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03, 2025
글 고성연(도쿄 현지 취재)
아트 위크 도쿄(AWT) 2025
‘도시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상대적으로 선망받는 메트로폴리스의 지형도는 여전할까? 돌이켜 볼 때, 등급과 체급을 높이기 위한 경쟁 구도는 서울, 상하이, 도쿄, 홍콩, 싱가포르 등을 품은 아시아에서 꽤 치열하게 진행돼왔다. 특히 팬데믹을 기점으로 현대미술을 앞세운 ‘문화도시’의 위상을 둘러싼 의미 있는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직간접적인 지원에 나선다. 도시 경쟁력을 둘러싼 이러한 전략적 움직임은 단순히 ‘선망의 대상’이 되겠다는 낭만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지난봄 타계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S. 나이(Joseph S. Nye) 하버드대 교수가 여러 분야에 걸쳐 각인시킨 개념인 ‘소프트 파워’를 염두에 둔 행보다. 글로벌 행사로 선언한 초기(2022년)부터 연례 나들이처럼 매년 방문해온 늦가을의 축제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 AWT)’는 어느새 일본의 심장 같은 도쿄의 소프트 파워 증대를 떠오르게 할 정도의 문화 예술 플랫폼으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생태계의 느슨한 응집력이라든지 다소 소박해 보이는 면면도 지적됐지만, 동시대를 이끄는 아트 허브를 향해 정주하는 길목에서 지금의 도쿄가 지닌 독창적 가치, 예술 인프라, 물리적 환경 등을 아우르는 장단점을 감안한 세밀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해마다 단계적인 진화를 이뤄내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는 상업적 페어도, 비엔날레 같은 현대미술 제전도 아닌 현재의 ‘하이브리드’적 속성이 더 커다란 판으로 진화할 경우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갖추게 될 정체성이 궁금해진다. 글로벌 미술계의 작은 사교장 같았던 오프닝 파티부터 존재감이 부쩍 강해진 아트 위크 도쿄 2025(11.5~9)는 그 궁금증을 더 짙게 만들었다.
A Growing Platform Brand
작품을 직접 사려는 구매의 동기든, 콘텐츠를 즐기려는 향유의 목적이든, 동시대 예술을 사고파는 장터인 아트 페어를 꾸준히 다니는 현대미술 애호가들은 가을이 되면 아시아만 훑기에도 바쁘다. 올해 캘린더를 놓고 보자면 9월 초에 프리즈 서울이 있다면, 10월에는 아트 타이베이, 11월로 접어들면 초순에는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 이하 AWT), 그리고 중순에는 아트 컬래버레이션 교토(ACK)와 상하이의 웨스트 번드 아트 앤드 디자인(West Bund Art & Design)이 열렸다. 그런데 사실 AWT는 형식적인 결이 사뭇 다르다. 마켓 플레이스(아트 페어) 브랜드를 정체성으로 삼는 다른 행사들과 달리 현대미술을 필두로 한 도쿄의 다채로운 문화 공간과 콘텐츠를 소개하는 글로벌 쇼케이스를 표방하는 축제형 콘텐츠여서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2021년 소프트 론칭 형식으로 시동을 걸었는데, 내국인 대상만으로도 2만 명의 관람객을 이끌었고, 이듬해부터 확장형 버전으로 해외 방문객을 맞아들였다. 5년 차에 접어든 지금 AWT는 글로벌 미술 생태계에서 도쿄의 가을을 물들이는 상징적인 ‘미술 주간’으로 안착한 모양새다(방문객 5만 명 이상). 한동안 고공 행진하던 미술 시장이 수년째 다시 하강 곡선을 타고 있고, 대다수 아트 페어가 힘들어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나름의 전략으로 독자적 노선을 구축해온 AWT의 발자취와 현주소를 살펴볼 시점이 아닐까 싶다.
