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에로스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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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 2015

글 심은록(미술 비평가, 감신대 객원교수)

21세기는 폭력과 죽음의 상징인 9·11테러로 시작됐다. ‘예술의 죽음’, ‘신의 죽음’, 그리고 ‘인간의 죽음’이라는 모던 사상의 3D(death, 죽음)의 결과물이다. 그래서일까? 현대미술에 죽음의 욕망이 판을 친다. 다행히 삶의 욕망인 에로스도 만만치 않다. 에로스를 재현하는 작가들 가운데, 미술계에 포르노 작품으로 충격을 던진 제프  쿤스(Jeff Koons)와 올해  ‘더러운 구석’으로 끊임없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를 소개한다.



미술관에 19금이 있다. 영화관도 아닌데 말이다. 요즘 미술관에서는 실제로 ‘19금 작품’을 이유로 전시관 길 입구에 경비를 세워 통제하거나 아예 미성년자의 출입을 금지하기도 한다. 현대미술에서는 포르노 작품을 생산하거나 에로스를 재현하는 작가가 많아졌다. 이유가 뭘까? 제프 쿤스의 ‘구상적 포르노’와 애니시 커푸어의 ‘추상적 에로스’를 살펴보면 이 의문이 해소된다.
제프 쿤스 : 평화를 위한 포르노?

키치의 제왕이자 뉴 팝아트의 주자인 제프 쿤스의 세계 투어전(2014~2015년)이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출발해, 파리 퐁피두 센터의 국립미술관을 거쳐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까지 이어졌다. ‘천상에서 만들어진(Made in Heaven, 1989)’ 연작을 전시한 퐁피두 센터의 한 전시실에는 미성년자의 출입이 통제됐다. 이 연작은 쿤스 본인과 그의 전처 일로나 스탈레르를 모델로 삼은 포르노 작품이다. ‘치치올리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헝가리 출신의 스탈레르는 1970년대 후반 각광받는 포르노 스타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포르노 배우 출신 국회의원이 된 인물인 치치올리나는 군중 앞에서 거침없이 가슴을 드러내 보이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면 사담 후세인과 동침하겠다”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스탈레르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쿤스는 자신과 치치올리나의 섹스 장면을 포르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적나라하게 표현한 ‘천상에서 만들어진’ 연작(회화와 조각)을 제작했다. 거기에 쿤스의 독특한 키치적인 방식까지 더해 유치한 포르노 작품을 재현했다.
마르셀 뒤샹의 ‘샘’(남성 소변기) 이후, 스캔들과 충격이 끊이지 않았기에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미술계도 제프 쿤스가 ‘천상에서 만들어진’ 연작을 계속 발표하자 진저리를 쳤다. 이 포르노 작품으로 쿤스는 미술계에서 추방될 뻔했다. 다행히 그는 이 포르노 스캔들을, 순진무구한 느낌을 주는 ‘퍼피(Puppy, 1992)’로 만회했다. 꽃과 풀로 뒤덮인 거대한 강아지 모형의 작품이었다. 이후, 에로스에 대한 그의 집념은 좀 더 승화된 방식으로 재현된다. 그 가운데 쿤스가 인류 최초의 비너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구석기 시대)를 근사하게 재현해낸 ‘벌룬 비너스(Balloon Ve-nus)’가 있다. 이제 그는 생존하는 전후 현대 작가(1945년 이후 출생 작가)로서 가장 비싼 작가가 됐다.

애니시 커푸어 : 폭력에 반대하는 에로스?
장엄한 문화의 결정체로 프랑스의 긍지인 베르사유 성은 2008년 제프 쿤스의 전시를 시작으로 매년 국제적인 작가 한 명을 초대하는 현대미술전을 개최하고 있다. 작년 이우환에 이어, 올해는 인도 출신 영국 작가인 애니시 커푸어가 초대됐다. <애니시 커푸어, 베르사유>전(2015년 6~11월)의 메인 작품은 ‘더러운 구석(Dirty Corner)’이다. 길이 60m, 높이 10m, 수천 톤의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베르사유 정원의 길고 긴 잔디밭 위에 철퍼덕 누워 있다. JDD(프랑스 일요 신문, 5월 31일 자)와의 인터뷰에서 커푸어는 “‘더러운 구석’은 성적이며 권력을 쥔 왕비의 질과 같다”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는 엄청난 논란을 가져왔다. 일부 보수 프랑스인들은 이를 두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성기를 묘사한 것. 커푸어가 베르사유와 프랑스의 정신을 모독한다”라며 분개했다. 작품도 세 번이나 훼손됐다. 이러한 논란에도 ‘더러운 구석’을 직접 가서 보니 스캔들도 비판도 떠오르지 않고, 단지 “아!”라는 감탄사만 나왔다. 탄생의 약동과 창조적 생동감을 억제하지 못해 에너지가 땅을 찢고 바위를 부서뜨리며 발산되는 느낌이었다. 베르사유에 전시된 커푸어의 모든 작품에는 동양적인 음양 사상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냄새가 물씬 났다. 그의 한 절친에 의하면, “커푸어는 최근 프로이트에게 푹 빠져 있다”라고 했다. 커푸어가 이처럼 프로이트에게, 특히 ‘에로스’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
에로스와 아프로디테

1931년 국제연맹의 제안으로 아인슈타인은 ‘현 상황에서 가장 긴급해 보이는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두고 프로이트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때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타나토스(죽음의 충동)’와 ‘에로스(삶과 사랑의 충동)’의 본능이 있는데, 죽음과 파괴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인 전쟁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에로스를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필자는 2011년 파리에서 커푸어와 인터뷰를 하면서, 위의 질문을 인용했다. 당시 커푸어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상에 굶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 우리는 시민, 예술가 구분 없이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 문제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한 명인 그가 이렇게 절절한 심정으로 힘을 주어 기아의 심각성을 말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 대담 이후, 필자는 커푸어가 ‘억압’, ‘폭력’, ‘전쟁’ 등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중국 정부에 부당하게 핍박당하자, 이를 패러디해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추는 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배포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던 사상의 3D(death, 헤겔의 ‘예술의 죽음’, 니체의 ‘신의 죽음’, 푸코의 ‘인간의 죽음’)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21세기는 ‘9·11 테러’의 폭발음과 함께 시작됐다. 그 때문일까? 현대미술에서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나 타나토스 못지않게 에로스를 주제로 삼는 작품도 제법 많다. 에로스를 재현하는 작가 중 일부는 단순히 대중의 호기심이나 컬렉터의 관심을 얻어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려고 한다. 다른 일부는 현시대에 책임감을 느끼고 에로스가 ‘폭력’을 억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통해 재현된 에로스 덕분에 사랑과 삶의 본능이 강해져 파괴와 죽음의 본능을 약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대부터 에로스(사랑의 신)는 늘 아프로디테(미의 여신)와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에로스가 미학적으로 승화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 에로스는 그저 포르노로 남을 뿐이다. 아무리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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