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 2025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2025바다미술제
드넓은 갯벌과 부드러운 해안선, 멋진 일몰로 유명한 다대포. 2025바다미술제는 부산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다대포해수욕장을 무대로 ‘물 위를 걷는 물결들(Undercurrents)’이라는 주제의 바다 여행을 제안한다(오는 11월 2일까지).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금화 공동 전시 감독은 “바다미술제는 다대포에서 잊힌 공간을 재소환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여러 번 항만 개발을 위한 매립 위기에 놓였다가 시민들의 지속적인 반대 운동으로 보존된 다대포의 해변은 그간의 기억을 들려주는 듯했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다대포해수욕장부터 몰운대 해안 산책로, 살아 있는 해안 생태계를 만날 수 있는 고우니 생태길, 폐기물을 소각하기 위해 조성한 산업 시설이었던 다대 소각장까지 거닐며 환경과 생태, 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접하는 여정. ‘걷는 길 자체가 예술적’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박준 시인이 ‘시’라는 장르를 여전히 어려워하는 대중을 두고 완벽히 이해하려 할 필요 없다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를 읽은 후 자신에게 남는 감정 그 자체가 진실일 뿐입니다.” 덧붙여 시인은 오래 응시하고 관찰하고 함께 아파하고 우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궁극의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절로 진실을 느끼고 응시하고 공감하는 것. 2025바다미술제가 열리는 다대포해수욕장과 고우니 생태길, 몰운대 해안 산책로를 걷다가 발견한 작품은 모두 자연에 대한 예술가의 가장 자연스러운 ‘진심’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또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폭력에 아파하는 그들의 고민을 듣게 해주었다. 공동 전시 감독 베르나 피나의 말처럼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풍경들. 날것의 자연에 스며든 작품을 따라 해변길을 걷다 보면 ‘예술이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을까’를 자연스레 고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위기에 처해 있어요. 결국 예술이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교감이 결국 평화로 나아가게 한다고 피나 감독은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지구의 생명을 지키는 방법
“저는 우리가 듣지 못했던 부산 바다의 소리 풍경을 채집했습니다. 다대포 인근 해양 보호구역인 나무섬에서 직접 채집한 바다 생물 소리부터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제공한 해양 생물 수중 녹음까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집니다. 다대포 어촌 공동체에서 전해 내려오는 노동요 ‘후리소리’가 교차하며 울려 퍼지죠.”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바다의 소리로 치유와 회복을 조각하는 이탈리아 작가 마르코 바로티는 다대포 해변의 지형과 조개껍데기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생성한 뿔 같은 형상을 한 자신의 스피커 조각 ‘표류하는 소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마리 그리스마도 생태계 현장 조사 방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는데, ‘물과 물 사이의 초록’은 바다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묘사한 도자기 조각 작품이다. 수중 관람도 가능하다는 점(스노클링 세션)이 재미나다. 다양하고 풍부한 식물성 플랑크톤이 낙동강을 따라 흐르다 다대포 하구에서 해양 먹이사슬의 시작점이 된다는 것에서 영감받은 작가는 산호초 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 ‘rreefs’의 공동 창립자다.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든 대형 재활용 플라스틱 카펫 작품을 선보인 마티아스 케슬러와 아멧 치벨렉은 버려진 플라스틱에 주목했다. 이들은 다대포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부산 전역에서 수거한 폐포장재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료로 대형 카펫을 직접 손으로 엮었다. 쓰레기와 공예의 경계를 허문 작업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이며 생생한 패턴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다대포, 마요르카, 뉴욕의 해변에서 각각 수집한 모래 알갱이로 작품을 만든 지븨 리와 필립 C. 라이너의 작품은 마치 아테네의 어느 신전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준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 태생 예술가 지븨 리와 건축가 출신의 독일 기하학 연구자 필립 C. 