‘도시 브랜드’를 업고 점진적인 성장을 꿰하다
AWT 플랫폼의 시작점은 다케 니나가와(Take Ninagawa)라는 도쿄의 갤러리를 이끄는 니나가와 아쓰코(Atsuko Ninagawa)라는 인물이다. 팬데믹의 강타로 위축을 우려했던 것과 달리 미술 시장이 세계적으로 호조세를 타며 이웃 도시들이 아트 페어 열기로 분주하던 2021년 봄, 그녀는 도쿄의 갤러리와 미술관을 다니는 버스 노선도를 그리면서 기획에 나섰고,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도시의 아트 신(scene)을 다각도로 탐색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을 제안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 그리고 도쿄를 방문하는 타지인에게도 ‘(우리와) 현대미술사를 알리는 교육적인 역할’을 강조했다고 한다(<스타일 조선일보> 인터뷰). 대중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일본의 미술 콘텐츠를 해외에 더 활발히 알린다는 취지에 호의적인 점수를 받아 공적 지원(정부와 도쿄 도청)을 등에 업게 됐고, 니나가와 대표는 자신의 오랜 고객이기도 한 40대 컬렉터이자 사업가 시라이 가즈나리(Kazunari Shirai)와 의기투합해 AWT 공동 설립자로 ‘새 판’을 짰다. 그렇게 해서 갤러리와 아트 스페이스, 공공·사립 미술관 등을 아우르는 50여 개 기관과 조직이 해마다 참여하고, 이 공간들을 도시 기행하듯 여러 루트로 오갈 수 있도록 수십 대의 무료 버스가 다니는 아트 위크가 생겨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의문이 들 법하다. 명실공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메트로폴리스인 도쿄는 어째서 ‘글로벌 아트 페어’라는 형식을 내세우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니나가와 대표도 직접 말했듯 “사실 도쿄는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컨템퍼러리 아트 시장이 작은 편”이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미술계 슈퍼스타들이 분명 존재하지만(무라카미 다카시, 구사마 야요이, 팀랩 등) 자국의 신진·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층의 규모도 일본의 국가 브랜드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큰손들이 고가의 인상주의 작품까지 기세 좋게 사들이던 버블 시대를 그리워할 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글로벌 팽창과 다각화를 모색해온 주요 아트 페어 브랜드들이 일찌감치 도쿄에 진출하지 않았을 리 없다. 솔직히 AWT가 탄생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구매와 반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미술품 수집은 다른 세상 얘기’로 바라보는 도쿄 시민들과 ‘참신한 발견’이라고 반색하는 외부 방문객의 온도 차는 여전히 커 보인다. 그래도 초창기만 해도 미술관과 갤러리가 ‘아트 주간’이라는 개념을 낯설어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부쩍 커진 걸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AWT는 전반적인 프로그램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점진적으로 질과 다양성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공식적 참여 기관과 조직의 수는 지속적으로 50개 선에서 꾸려가고 있다. 참여 갤러리 명단에는 살짝 변화가 일어나곤 하지만, 도쿄 국립신미술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같은 공공 미술관, 모리 미술관과 MoT, 아티존 뮤지엄 등 주요 기관의 목록은 거의 한결같다. 초반부터 자체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세심히 기획했고, 그만큼 의도에 맞는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AWT의 의지가 엿보인다. 해외 방문객을 명확한 타깃으로 삼아 도쿄의 실력 있는 갤러리들이 자신들의 예술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사실 미술관들은 전시 오프닝 날짜를 AWT에 일부러 맞춘다든지 하는 식으로 애쓰기보다 ‘느슨한 참여’를 한다). 단지 미술뿐 아니라 건축, 조경, 미식, 쇼핑, 럭셔리 호텔 등의 영역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하드웨어와 콘텐츠가 풍부하게 받쳐주는 도쿄의 장점을 활용해서 말이다. 더구나 마침 엔저 효과 등으로 도쿄, 교토를 위시한 일본 도시를 찾는 이들이 워낙 많지 않은가. 10여 년 전 도쿄에 진출한 갤러리 블럼(BLUM)의 공동 창업자 팀 블럼은 “일본에 대한 새로운 관점, 다시 불붙은 집착 같은 게 생겨난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의문이 들 법하다. 