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오롯이 기대어 생각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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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3, 2024

글 김민서 Edited by 고성연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미

팔공산을 배경으로 대구와 접경하고 있는 경북 군위군. 전국 2백28개 시군구 가운데 인구 소멸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군위는 작년 7월부터 대구에 편입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발 대상에서는 소외되었지만, 그 덕분에 자연이 거의 훼손되지 않아 밤에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청정한 자연을 지키고 있다. 군위군 부계면에 330,000㎡(약 10만 평) 규모로 자리한 사유원(思惟園). 한 기업가의 오랜 꿈과 치열하고도 집요한 애정으로 조성된 곳이다.



고대하던 사유원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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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차로 40분가량 달렸을까. 날이 좋아서인지 더욱 맑게 흐르는 듯 보이는 창평저수지를 아래 두고 팔공산을 바라보는 전망 좋은 산 자락에 자리한 사유원에 도착했다. 몇 년 전 경북 어딘가에 포르투갈이 낳은 건축 거장 알바루 시자(A´lvaro Siza)의 ‘작품’이 놓인 거대한 산지 정원이자 수목원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 일정을 고심만 했다가,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조경가 정영선 전시에서 다시 접하고는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정원’이라지만 그래도 산에 올라야 하니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6월 초는 나름 이곳을 찾기에 적기가 아닐까 싶다. 사유원에 도착하자마자 첫눈에 들어온 것은 입구에 세워진 치허문이다. ‘극도의 비움에 이르러 지극한 평온을 지키다’라는 노자의 도덕경 16장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에서 따온 이 이름은 이곳이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님을 알려준다. 자연을 오롯이 느끼고 거닐면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치유할 수 있는 장소로 세심히 설계된 덕인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평온함이 느껴져온다.
현재 사유원에는 야자 매트가 깔린 산책로만 6.4km 길이로 펼쳐져 있으며, 정식으로 조성되지 않은 산책로까지 포함하면 10km 이상이다. 수목 초화류는 1천1백여 종이 있으며, 9개의 주제 정원과 알바루 시자를 비롯해 승효상, 최욱, 박창렬 등의 건축가들이 설계한 30개의 건축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조각, 석상, 드로잉 등 다양한 소장품 1백여 점도 함께해 자연과 예술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이곳의 매력에 보탬이 되어준다. 이렇듯 객관적 정보를 슬쩍 읊기만 해도 평범하지 않은 이 커다란 정원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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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한성을 딛고… 그리고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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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원 설립자 유재성 전 TC태창 회장은 어린 시절, 죽을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잘 걷지도 못해 친구 등에 업혀서 학교에 다녔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지만 이른 나이대부터 일찌감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맞닥뜨렸고, 언제 병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다. 그러면서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20대가 되어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은 상사를 물려받아 대구 북성로에서 철재상을 시작했다. 사업은 7개의 관계사와 2개의 공익 재단(문화 재단, 장학 재단)을 품을 만큼 성장했다. 사업을 성장시켜 나가던 치열한 과정에서도 어릴 적 정원에서 느낀 정서적 위안을 기억한 그는 공장 곳곳에 한국 정원을 만들며 훗날 정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향해 나아갔다. 현재 대구 본사 부지 약 14,876㎡ (4천5백 평) 중 약 4,958㎡(1천5백 평)를 정원에 할애했다니, ‘나무’에 대한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다.
그가 ‘정원에 대한 꿈’을 향해 내딛은 첫 행보는 나무를 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두 그루 사 모은 나무는 전국 곳곳에 농장을 분양받아 옮겨 심었다. 그러다가 나무를 위한 보금자리가 될 땅을 찾아다녔고, 대구를 상징하는 팔공산을 마주보는 군위군 부지를 낙점했다. 정원을 만들겠다는 어린 시절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전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2006년 3월, 군위군 부계면의 부지를 매입한 유 회장은 2년 뒤 수목원 조성 계획 인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이 곳에 처음 뿌리를 내린 나무는 2009년에 심은 배롱나무. 이 나무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는 모과나무를 추가로 들였다. 한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선생이 현재 ‘풍설기천년(바람, 눈, 비를 맞으며 세월을 이겨내 1천 년을 가는 모과 정원이 되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위치에 터를 잡고는 모과나무 정원을 만들었고, 이로써 사유원의 심장부가 형성된다.
