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거장들과 축제를 만끽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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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1, 2016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저자)

벌써 절반이 훌쩍 지나간 2016년을 보다 흥미롭게 보내게 해줄 축제를 소개한다. 특히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 수교 1백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연말까지 우리나라에서 열릴 예정이며, 국내외 거장들의 기념일을 맞아 다채로운 전시와 행사가 열리고 있다. 특히 탄생 1백 주년을 맞은 미술가 이중섭·변월룡·유영국 전시와 셰익스피어 서거 4백 주기, 모차르트 탄생 2백60주년 기념 행사를 절대 놓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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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수교 1백30주년을 축하하다
1886년, 한국과 프랑스가 한불우호통상조약을 맺으며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한 지 1백30년이 지났다. 지난해에는 이를 축하하는 행사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열렸고,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다. 고리타분한 정치적 행사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한국과 프랑스는 마치 자국의 자존심이라도 건 듯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 다채로운 분야의 1백여 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먼저 디네 앙 블랑(Dner en Blanc)과 롯데콘서트홀 개관 페스티벌을 소개한다. ‘디네 앙 블랑’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도 모두가 흰색 옷을 입고 야외에서 대규모로 식사하는 환상적인 사진은 한 번쯤 해외 뉴스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디네 앙 블랑은 1988년 프랑수아 파스키에가 파리에서 처음 연 팝업 피크닉으로, 이미 세계 65개 도시에서 10만 명 이상이 참가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불 수교 1백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번에 처음 열리는데, 서울에서는 6월 11일, 부산에서는 9월 3일에 각각 열린다. 초대받은 게스트만 참석하는 시크릿 파티이며, 게스트의 의상과 소품이 모두 화이트 컬러라는 것이 재미있다. 행사 장소는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비밀이라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프랑스 고유의 피크닉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seoul.dinerenblanc.info
오는 가을 개관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위치한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하는 페스티벌 역시 주목할 만하다. 새로 오픈하는 콘서트홀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의 첫 번째 내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10월 15일에는 윌리엄 크리스티와 기악, 보컬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의 고음악(바로크 음악 이전의 음악) 공연이 열린다. 10월 26일에는 얼마 전 타계한 피에르 불레즈가 창단한 현대음악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한국 첫 내한 공연이 열리는데, 피에르 불레즈의 ‘메모리알레’가 하이라이트가 될 것 같다. 11월 22일에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초연해 극찬받은, 독일 가곡의 거장 마티아스 괴르네와 미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영상이 조화를 이루는 <겨울나그네>를 선보인다.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교류 축제에서 미술과 공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에코 시스템: 질 바비에>전과 DDP의 <장 폴 고티에> 전시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질 바비에는 직접 한국을 찾아 자신의 얼굴을 이용한 위트 있는 조형물과 프랑스어 사전에서 영감을 얻은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질 바비에는 수학자 존 콘웨이의 ‘생명 게임’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응용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작품을 창조하고 있다(7월 31일까지).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뷰티 살롱을 운영하던 할머니에게 영향을 받아 만든 콘 브라(Con Bra)를 입은 낡은 테디 베어 인형부터 오트 쿠튀르 한복까지 2백20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6월 30일까지). www.anneefrancecoree.kr
셰익스피어, 영국 문학 축제의 장이 펼쳐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탄생 4백50주년이던 2014년에 이어 셰익스피어 서거 4백 주기를 맞은 올해도 그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주요 공연이 하반기에 몰려 있는데, 서울시극단의 김광보 연출가가 <헨리 4세-왕자와 폴 스타프>에 이어 <함익> 등 2편의 셰익스피어 작품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햄릿>을 2016년 한국 배경으로 새롭게 구성한 <함익>은 재벌 2세로 다시 태어난 함익이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세종 M시어터, 9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답게 또 다른 공연으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연극열전 6-햄릿>은 소년 햄릿과 성인 햄릿의 심리가 교차되는 구조로, 한 남자의 복수가 만들어내는 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셰익스피어가 설정한 4백 년 전 덴마크 왕국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2016년 가상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왕실 비극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충무아트홀, 8월 2일부터 10월 16일까지).
