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유토피아를 다시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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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 2023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디블렌트 CD)

백남준의 작품은 언제나 다시 태어난다. 마치 고대의 유적처럼 발굴되어 우리를 사유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백남준이라는 작가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나 있을까? 전시 산책을 하다 보면 여전히 어디에선가 튀어나오는 그의 새로운 작품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그는 현대음악가였고, 비디오 아티스트였으며, 사상가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사유자였고, 문화 외교관이었으며, 퍼포먼스 아티스트였고, 미디어 아티스트였다. 그가 작품으로 예측한 기술이 모두 현재형이 된 시점에서, 그가 현존한다면 과연 그가 생각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메타버스, 멀티버스, NFT 등 최첨단 기술의 변화가 바꿔나가는 지금의 삶과 예술이 그가 추구했던 ‘아름다움과 조화’에 맞닿아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는 매 순간 기술과 이어진 예술로 ‘낙관적인 미래’를 꿈꿔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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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백남준이 지금 살아 있었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그는 어쩌면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아 수많은 행성을 대상으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 같은 시리즈물을 발표할지도 모르겠다. “20세기를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는 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자연과 인류가 전자 매체를 매개로 공생하는 세기가 될 것이다”라고 백남준이 말했듯(1993년), 자연과 인류 그리고 우주가 어떤 매체로 공생할 수 있을지에 관련한 그의 예언이 무척 궁금하다. 거기에는 분명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미 그는 인간과 기술, 자연이 어우러지는 유토피아를 꿈꿨고 이를 작품으로 실현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이 아무리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더라도, 사실 백남준의 작품은 그의 생각처럼 어떤 순간에든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준다. 태풍이 불기 전에 시원한 바람의 아름다움을 느끼듯 그의 작품이 그렇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설사 내용을 모르고 보더라도 백남준의 작품은 어린아이도 금방 즐거워지게 만든다.
얼마 전 키아프와 프리즈 아트 페어의 동시 개막과 더불어 펼쳐진 아트 주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국내 최초 공개한 백남준의 대형 레이저 설치 작품 ‘트랜스미션 타워’도 마찬가지다. 백남준의 ‘트랜스미션 타워’는 뉴욕 9·11 테러가 일어난 이듬해인 2002년 뉴욕 록펠러 센터 앞에서 세계에 평화와 위로를 전달했던 작품이다. 당시 아카이브 영상을 보면, 뉴욕 록펠러 센터 앞 반짝이는 타워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은 백남준이 휠체어에 앉아 한 손으로만 피아노를 두드리는 광경을 보게 된다. 은색으로 칠한 오래된 자동차들(‘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조용히 연주하라’) 사이로 거대한 타워가 서 있고, 담백하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에 따라 타워 위 레이저 선들이 하늘을 수놓는다. 백남준의 레이저 협업자 노먼 발라드가 백남준의 피아노 사운드에 맞추어 네온과 레이저가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해 노년의 거장을 도왔다. 백남준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이저 광선은 대단히 신비스럽고, 달콤하고, 숭고하기까지 하단 말이야”라고. 당시 투병 중이었던 백남준에게 레이저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였다.
20년 만에 국내에 첫 공개된 ‘트랜스미션 타워’는 클래식 자동차 5대, 모차르트의 진혼곡과 함께 백남준아트센터 뒤뜰에서 선보였다(12월 3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특별전 <트랜스미션: 너에게 닿기를> 전시의 일환). 레이저와 네온이 만들어내는 빛도 신비롭지만, 백남준을 오마주한 윤제호 작가의 레이저와 사운드 디자인이 더해지며 현대성이 증폭되었다. 먼 우주에서 오는 주파수 같은 사운드와 함께 타워의 레이저가 숲과 언덕에 쏟아질 때 오로라가 펼쳐지는 북유럽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하기도 하고, 막막한 우주에서 행성을 보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백남준의 끝은 어디까지일까’라는. 그리고 우리는 백남준이 레이저 빛으로 상상했던 정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의 예견처럼 인간과 기술이 균형을 이루는 환경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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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 인간과 기술,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등 장르 간 경계를 뛰어넘고 혁신과 통합을 실천한 세기의 낙관적인 예술가라는 점은 현재 시점에서 두손 갤러리의 전시 <I never read 1984>(10월 28일까지)에서 느낄 수 있다. 전시 제목은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적 소설 <1984>를 이용한 것이다. 사실 소설에서 1984년 미래는 테크놀로지 기계에 감시당하는 통제된 디스토피아적 삶으로 묘사되지만 1984년 1월 1일 백남준은 인공위성을 활용해 텔레비전 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이며, 기계문명에 대한 절망과 비관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를 통해 전 세계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전시인데, 그중 ‘Video Chandelier’ 작품이 새롭게 다가온다. 인간과 자연, 기계의 공생을 꿈꾼 백남준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식물과 TV를 결합하고 샹들리에를 더한 무척 아름다운 작품이다.
“한편에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고, 다른 한편에 소통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가끔 그 둘이 그리는 곡선이 교차한다(그러나 소통과 전혀 연관이 없는 예술 작품도 수없이 많고, 예술적인 면이 전혀 없는 소통도 많다). 그 지점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다. 어쩌면 우리의 꿈일지도 모른다.” 1980년 3월 뉴욕 현대미술관의 학예사 바버라 런던이 기획한 <비디오 관점들> 시리즈의 하나로 백남준은 ‘임의 접속 정보’라는 강연을 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소통은 인간과 자연, 자연과 기술, 인간과 기술의 소통이었다. 하지만 꿈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평생 음악, TV, 비디오를 통해 소통, 공유, 분배를 꿈꿔왔던 그는 노년에도 여전히 새로운 매체인 레이저를 탐구하며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꿈이 담긴 작품이 공개될 때마다, 적어도 우리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빛이 존재한다는 걸 일깨워주는 백남준은 어쩌면 지금도 먼 우주 어딘가에서 쇼팽의 에튀드를 연주하면서 ‘빛’을 보내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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