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20 Summer SPECIAL]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미술 생태계는 어디로 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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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20

글 심은록(미술 기획·비평가) | Edited by 고성연 |일러스트 하선경

“나는 전쟁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내 그림에는 전쟁이 있다.” 파리가 나치로부터 해방된 뒤, 파블로 피카소가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요즘 미술가들의 작업에는 또 다른 유형의 ‘전쟁’이나 다름없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직간접적으로 담겨 있다. 아르바이트로 예술을 해왔던 작가들은 당장 생활고를, 반대로 전 세계를 누비며 쉼 없이 이동했던 작가들은 전시가 대부분 취소되는 바람에 갑작스러운 공황을 겪고 있다. 코로나로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 대다수의 공통 관심사는 ‘과연 코로나 시대에 예술이 할 수 있는 건 뭘까?’다. 미국 워싱턴 D.C.에 자리한 허시혼 미술관은 그런 고민과 통찰력을 접하기 좋은 플랫폼 중 하나다. 지난 4월 이동을 제한하는 ‘록다운’ 기간에 접어들자 허시혼 미술관 홈페이지에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 로르 프루보스트(Laure Prouvost)를 비롯한 작가 1백 명의 생각과 작업을 담은 영상 일기를 올렸다. 물론 지구촌에는 허시혼을 통해 소개되지 않은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 코로나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또 위기를 영감으로 활용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면면을 살펴본다.


온 세상을 거세게 내리친 코로나19(Covid-19)를 맞닥뜨린 아티스트들의 모습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듯하다. 수면 위에서 즉각적으로 코로나에 대항하는 작가들과 수면 아래에서 칼을 갈 듯 신중히 준비하는 작가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반응이 작가들의 작업 내용이나 성격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퇴치를 위해 일선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들 가운데는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많은데, 그중 한 명이 프랑스의 유명한 스트리트 아트 작가 JR.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해 작은 화제를 모은 다큐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공동 연출하기도 했던 JR은 그 자신도 코로나 양성 확진자였으나, 다행히 심한 증상 없이 완치됐다.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소재로 삼아온 그의 시선은 노숙자들에게로 향했다. 프랑스에서는 올봄 거의 두 달에 걸쳐 ‘이동 금지령’(3.17~5.11)이 발동되는 바람에 노숙자들의 경우 행인 없는 텅 빈 거리에서 구걸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파리에는 5천여 명의 노숙자가 있기에 하루에 5천 개의 도시락을 배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던 JR은 한 달여에 걸쳐 4만3천 끼의 식사를 제공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식업계에 도움을 요청해 식재료 조달이나 조리와 관련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아티스트로서 명성과 인기가 꽤 요긴하게 활용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아방가르드!’
