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ly se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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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7, 2024

글 고성연(파말리칸, 마닐라 현지 취재

팔라완의 진주 아만풀로(Amanpulo)

섬을 통째로 ‘보금자리’로 삼는 아만풀로(Amanpulo)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팔라완(Palawan)의 보석 같은 리조트다. 정확히는 팔라완 북부 쿠요(Cuyo) 군도의 산호초로 둘러싸인 파말리칸섬(Pamalican Island)에 자리하는데, 프라이빗 경비행기로만 오갈 수 있다. 마닐라에서 1시간 남짓 저공비행을 하면 가뿐히 도착할 수 있는데, 마치 알라딘의 마법처럼 그 짧은 이동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하얀 모래가 펼쳐진 5.5km의 고운 해변을 낀 바다는 투명에 가까운 맑음을 품고 있고, 연한 청록색을 비롯해 말로 형용하기 힘든 아름다운 색채의 스펙트럼을 뿜어낸다. 게다가 잔잔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바다라서 지그시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멍 때리기’나 명상 무드에 돌입하게 해준다. ‘평화로운 섬’이라는 뜻의 이름이 찰떡궁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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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Aman)’이라는 브랜드가 럭셔리 여행에 조용하게 지각변동을 일으키던 초기인 1993년 문을 연 아만풀로(Amanpulo). 요즘은 도심형 리조트도 선보이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아만은 대중교통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인적 드문 외딴섬이나 사막 같은 대자연 속에 호젓하게 자리 잡는 걸 고수했다. 그러니 7천6백여 개 섬으로 이뤄진 커다란 군도의 나라 필리핀에 리조트를 열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많은 섬 중 아만이 택한 파말리칸섬(Pamalican Island)은 마닐라에서 남서쪽으로 36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내리면 별도의 격납고를 갖춘 인근 라운지에서 출발하게 된다. 14인승의 앙증맞은 프라이빗 제트기(파트너 운영사는 IAI)를 타고 파말리칸섬으로 향하는 1시간 남짓한 여정은 그 자체로 예쁜 추억이 될 수 있다(졸지만 않는다면). 저공비행이라 하늘길에서 담을 수 있는 풍경은 커다란 풍선이라도 타고 두둥실 날아다니며 세상 구경하는 듯한 설렘을 안겨준다. 뭉실뭉실 떠 있는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 덩어리들은 하늘 위 또 다른 세상을 이루고 있고, 알록달록한 지붕을 두른 집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빨강, 초록, 파랑의 작은 보석들을 박고 그 주위엔 금테를 두른 레고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구름길을 지나 만나는 또 다른 세상, 기다랗게 펼쳐친 보석 같은 섬, 파말리칸 아일랜드
신기하게도 파말리칸섬에 다가갈수록 밀도 낮은 듬성듬성한 느낌의 구름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원근법이 고장 난 듯 얕게 깔린 구름 위로 배가 다니는 느낌의 풍경이 재미나다. 이윽고 기다란 섬을 따라 날씬하게 뻗은 백사장이 보이고, 경쾌하게 착륙한 활주로 옆에는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며 아만풀로식 환영을 해주는 직원들을 마주한다. 7, 8월은 비가 자주 온다지만 ‘날씨의 요정’이 비호해준다면 쾌청한 하늘에 잔잔한 바다, 그리고 귀를 간지럽히는 듯 상쾌한 바람도 만날 수 있다. 밤에만 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갠 날씨를 접하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운 좋게도 이런 복을 실제로 누렸지만, 그래도 여름철 한낮에는 야외 활동을 피하길 권한다). 어차피 외출을 줄이더라도 아만의 자연 속 리조트들이 대개 그렇듯 숙소에서 굳이 나가지 않아도 웬만한 식도락과 볼거리, 즐길 거리를 섭렵할 수 있다(화덕 피자 주문도 가능하다). 아만풀로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숙소가 있는데, 하나는 현지어로 ‘작은 집’을 뜻하는 카시타(casita)로 기준 인원이 2명(최대 3명)이다. 이 범주 내에서도 해안으로 가는 전용 길이 있는 ‘비치 카시타’, 숲에 자리 잡은 ‘힐사이드 카시타’나 ‘트리톱 카시타’, 그리고 각각의 유형에 플런지 풀까지 갖춘 업그레이드형 카시타도 있다. 좀 더 인원이 많다면 주방과 전용 셰프 겸 집사까지 대동하는 프라이빗 빌라도 있다(18채만 있다). 아만풀로가 추구하는 여러 덕목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꼽는다면 ‘독립성’이다. 예컨대 카시타 내의 욕실은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과 햇살이 들어오는 창, 넉넉한 욕조와 원형 탁자까지 놓인 또 하나의 방처럼 분리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외출할 때도 객실마다 제공하는 깜찍한 미니카를 타고 다니면 되므로 이동이 자유롭다. 간단히 페달로 작동하는 이 전용 클럽 차량은 ‘장롱 면허’를 가진 필자도 노련한 드라이버가 된 듯 섬을 탐색하고 다니도록 도와준 고마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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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도 행복하지만, 어느덧 스스로 찾고 즐기도록 만드는 마법