<타이거 릴리스 & 덴마크 리퍼블리크 시어터 음악극-햄릿>은 영국의 컬트 밴드 타이거 릴리스와 덴마크의 리퍼블리크 시어터가 새로운 음악극을 만들어내는 형식이다. 보컬리스트 마틴 자크가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어우러진 노래와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끄는데, 애크러배틱, 인형극 등 여러 시각적 요소가 가장 새로운 햄릿을 만들어냈다는 호평 일색이다. 특히 오필리아가 바다에 빠져 죽는 장면은 지금까지의 <햄릿>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LG아트센터,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를 발레로도 만날 수 있어 반갑다. 발레는 음악과 이야기, 춤까지 감상할 수 있는 매혹적인 장르이기에 더욱 추천하고 싶다. 국립발레단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를(예술의전당,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유니버설발레단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인다(예술의전당,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안무가 존 프랑코가 강수진 예술감독의 취임을 축하하며 아시아 판권을 내준 작품이라 아시아에서는 오로지 국립발레단에서만 공연할 수 있다. 작품은 클래식하지만 발레단 무용수들은 주먹질, 발길질 등 과장된 동작과 익살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소화해내며 발레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www.korean-national-ballet.kr ‘셰익스피어 발레 스페셜 갈라’는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등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갈라 공연이다(세종 M시어터,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곧이어 제임스 전이 안무한 모던 창작 발레 <한여름 밤의 꿈>이 공연된다. 요정이 잘못 전달한 사랑의 묘약으로 벌어지는 세 커플의 유쾌한 사랑의 에피소드를 담았다(세종 M시어터,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sejongp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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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올해는 또한 <제인 에어>로 유명한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탄생 2백 주년, <피터 래빗>의 작가 비어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탄생 1백50주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저자 로알드 달(Roald Dahl) 탄생 1백 주년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뿐 아니라 이렇듯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영국 문학의 저력이 부럽다. <돈키호테>로 알려진 스페인의 거장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와 셰익스피어는 공교롭게도 둘 다 서거 4백 주기를 맞았으며, 기일마저 4월 23일로 같다. 동시대를 풍미했지만 살아생전 두 사람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올해 영국과 스페인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이들의 생전 흔적을 탐방하는 프로그램과 현지 공연을 감상할 수 있을 것. 두 작가의 특별한 생일을 맞아 출판사에서도 특별 에디션을 선보였다. 민음사에서는 <세계를 향한 의지: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를 펴내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포커스를 맞췄고,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돈키호테를 읽다>는 안영옥 고려대 스페인어문학과 교수가 <돈키호테>를 완역한 이후 세르반테스의 삶과 그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파헤치는 형식이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제인 에어>는 한국영미문학연구회에서 수십 종의 번역본 중 가장 훌륭한 판본으로 선정된 유종호의 번역으로 소장 가치를 높인다. 로알드 달의 <단독 비행>은 살림프렌즈에서 그의 탄생 1백 주년을 맞아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 비행>으로 새롭게 선보였는데, 아프리카 파견 근무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만난 세상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자전적 소설이다.
한국의 미술 거장 탄생 1백 주년, 이중섭·변월룡·유영국
우리나라 거장들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도 대거 대기하고 있다. 미술가 변월룡과 이중섭, 유영국의 탄생 1백 주년을 축하하는 전시가 차례로 열리는 것.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변월룡 작가의 전시에 이어 국민 화가로 불리는 이중섭의 전시가 6월 3일부터 10월 3일까지 개최된다. ‘황소’와 ‘통영 풍경’ 등으로 알려진 이중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가 중 한 명으로,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등 1백80여 점의 대표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기대를 모은다.
10월 21일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한국 근대 추상화의 선구자 유영국 작가의 회고전이 열리는데, 그는 모던아트협회라는 전위적인 미술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곧 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2002년 타계할 때까지 전업 작가로 살면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처음 작품을 판매한 것이 만 70세 때인 1976년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척박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그의 대표작은 산을 소재로 한 연작인데, 점, 선, 면, 색채 등 조형의 기본 원리에 탐닉한 그의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다. 압도적인 크기와 분량의 산 작품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배의 시간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www.mmca.go.kr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백남준의 서거 10주기 기념 행사도 이어지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7월 3일까지 백남준 서거 10주기 추모 특별전 <다중시간-Wrap Around the Time>이 열리는데, 11명의 국내외 기획자가 미술가를 선정해 백남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이는 형식이라 재미있다. 기획자들이 큐레이터뿐 아니라 과학자, 미디어 비평가, 언어학자, 기계 비평가, 소설가 등 분야가 다양한 만큼 선정된 미술가와 작품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과학자 김대식은 아티스트 빠키(Vakki)를 추천해, 백남준의 ‘TV 부처’, ‘로봇 K-456’에서 영감을 얻은 3채널 비디오의 키네틱 설치 작품 ‘마인드 바디 프로블럼’을 함께 선보였다. 올해 하반기에 백남준아트센터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해 간송미술관과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연결하는 획기적인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DDP 배움터 디자인박물관). http://njp.ggcf.kr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는 백남준 서거 10주기 추모전과 천경자 서거 1주기 추모전이 6월 14일부터 각각 열린다. 오는 7월 20일은 백남준의 탄생일인데, 이를 기념해 창신동에 위치한 백남준 생가를 개조해 백남준기념관을 선보이며 심포지엄과 플럭서스 퍼포먼스를 개최할 계획이다. sema.seoul.go.kr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뜻깊은 전시가 이어지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모차르트 탄생 2백60주년 관련 공연을 소개한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2016 세종 체임버 시리즈 ‘오마주 투 모차르트(Homage to Mozart)’를 무대에 올린다. 세종문화회관이 선정한 ‘올해의 아티스트(Artist in Residence)’ 지휘자 임헌정이 1년 동안 4회에 걸쳐 모차르트의 악기별 협주곡을 선사한다. 피아니스트 김태형(6월 25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10월 30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11월 19일)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젊은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연주를 기대해보자. 6월 10일부터 공연되는 뮤지컬 <모차르트>의 귀환도 모차르트 탄생 2백60주년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www.emkmusical.com 클래식 애호가라면 프랑스 작곡가 앙리 디티외(Henri Dutilleux)와 아르헨티나의 거장 알베르토 히나스테라(Alberto Ginastera)도 탄생 1백 주년을 맞았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남은 2016년을 보다 우아하고 풍성하게 보내고 싶다면 관심 가는 행사를 다이어리에 기록해두면 어떨까? 마침 시간을 내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면,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준비한 거장들의 생일 파티를 만끽하고 아름다운 추억도 만들 수 있으니 금상첨화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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