명실공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메트로폴리스인 도쿄는 어째서 ‘글로벌 아트 페어’라는 형식을 내세우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니나가와 대표도 직접 말했듯 “사실 도쿄는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컨템퍼러리 아트 시장이 작은 편”이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미술계 슈퍼스타들이 분명 존재하지만(무라카미 다카시, 구사마 야요이, 팀랩 등) 자국의 신진·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층의 규모도 일본의 국가 브랜드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큰손들이 고가의 인상주의 작품까지 기세 좋게 사들이던 버블 시대를 그리워할 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글로벌 팽창과 다각화를 모색해온 주요 아트 페어 브랜드들이 일찌감치 도쿄에 진출하지 않았을 리 없다. 솔직히 AWT가 탄생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구매와 반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미술품 수집은 다른 세상 얘기’로 바라보는 도쿄 시민들과 ‘참신한 발견’이라고 반색하는 외부 방문객의 온도 차는 여전히 커 보인다. 그래도 초창기만 해도 미술관과 갤러리가 ‘아트 주간’이라는 개념을 낯설어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부쩍 커진 걸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AWT는 전반적인 프로그램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점진적으로 질과 다양성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공식적 참여 기관과 조직의 수는 지속적으로 50개 선에서 꾸려가고 있다. 참여 갤러리 명단에는 살짝 변화가 일어나곤 하지만, 도쿄 국립신미술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같은 공공 미술관, 모리 미술관과 MoT, 아티존 뮤지엄 등 주요 기관의 목록은 거의 한결같다. 초반부터 자체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세심히 기획했고, 그만큼 의도에 맞는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AWT의 의지가 엿보인다. 해외 방문객을 명확한 타깃으로 삼아 도쿄의 실력 있는 갤러리들이 자신들의 예술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사실 미술관들은 전시 오프닝 날짜를 AWT에 일부러 맞춘다든지 하는 식으로 애쓰기보다 ‘느슨한 참여’를 한다). 단지 미술뿐 아니라 건축, 조경, 미식, 쇼핑, 럭셔리 호텔 등의 영역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하드웨어와 콘텐츠가 풍부하게 받쳐주는 도쿄의 장점을 활용해서 말이다. 더구나 마침 엔저 효과 등으로 도쿄, 교토를 위시한 일본 도시를 찾는 이들이 워낙 많지 않은가. 10여 년 전 도쿄에 진출한 갤러리 블럼(BLUM)의 공동 창업자 팀 블럼은 “일본에 대한 새로운 관점, 다시 불붙은 집착 같은 게 생겨난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1 AWT 버스. 이미지 제공_AWT
2 도쿄 국립신미술관(NACT) 〈Prism of the Real: Making Art in Japan 1989-2010〉 전시에서 선보인 조앤 조나스의 영상 작업 〈Double Lunar Rabbits〉(2010). 작가 소장.
3 국립신미술관 전시 작품. Noboru Tsubaki, ‘Aesthetic Pollution’(1990). Photo by Taku Saiki. Ⓒ Noboru Tsubaki, Courtesy the 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and NACT
4 도쿄도 현대미술관(MoT) 개관 30주년 기념전에 전시된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의 ‘우미, 손, 해녀’(2025).
5 모리 미술관에서 선보인 후지모토 소우의 작업 ‘House N’(2008).
6 MoT에서 개인전을 연 사사모토 아키(Aki Sasamoto)의 작품 ‘Still from Point Reflection (video)’(2023). Ⓒ Aki Sasamoto, Courtesy Take Ninagawa and MoT
2 도쿄 국립신미술관(NACT) 〈Prism of the Real: Making Art in Japan 1989-2010〉 전시에서 선보인 조앤 조나스의 영상 작업 〈Double Lunar Rabbits〉(2010). 작가 소장.
