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rue urban sanct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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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7, 2022

글 고성연 | 취재 협조·이미지 제공 아만 도쿄(Aman Tokyo)


아만 도쿄(Aman Tokyo)
수년 전 세계적인 팝 스타 레니 크래비츠를 한 샴페인 행사에서 접했는데, 그가 언젠가 ‘하고픈’ 일로 자신이 디자인을 주도하는 호텔 프로젝트를 꼽았던 기억이 있다. 의외는 아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실력뿐 아니라 사진, 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드러내온 그가 반세기 넘도록 지구촌을 누비면서 늘 접한 공간이 바로 ‘호텔’ 아니던가. 레니 크래비츠만큼은 아니더라도 ‘하늘길’을 자주 다니는 여행자라면 낯선 도시에서 처음 들어선 호텔의 환대가 그 도시에 대한 첫인상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고, 그 공간에서의 경험이 전체적인 여행 기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아만 도쿄(Aman Tokyo)는 그러한 좋은 예로 남을 만한 자격을 두루 갖춘 도심의 ‘안식처’다. ‘자연 속 힐링’을 추구하는 럭셔리 리조트의 상징과도 같은 브랜드인 아만이 도쿄에서도 건조하기 짝이 없는 금융가의 마천루 숲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발상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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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위용을 뽐내는 고층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쿄 지요다구 오테마치의 한 길목에서 ‘초록’의 기운이 감지된다. 오테마치 타워로 불리는 38층짜리 건물을 배경으로, 언뜻 샐러리맨처럼 보이는 한 남성이 신문을 정독하면서 앉아 있는 벤치 주변을 고요하고도 해사하게 둘러싸고 있는 건 분명 작지만 짙은 신록이 드리운 숲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절로 배경음으로 작동하는 ‘오테마치 포레스트(Otemachi Forest)’라는 숲이다. 도쿄역과 긴자 등과 가까운 경제의 심장부답게 하이테크 공법이 연상되는 늘씬하고 위압적인 건물이 밀집한 도회적인 풍경 사이로 숲을 품고 있다니, 과연 아만(Aman)이 선택한 장소답다. 사실 인적 드문 외딴섬이나 사막 같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뚜렷이 드러나는 천혜의 환경을 주로 택했던 이 명성 자자한 리조트 브랜드가 도심에, 그것도 인구밀도 높기로 유명한 도쿄 중심가에 호텔을 연다고 했을 때 아만의 많은 골수 팬들은 의아함과 궁금증을 동시에 품기도 했는데, 8년 전인 2014년 아만 도쿄가 공개되자 ‘역시 다르구나’ 하는 반응이 주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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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의 ‘도시 호텔 1호’, 생명력 넘치는 숲을 마당에 두다
실제로 아만이 일본 다테모노 그룹이 개발을 이끌며 2009년 착공한 현재의 건물에 입주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회색조의 빌딩 숲 사이에서 자연의 숨결을 불어넣는 오테마치 포레스트의 존재를 결정적인 여건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한다. 아만 도쿄가 입성하기 10년 전부터 숲을 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지바현 수목원에서 미래의 도쿄 부지에 어울릴 만한 다양한 생태종의 실험을 통해 미리 숲의 모델을 만든 다음 나중에 이식 작업을 진행했다고. 그렇게 조성된 오테마치 포레스트는 상록수와 낙엽수, 야생화 등 무려 2백 종의 식물로 가득하다. ‘도쿄 사막’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대도시 중에서도 대기업, 통신사, 금융기관 등이 모여 있는 중심가에서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호텔 자체는 오테마치 타워의 최상단 6개 층에 걸쳐 들어서 있지만 이 아담한(3,600m²) 숲을 병풍처럼 두른 단층 건물이 야외에 별도로 자리하고 있는데, 아만 도쿄가 운영하는 프렌치 스타일 카페 ‘더 카페 바이 아만(The Cafe´ by Aman)’이다. 풀 내음 가득한 소담스러운 정원을 즐기며 차를 마시기에 안성맞춤인 사랑스러운 카페로, 숲과 더불어 아만 도쿄의 ‘본체’로 가는 길목에서 긍정적인 첫인상을 자아내는 데 쏠쏠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오테마치 타워는 지하철 5개 노선을 낀 오테마치 역과 연결되어 있는데, 지하 아케이드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갈 때도 역시 삭막한 콘크리트 대신 신선한 공기를 머금은 숲의 자태를 마주하게 되고, 운이 좋은 날에는 건물 안팎을 고루 감싸는 포근한 자연광의 세레나데도 느낄 수 있다. 디저트 애호가라면 지하 2층에 위치한 아만의 베이커리 ‘라 파티스리(La Pa^tisserie by Aman Tokyo)’도 기억해둘 만하다. 완성도 높은 몽블랑을 비롯해 일류 파티시에의 솜씨가 돋보이는(투명한 창으로 만드는 과정을 볼 수도 있다)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데, 분주하게 움직이는 보행자들이 짬을 내 한 조각씩 ‘픽업’해 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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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정원을 전망으로 품은 천공의 안식처  
