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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6, 2022

글 고성연

Brands & Artketing_7 체험 경제의 미학


언젠가부터 패션이든 리빙이든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 매장에 가보면 근사한 카페나 레스토랑이 감초처럼 함께 들어선 풍경이 눈에 띈다. 또 상설이든 팝업이든 ‘본업’과 별 상관없는 문화 예술 전시 공간까지 둔 브랜드의 복합 매장도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예술 공간을 꾸리더라도 ‘식문화’의 매력을 필수적으로 가미해야 한다. 어떤 카페를 들이냐에 따라, 또 인근에 어떤 부대시설을 갖췄느냐에 따라 모객 규모가 달라지기도 하고, ‘본업’ 수준을 판단하는 잣대로 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식과 예술을 둘러싼 수많은 행보는 요즘 경영 생태계에서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브랜드 경험’을 위한 것이다. 잠재적 고객까지 포함해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더 나아가 공감을 얻으려면 차별된 브랜드 경험을 선사해야 하는 책무가 지상 과제처럼 던져진다. 그리고 쉬이 감동하지 않는 오늘날의 까다로운 소비자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려면 모든 감각을 건드리는 ‘오감 마케팅’에 공을 들여야 할 필요성이 자연스레 대두된다. 오늘날 많은 브랜드들이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패키지’로 제안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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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the Experience Economy’! 2명의 학자(제임스 길모어, 조지프 파인 2세)가 ‘체험 경제 시대의 도래’를 외치는 논문(1998년)을 내놓은 지도 벌써 사반세기 정도 지났다. 케이크 원료인 밀가루, 설탕 등을 생산하다가, 산업화 이후 전문 브랜드의 케이크 믹스가 등장하고, 서비스 경제에서는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초를 곁들인 케이크 상자, 그리고 오늘날에는 ‘생일 파티’라는 감동을 선사하는 이벤트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경제 가치의 변화에 따라 이젠 너도나도 ‘라이프스타일 감성’을 내세우는 브랜드 경험을 강조한다. 서비스는 단지 무형의 혜택을 제공하지만 체험은 ‘추억할 만한 감정’을 안겨주기 때문이고, 이는 브랜드 차별화의 관건이다. 거의 모든 물건과 서비스가 상향 평준화된 상품 사회에서 경쟁 우위를 누리려면 남다른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서비스 디자인에서 ‘다중 감각’에 초점을 맞추는 체험 경제의 미학이 부각되는 현실이 펼쳐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우리가 오감을 활용해 먹고, 입고, 즐기는 ‘일상 감성’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게 된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팬데믹의 답답한 그늘에서도 신체의 자유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누렸던 우리나라에서는 라이프스타일 콘텐츠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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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의 통 큰 제안_아트+미식은 필수!

브랜드의 로망은 충성도 높고 열정적이기까지 한 단골 고객, 다시 말해 ‘슈퍼 팬’을 다수 확보하는 것이다. MZ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 구찌는 오늘날 이러한 팬덤을 즐기는 소수의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트렌드와 이슈에 민감한 슈퍼 팬의 사랑이 단단하고 지속적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브랜드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 브랜드 탄생 1백 주년을 맞이한 구찌는 올 들어 팬덤의 열정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잠재적 팬들까지 사로잡기 위한 전략적인 콘텐츠를 잇따라 선사하고 있다. 첫 행보는 체험의 미학을 풍부하게 선사하는 ‘공간형 콘텐츠’의 대표 주자인 멀티미디어 전시. 지난 3월 4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 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문화 예술계의 영감 넘치는 스타 기획자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선보인 지난 6년간의 캠페인을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재해석한 전시다. 백스테이지 같은 느낌으로 전시회 곳곳을 분할된 모니터 화면으로 보여주는 ‘컨트롤 룸’에서 출발해 13개의 구찌 캠페인을 각각 다른 스타일로 풀어낸 방을 거니는 여정으로 꾸며져 있다(룸12로 끝난다). 복도를 가득 채운 그래피티라든지 벽과 천장을 덮는 커다란 벽화, 클럽에서 댄서들과 한바탕 ‘무대’를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는 전시 공간까지, 변화무쌍한 영감의 원천을 보여준다. 전시명의 ‘아키타이프(archetype)’는 모든 복제품의 원형, 그 자체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본래의 형태인 ‘절대적 전형’을 뜻한다. 미켈레는 온라인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전형’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움’이란 말과 같다고 생각하며, ‘창의성’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하며 (패션을 넘어서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픈 전 이미 네이버 예약 전 일정이 마감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전시는 결국 2주간 연장됐다(4월 10일까지, 무료). 구찌는 이어 지난 3월 28일 세계적인 스타 셰프 마시모 보투라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Gucci Osteria Seoul)’을 열었다. 이태원의 플래그십 매장 구찌 가옥(家屋) 옆에 자리한 이 미식 공간은 2018년 1월 피렌체 구찌 가든 1호점을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와 도쿄에 이은 4호점. 르네상스 양식과 정원을 연상시키는 초록 색감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듯한 이 청신한 레스토랑은 피렌체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하며, 풍성한 와인 목록을 자랑한다. 보투라 셰프의 시그너처 메뉴인 ‘에밀리아 버거’와 ‘파르메산 레자노 크림을 곁들인 토르텔리니(파스타)’도 맛볼 수 있다. 식기는 예술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피렌체 브랜드 리차드 지노리가 만든 전용 제품. 정찬 코스만이 아니라 단품 요리도 주문할 수 있다는 점, 점심과 저녁은 물론 이탈리아 식전주 문화 중 하나인 아페르티보(apertivo)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기억해둘 만하다. 단지 당분간 예약이 녹록지 않을 듯싶다. 지난달 1차 선예약을 실시했을 당시, 4분 만에 마감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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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등 명품 브랜드들의 ‘토털 라이프스타일 패키지’ 제안