수려한 자연에 둘러싸인 수십 채 숙소와 부대시설만 존재하는 85ha의 섬에서 ‘밀도’를 느끼기는 어차피 힘들지만 아만풀로의 평온한 독립성은 야외 활동에서도 빛을 발한다. 카약, 패들 보트, 스쿠버다이빙, 세계적 수준의 카이트 서핑 등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워터 스포츠는 물론 테니스, 풋살, 요가 등의 활동은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저 조용히 바다 위에 유유자적 뜬 채 독서나 음악 감상, 명상에 몰입하는 데 적격인 ‘카와얀 바(Kawayan Bar)’ 경험이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카와얀은 현지어로 ‘대나무’라는 뜻의 단어. 유연하고도 강한 대나무로 만든 물 위의 뗏목 같은 휴식 공간은 팔라완 원주민들이 수공예 기술로 만드는데, ‘바’라는 명칭으로 알 수 있듯 손님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간식에 곁들일 맛난 칵테일을 제조해주는 바텐더가 함께 탑승한다. 유난히 맑은 데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우울한 느낌은 들지 않는 청신한 바다 풍경을 ‘독대’하고 있노라면 명상적인 분위기로 이끌리게 된다(단체로 15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육지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싶다거나 로컬의 정수가 묻어나는 필리핀식 다과와 함께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싶다면 클럽 하우스의 라이브러리로 향하면 된다. 아만풀로에는 올데이 다이닝이 가능한 비치 클럽, 신선한 재료와 셰프의 솜씨가 입안에서 바로 느껴지는 일식 요리가 일품인 라군 클럽 등의 다이닝 공간이 있는데, 근사한 서재와 올데이 미식 공간, 부티크, 그리고 (더운 날씨에는 아주 중요한) 냉방 시설까지 갖춘 클럽 하우스는 섬 내 여러 시설을 오가다 들를 만한 전천후 플랫폼이다. 저마다의 매력이 넘치지만 독특한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동쪽 해변과 서쪽 해변이 있기에 일출과 일몰을 생각해 동선을 짤 필요가 있다. 신기한 점은 어느 쪽 해변이든 오묘한 청록빛 바다를 눈에 담아두고 있노라면, 굳이 물을 묻히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도 결국 ‘워터 스포츠’에 도전하게 된다.
그런데 파말리칸섬에서 수상 스포츠를 즐기거나 바다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늘 시야에 들어오다가 언젠가부터 일종의 ‘마스코트’처럼 각인되는 야트막한 섬이 하나 있다. 보트를 타고 가면 4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마나목(Manamoc)섬이다(팔라완의 주도인 푸에르코 프린세사에서 페리로 갈 수도 있지만 굉장히 멀다). 아만풀로 스태프 중 상당수는 마나목 출신이다(인근의 작은 섬들 출신까지 합치면 60~70%). 지역 주민들이 많이 타는 작은 목선으로 출퇴근하는데, 마나목에는 호텔 일을 배우거나 엔지니어링 같은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된다고 한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파말리칸섬의 소유주이기도 한 안드레스 소리아노 그룹(Anscor)이다(재단에서 운영한다). 아만풀로의 한 젊은 직원은 자신의 증조부와 그 동료들이 소리아노 가문에 마나목을 팔았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무려 반세기도 더 된 얘기다). 농담조로 “아, 팔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그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그랬다면 아만풀로가 없었을 것 아니냐”고 답했다. 천성이 긍정적이고 따듯한 필리핀 사람들이 지닌 삶의 태도가 ‘피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필자에게 복잡다단한 감정으로 다가오게 하는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자꾸 돌아오게 되는 곳’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이 아름다운 섬을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긍정성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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