3 국립신미술관 전시 작품. Noboru Tsubaki, ‘Aesthetic Pollution’(1990). Photo by Taku Saiki. Ⓒ Noboru Tsubaki, Courtesy the 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and NACT
4 도쿄도 현대미술관(MoT) 개관 30주년 기념전에 전시된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의 ‘우미, 손, 해녀’(2025).
5 모리 미술관에서 선보인 후지모토 소우의 작업 ‘House N’(2008).
6 MoT에서 개인전을 연 사사모토 아키(Aki Sasamoto)의 작품 ‘Still from Point Reflection (video)’(2023). Ⓒ Aki Sasamoto, Courtesy Take Ninagawa and MoT
AWT Focus &…
장점을 부각한 기획력과 하이브리드 전략
‘우리에게도 빼어난 콘텐츠가 많은데 방법론에서 서툴렀던 것 같다’는 생각에서 도쿄를 현대미술을 내세운 문화 예술 쇼케이스의 무대로 전격 내세운 AWT의 행보는 지금까지는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AWT에 등록하는 VIP 숫자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지난해 4천여 명), 그중 7~8할이 해외 컬렉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단연 초창기부터 전략적으로 맺은 아트 바젤(Art Basel)과의 협업이 큰 몫을 하고 있다. 키아프(Kiaf)와 손잡고 서울에 입성한 프리즈(Frieze)와 더불어 미술 생태계를 주름잡고 있는 세계 최강 아트 페어 브랜드 아닌가. 그러한 네트워크로 일본을 찾는 컬렉터들이 갤러리에 들르면 지갑을 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도쿄라는 화려한 도시의 위용에 비해 컨템퍼러리 아트 시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건 사실이지만, 이는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된다. AWT는 굳이 ‘페어(fair)’라는 단어를 쓰지 않지만, 2023년부터 ‘AWT 포커스’라는 세일즈 플랫폼을 가동하고 있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페어의 속성까지 지닌 하이브리드 플랫폼으로 키워가는 신중하고 영리한 전략이다.
AWT 포커스는 여타 아트 페어와 차별화하는 차원에서 주제가 있는 미술관급 전시를 강조하면서 그에 걸맞은 저명한 큐레이터를 동원해오고 있다. 첫해에 시가현 미술관장인 호사카 겐지로(Kenjiro Hosaka), 지난해엔 롯폰기의 상징과도 같은 모리 미술관을 이끄는 가타오카 마미(Mami Kataoka) 관장이 각각 큐레이팅을 맡았는데, 실제로 반응도 좋았다. 그렇더라도 그간 AWT를 꾸준히 지켜봐왔다면, 전시 작가군이나 기획자가 ‘일본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나올지도 모를 참에, 비중 있는 글로벌 큐레이터를 등장시켰다. 독일 소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개최되는, 현대미술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행사인 도쿠멘타 14(2017년)의 예술감독인 아담 심치크(Adam Szymczyk)가 그 주인공이다. ‘What is Real?’이라는 주제를 내세운 전시에서는 다양한 세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60명 작가/팀의 작품 1백여 점을 선보였는데, 엄연히 갤러리를 낀 상업 플랫폼임을 잊을 정도로 작은 비엔날레를 연상시키는 구성이 돋보였다. 예를 들어 인상 깊은 작업 세계를 선보였지만 젊은 나이에 실종된 네덜란드의 개념 미술가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의 대표 작품인 〈Nightfall〉(1971, 영상)과 ‘I’m too sad to tell you’(1971/2024, 사진)라든지, 역사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작품 활동을 해온 이야마 유키(Yuki Iiyama) 작가의 2021년 발표작으로 1930∼40년 도쿄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조선인 환자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일 한국인 래퍼가 등장해 메시지를 전하는 ‘인-메이트(In-Mates)’도 포함되어 있다(작가가 몇 년 전 ‘검열’에 항의를 하기도 했던 작품). 