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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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6, 2022

글 김수진(디블렌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interview with_ 아니카 이(Anicka Yi)
썩는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모든 기념비적인 예술 작품에 대해 의문을 갖고, 가장 작은 생명체를 되살리는 일, 생물체와 첨단 기술을 아우르는 미감으로 기계와 생명체의 통합 등을 이야기하는 아니카 이(Anicka Yi).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시리즈 <파운데이션>의 아름다운 여전사처럼 새하얀 신소재 원피스를 입고 검은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서울 청담동의 전시장에 나타난 작가는 어쩐지 아프리카의 원주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삶과 죽음을 모두 내다보는 예지자 같다고 해야 할까.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오는 7월 8일까지)에 이어 2024년께 리움미술관에서 열릴 전시로도 다시 찾아올 예정인 아니카 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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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더 큰 생태계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문명이 어디로 가는지 더 생각해보는 것!”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한다면, 좀 더 본질에 다다른 예술가처럼 느껴진다. 요즘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러브콜을 쏟아내는 아니카 이(Anicka Yi)는 예술로 철학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했는데, 실제로 그녀의 작품은 지구의 환경문제, 재난이나 재앙, 역사가 외면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까지, 인류의 본질을 둘러싼 질문과 답을 치열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구성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을 파고들자면 공기부터 식물과 아메바 등 수많은 생명체와 화학반응, 알고리즘, 그리고 AI의 감정까지 이해해야만 할 것 같다. “공기를 조각하고 싶었다”는 아주 추상적인 표현을 자주 하기도 했지만, 실제 아니카 이의 작품은 모든 생물체가 서로 연결된 생태계 풍경을 영화적 기법으로 구현한 듯하다.
지난 5월 말부터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Begin Where You Are>에 선보인 작품들은 브라질의 아마존 밀림과 조류 거품으로 뒤덮인 캘리포니아 해안선에서 시간을 보내며 얻은 영감에서 탄생했다. “재료적인 면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열대우림에 있는 풍성한 식물과 아메바 같은 박테리아부터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해안선에서 본 현상들에서 영감을 받아 그들의 감각적인 관계를 강조했어요. 수많은 곳을 여행하는 동안 새로운 것들을 계속 ‘느끼게’ 되죠. 생물학적인 하나하나의 개체를 생각하면, 이 ‘감각’이라는 건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죠.”마치 식물의 감각이 박제된 듯한 그녀의 신작 ‘템푸라-프라이드 플라워(Tempura-Fried Flower)’ 시리즈는 쉽게 설명하면 작은 꽃을 바삭하게 튀긴 것이다. 기름진 튀김옷을 입고 부패하는 과정 중의 만개한 꽃들이 영구히 멈춘 것 같은 모습을 우아한 형태로 박제했다는 이 작품은 미각, 후각, 침, 땀 등의 감각적 측면을 로맨틱하면서도 불손하게 보여준다고. ‘탈수된 상태로 쇠락한 상태를 고정했다’는 작품 설명이 무척 철학적으로 느껴진다. 이와 함께 설치한 ‘덤벨’은 몸을 움직일 때 땀이 나는, 꽃의 섬세함과 대비되는 요소인데, “예술은 지성이 아니라 몸으로도 경험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의도다. 어쩌면 이 대답은 그녀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는 시각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었다. 후각이야말로 사회적, 정치적 담론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도 있듯 그녀는 기계마저도 ‘감각’이나 ‘몸’을 통해 세계를 알아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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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념비적인 예술 작품에 의문을 갖는 것
런던 테이트 모던이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을 보노라면 그녀 특유의 ‘감각’ 중심 작업 자체에서도 진화의 면모가 눈에 띈다. 점점 알고리즘, 기술에 기반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작업 중인 작품도 감각적인 장치를 AI에 적용해 ‘생물화된 기계’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AI가 단순히 냉담하거나 무뚝뚝하지 않고 감각이나 몸을 통해 세계를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지나 의식만이 아니라요. 지금 우리가 아는 AI는 인지 능력 위주로 평가되지만, 그들 역시 ‘몸’으로도 생각한다고 보거든요.” 인간, 동물, 기계, 식물의 분류학적 구분에 의문을 갖고 영역 간의 넘나듦,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구분을 없애는 작가의 다음 작품은 더 기술적인 것과 생물적인 면의 통합일까? 그녀는 “예술과 과학의 관계성, 예술적인 상상력을 통해 과학적인 연구에 주목하는 것이 보다 더 정직한, 현실적인 언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아니카 이는 생물학자, 화학자, 과학자와 다양한 협업을 해오고 있는데, 그간 선보인 많은 작품이(역사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망각된 일을 향이라는 후각 작업으로 드러내기도 했고) 그 간극을 허무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요즘에는 알고리즘 기반의 작업 때문에 소프트 엔지니어와 일하고, 생물 합성을 연구하는 화학자와도 협업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작업 방식은 그녀 스스로 ‘가장 와일드한 아이디어’라는 표현을 썼는데,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과제를 제시한 뒤 그 분야의 최고를 찾아 그들의 실험실을 방문하거나 대화를 하는 식으로 진행한다고.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의 브루클린 스튜디오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촉각적 사고와 조작이 필수, 의사 소통 기술은 카멜레온과 비슷, 직관적인 탐색 기술까지 갖춰야 한다’라는 스튜디오 구인란에 적힌 문구만 봐도 남다른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 중인 그녀는 특히 ‘소통’에 어릴 때부터 남다른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과 소통하기에는 예술이 가장 적합한 매체라고 생각해 영화를 공부하고 패션 일을 하기도 했지만 서른 중반 늦깎이로 미술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성장 속도는 빨랐다. 2016년에 휴고 보스 상을 받고 런던 테이트 모던부터 카셀 도쿠멘타, 바젤 쿤스트할레 등 여러 기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아니카 이가 제시하는 예술과 과학이 결합된 미래의 여정은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고대의 복잡한 생물학적 감각이 기계와 공존하고, 인간과도 공존한다는 이야기는 어떤 SF물보다 상상력 넘치면서도, 사실은 아주 작은 생명체와 잊힌 이들을 세밀하게 어루만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직접 몸을 부딪혀 찾아가자는 그녀만의 대화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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