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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2, 2023

글 고성연

The Women Who Inspire Us_16 Design Thinkers

우리는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있다. 오늘날에도 성별이나 인종, 나이 등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관념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래도 일부 국가나 지역을 제외하면 제도적 차원의 억압은 별로 찾아볼 수 없지만, 불과 1백 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미국에서 여성 투표권이 인정된 것은 1920년이다. 뉴질랜드는 참정권에서 가장 앞선 나라였는데, 19세기 중반만 해도 재산이 있는 유럽 출신 남성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됐고, 여성 투표권을 적용한 선거는 1893년에야 치러졌다. 장벽을 거뒀다고 해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기관으로 모더니즘의 산실인 독일 바우하우스가 1919년 개교했을 때 지원자는 의외로 여학생 84명, 남학생 79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는 여학생 정원을 대폭 축소하고, 직조 공방 같은 제한된 영역으로 유도했다. 그렇다 보니 여성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이름을 남기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대화의 빠른 물살 속에서도 편견을 딛고 자아실현을 한 선구자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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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중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개봉한 그레타 거윅 감독 연출의 영화 <바비>. 배우·감독·작가로 활약하는 ‘팔색조’ 그레타 거윅의 국내 팬이 은근히 많은 데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배우 마고 로비, 게다가 <라라랜드>의 주연 배우 라이언 고슬링까지 합세한 터라 이목이 많이 쏠렸다. 여성이 원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상의 바비랜드와 남성이 지배하는 현실의 극단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성별 갈라치기 현상을 나름 재기 발랄하게(하지만 ‘항마력’ 달린다는 호소가 나올 만큼 오글거린다는 평도 많다) 일깨우면서 어디서 뭘 하든 스스로를 잃지 말고 자아실현을 추구하자는 주제를 담고 있다. 거윅 감독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톡톡 튀는 감성이 전혀 묻어나지 않은 건 아니다. 화면도 예쁘고 사운드(음악)도 준수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블록버스터를 노린 12세 관람가의 대중 영화라 그런지 내용만 보자면 개인적으로는 이미 아는 메시지를 그다지 ‘에지 있게’ 비틀거나 맛깔나게 버무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폭넓은 대중을 아우르는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잡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런 시도를 응원하고 싶은 이유는 마고 로비가 제작자로 나섰다는 배경 때문이다. 사실 마고 로비는 2014년부터 제작사 럭키챕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스크린에 담아내왔다. <바비>처럼 제작과 주연을 맡은 피겨 스케이터 토냐 하딩의 이야기 <아이, 토냐>, 제작자로만 참여한 <프라미싱 영 우먼> 등이 럭키챕의 작품이다. 왜 이런 시나리오만 있냐고 비판만 일삼기보다 자신이 쓰고 싶은 얘기를 쓰고, 만들고 싶은 작품을 제작하는 그녀들이기에 차기작을 지지하고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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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키친의 효시 ‘프랑크푸르트 키친’에서 비롯된 담론
현대사회에서는 적어도 교육 커리큘럼이나 사회제도 면에서 대놓고 차별을 가하는 풍경이 흔하지 않다. 물론 직업군이나 위계를 볼 때 성비 불균형은 존재하지만 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성차별적 메시지를 주입하는 부모나 교육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외려 ‘잘난 여성’에 대한 환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눈에 띈다. 그래서인지 <바비>에서도 모든 면에서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으로 생기는 ‘슈퍼 우먼’ 증후군이라든가 다른 재주 없이 외적인 아름다움이 주 장점인 여성은 열등감을 느껴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지적되는 장면이 더 깊이 와닿는다. 빈익빈 부익부의 양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평범에 머무르면 행복하기 힘들 것만 같은 현실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듯하다. 한 가지 현상이나 사물을 둘러싼 긍정적 인식이나 관점도 실은 또 다른 편견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부산의 복합 문화 공간 F1963에 자리한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는 디자인과 건축사에서 유의미한 주거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홈 스토리즈> 전시가 진행 중인데(오는 10월 1일까지), 이 중 우리의 편견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는 ‘프랑크푸르트 키친’(1926~1927)을 선보이고 있다. 디자인계의 성지로 꼽히는 비트라 뮤지엄의 귀한 소장품으로 최소 면적에서 작업 동선을 집약적으로 설계해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시스템 부엌의 효시’로 통하는 모델이다. 예컨대 가구가 차지하는 부분을 줄여 일의 효율을 높이고 부엌용품을 벽걸이나 서랍형으로 보관하도록 규격화했고, 접이식 다림질판도 설치했다(<근대부엌의 탄생과 이면>). 특히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 디자이너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Margarete Schu··tte-Lihotzky)의 디자인이라 여성이 여성의 편의를 도모했다는 식의 칭송 어린 평가를 받기도 해왔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일부 학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부엌은 어째서 여성성을 부여받는 것일까? 