라이너는 오랜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는 모래가 지구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의 아카이브라고 생각한다고. 다대포해수욕장의 바위에 놓인 해마를 닮은 조각 ‘마이 시스터즈’를 만든 독일 작가 하이케 카비슈의 작품도 환경 위기를 일깨운다. 경계에 있는 생명체인 해마처럼 바다 앞 바위에서 묵상 중인 이 조각은 마치 삶과 죽음, 바다와 땅의 경계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든 대형 재활용 플라스틱 카펫 작품을 선보인 마티아스 케슬러와 아멧 치벨렉은 버려진 플라스틱에 주목했다. 이들은 다대포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부산 전역에서 수거한 폐포장재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료로 대형 카펫을 직접 손으로 엮었다. 쓰레기와 공예의 경계를 허문 작업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이며 생생한 패턴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다대포, 마요르카, 뉴욕의 해변에서 각각 수집한 모래 알갱이로 작품을 만든 지븨 리와 필립 C. 라이너의 작품은 마치 아테네의 어느 신전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준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 태생 예술가 지븨 리와 건축가 출신의 독일 기하학 연구자 필립 C. 라이너는 오랜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는 모래가 지구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의 아카이브라고 생각한다고. 다대포해수욕장의 바위에 놓인 해마를 닮은 조각 ‘마이 시스터즈’를 만든 독일 작가 하이케 카비슈의 작품도 환경 위기를 일깨운다. 경계에 있는 생명체인 해마처럼 바다 앞 바위에서 묵상 중인 이 조각은 마치 삶과 죽음, 바다와 땅의 경계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다대포가 이주와 상실의 흔적이 스며든 땅임을 일깨워주는 김상돈 작가의 작업 ‘알 그리고 등대’(2025)는 마치 신라와 백제시대의 금관처럼 바다 앞을 지키고 있다. 철과 거울, 방울, 볼록렌즈로 이루어진 작품은 바람이 불 때마다 신비한 소리를 들려준다. ‘자연의 힘은 누가 통제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라울 발히의 ‘바람은 누구의 것인가?’는 대나무와 천으로 만든 텐트 모양의 작품인데, 다대포해수욕장을 보헤미안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곳에서 바람의 움직임이나 새 모양으로 만든 풍향계로 자연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연날리기 워크숍도 있다). 식물과 함께하는 낭독 경험을 제안하는 우리엘 올로브의 작품 ‘함께, 걷고, 사유하고(부산)’도 아름답다. 포스터의 안내를 따라 식물 앞에서 글을 읽고, 식물을 친구 삼아 다대포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는 프로젝트. 여정의 끝은 다대포해수욕장역에 설치된 이진 작가의 ‘물결의 되울림’이었다. 16세기부터 현재까지 다대포 조수 데이터를 수집해 해안선의 시간적 변화를 구성한 작품은 잃어버린 바다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기후와 환경에 대한 고민, 여러 종에 대한 고찰, 지나간 시간에 담긴 바다의 기억이 바람결처럼 머무는 순간이었다.
1 김상돈, ‘알 그리고 등대’(2025). 철, 방울, 종, 거울, 프레넬 렌즈, 단청 채색.
2 마리 그리스마, ’호수 여행’ 시리즈’(2024). 6개의 유약 처리한 스톤웨어 조각, 가변 크기. Ⓒ미하 바움
3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폴리미터’(2025). 폴리우레탄 필름, 기장 다시마, 사운드, 송풍기.
4 마르코 바로티, ’표류하는 소리’(2025). 세라믹, 탄산칼슘, 태양광 패널, 가변 크기. ⒸMarco Barotti
5 라울 발히, ‘바람은 누구의 것인가?’(2025). 대나무, 섬유 인쇄, 스테인리스강.
6 솜 수파파린야, ‘점들의 공연장’(2023). 3M 반사 시트, 헤드램프, 마른 씨앗, 옥수수, 가변 크기. 사진_카린 몽콘판, 치앙마이 Gallery Seascape에서 촬영.
7 이진, ‘경계의 고리’(2023~2024). 층류 생성 장치, 전자회로, 연무기, 메탈 프레임.
8 하이케 카비슈, ‘케이시(부분)’, 2024, 아크릴 수지(아크리스탈), 안료, 점토, 섬유, 금속. 사진_아야미 아와즈하라.
9 오미자, ‘씨앗굴리기’(2025). 작가 지시문, 인쇄 및 디지털, 가변 크기.
※ 1, 3, 4 사진_고성연
2 마리 그리스마, ’호수 여행’ 시리즈’(2024). 6개의 유약 처리한 스톤웨어 조각, 가변 크기. Ⓒ미하 바움
3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폴리미터’(2025). 폴리우레탄 필름, 기장 다시마, 사운드, 송풍기.
4 마르코 바로티, ’표류하는 소리’(2025). 세라믹, 탄산칼슘, 태양광 패널, 가변 크기. ⒸMarco Barotti
5 라울 발히, ‘바람은 누구의 것인가?’(2025). 대나무, 섬유 인쇄, 스테인리스강.
6 솜 수파파린야, ‘점들의 공연장’(2023). 3M 반사 시트, 헤드램프, 마른 씨앗, 옥수수, 가변 크기. 사진_카린 몽콘판, 치앙마이 Gallery Seascape에서 촬영.
7 이진, ‘경계의 고리’(2023~2024). 층류 생성 장치, 전자회로, 연무기, 메탈 프레임.
8 하이케 카비슈, ‘케이시(부분)’, 2024, 아크릴 수지(아크리스탈), 안료, 점토, 섬유, 금속. 사진_아야미 아와즈하라.
9 오미자, ‘씨앗굴리기’(2025). 작가 지시문, 인쇄 및 디지털, 가변 크기.
※ 1, 3, 4 사진_고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