아담 심치크는 2022년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 부대 프로그램 중 하나인 ‘AWT 비디오’를 맡기도 했는데, 당시 돋보였던 뉴욕 기반의 일본 작가 사사모토 아키(Aki Sasamoto) 개인전이 올해 AWT 기간에 도쿄의 현대미술관 MoT에서 진행되고 있어 더 반갑게 다가왔다. 현재 예일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녀는 일상의 흔한 사물이나 행동을 다매체를 활용해 비범한 장면으로 전환하면서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데, 관람자로 하여금 절로 작품에 집중하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올해의 AWT에서는 건축과 디자인, 미식 등의 요소를 창의적으로 결합한 플랫폼인 ‘AWT 바(Bar)’의 존재감도 눈길을 끌었다. AWT 공동 설립자 시라이 가즈나리의 사무실이 있는 멋드러진 건물에서 유망한 신진 건축가에게 설치 작품 같은 팝업 공간 설계를 맡기고 아티스트들이 직접 레시피 제조에 참여한 칵테일을 맛볼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번에 건축계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세지마 가즈요 (Kazuyo Sejima, SANAA 소속)가 자문을 맡았다. 미래의 프리츠커상 수상자 후보로 꼽히곤 하는 후지모토 소우(Sou Fujimoto)의 대대적인 서베이 전시가 모리 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기도 했는데(AWT의 피날레와 더불어 막을 내렸다), 핵심 개념을 전달하면서도 건축 전시의 미장센을 유려하게 풀어낸 바람직한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 밖에 홍콩 M+와 공동으로 전개한 국립신미술관의 〈Prism of the Real: Making Art in Japan 1989-2010〉은 일본 현대미술에 대한 조명을 국제적 협업의 틀에서 담아낸 기획전이다.
올해의 AWT에서는 건축과 디자인, 미식 등의 요소를 창의적으로 결합한 플랫폼인 ‘AWT 바(Bar)’의 존재감도 눈길을 끌었다. AWT 공동 설립자 시라이 가즈나리의 사무실이 있는 멋드러진 건물에서 유망한 신진 건축가에게 설치 작품 같은 팝업 공간 설계를 맡기고 아티스트들이 직접 레시피 제조에 참여한 칵테일을 맛볼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번에 건축계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세지마 가즈요 (Kazuyo Sejima, SANAA 소속)가 자문을 맡았다. 미래의 프리츠커상 수상자 후보로 꼽히곤 하는 후지모토 소우(Sou Fujimoto)의 대대적인 서베이 전시가 모리 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기도 했는데(AWT의 피날레와 더불어 막을 내렸다), 핵심 개념을 전달하면서도 건축 전시의 미장센을 유려하게 풀어낸 바람직한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 밖에 홍콩 M+와 공동으로 전개한 국립신미술관의 〈Prism of the Real: Making Art in Japan 1989-2010〉은 일본 현대미술에 대한 조명을 국제적 협업의 틀에서 담아낸 기획전이다.
1 도쿄 시부야의 명소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 자리한 도쿄도 사진미술관(TOP Museum)에서 진행 중인 30주년 기획전 전시 모습. 2026년 1월 7일까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페드루 코스타(Pedro Costa)의 밀도 높은 개인전도 이곳에서 진행 중이다(12월 7일까지).
2 AWT 포커스에 출품된 네덜란드 작가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의 사진 작품 ‘I’m too sad to tell you’(1971/2024). Gelatin silver print, 41.7×55.9 cm. Courtesy Meliksetian | Briggs
3 AWT 포커스에서 선보인 바스 얀 아더르의 또 다른 작품 (1971, 영상)
※ 1, 3 Photo by 고성연
4 AWT의 공식 호텔 파트너인 더 오쿠라 도쿄 부지 내에 있는 오쿠라 미술관의 외관. 1917년 설립된 일본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해마다 ‘AWT 포커스’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5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큐레이터 아담 심치크가 큐레이터로 참여해 닷새 동안 연 올해 AWT 포커스의 설치 모습. Photo by Kei Okano. Courtesy Art Week Tokyo.