사실 모과나무에 얽힌 에피소드는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일본으로 밀반출될 운명에 처한 3백 년 된 모과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 회장이 4배에 달하는 웃돈을 들여 네 그루를 처음 사들인 것이 인연의 시작점이다. 현재 약 19,834㎡(6천 평) 부지에 옮긴 108그루의 모과나무가 자태를 뽐내는 아리따운 정원은 사유원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각 모과나무에는 구입한 날짜와 장소, 판매자를 기록한 현판이 붙어 있어, 이 모과나무들이 사유원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알 수 있다. 풍설기천년 말고도 배롱나무 밭인 ‘별유동천’, 느티나무 숲 ‘한유시경’, 매화 언덕 ‘매산첩첩’ 등 다양한 수종이 군집해 있어 저마다의 산책로에 따라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게 사유원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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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 부계면에서 비로소 실현된 알바루 시자의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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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개인의 정원으로 조성된 사유원을 대중에게 공개되도록 물꼬를 튼 것은 ‘소요헌’이다. 건축계 최고 영예로 여겨지는 프리츠커상(1992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해온 ‘건축의 시인’으로 불릴 정도로 칭송받는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에는 장자의 소요유(‘우주와 하나가 되어 편안하게 거닐다’란 의미) 사상이 반영되었다. 아마도 20세기 가장 유명한 반전(anti-war) 회화인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상설 전시를 위한 작업이었던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어야 할 이 건축물은 프로젝트 중단으로 알바루 시자의 캐비닛에 묵혀 있었는데, 그로부터 수년 뒤 한국의 어느 지방 도시에 실현된 것이다. 알바루 시자는 전쟁과 희망을 담은, 본연의 목적이 있다며 설계도를 주기를 거절했지만, 사유원이 위치한 지역이 한국전쟁 격전지였다는 스토리텔링의 진정성으로 결국에는 그를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소요헌은 소문자 y 형태 구조로, 기존 설계안에 계획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임신한 여인’ 대신 시자의 조각들이 설치되었다. 좀처럼 발걸음을 떼기 어려울 만큼 예술적 오라가 진하게 흐르는 소요헌에서 피카소의 ‘임신한 여인’ 자리에 위치한 하얀 ‘생명의 알’ 조각을 보고 뒷문으로 나오면, 사유원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마주한다. 시자의 또 다른 작품인 ‘소대’다.
소요헌에 이어 시자는 한국 가톨릭계 지식인 김익진 선생에게 헌정하는 경당 ‘내심낙원’을 설계했는데, 두 건축물을 완성한 이후에 작은 전망대를 짓고 싶다며 먼저 제안을 건넸다. 방문객들이 소요헌을 안이 아닌 밖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건축물이 자연보다 돋보이지 않기를 고집한 설립자는 위로 우뚝 솟은 소대의 설계를 처음에는 탐탁지 않아 했으나 요청을 받아들였고,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건축가의 의도를 완벽히 파악하게 된다. 실제로도 소대에 올라서야 소요헌의 y자 형태가 오롯이 드러나며 비로소 건축물을 온전히 이해한 듯한 기분이 든다. 안타깝게도 1933년생으로 90대인 알바루 시자는 건강상의 이유로 아직까지 사유원을 찾지 못했다. 소요헌 중간 정원에 심은 5그루의 목련나무는 시자가 가장 ‘애정’하는 나무로, 봄날에 청초하게 꽃을 피운 사진을 보고 그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니 사뭇 절절하고 애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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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승효상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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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기발한 명칭이나 아이디어에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도 여럿 있다. 다소 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비교적 드문 ‘와사(명상의 수도원이 물길 따라 누웠다는 의미)’는 잔잔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긴다. 와사는 붉은 코르텐강을 접어 만든 구조물로, 생태 연못을 바라보며 물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기도소, 식당, 도서관, 침실 등 수도원 공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네 곳으로 구획되어 있고, 건축 터에 자리 잡은 나무들을 자르거나 해치지 않으며 조화를 이룬다.
사유원에서의 종일 산책 여정은 승효상의 또 다른 건축물 ‘현암’에서 정점에 다다른다. 원래는 옮겨 심은 나무들이 잘 자리 잡는지 보려고 설립자가 머물기 위해 지은, 사유원의 첫 번째 건축물이다. 마치 본래 이곳에 존재해왔던 것처럼 최소한의 형태로 지은 현암은 어디에서 바라본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지 알고 있는 듯하다. ‘티하우스’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실내에서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다과를 즐길 수 있는데, 멀리 알바루 시자의 소대가 조그맣게 보이는 파노라마 풍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아도 사유원(思惟園)이라는 이름의 정체성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되는 듯하다. 조각가가 돌에서 형상을 발견하듯, 건축가도 자연에서 건축을 발견하는지 모른다. “건축은 무엇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The creation of a building is not a matter of what it looks like, but what it wants to be)”라는 루이스 칸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건축은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마치 그곳에 자리한 나무처럼 풍경과 하나가 된다. 돋보이려 하지 않고, 억지로 무언가를 담으려 하지 않는다. 현암에서 바라본 풍경과 현암이 놓인 풍경, 어느 것도 지나침이 없다.
많은 이들이 하이라이트로 꼽을 만큼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가야금 연주 프로그램을 만든 것처럼, 사유원 설립자는 나무와 건축뿐 아니라 음악에도 깊은 조예가 있다. 그는 장학금을 통해 국악인을 육성하는 등 다양한 공익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유원에서 ‘국악 축제’ 개최를 고민하고 있다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사이로 들리는 가야금 연주 소리를 상상해본다. 사실 방문 전에는 사유원 웹사이트를 보고 수목원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며 투덜댔지만,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저절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사유원을 한 걸음 한 걸음 거닐 때마다 이곳이 단순한 수목원이 아님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 2006년부터 15년에 걸쳐 완성된 사유원은 한 사람이 50년 동안 준비한 꿈의 결실이자,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곳이다. 원대한 마스터플랜 없이 오로지 설립자의 개인적 상상에서 빚어진 사유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유원을 떠나면서 해가 바뀌는 시기든, 계절이 바뀌는 시기든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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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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