사실 럭셔리 브랜드들의 미식 제안은 한국에서도 낯선 마케팅은 아니다. 올 초 스위스 럭셔리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 역시 구찌 오스테리아와 멀지 않은 이태원에 세계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는데,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생면 파스타 등을 파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브라이틀링 키친’을 함께 선보였고, 또 다른 시계 브랜드 IWC는 지난해 여름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5층에 카페 ‘빅파일럿 바’를 개장했다. 청담동 명품 거리로 넘어오면 미식과 아트를 엮은 라이프스타일 패키지 제안을 흔히 볼 수 있다(‘차별화’는 그래서 결코 쉽지 않다). 디올의 플래그십 매장에는 ‘마카롱 장인’ 피에르 에르메의 디저트로 유명한 ‘카페 디올’이 들어와 있고, 에르메스 도산 플래그십 매장 건물 내에는 지하에서 ‘카페 마당’을 다년간 운영해왔는데, 바로 옆에는 에르메스 재단의 전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있다. 청담동의 루이 비통 플래그십 매장도 빼놓을 수 없는 미학적 복합 공간이다. 2019년 새롭게 문을 연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건축계 거장이자 스타인 프랭크 게리가 우리나라 전통 동래학춤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건축물로 4층에 현대미술 전시 공간인 에스파스 루이 비통이 자리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시작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 앤디 워홀 등 미술계 최고 대가들의 전시를 꾸려왔는데, 이 공간은 오는 5월에 ‘루이비통 카페’라는 ‘미식 공간’으로 잠시 탈바꿈할 예정이다(6주 예정).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Pierre Sang Boyer)를 내세웠는데, 쌈장을 파인 다이닝에 곁들이는 등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높은 평가를 받는 그를 서울 카페를 맡을 주인공으로 선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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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브랜드들이 존재감 넘치는 문화 예술 콘텐츠는 물론이고 ‘미슐랭’ 타이틀을 단 글로벌 스타 셰프와 파인 다이닝이나 명품 식기에 담은 트렌디한 카페 메뉴 등을 앞세운 미식으로 승부하지만, 우리나라 브랜드들도 결코 감각이 뒤지지 않는다. 디자인, 사진, 미술 등의 영역에서 대중적인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를 빚어온 대림그룹도 ‘복합화’와 ‘예술화’된 브랜드 경험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예컨대 얼마 전 서울숲 인근에 다시 문을 연 디뮤지엄의 경우를 보면 건물 내에 참신한 미식 콘텐츠로 구성된 공간을 꾸리고 있기에 모객에 월등히 유리하다. 디저트계의 파인 다이닝 경험을 제안하는 ‘감도’라든지 트렌드를 이끄는 생활 밀착형 슈퍼마켓이자 카페 ‘보마켓’ 등이 포진하고 있는 것. 디뮤지엄의 전시 콘텐츠 자체도 이 같은 참신한 먹거리 문화를 선호하는 ‘타깃층’을 비슷하게 겨냥하고 있음이 뚜렷해 보인다. 성수로 이전해 첫선을 보이는 기획전 역시 1990년대와 2000년대 눈부시게 빛을 발했던 순정 만화를 모티브로 삼은 젊은 감성의 로맨스를 다룬다.
식문화와 미술, 디자인 등 총체적인 문화 예술적 체험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패키지로 선사하는 이 같은 행보는 브랜드 차원에서는 점점 화려하거나 참신한 콘텐츠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고민이 되겠지만, 앞으로도 열띠게 이어질 것 같다. 브랜드 이미지 강화는 물론이고 자연스럽게 브랜드 경험을 확대해 단골 고객과의 유대를 다지고 새로운 고객을 유인하는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데다(럭셔리의 경우에는 ‘진입’ 문턱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팬데믹 탓에 오감을 충족시키는 ‘체험’에 대한 대중의 갈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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