노숙자 돕기에 나서게 된 동기에 대해 JR은 아주 단순하게 설명했다. “전시가 연기되어 할 일도 없었고, 또 늘 스탠바이 상태인 팀원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도시락 배달이 그중 하나였어요.” 그렇다고 그가 도시락 배달만 한 건 아니다. 작품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코로나로 졸업이 연기된 미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함께 졸업 앨범(Graduate Together Yearbook)’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학생들은 메신저 서비스 스냅챗으로 촬영한 흑백사진을 보냈고, 참여율이 높은 상위 5개의 학교 건물에는 본교생들의 사진이 대형 크기로 전시된다. 또 다른 JR의 작품 ‘희망을 찾아서’는 시사 주간지 <타임>의 커버(4월 27일 자)에 실렸다. <타임>지는 ‘코로나와 싸우는 1백 개 공동체’라는 특집을 기획했고, JR은 코로나 기간의 상징적인 작가로 부각됐다. ‘희망을 찾아서’에는, 파리의 여느 횡단보도처럼 가로로 굵게 하얀 줄이 몇 개 그려진 횡단보도가 조감도 샷으로 찍혀 있다. 이 하얀 줄 사이로 마치 창문의 블라인드처럼, 그 틈으로 밖을 쳐다보는 사람의 오른쪽 눈이 보인다. 이 눈은 외부의 움직임이 궁금한 호기심 가득한 격리자의 눈일 수도, 다시 정상적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눈이기도 하다. JR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눈은 관심, 호기심, 희망 등을 담아낸다”며 “작가들은 비관주의가 깔린 현 세계에 유토피아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JR의 언행이나 작품은 지금까지 그의 작업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아 ‘삶에서 확장된 작업’을 보여줬다. JR처럼 세인의 주목을 받은 작가도 있지만, 비록 미디어 생태계에서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지닌 작은 것을 홈리스들과 나누는 작가도 있다. 재불 한인 작가 진유영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자비로 직접 음식 재료를 사고 혼자 요리할 수 있는 양만큼의 도시락을 만들어 홈리스에게 제공한다. 그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 역시 단순하게 “혼자 먹을 점심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준비해 나눠 먹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사실, 이 ‘점심 나누기’는 코로나 발발 훨씬 이전부터 수년 동안 행해져온 것이며, 이는 그의 ‘작업의 지속’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은유적 과정으로부터 실재하는 실체’를 담아내되, 그 실체가 바로 ‘타자’이기 때문이다. 진유영의 점심 나누기는 그의 작업이 ‘일상생활에서 확장되고 실재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파스퇴르 연구소를 후원하기 위해 파브리스 이베르(Fabrice Hyber) 작가가 주축이 되어 오를랑(Orlan)이나 미구엘 슈발리에(Miguel Chevalier)를 비롯한 12명의 작가로 구성된 전시가 있었다. 제프 쿤스, 아이웨이웨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스타 작가들은 이탈리아가 가장 어려웠던 3월에 ‘용기 내라!’는 영상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어쩌면 가장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 인물은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가 아닐까 싶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트 포스터 자선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희망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나비의 날개 띠로 이뤄진 ‘나비 무지개(Butterfly Rainbow)’(2020.4.20)를 누구나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공개했다. 또 고화질 한정판으로 찍은 포스터는 저렴하게 판매해 영국 국가 의료 서비스 체제(NHS) 의료진을 후원하기도 했다. 독일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는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문화 사업체를 돕기 위해 현대 사진예술계의 거목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를 비롯한 40명의 작가에게 후원을 받아 포스터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 한국에서는 초기에 타격이 컸던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대구미술관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삶의 가치를 모색하는 <새로운 연대>전을 진행 중인데, 여기엔 ‘코로나 사태’를 반영한 신작도 포함돼 있다.