원래 그랬을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듯 부엌이 마치 주로 여성의 공간인 듯한 인식은 언제, 왜 뿌리내린 걸까? <근대부엌의 탄생과 이면>의 도연정 저자는 움집의 중심이 모닥불이었던 점을 상기시키며 부엌의 여성성은 근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불’이 난방과 취사 역할을 담당했기에 부엌의 역사는 도구의 역사로 기록됐고, 전통적인 농경 사회에서는 부엌이 주거의 중심이자 가족이 함께하는 일터였는데,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어 공장 일꾼이 폭증하면서 노동의 분화가 이뤄지고 여성이 부엌일을 비롯한 가사를 맡게 됐다는 설명이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서구에서 중산층 이상의 여성이라면 가사 노동은 하인에게 맡겼지만 점차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면 비생산적으로 치부됐던 가사 노동이 여성의 업무로 규정됐고, 과학적 관리 열풍이 불면서 모듈화된 ‘시스템 부엌’도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디자인 자체의 업적은 차치하고, 부엌의 효율성이 여성의 가사 노동을 더욱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기제로 작동했다는 비판은 곱씹어볼 만한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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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넘어 창조적 역사를 쓴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
<홈 스토리즈> 전시장으로 향하는 입구에 통유리창 바깥의 경치를 감상하는 한 여성의 뒷모습을 담은 커다란 사진의 주인공은 또 다른 맥락에서 디자인 선구자의 길을 개척한 인물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20세기 전반의 흉흉한 전쟁 시기를 겪으면서 브라질로 떠나 시민권자로 여생을 보낸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라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생인 리나 보 바르디는 로마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는데, 건축가를 꿈꿨지만 여성이라는 제약, 무솔리니의 권력자 시절과 전쟁까지 거치며 좀처럼 건축 일을 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밀라노로 옮겨 저명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조 폰티와의 인연으로 디자인 잡지 <도무스>를 위시해 전문 출판 일을 왕성히 하게 됐고, 평론가이자 컬렉터인 남편 피에트로 바르디를 만난다.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결혼으로 맺어진 이 커플은 모든 게 파괴된 이탈리아를 떠나 브라질로 향한다. 리우데 자네이루에 정착한 바르디 부부는 자연의 생기와 따스한 정이 흐르는 현지 환경과 문화에 빠져들었다. 천운이 찾아왔는지 바르디 부부는 브라질의 사업자를 만나 이 지역 최대 미술관인 상파울루 미술관(MASP)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1947년 재단 설립, 1968년 개관). 리나가 설계를 맡은 이 미술관은 4개의 다리가 공중에 떠 있는 커다란 사각형 박스를 지지하는 듯한 형태로 가장 번화한 거리인 파울리스타 대로에 위치하는데, 지상 1층 공간을 많은 이들이 가로지르며 다닐 수 있도록 비워둔 인상적인 건축으로 유명하다. 리나의 창조 여정을 담은 앙헬라 레온의 그림책 속 묘사처럼 ‘그냥 거리 한쪽에 세워지는 건물이 아니라 거리 자체가 미술관의 일부가 되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건축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알 수 있다. 리나 보 바르디는 미술관 내부의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고, 의자와 보석을 만들었으며, <하비타트>라는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브라질에서 첫 번째로 완공된 리나의 설계 작품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였는데(1951), <홈 스토리즈>에서 깔끔한 축소 모형을 전시한 ‘카사 데 비드로(Casa de Vidro)’다. 삼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나무와 식물, 새 등 주변의 자연미를 투명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 집은 모더니즘 건축이 정착함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거론된다.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은 다른 건축가들과 협업해 상파울루의 오래된 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 문화 센터 ‘SESC 폼파이아’인데, 성채 같은 타워를 세우고 유리를 끼우지 않은 구멍처럼 생긴 창이 특징인 독특한 디자인과 다양한 기능의 시설로 남녀노소가 어우러지는 재생 건축의 흐뭇한 예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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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야 제대로 인정받은 2명의 모더니스트, 그리고…
리나 보 바르디는 외국인과 여성이라는 점에서 텃세와 저평가도 겪었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운이 좋은 인물이었다. 유복하고 진취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덕분인지 기가 꺾이지 않았고, 인생의 고비마다 귀인을 만났다. 70대에 들어서도 40대 시절보다 더 많은 일을 의뢰받았다니, 운과 실력도 작용했겠지만 긍정적인 마인드가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에 반해 어느 정도 동시대를 산 유럽 출신의 여성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과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는 인생 후반기 또는 사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와 대접을 받은 선구자들이다. 이 둘의 성장 배경이나 성향은 사뭇 달랐지만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통하는 르 코르뷔지에와 얽힌 인연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페리앙은 르 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그림자 역할을 했던 시기가 있다. 그레이는 연인과의 은신처로 직접 설계한 남프랑스의 E-1027 빌라(1929년 완공)가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부아(1931년 완공)에 앞서 근대 건축 5요소를 야무지게 담아내는 바람에 그의 질투를 샀다는 스토리가 나중에야 알려졌다. 비록 처음에는 실제 건축이나 디자인으로 많이 실현되지 못했지만 씩씩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장수를 누리면서(1903~1999) 꾸준히 스케치를 남긴 페리앙의 작품은 이제 가구 회사나 기관에서 ‘상품’이나 ‘건축 모형’으로 빚어내고 있고, 은둔형 기질의 소유자였던 그레이의 경우에는 몇몇 오리지널 빈티지가 경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고가에 거래되고 있으며, 일부 제품은 현재에도 생산된다. 저마다의 상황과 성향은 달랐지만 이들의 진짜배기 공통점은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자신을 잃지 않고 고유한 창의성을 나름의 방식으로 펼쳐냈다는 점이다. 원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솔선수범해 영화로 만들어내는 21세기의 마고 로비처럼, 쿨하게 자신만의 챕터를 완성하며 20세기를 살아간 당당한 창조적 영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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