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Baselworld

조회수: 2732
4월 15, 2012

글 정희경(시계 칼럼니스트, <시계 이야기> 저자)

시계와 주얼리를 소개하는 가장 큰 규모의 2012년 바젤월드 페어가 지난 3월 7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었다.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제품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던 바젤월드는 2013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1917년 스위스에서 생산한 시계와 주얼리를 소개하는 샘플 페어로 시작한 바젤월드는 1973년부터는 유럽 지역, 1986년부터는 유럽 외 지역 회사들도 참여하면서 국제적인 행사가 됐고, 2001년에 전문 시계 브랜드들이 포진한 1홀, 2004년에 홍콩 등 아시아 지역 시계와 주얼리 브랜드를 소개하는 6홀까지 확장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2012년 바젤월드에서는 45개국 1천8백15명의 브랜드 담당자, 70개국 3천3백20여 명의 저널리스트, 1백여 개국 14만3백 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시장이 성장한 만큼 페어의 규모도 커졌는데, 2013년에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보여줄 예정이다. 10m 높이에 위치할 시티 라운지를 포함해 더 큰 페어센터 건립을 위해 이미 2300t에 달하는 철근을 투입한 철골 증축 작업이 한창이다. 내년 4월 25일에 시작할 바젤월드는 바로 그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For the Big Player

지난 2~3년간 시계 시장의 큰손은 홍콩, 중국, 싱가포르 그리고 중동 지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었다. 물론 활기를 되찾은 미국과 유럽 지역의 프랑스와 독일도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가장 규모가 큰 생산국 스위스의 시계 협회 통계를 살펴보면 수출 물량의 50% 이상이 아시아로 흘러 들어갔다. 그런 까닭에 시장의 요구에 대응한 시계들이 많았다. 작년부터 눈에 띄는 다운사이즈가 한 예다. 서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아시아인을 위해 시계의 두께와 크기를 다소 줄인 시계가 늘어난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골드 소재의 증가다. 스틸보다는 골드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구미에 맞춘 결과다. 특히 올해는 용의 해로 SIHH에 이어 이를 테마로 한 시계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한국도 대 수출국 11위를 달리고 있으니 당분간 시계 분야의 상승세는 계속될 듯 하다.

Blancpain Villeret Calendrier Chinois Traditionnel
컴플리케이션 시계로 날짜와 요일, 연도를 맞춰주는 애뉴얼 캘린더와 퍼페추얼 캘린더가 등장한 가운데 블랑팡은 그레고리안력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생소한 중국력을 적용한 시계를 소개했다. 그랑푀 기법으로 마감한 다이얼 위에는 12시 방향에 해를 뜻하는 12간지, 3시 방향에 요일, 6시 방향에 문페이즈를 배치하고, 9시 방향의 케이스백 로터에는 용을 각인해놓았다.
The Woman Power

여성 시계 하면 대체로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가 일반적이다.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로터가 돌아가면서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셀프 와인딩 시계일지라도 기계식 시계라면 정기적으로 일일이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기능이 많아질수록 시계의 두께와 크기가 커지는 까닭이다. 쿼츠 무브먼트라면 2년에 한 번씩 배터리만 교체해주면 되고, 작고 얇은 두께를 구현할 수 있어 보석을 세팅해도 앙증맞은 크기로 제작할 수 있으니 여성 시계로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의 매력에 빠져 점차 남성 시계에 눈길을 돌리는 여성들이 늘면서 기존 남성 시계를 다운사이즈하거나 아예 여성들만을 위한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태그호이어는 올해 링크 레이디 컬렉션을 강조했는데 배우 캐머런 디아즈를 홍보 대사로 삼아 올해 바젤월드에서 파티를 열어 초대하는 행사도 펼쳤다. 지름 41mm, 45mm, 48mm에 달하는 큰 시계를 주로 소개했던 위블로도 올해 여성들을 공략할 33mm 작은 클래식 퓨전을 소개하면서 여심을 사로잡고 있다.

