순한 향수를 넘어서 샤넬의 새로운 측면을 찾아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결정적 증거라는 것. “모스크바와 중국에서 개최된 전시는 샤넬의 DNA를 넓은 시각에서 접근했다면, 이번 전시는 샤넬이 선보인 창조물을 통해 보다 깊고 자세히 샤넬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중 N°5가 단순한 향수가 아닌 샤넬의 문화적 유산으로서 선정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N°5는 1921년 샤넬이 처음 향수를 완성했을 당시의 예술적 가치를 오늘날까지 간직하고 있다. 피카소, 장 콕토와 같은 샤넬의 친구들이 현대 예술의 시작을 알렸다면 동시대에 탄생한 N°5는 현대 향수의 시작을 알리는 제품이다. 놀랍게도 N°5는 그녀의 연인이었던 보이 카펠의 죽음과 부재로 탄생했다. 사랑과 회상, 기억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극적인 샤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번 전시는 ‘러브 스토리, 아방가르드한 풍경, 선언(라벨), 전설’이라는 4개의 주제를 통해 샤넬 N°5의 역사적 배경, 사회현상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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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로 대중과 소통하는 브랜드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름답게 가꾼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졌다. 이미 샤넬이 이야기하는 향수의 세계에 한 발자국 들어선 기분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경 예술가 피에트 우돌프(Piet Oudolf)가 샤넬 N°5의 우아함과 아름다운 향을 꽃이 가득한 정원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우아한 정원은 전시관으로 향하는 입구를 따라 조성되어 방문객들로 하여금 N°5에 대한 시각적인 환기를 느끼게 한다. 투명 진열장 콘셉트의 메인 전시장을 지나 2층에 위치한 미디어 텍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샤넬의 전반적인 히스토리는 물론 N°5에 관한 모든 자료를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식물학자 로랑 버기서(Laurent Burgisser)가 샤넬의 아파트와 오브제에서 발견한 꽃으로 만든 식물 표본집을 볼 수 있었는데,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꽃과 향수의 원료를 보고 시향하면서 향수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미디어실에서 샤넬 N°5의 모든 광고 필름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볼 수 있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향에 대한 감각과 후각을 일깨워주는 워크숍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는데, 다양한 창작 활동을 더해 어린이도 참여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샤넬에 대해 다가서기 어려운, 오로지 명품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브랜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샤넬은 끊임없는 투자와 노력으로 대중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있다. 패션과 샤넬에 대해 잘 모를지라도 문화,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는데, 수준 높은 전시 구성과 각종 체험 공간은 대중과 교감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샤넬의 바람을 말해주는 증거다. 백화점을 주요 판매 채널로 삼는 명품 브랜드에서 이처럼 문화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라는 우아한 화법으로 대중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샤넬을 패션이라 하고, 누군가는 예술이라 한다. 향수 하나로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샤넬 N°5라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향수 역사 속에서 미스터리하면서도 상징적인 존재였던 N°5는 그 당시 파격 그 자체였다. 파격은 시간이라는 가치가 더해져 클래식이 되고, 결국 예술과 문화로 남는다. 파격이라 일컬어지던 비틀스의 노래가 지금은 클래식으로 비유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샤넬은을 통해 이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큐레이터 장-루이 프로망은 “은 샤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공개하고 예술, 창조, 그리고 브랜드의 공식적 코드의 발명을 통해 샤넬이라는 브랜드에 문화적 지위와 신뢰를 부여하는 전시회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클래식한 향수, N°5. 이 향수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지 않고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번과 같은 시도를 통해 브랜드가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브랜드의 역사에 가치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더 이상 예술가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력 있는 브랜드 자체가 예술과 문화를 형성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향수 하나에 포커스를 두어 문화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샤넬만이 지닌 강력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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