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백 년 넘도록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중추였으며 지금도 수도인 비엔나. 합스부르크 왕가가 남긴 찬란한 문화 예술 유산과 살기 좋은 도시 순위권에 늘 드는 균형 잡힌 인프라를 지녔기에 비엔나 시민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21세기 들어 문화 허브로 부상한 베를린과 은근한 경쟁을 하면서도 그 콧대는 잘 꺾이지 않는다. “여기가 지루하다고 베를린에 가는데, 베를린에 가면 역시 살기에는 최고라면서 비엔나로 돌아온다니까”라거나, “우리가 도시 크기는 작아도 미술관 숫자는 베를린보다 많잖아”라는 등의 자찬을 들으면 그저 미소 지을 수밖에. 하지만 20세기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상처를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가 오스트리아인 만큼, 다른 면모도 있다. 소위 ‘어르신’ 세대는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고 그러한 성향이 특유의 보수성과 얽혀 더 완고하게 나타나기도 했지만, 젊은 세대를 위시해 지금의 분위기는 다르다. 세계대전의 아픔을 스스로 상기하는 희생자들의 길거리 사진전이라든가 건물의 표정을 개성 있게 바꿔놓는 스트리트 아트 등으로 알 수 있는 변화다.
●● 스트리트 아트는 ‘거리의 미술관’이라고도 하지만 반달리즘 성격의 낙서 행위로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비엔나에서도 그런 굴곡을 거쳤지만 이제는 ‘비둘기’ 사인으로 허용하는 등의 체계를 갖추게 됐고, 다뉴브 강가를 비롯해 도시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그 정점에는 2014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는 ‘칼레 리브레(Calle Libre)’가 있는데, 중부 유럽 최대 규모인 스트리트 아트 축제다. 창립자 야코프 카트너(Jakob Kattner)는 남미 지역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트리트 아트에 관심을 갖게 됐고, 스페인어로 ‘자유로운 거리’라는 뜻의 이 축제를 열게 됐다. 올해 탄생 10주년을 맞이한 칼레 리브레는 지금까지 13개 구, 70개 넘는 벽을 다국적 아티스트들의 ‘캔버스’ 삼아 거리 풍경을 바꿨다. 마리아힐프(Mariahilf)나 노이바우(Neubau) 같은 정갈한 동네에 저마다의 감성과 사회, 문화적 메시지를 담은 담벼락 아트를 접하는 건 경쾌한 흥미를 선사하는 경험이다.
● 인구 2백만 명도 채 되지 않지만 녹지가 절반가량이나 되는 비엔나(도시권 면적은 서울시의 3분의 2 정도인 415km²)는 공원, 정원, 숲 등이 많아 걸어 다니기에 좋아 모두를 위한 ‘산책로’ 그 자체다. 흔히 ‘MQ’라 불리는 비엔나의 ‘아트 허브’ 역할을 하는 무제움스크바르티어(MuseumsQuartier) 역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원래 황실 마구간이던 MQ 부지는 역대급 문화 예술 프로젝트의 추진으로 지난 2001년 복합 공간으로 거듭났는데, 미술품 수집가 루돌프 레오폴트의 이름이 새겨진 석회암 파사드가 눈에 띄는 레오폴트를 비롯해 회색빛 현대미술관 무모크(Mumok), 어린이 미술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창의성의 보고인 Q21 등 다양한 전시 공간이 모여 있고, 교육 시설과 아티스트 레지던스도 갖추고 있다(한국 작가들도 참여한 적이 있다). 또 안뜰에는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야외 광장을 두었는데, 이 덕분에 MQ는 ‘비엔나의 거실’이라는 애칭으로 통하기도 한다.
●● 필자는 예전에 MQ를 찾았을 때 야외 광장에 비치된 긴 의자에 앉아서 햇볕을 쏘이며 휴식을 취하거나 독서를 하는 이들, 인기 K-팝 걸 그룹 트와이스의 노래를 틀어놓고 댄스 연습을 하는 소녀들 등 ‘거실’의 다양한 면면을 본 적이 있다. 이번 겨울에 갔을 때는 쌀쌀한 날씨 탓에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밑동을 그물로 싼 나무 설치물이 여기저기 놓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색다른 풍경은 MQ가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전략을 반영한 결과물 중 하나다. MQ를 이끌고 있는 베티나 라이들(Bettina Leidl) 디렉터는 ‘MQ goes Gree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환경을 주제로 한 아트 프로젝트는 물론 단지 자체의 ‘녹색화’, 자원 절감형 운영을 해나가며 2030년까지 MQ 전체를 ‘기후 중립(climate neutral)’에 들어맞는 문화 지구로 변모시키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비엔나의 거실’을 다시 거닐다 보니 봄과 여름이면 더 짙은 녹음과 화사한 자연의 색채로 뒤덮일 MQ의 풍경이 머리에 떠오른다.
2 MQ 단지 중앙에 있는, 야외 광장이 자리한 안뜰을 오갈 수 있는 여러 보행자 통로(passage)가 있는데(9개), 각기 주제를 달리해 꾸며져 있다는 점도 재미나다. 사진의 통로는 만화를 주제로 한 ‘카비네트 코믹 파사주(KABINETT comic passage)’다. 각 통로에는 관련 책자를 2유로에 구매할 수 있는 벤딩 머신도 있다.
3 MQ는 친환경 문화 지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Photo by 고성연
[ART + CULTURE ’23-24 Winter SPECIAL]
03. 가장 사적인 ‘취향 페어링’을 찾아서 보러 가기
05.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세상의 시선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예술 보러 가기
06.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고전부터 컨템퍼러리까지 아우르는 월드 클래스 컬렉션과 기획전 보러 가기
07.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비엔나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새 랜드마크들 보러 가기
08.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차근차근 보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는 미술 시장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