Patek Phillippe Ref. 7140
하이엔드 시계의 터줏대감 파텍 필립은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시계 제작에 한창이다. 작년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있는 시계에 이어 올해는 여성용 퍼페추얼 캘린더 시계를 내놓았다. 마이크로 로터로 구동하는 울트라 신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 240Q를 탑재한 시계는 3시 방향에 월과 윤년, 6시 방향에 날짜와 문페이즈, 9시 방향에 24시간 서브 다이얼과 요일을 표시하고 있다. 화이트 오팔린 다이얼에 베젤에 68개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New Tradition & Technic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소재를 보면 골드, 플래티넘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티타늄, 세라믹, 카본 등으로 이어지다가 골드로 회귀하고 있지만 신소재 연구에 활발한 브랜드도 있다. 올해 라도는 작년 세라믹과 산화 티타늄 합금의 세라모스를 로즈 컬러로 소개했고, 2000℃의 고온에서 진공 플라즈마 처리한 골드 세라믹 소재, 알루미늄만큼 가벼운 밀도의 초경량 세라믹 니트뤼르 드 실리시움 소재를 소개했다. 이들 소재는 가볍고 견고하면서도 골드 컬러를 내, 차후 골드의 대안이 될 듯하다. 리퀴드 메탈을 사용했던 오메가는 이번에 세라믹 베젤에 골드를 넣은 세라골드를 세계 최초로 사용한 시계를 소개했다. 한편 무브먼트 개발도 한창이다. 롤렉스는 시계업계에서는 그 인지도와 명성이 매우 높은 브랜드이지만 무브먼트보다는 소재나 독자적 형태의 개발에 더 치중해왔다. 올해 내놓은 듀얼 타임과 애뉴얼 캘린더 기능을 갖춘 스카이-드웰러는 무브먼트를 포함해 5개의 신규 특허 기술이 투입됐다. 예컨대 베젤을 회전시켜 연동된 크라운으로 날짜, 듀얼 타임 등을 조정할 수 있는 링 코멘드 베젤을 채택하기도 했다. 해리 윈스턴은 2001년부터 독립 시계 제작자와 손잡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한 오푸스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는데, 올해 오푸스 12는 독립 시계 제작자 엠마누엘 부셰가 자전과 공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서 영감을 받아 27개의 핸즈를 갖춘 형태를 선보였다. 5분마다 핸즈가 돌아가는 획기적인 형태다. 이런 창조적인 시계들이 시계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Breguet Classique Chronometrie 7727
2000년대 들어 10년간 1백 개가 넘는 특허를 등록한 브레게. 특히 크로노미터와 레귤레이터에 관한 특허가 많았는데 올해 소개한 클라시크 크로노메트리 7727에 그 기술을 그대로 담았다. 열과 자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실리콘 소재의 레귤레이터 시스템으로 10Hz의 진동수를 구현, 정확성을 높였다. 1/10초 속도로 돌아가는 1시 방향의 실리콘 핸즈가 이를 나타낸다. 시계의 형태는 전통적인 클라시크를 그대로 차용해 전통과 혁신을 한 그릇에 담는 본보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Special Piece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이지만 하이엔드급에 가까워 질수록 예술성이 강조된다. 다양한 보석이 빛나는 스톤 세팅부터 안료로 그린 후 고온에 구워내는 에나멜, 조각도로 깎아내는 인그레이빙, 나무나 돌을 퍼즐처럼 맞추는 마퀘트리 등 오랜 시간 전승된 공예 기술이 30~40m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펼쳐진다. 에르메스는 마퀘트리부터 플리케 아 주르라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유사한 에나멜 기법의 다양한 아쏘 유니크 피스를 소개했고, 디올은 다이얼 위로 올려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이는 로터 위에 깃털을 장식한 디올 윗 그랑발 플룸 시계를 선보였다. 부쉐론은 제라 페리고의 투르비용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를 중심으로 한 주얼리 시계를 소개하는데, 올해는 백조와 흑조를 표현한 큐프리스 투르비용으로 보는 이를 경탄케 했다.

Harry Winston Premier Feather

컬러와 패턴이 다양한 새의 깃털을 가지고 모자이크처럼 장식하는 깃털 세공은 16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법이다. 해리 윈스턴은 이 기법을 시계 다이얼에 응용했다. 세공은 특별히 깃털 세공 장식 기술로 유명한 넬리 소니어(Nelly Saunier)에게 의뢰해 제작했다. 여기에 펜던트 시계로 깃털 장식이 일품인 얼티메이트 아덜먼트 타임피스도 함께 소개했다.
Bulgari Serpenti

