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 위 우리, 부산비엔날레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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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5, 2022

글 고성연

2022 BUSAN BIENNALE


미술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비엔날레(biennale)’라는 단어는 크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 미술전을 일컫는 이 단어는 20세기 후반 미술의 글로벌화 흐름과 더불어 새로운 비엔날레가 급증하면서 우리네 일상에 등장한 지 꽤 오래됐다. 부산은 1981년 지역 작가들이 뜻을 모아 탄생시킨 부산청년비엔날레를 전신으로 하는, 우리나라 비엔날레 역사에서 ‘최초’이자 ‘자발적’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도시다. 사실 역사성이나 정통성을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잘 알다시피 부산은 대체 불가한 매력을 품은 축제의 무대이지만 말이다. 특히 2018년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의 등장을 계기로 점차 부산의 원도심 일대를 탐색할 수 있게 된 ‘미술 산책’ 동선은 그야말로 ‘강추’할 만하다. 을숙도, 부산항 제1부두, 초량, 영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2022부산비엔날레의 현장을 소개한다.

올해 부산비엔날레 개막은 공교롭게도 서울을 들썩이게 한 아트 페어 프리즈(Frieze)와 키아프(Kiaf)의 오프닝과 같은 날에 떨어졌다. 정확히는 프리뷰 날짜가 겹친 건데, 일부 참여 작가도 방한했기에 상당수 미술계 관계자는 분신술이라도 구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 될 만큼 안타까워했다. 키아프와 프리즈가 공동 개최한 첫 번째 글로벌 행사인 만큼 아무래도 뭇시선이 서울에 쏠린 건 사실이다. 더욱이 구매 의도가 있는 컬렉터라면 ‘VIP 프리뷰 데이’를 사수해야 ‘찜’한 작품을 놓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아트 페어는 소수의 컬렉터와 상업 화랑이 작품을 사고파는 장터이고, 비엔날레는 동시대 다국적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접할 수 있으며, 크고 작은 담론의 장이 전개되는 ‘다중’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전람회’로, 행사의 본질 자체가 엄연히 다르다. ‘전시’라는 공통분모는 있지만 그마저도 아트 페어는 예나 지금이나 회화가 장악하는 한편 작금의 비엔날레는 영상이나 설치 작품이 주를 이루기에, 사뭇 대조적인 풍경이 빚어진다. 아트 페어는 단기간에 끝나지만 비엔날레는 대개 한 달 넘게, 길게는 반년에 걸쳐 이어지는 대장정을 펼친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사람들의 이동과 요동치는 역사 등을 함축한다는 타이틀 <물결 위 우리(We, on the Rising Wave)>를 내건 2022부산비엔날레는 65일 동안 열린다(11월 6일까지). 그러므로 늦지 않았다. 우리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의제를 글로벌 작가(25개국 64팀/80명)의 시선과 다매체로 버무려낸 예술적 오라(239점)를 느껴보고 싶다면,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향하면 된다. 미술을 통해 내는 다양한 목소리로 인한 ‘각성’과 ‘통찰’, 또는 부산의 ‘영혼’에 좀 더 다가서는 ‘발견’에 이르게 될지 누가 알랴. “부산의 뒷골목 이야기는 세계의 대도시와 연결되고, 교차하고,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각기 다른 현재를 사는 모두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제안한다”는 부산 출신 김해주 전시 감독의 설명처럼 말이다.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 부산항 제1부두, 초량, 영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전시는 ‘이주’, ‘여성과 여성 노동자’, ‘도시 생태계’, ‘기술의 변화와 로컬리티’ 등 4개의 주제로 이뤄져 있음을 기억하며, 부담 없이 떠나는 문화 산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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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1_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MoCA)
사실 필자는 비엔날레 예찬론자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을 비롯해 지구촌 곳곳에서 저마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비엔날레의 ‘과잉 현상’을 안타깝게 여기는 편이다. 비엔날레가 시대정신을 긍정하는 데 갇혀 있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이나 우리 국민, 그리고 타국인에게도 영감을 선사할 수 있는 ‘글로컬(glocal)’한 면모를 따질 때, 부산이라는 도시와 비엔날레의 궁합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시원스러운 바다와 아기자기하게 굴곡진 언덕을 도처에 둔 천혜의 자연 경관은 물론이고 사연도 많고 흥도 많은 역동적인 항구도시라니, 어떤 기획자라도 탐낼 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2018년 을숙도 생태공원에 문을 연 부산현대미술관(MoCA)의 등장을 계기로 해운대 일대에 머물던 비엔날레의 주 무대를 바꾼 건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다. 관광지로 익숙한 해운대가 아니라 ‘작은 어촌에서 출발해 바다를 메워 땅 위에 일군’ 항구도시라는 부산의 역사와 장소성을 깨우칠 수 있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우선, 주 전시장 역할을 맡은 부산현대미술관이 위치한 낙동강 하구 일대는 다양한 생물종의 터전으로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돼 있다. 1970년대 철새 도래지로 주목받았지만 산업화와 도시 개발 과정에서 크게 훼손됐다가 한때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되기도 했던 파란만장한 이력을 지녔다. 이 같은 배경에서 부산현대미술관은 압축적인 성장과 변화를 겪으며 생겨난 부산의 도시 생태계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환경 파괴 문제를 곱씹어보기에도 적합한 장소에 다름아니다. 전통적인 조각 언어를 뒤집은 영국의 저명한 작가 필리다 발로(Phyllida Barlow)의 대형 설치 작품이 놓인 1층 전시장을 위시해 지하 1층, 지상 2층까지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작품이 빼곡하게 들어선 전형적인 미술관 내 전시 구조라 공간의 미학은 다소 아쉽지만, 주제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다양하고 심도 깊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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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2_부산항 제1부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항구 시설인 부산항 제1부두. <부산의 탄생> 서문에서 저자 유승훈은 민족의 정서가 스며든 부산항 제1부두가 해방 후에도 귀환 동포들이 짐을 풀고 희망을 디딘 곳이자, 한국전쟁기에 미군이 무기를 내린 공간, 피란민을 위한 구호품이 수송된 장소로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증인’ 노릇을 했다고 말한다. 