6 올해의 ‘AWT 바’ 건축가로 선정된 마쓰자와 이치오(Ichio Matsuzawa)가 투명 아크릴을 활용해 디자인한 팝업 공간.
7 AWT 바를 위해 아티스트들이 창조한 올해의 칵테일 시리즈. (왼쪽부터) 오자와 쓰요시(Tsuyoshi Ozawa)의 ‘Pangaea’, 침↑폼 프롬 스마파!그룹의 ‘Gold Experience Cocktail’, 야나기 미와(Miwa Yanagi)의 ‘Elevator Girls’.
※ 4~7 Courtesy Art Week Tokyo
2 AWT 포커스에 출품된 네덜란드 작가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의 사진 작품 ‘I’m too sad to tell you’(1971/2024). Gelatin silver print, 41.7×55.9 cm. Courtesy Meliksetian | Briggs
3 AWT 포커스에서 선보인 바스 얀 아더르의 또 다른 작품 (1971, 영상)
※ 1, 3 Photo by 고성연
4 AWT의 공식 호텔 파트너인 더 오쿠라 도쿄 부지 내에 있는 오쿠라 미술관의 외관. 1917년 설립된 일본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해마다 ‘AWT 포커스’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5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큐레이터 아담 심치크가 큐레이터로 참여해 닷새 동안 연 올해 AWT 포커스의 설치 모습. Photo by Kei Okano. Courtesy Art Week Tokyo.
6 올해의 ‘AWT 바’ 건축가로 선정된 마쓰자와 이치오(Ichio Matsuzawa)가 투명 아크릴을 활용해 디자인한 팝업 공간.
7 AWT 바를 위해 아티스트들이 창조한 올해의 칵테일 시리즈. (왼쪽부터) 오자와 쓰요시(Tsuyoshi Ozawa)의 ‘Pangaea’, 침↑폼 프롬 스마파!그룹의 ‘Gold Experience Cocktail’, 야나기 미와(Miwa Yanagi)의 ‘Elevator Girls’.
※ 4~7 Courtesy Art Week Tokyo
Luxury Meets Arts
도쿄다운 저력을 보여주는 브랜드들의 예술 공간
호텔, 디자인, F & B, 패션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럭셔리 브랜드들이 집결한 도시인 도쿄에서 아트 마케팅이 활발히 펼쳐지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지만 AWT가 공공 차원의 ‘돈 먹는 하마’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흘러가지 않고 자체 브랜드로서 커가고 있는 데는 브랜드들의 지원도 큰 역할을 한다. 일단 공식 호텔 파트너인 더 오쿠라 도쿄(The Okura Tokyo)는 정재계 인사들이 묵어온 유서 깊은 일본 럭셔리 호텔 브랜드로 2019년 새 단장해 문을 열었는데, 팬데믹이 수그러든 이래 레노베이션 효과까지 톡톡히 누리고 있다. 공식 파트너인 만큼 AWT를 찾는 관람객 중 상당수가 이곳에 묵는 건 물론이고, 이 호텔 부지 내에 있는, 1917년 설립된 일본 최초의 사립 미술관 오쿠라 미술관은 줄곧 ‘AWT 포커스’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장외 행사를 보자면 에르메스, 루이 비통, 샤넬, 프라다, 시세이도 등 예술 후원과 마케팅에 두각을 나타내온 브랜드들의 매장 디자인과 부속 전시 공간을 둘러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긴자에 있는 메종 에르메스 옆에 별도 입구로 들어가도록 동선을 짠 르 포럼(Le Forum)은 복층으로 된 아름다운 전시 공간인데, AWT 주간은 물론 현재까지도 음악, 필름, 조각을 매개로 금속의 다면적 본질을 다룬 엘로디 르수르(Élodie Lesourd), 엔도 마이코(Maiko Endo), 에노키 추(Chu Enoki) 3인전 을 선보이고 있다(2026년 1월 31일까지). 긴자에서는 지난해 문을 연 샤넬 매장 건물에 자리한 ‘샤넬 넥서스 홀’에서 AI와 예술, 생태학을 결합한 전시 가 진행 중인데, 리스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소피아 크레스포(Sofia Crespo)와 아티스트 듀오인 인탱글드 어더스(Entangled Others)가 참여했다(12월 7일까지). 또 명품 브랜드들의 건축과 디자인을 보는 즐거움이 넘치는 아오야마로 가면 스위스 건축 회사 HdM의 명작으로 꼽히는 프라다 아오야마, 아트 바젤 등 글로벌 현대미술 행사를 후원해온 샴페인 브랜드 루이나 등의 전시 공간과 매장을 함께 둘러볼 수 있고, 가까이에는 루이 비통 오모테산도 매장 건물 7층에 자리한 전시 공간(Espace Louis Vuitton)도 있다. 서울에서는 카페로 바뀐 ‘에스파스 루이 비통’이 도쿄에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데, 현재는 앤디 워홀 전시가 열리고 있다(내년 2월 15일까지).