뱀이 똬리를 틀 듯 팔목을 유연하게 휘감는 형태의 세르펜티는 불가리의 시그너처 컬렉션. 매년 새로운 기법으로 소개되는데, 올해는 섬세한 금세공 비늘 위에 젯 블랙, 아이보리 화이트 컬러의 에나멜을 덧입힌 형태로 제작됐다. 그 위에 다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반짝이는 아름다운 뱀을 완성했다.
The Great Anniversary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브랜드 탄생, 컬렉션 론칭 등 유난히 기념할 이슈가 많은 곳이 시계업계인 듯하다. 올해 론진은 1832년 창립 1백80주년을 기념해 론진 컬럼휠 크로노그래프, 아가씨즈, 라 그랑드 클래식 등 기존 컬렉션마다 1백80주년 에디션을 내놓는가 하면 본사가 터를 잡은 지명을 딴 생띠미에 컬렉션을 선보였다. 1892년 창립한 해밀턴 역시 올해 1백20주년을 기념한 특별한 시계를 내놓았다. 자체 제작한 코엑시얼 무브먼트로 모두 교체하고 있는 오메가는 매년 달 착륙 시 착용한 시계를 기념한 에디션을 내놓는데, 올해는 달 착륙 50주년 되는 해라 더 특별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Omega Speedmaster “First Omega in Space”
Numbered Edition Chronograph

엄격한 미국 우주항공국의 심사를 통과해 1962년 최초의 우주 탐험을 수행한 우주 비행사 월리 쉬라

가 스피드마스터를 착용한 지 5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한 에디션이다. 초창기 버전을 바탕으로 제작한 시계는 지름 39.70mm의 폴리싱한 무광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전설의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 1861을 탑재했다. 타키미터 스케일이 들어간 알루미늄 베젤과 블랙 다이얼과 같은 시그너처 디자인과 더불어 케이스백에 ‘The First Omega in Space’와 미션 수행 날짜인 ‘October 3, 1962’를 새겨놓았다.
Hamilton Khaki Navy Pioneer Limited Edition
1982년부터 시작된 1백80년의 역사를 기념해 한정판으로 제작한 시계다. 1940년대 해상 시계를 제작했는데 그중 1942년 제작한 시계에서 영감을 받아 1천8백92개 한정 생산했다. 파라 고무나무로 만든 목재 케이스에 담긴 시계는 탁상시계로 사용 가능하고 스트랩을 끼워 손목시계로도 활용할 수 있다.
From Fashion to Watch

‘우린 패션 브랜드가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다.’ 마구, 가방, 주얼리, 패션 등 한 분야에서 시작했지만 사업의 다각화로 여러 분야를 아우르게 된 브랜드들이 내세우는 명제다. 자본과 투자 여력이 충분한 브랜드라면 아예 스위스에 시계 자회사를 두고 전문 무브먼트 제조사와 협력하는데, 샤넬은 오데마 피게 르노 에 파피, 에르메스는 보셰, 루이 비통은 ETA, 라 주 페레레 그리고 인하우스로 무브먼트를 각각 제작하면서 시계업계에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J12란 하나의 컬렉션에 다양한 변화를 보여줬던 샤넬은 올해 이례적으로 프리미에르에 투르비용을 탑재한 모델을 발표해 새로운 확장을 예고했다. 기존 시계 브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르비용이 아니라 샤넬의 아이콘인 카멜리아 꽃을 위에 얹은 형태로 기술과 디자인의 아름다운 결합을 보여줬다. 발렌티노, 베르사체, 펜디 그리고 조만간 기계식 무브먼트 탑재 시계로 합류할 버버리 등 뒤늦게 뛰어들어 다소 미비한 수준이지만 기존 업계에서 쌓은 인지도로 조금씩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패션 브랜드도 눈길을 끈다.

Chanel Premier Flying Tourbillon
오데마 피게 르노 에 파피사와 손잡고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제작해온 샤넬이 올해 탄생 25주년을 맞은 프리미에르 시계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투르비용 무브먼트를 제작했다. 독특하게 카멜리아 꽃 형태를 얹은 투르비용으로 초침 역할을 하는 꽃이 1분에 1회 회전을 하는 방식이다. 베젤과 케이스, 크라운까지 바게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이 특별한 시계는 20개만 한정 생산했다.
Swarovski Piazza Grande

커팅 크리스털과 지르코니아 시장을 장악한 스와로브스키도 뒤늦게 시계 시장에 뛰어든 브랜드. 하지만 특유의 크리스털 소재를 살린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는 2009년에 소개한 베스트셀러 피아짜를 조금 더 키운 42mm 쿼츠와 43mm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한 피아짜 그랑데를 소개해 역시 남성 시계 분야를 늘리고 있다.
Fendi Cameleon & Fendimatica
각기 다른 컬러의 보석을 세팅한 3면의 인덱스를 갖춘 크레이지 캐럿으로 시선을 모은 펜디. 화이트, 블랙, 초콜릿 브라운, 레드 등 다양한 컬러 스트랩을 부착한 카멜레온은 패션 브랜드 특유의 개성을 강조할 수 있는 시계로 선보였다. 한편 기계식 시계를 선호하는 남성들을 위한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한 펜디마티카로 남성 시계 시장을 공략할 조짐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