호텔로 올라가면 33층에 넓게 펼쳐진 로비 라운지에서부터 중대한 지분을 차지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매력을 이내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도쿄의 랜드마크를 한눈에 담아낼 수 있는 ‘전망’이다. 사실 이는 도쿄 도심에서 기막힌 포지셔닝의 역학을 선점해낸 소수의 럭셔리 호텔만이 지닌 발군의 장점이기도 하다. 흔히 ‘자본주의 불빛’이라 불리는 휘황찬란한 야경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건축물이 저마다의 오라를 뿜어내는 도시 풍경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놀라운 창조성 사이에서 묘한 기분이 들게도 하지만, 그 전망의 미학은 확실히 압권이다. 특히 아만 도쿄에서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일몰이 드리우는 로비층 라운지에서 바라보는 전망과 인근에 위치한 임페리얼 팰리스 가든의 수려한 조경을 내려다보는 일부 객실에서의 전망이 절로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베니스의 유서 깊은 바우어 호텔 출신인 히라키 마사카쓰 (Masakazu Hiraki) 셰프가 끄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아르바(Arva, 로비층)에서는 임페리얼 팰리스 가든과 후지산을 감상하며 미식을 즐길 수 있다. 우아한 절제미와 시원한 공간감을 동시에 품은 로비 디자인부터 치유의 감성이 제대로 스며든 객실(84개) 디자인 등을 총괄한 인물은 호주 건축가 케리 힐(Kerry Hill, 1943~2018). 아만 도쿄를 비롯해 아만 교토, 아만 코라(부탄), 아만 양윤(상하이) 등의 프로젝트를 이끌며 럭셔리 호텔의 문법을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아만 도쿄에서도 지역의 문화와 역사, 환경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낸 케리 힐의 자연 친화적인 스타일은 유감없이 빛을 발했다. 거의 30m 높이로 솟아오른 채 로비의 중심을 잡아주는 커다란 설치물은 와시(washi, 화지)를 겹겹이 붙여 만들었는데, 햇빛이 들면 은은하게 반사되어 일본의 전통 종이 갓을 연상시킨다. 또 로비의 안락한 소파들 사이로 미야기현에서 가져온 왕관 바위 등으로 장식한 실내 정원도 자리한다. 객실은 고요한 안락함 그 자체다. 나무 바닥과 미닫이문, 다다미 등의 일본식 요소를 반영한 객실에 들어서면 빼어난 전망과 더불어 평안한 정적을 선사하기에 긴자로 쇼핑을 갈 것이 아니라면 굳이 외출을 원하지 않게 될 정도다(호텔 내 쇼핑 가능한 부티크도 있다).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블라인드, 내장형 TV 등 첨단 인프라를 세심히 갖추고 있지만 ‘기술’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특유의 안정적인 고요함은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도구를 굳이 찾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구수한 호지차와 함께 전망을 감상하다가 어느새 낮잠이 들거나 히노키 향을 그윽하게 풍기는 욕조에서 야경을 벗 삼아 느긋하게 즐기는 목욕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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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자기 성찰로 이끄는 ‘웰니스’ 공간
이렇듯 그저 공간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을 만큼 안락한 매력을 지닌 휴식처라면 긴장을 풀도록 도와주고, 더 나아가서는 자아 성찰로 이끄는 공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공간도 심신의 치유를 책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일상의 균형을 찾아가도록 이끄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는 있다. 사실 누구나 웰니스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꾸려볼 수는 있지만 결국은 스스로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가 힘든 게 아니겠는가. 아만 도쿄는 ‘웰니스’ 프로그램으로도 자부심이 큰데, 일단 도쿄의 유수 호텔 가운데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하드웨어’부터 남다르다. 넓고 푹신한 데이베드를 갖춘 아름다운 수영장과 24시간 열려 있는 피트니스 센터, 사우나, 도쿄의 명물 ‘스카이 트리’를 볼 수 있는 전망을 갖춘 휴게실 등으로 구성된 ‘아만 스파 도쿄’ 시설이 2개 층에 걸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마법의 손길’을 지닌 숙련된 마사지 테라피스트의 내공을 느껴보고 싶다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전문 스파의 메뉴도 구비되어 있다. 아만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스파 제품의 섬세한 품격도 느껴볼 수 있는 시설이다. 호텔 차원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꾸리는 필라테스 수업도 은근히 수요가 많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프런트 데스크에서 요가 매트를 빌려 객실에서 스트레칭과 명상을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평화(peace)’를 뜻하는 브랜드명을 지닌 아만답게 이 공간에서 누리는 모든 여정에는 서두름과 긴장을 배제하는 느림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아마도 이처럼 치유 가득한 휴식을 지향하는 세심한 설계와 그 배경 속 철학이 아만을 단순히 ‘럭셔리 호텔+리조트’라고 부르기를 망설이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원래 ‘체험 경제’ 시대에 호텔이 도시 여행자에게 어떤 궁극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공간을 찾아온 해외 방문객이 대다수였지만 팬데믹을 계기로 내국인에게도 아만 도쿄의 매력이 많이 알려졌다는 후문이다. 정반대 개념처럼 보이는 것들조차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빌딩 숲 사이 천공의 안식처는 핀란드가 낳은 불세출의 건축가 알바르 알토가 ‘예술과 기술’의 상호 관계를 다루면서 인용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시를 떠올리게도 한다.


쇳가루 속의 사금 /
은빛 보리수 아래 동색 뱀 /
이것은 나무 요정의 수수께끼 /

이것은 너와 나의 이야기 /
_by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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