폭발적인 역동성으로 치고 나가는 서울 스타일과 달리 일본 특유의 조심스럽고 차근차근한 확장형 행보는 AWT가 갤러리들의 점진적 약진과 더불어 큐레이터의 ‘브랜드 파워’와 ‘내공’의 조화를 품은 부티크 페어를 중심으로 여물어가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단지 컬렉터 숫자가 아니라 문화의 여러 영역에 걸친 다층적 포용력이라는 맥락에서 잠재 수요가 꿈틀거리던 도시가 치밀한 글로벌 플랫폼 기획과 만날 때 어떤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또 가타오카 마미(Mami Kataoka) 모리 미술관 관장이 아트 바젤 홍콩의 대규모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주요 섹션인 ‘인카운터스(Encounters)’를 이끌게 됐다는 소식이 얼마 전 들려왔듯, 플랫폼 간의 협업 구도가 향후에 어떤 식으로 심화되고 외연적으로 확장될지도 궁금하게 만든다. 아직은 하이브리드적 정체성의 제약 내지는 가능성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모르기에, 미래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말이다. AWT는 과연 문화도시의 요건인 ‘자발적 예술의 장’의 면모를 뿜어내는 변곡점까지 일궈낼 수 있을까?
1, 2 도쿄의 번화가 긴자에 있는 메종 에르메스의 현대미술 전시 공간인 ‘르 포럼(Le Forum)’에서는 음악, 필름, 조각을 매개로 금속의 다면적 본질을 다룬 〈Metal〉 을 선보이고 있다. 엘로디 르수르(Élodie Lesourd), 엔도 마이코(Maiko Endo), 에노키 추(Chu Enoki) 3인 작가전. 2026년 1월 31일까지.
3, 4 긴자의 샤넬 매장 건물에 자리한 ‘샤넬 넥서스 홀’에서 진행 중인 전시 〈Synthetic Natures〉의 설치 모습. AI와 예술, 생태학을 결합한 전시로 리스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소피아 크레스포(Sofia Crespo)와 아티스트 듀오인 인탱글드 어더스(Entangled Others)가 참여했다. 오는 12월 7일까지.
5, 6 오모테산도에 있는 루이 비통 매장에 자리한 전시 공간 ‘에스파스 루이 비통 도쿄’에서는 앤디 워홀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2026년 2월 15일까지.
※ 1~6 Photo by 고성연
3, 4 긴자의 샤넬 매장 건물에 자리한 ‘샤넬 넥서스 홀’에서 진행 중인 전시 〈Synthetic Natures〉의 설치 모습. AI와 예술, 생태학을 결합한 전시로 리스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소피아 크레스포(Sofia Crespo)와 아티스트 듀오인 인탱글드 어더스(Entangled Others)가 참여했다. 오는 12월 7일까지.
5, 6 오모테산도에 있는 루이 비통 매장에 자리한 전시 공간 ‘에스파스 루이 비통 도쿄’에서는 앤디 워홀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2026년 2월 15일까지.
※ 1~6 Photo by 고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