북항 재개발 계획으로 매몰될 위기에 처했던 제1부두는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아 재개발 계획에서 분리됐고,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제1부두내 약 4,000㎡ 규모의 옛 창고 건물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장내로 들어서면 경남 진해에서 수급했다는 굴 껍데기 더미를 단 나무 기둥을 원형으로 배열한 호주 작가 메건 코프(Megan Cope)의 설치 작품 ‘킹인야라 구윈얀바(Kinyingarra Guwinyanba)’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패총을 연구하는 작가는 산업 수요에 맞춘 굴 생산의 폐해를 주시하며 호주의 전통 양식을 재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이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함께 상영되고 있다. 그 뒤에 자리한 광목이 하얗게 드리운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끄는데, 김주영 작가의 ‘제1부두의 고고학: 물결은 빛이 되다. 바람이 되다. 길이 되다. 역사가 되다’라는 작품이다. 1948년생인 작가는 전후 한국의 역사적 비극인 분단 속에서 마주하게 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 떠남과 귀환의 반복이 이어지는 노매딕한 작업 여정을 꾸준히 해왔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4원소(쌀, 재, 황토, 소금) 중 소금을 바다 물결에 담으며, 제1부두에서 거둔 새의 사체를 위한 영혼제를 치렀다. ‘전자 식민주의’ 이론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서사를 전개하는 타비타 르제르(Tabita Rezaire)의 ‘밀물과 썰물 아래’, AI와 머신 러닝으로 강화되는 감시와 검열의 시대에 살아가는 먼 미래 시점에서 현재를 돌아보는 김익현의 ‘나노미터 세계의 시간’ 등 이 전시장의 작품들은 ‘깨알’같이 매력적이라 창고로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을 벗 삼아 느긋이 감상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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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3_초량
아담한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초량의 거주지 풍경은 일제강점기 28만 명이던 부산의 인구가 1980년에 3백50만 명대에 이르게 된 압축 성장과 인구 변화의 증표나 다름없는 듯하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초량의 언덕에 위치한 집 한 채를 전시장으로 사용했는데, 여기에서는 부산 출신인 송민정 작가의 영상 작품을 휴대폰에 담아 선보이고 있다. 스물세 살 되던 해, 해외 발령으로 신발 기술자 남편을 따라 정착하게 된 하루코와 춘자의 스토리를 담은 ‘커스텀’이라는 작품으로 그들의 스마트폰을 주문 제작하며 일어나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쓸쓸한 듯 앙증맞은 집 여기저기에 설치된 휴대폰 스크린을 응시하며 가만히 나지막한 독백을 듣노라면 오싹한 스릴러 분위기보다는 시공간을 잠시 초월한 느낌으로 나름의 ‘힐링’마저 선사하는 듯하다. ‘여성과 여성 노동자’, ‘이주’ 같은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 키워드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부산항 제1부두 전시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비엔날레라는 행사는 작품의 규모가 압도적이고 다수가 영상 작품인데, 마치 지구촌을 아우르는 커다란 세계를 한꺼번에 접하는 듯한 장점도 있지만 되도록 많이 ‘섭렵’하려다 보면 피곤해지기도 하는 단점도 따른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면 빠르게 훑어본 뒤 한두 작품만이라도 집중해서 제대로 보는 편이 ‘내실’에 더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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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4_영도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는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2절 가사에서 느껴지듯 영도는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깃든 ‘이주’와 ‘노동’의 섬이다. 그 서러움을 잘 모르는 시절에 성장한 필자는 팬데믹이 발발한 2020년에 온라인으로 개막했던 부산비엔날레 현장을 직접 찾았다가 부산과 영도를 연결하는 영도다리를 처음 건넜는데, 당시 비엔날레 콘셉트가 탐정처럼 부산의 이모저모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그해에 가장 뇌리에 남는 애잔한 풍경을 저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그새 옛 조선소 자리에 들어선 초대형 복합 문화 공간 피아크의 등장 등으로 영도는 젊은 층이 모여드는 ‘핫 스폿’이 됐는데, 그런 번화한 기운 속에서도 여전히 고독한 자태를 풍기는 폐공장과 폐수리소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번 부산비엔날레에도 한 곳(송강중공업 폐공장)에 전시장이 들어섰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이미래의 커다란 설치 작품(태풍으로 지붕과 벽체 일부가 날아가는 바람에 드러난 골조를 작업의 일부이자 배경으로 수합한 작품) ‘구멍이 많은 풍경:영도 바다 피부’가 꽤 강렬한 오라를 발산하는 전시장 안에는 제1부두에 전시된 이디스 아미투나이(Edith Amituanai)의 영상 작품 ‘라우 펠레 모아나’에 등장하는 사이렌 크루를 촬영한 대형 사진도 설치돼 있다. 또 미술 영상과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야외 극장도 꾸리고 있으니(매주 목~일) 운치 있는 감상에 관심 있다면 홈페이지(www.busanbiennale.org)와 SNS를 참고하기 바란다. 가을날도 그리 길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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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BUSAN BIENNALE

01. 물결 위 우리_부산비엔날레 산책 보러 가기
02. Interview with_로르 프루보(Laure Prouvost) feel with all your Senses!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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