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건축가들은 죽기 전에 꼭 한번 한옥에 살아보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양옥보다 수명이 긴 한옥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스타일리시하게 변신하고 있다. 한옥 갤러리, 한옥 호텔이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국내외 관광객들은 한옥을 방문하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
1 종로구 가회동에 자리한 한씨 한옥은 비개방 한옥으로서 일본 미술가 타츠오 미야지마의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체인징 타임 위드 체인징 셀프 코리아 버전(Changing time with changing self Korea version)’으로 관람객들은 현판 작품에 비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2 우리나라의 숯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 ‘타임 파이어 인 더 가든 랜턴(Time fire in the garden lantern)’. 타츠오는 일련의 반복된 숫자 작업을 통해 삶과 죽음, 윤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그의 작품에 숫자 ‘0’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그에게 있어 숫자 ‘0’은 무(無)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공(空)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3 어린 시절에 자랐던 한옥에서 모티브를 얻은 서도호 작가의 작품 ‘투영’.
4 리움미술관에서 열렸던 서도호 개인전 전경.
우리 가옥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옥은 레미콘이 시멘트를 쏟아부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수리해야 하는, 정성을 담은 건축물이기에 더욱 정감이 간다. “우리 가족은 서대문 근처의 한옥에서 살고 있지요. 1958년에 지은 ㄷ자 모양의 한옥은 듬직한 2칸 대청에 방이 크고 햇살이 잘 듭니다. 마당에는 장독대와 감나무 한 그루가 있어 가을이면 어른 주먹만 한 감들이 주렁주렁 열리지요.” 건축가 조정구는 4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을 아랫목에서 바라본다. 조정구 대표는 편안하지만 아름다운 한옥의 무덤덤함 속에서 건축가로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그가 한옥을 건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은 ‘마당’이다. 크고 작은 마당을 어떻게 정하고, 부엌과 방과 대청이 어떻게 소통하게 하느냐가 설계의 기본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한옥의 마당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빨래를 널고, 시래기를 말리고, 잔치를 벌이며, 햇빛과 바람이 통하는 공간인 셈이다. 2000년부터 북촌의 한옥을 시작으로 한옥 건축가로서 많은 작품을 선보인 조정구 대표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서대문 한옥을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선보이며 외국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옥이 이렇게 매력적임에도 보편화되지 않는 것은 한옥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한옥은 화재에 취약하며, 치안에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옥은 구조가 견고해 화재가 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나무에 불이 붙으면 자체적으로 지연 효과를 내다가 한참 후에야 불에 타기 시작한다. 또 도시 한옥은 처마가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도둑이 담을 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한옥은 양옥보다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서울에 남아 있는 한옥은 40~80년 전에 지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여전히 거뜬하다. 오히려 아파트와 같은 현대 건축물들은 20년만 지나면 재건축을 고려해야 하지만, 한옥은 1백50년은 버틸 수 있다. 부분부분 수리해준다면 2백 년 이상도 거뜬히 버틸 수 있다고 한다.
5, 6 건축가 조정구의 설계로 지어진 경주의 한옥 호텔 라궁. 이 곳은 경주에 가면 꼭 한번 방문해야 할 곳으로 유명하며 건축가는 이 곳에 숙박하는 것만으로 경주의 모든 정취를 다 느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7 김용미 건축가의 남산 국악당 전경. 건축가는 지하의 현대식 문화 시설과 지상의 전통 한옥의 구조를 결합한 이 작품으로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점차 입소문이 나다 보니 한옥에 살고 싶어 서촌이나 북촌으로 이사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이사하기 어려운 이들이라면 한옥을 개조한 병원이나 동사무소, 레스토랑을 이용하면서 특유의 운치를 느껴보아도 충분하다. 한옥의 다채로운 공간은 각기 매력적이지만, 한옥의 장점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갤러리가 아닐까 싶다. 소격동의 학고재 갤러리, 가회동의 가회동 60 갤러리, 안국동의 아트 링크 갤러리, 서촌의 류가헌 등은 볕이 잘 들고 오픈된 구조로 관람객의 동선이 자유로운 한옥의 매력이 잘 드러난 매혹적인 건축물이다. 덕분에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최근엔 한옥을 주제로 한 전시도 이어졌다. 가회동 178번지 한씨 가옥에서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과 일본 미술가 미야지마 다쓰오의 전시가 열렸으며,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열린 컨템포러리 한옥 전시는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씨 가옥에서 열린 <한옥을 찾아 떠나는 시간 여행>이 특별했던 것은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은 개인 소유의 오래된 한옥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두 달 동안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나오시마에서 미야지마 다쓰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마음 깊이 감동한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은 그의 작품을 서울에서 전시하기로 결심했다. 북촌 한옥마을 가는 길에 위치한 한씨 가옥은 평상시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닫혀 있다. 서울시 민속자료 제14호이기도 한 이곳은 조선 정조 때 병조판서 최주보의 첩이 아들과 함께 눈물로 밤을 지새던 비운의 고택으로 알려져 있다. 한옥의 매력은 바로 이런 역사성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여전히 아름다운 이 고택에서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한복을 입고 미야지마 다쓰오의 첨단 LED를 소재로 한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한 재미를 제공했다. 밤에 더욱 아름다운 LED 소재인 만큼 전시는 오후부터 시작되었는데, 한씨 가옥의 정원은 낮에 보아도 아름답다. 작약과 창포가 형형색색 아름다운 정원은 과연 조선 시대 세도가의 집답다. 미야지마 다쓰오의 작품으로 고택의 현판을 대신했는데, 작가는 거울 같은 현판에 관람객의 얼굴이 비치는 순간을 시간과 작품과 공간이 모두 투영되는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8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2012년 상반기 기획전 ‘CONTEMPORARY Han-Ok’를 개최했다. 이 작품은 백승호 작가의 ‘종합차원-부유하는 건축’으로, 가느다란 선재로 한옥의 지붕을 표현하여 마치 3차원의 공간 속에 드로잉을 한 것처럼 입체와 평면을 넘나든다.
9 윤준환 사진작가의 ‘경남의 한옥’ 시리즈 중 ‘창녕 성씨 고가’. 관람자들에게 한국 고유의 집, 한옥이 사라져 가는 옛 것이 아니라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있으며, 현대생활에 적응하고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으면서 다양하게 확장, 변주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건축가의 고민으로 이렇게 한옥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2011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포함된 조정구 건축가의 롯데부여리조트 백상원은 현대적 리조트에 한옥 회랑을 결합한 특별한 작품. 서양식 건축물인 리조트 건물에는 서도호 작가의 작품처럼 한옥 한 채가 뾰족이 튀어나와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21세기 건축물에 18세기 한옥이 타임머신을 타고 충돌한 것 같다. 과거의 것을 똑같이 계승한다고 해서 찬사받는 시대는 지났다. 조정구 건축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 한옥이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사한다는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한옥에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한옥에서 체험하는 즐거움이 신선하지 않다면 굳이 그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옥의 지속 가능한 매력과 한옥을 다시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옥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건축가들에게는 도전 의식을 고취시킨다. 겉으로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안에 앉으면 상상하지 못한 다른 풍경이 보이는 것, 그것이 한옥의 매력이자 우리 문화의 장점인 것이다.
“한옥의 재발견”에 대한 1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