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먼, 사적인 럭셔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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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2026

글 고성연(상하이 현지 취재)

카펠라 상하이 지안예리(Capella Shanghai, Jian Ye Li)

팬데믹을 전후해 한동안 찾지 못했던 상하이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거칠 것 없이 성장 가도를 달리던 도시의 위용과 속도에 눌려 이 메가시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시절에도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던 프렌치 컨세션(French Concession). 플라타너스 사이로 우아하거나 늠름한 고택이 이어지는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다른 이유로 조금 설렜다. 고택을 개조한 럭셔리 호텔은 많지만,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온 공동 주거 양식인 스쿠먼(石庫門)을 호텔로 삼다니. 올해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 5성에 이름을 올린 카펠라 상하이 지안예리(Capella Shanghai, Jian Ye Li)의 독특한 발상이 호기심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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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아담한 빌라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앙증맞은 응접실이 먼저 반긴다.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공간을 지나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면, 오붓하게 다과를 즐기거나 잠시 쉬어 가기 좋은 라운지가 나온다. 반 층 더 오르면 침실이다. 창밖으로 상하이 특유의 골목길인 룽탕(弄堂)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또 다른 스쿠먼 건물들이 이어진다. 다시 반 층쯤 올라서면 세련되고 안락한 욕실이 자리한다. 그리고 맨 위 루프톱에서는 붉은 지붕이 겹겹이 이어지는 지안예리의 풍경을 한눈에 만날 수 있다.

호텔 객실이라기보다 한 채의 집을 층층이 탐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잠시 머무는 투숙객이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이 어느새 이 오래된 단지의 입주민이라도 된 듯하다. 아래층에서 손님을 맞고, 반 층 올라 차를 마시고,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생활의 동선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 상하이 사람들이 살던 집 구조가 오늘날에는 사적인 럭셔리의 경험이 된 셈이다.

카펠라 상하이 지안예리가 자리한 곳은 1930년대에 조성된 스쿠먼 주거 단지다. 상하이의 대표적인 주거 문화유산인 스쿠먼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지안예리가 다른 점은 스쿠먼의 ‘골목’뿐 아니라 ‘집’ 자체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원래 스쿠먼은 집 한 채만 떼어놓고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이 아니다. 길가의 상업 공간에서 안쪽 룽탕을 따라 여러 채의 집이 이어지며, 거리와 골목, 상업과 주거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리롱(里弄)이라는 주거 공동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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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품은 하나의 세계
지안예리도 그 구조를 흥미롭게 이어받았다. 길가에는 세계적인 프렌치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중국 본토 첫 레스토랑인 르 콩투아 드 피에르 가니에르가 있고, 그 옆에는 동네 빵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준 높은 빵과 페이스트리를 선보이는 라 불랑제리, 취향이 남다른 편집숍 EMME 등이 자리한다. 호텔에 딸린 부대시설이라기보다 오래된 동네에 원래부터 있던 가게처럼 자연스럽게 들어앉은 모습이다.

지안예리의 입구를 지나면 리셉션이 있는 호텔의 중심 공간이 나오고, 다시 조금 걸어서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야 비로소 주거 공간이 시작된다. 이러한 스쿠먼 단지에서 룽탕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골목을 중심으로 여러 집이 이어지고, 각각의 집은 다시 문을 통해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지안예리에서는 그 오래된 공간의 위계가 호텔의 동선 속에서 묘하게 되살아난다. 바깥 거리에서 상업 공간을 지나 호텔 중심부에 닿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골목을 따라 주황빛 능소화를 담장에 드리운 붉은 빌라들이 겹겹이 이어진다. 빛바랜 석재 문틀이 검은 대문을 우아하게 감싸고 있다. 대문을 열고 작은 정원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서면, 그제야 앞서 보았던 집의 안쪽 풍경이 시작된다.

지안예리에는 장기 체류를 위한 레지던스도 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스파나 쇼룸으로 사용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그중 하나가 미국 패션 디자이너 에드 하디(Ed Hardy)의 공간이다. 록 스타 감성이 흐르는 형형색색의 디자인과 의상, 타투 공간 등이 오래된 스쿠먼 안에서 뜻밖의 장면을 만든다. 호텔 고객이 예약하면 원하는 스팽글을 골라 카펠라 에코 백에 프레스로 찍어 나만의 백을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이렇듯 주거지이던 골목이 작은 도시처럼 다시 살아났다. 그 풍경은 지안예리의 담장 밖으로도 이어진다. 문을 나서 가까운 동네를 거닐다 보면 오래된 주택과 빌라 사이로 신선한 감각의 공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현지인들이 찾는 작은 면집에서 5위안짜리 국수 한 그릇과 간단한 요리로 허기를 달래고, 운이 좋아야 대기 번호표를 손에 쥘 수 있다는 O. P. S에서 커피와 칵테일의 색다른 조합을 맛본다. 우캉루와 안푸루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풍경은 또다시 달라진다. 플라타너스가 머리 위로 늘씬하게 가지를 뻗은 길을 따라 오래된 서양식 주택과 근대건축물이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카페와 숍이 들어서 있다. 어느새 상하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렌치 컨세션의 거리 풍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호텔의 ‘카펠라 큐레이츠(Capella Curates)’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문 가이드와 함께 이 일대의 건축과 문화, 동네의 이야기를 따라 걸어볼 수도 있다.

한 채의 집에서 시작했지만, 그 안에서 만난 것은 결국 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생활과 취향이 한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포개지는 상하이. 이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 단서를 나는 어쩌면 작은 스쿠먼 단지에서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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