좁힐 수 없는 동서의 차이, ‘마스크’와 ‘마스크 아트’
지구가 일일 생활권이 된 21세기의 세계인들은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감한다고 생각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동서양의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생명보다 앞선 자본, 개인주의가 근간된 민주주의, 오랜 기간 목숨을 걸고 자유를 쟁취해왔던 서구인들은 개인 정보 유출은 견딜 수 없지만, 이동 금지령은 오히려 가볍게 받아들였다. 사실 서구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률에도 아시아와 비교해 훨씬 담담하게 팬데믹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인식은 정말이지 뿌리 깊게 달랐다. 그래서 마스크는 코로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마치 코로나 그 자체로 여겨지는 듯했다. 서구 곳곳의 스트리트 아트에서는 어김없이 마스크가 등장했다. 사람보다 먼저 마스크를 쓴 모나리자가 등장했고, 영국 브리스틀의 한 벽면에 그려진 ‘얼굴 없는 작가’로 유명한 스트리트 아티스트 뱅크시(Banksy)의 ‘피어싱을 한 소녀’(2014)의 얼굴에도 마스크가 씌워져 현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됐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터부’를 없애고, 의료진을 후원하기 위해 유네스코(UNESCO)에서도 <마스크 아트>전이 열렸다.
뱅크시는 4월 15일 자가 격리 상태를 보여주는 작업을 그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그의 욕실에는 수많은 ‘쥐’가 그려져 있는데, 거울에 반사된 욕실 문(혹은 벽)에는 자택 격리 기간을 표시하는 듯이 낙서를 하는 쥐, 변기 뚜껑 위에서 볼일을 보는 쥐, 치약 튜브를 밟아 터뜨리는 쥐 등의 모습이 재미있게 묘사되었다. 그는 ‘아내는 내가 집에서 이 작품을 그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재치 있는 글도 덧붙여 격리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또 5월 7일에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를 영국의 한 종합병원에 선사하며 의료진을 응원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는 한 소년이 코로나 이전의 영웅 캐릭터 배트맨과 스파이더맨 인형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대신 현재의 영웅인 망토와 마스크를 착용한 간호사 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담겨 있다. 뱅크시는 ‘비록 흑백이지만, 이 그림이 병원 분위기를 조금 더 밝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면서 ‘모든 의료 종사자에게 감사하다’는 메모도 함께 남겼다. 이 덕분에 의료진의 사기가 한층 올라간 건 당연지사.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행을 가서도, 전시장에서도, 식사를 하기 전에도 모두 모바일 폰의 카메라로 먼저 음미(감상)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이러한 디지털 노매드족의 습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작업들이 더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잘 활용하면 코로나 때문에 격리된 상태일지라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 작가 카우스(KAWS)는 어큐트 아트(Acute Art)와 협업해 가상의 데이터가 혼합되는 증강현실(AR) 조각 작품 ‘홀리데이 익스팬디드(Holiday Expanded)’를 제작했다. 지난 3월 아트에 특화된 기술 기업인 어큐트 아트는 이를 전 세계에 선보였는데,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카우스의 대표 캐릭터 ‘컴패니언(Companion)’이 ‘내’가 있는 현실의 배경에서 함께 나오는 모습을 모바일 기기로 볼 수도 있다. 캐릭터 이름처럼 진정한 ‘예술 동반자’가 되는 셈이다. 이제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거실에서 뜨게 하거나, 앙증맞은 비구름을 침실 한가운데 가져와 국지적으로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다. 덴마크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은 자연현상을 AR 작품 ‘분데르카머(Wunderkammer)’로 제작했다. 이 역시 어큐트 아트와 협업해 완성한 것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작동된다. ‘분데르카머’는 자연물에서부터 예술 작품까지 온갖 진기한 것들을 모아 진열한 컬렉션(박물관의 전신)을 가리키는 ‘경이로운 방’, ‘호기심의 방’이라는 뜻의 독일어 표현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카오스 아트가 도래할까?
많은 이들이 ‘현대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는 이 지면을 빌려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맞닥뜨려 즉각적으로 예술의 역할을 보여준 작가들을 살펴봤다. 반면 포스트코로나와 더불어 인류의 미래와 예술의 방향을 생각하며, 좀 더 깊고 오래 자신들의 캔버스와 싸우고 있는 작가들도 있다.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으로 30만 명 넘는 관람객을 동원한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자연 속에서 격리 기간을 보냈다. 그는 프랑스 매체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이패드로 그린 정물화와 풍경화 8점을 선보여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노르망디의 눈부신 봄을 선사했다. 함께 공개된 편지에 그는 “바보들처럼, 우리는 자연과의 끈(연계성)을 잃었다”고 한탄했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 역시 페이스 갤러리 홈페이지(www.pacegallery.com/journal/artists-respond-lee-ufan/)를 통해 긴 장문의 철학적 에세이를 게재했다. 그는 5월 26일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숙고할 숙제를 남겨주기도 했는데, 복잡하고 불규칙적이라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양상을 가리키는 카오스 이론(혼돈 이론)에 대해 곱씹어보는 계기가 됐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한 것이다.

“14세기 유럽에 페스트가 크게 창궐했고 19세기까지 산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르네상스, 과학 혁명과 함께 ‘코스모스’와 ‘빛’의 시대가 확장됐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코로나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나는 이번에는 ‘카오스’와 ‘어둠’의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 카오스라고 해서 꼭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여전히 어둠에 묻힌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 덕분에 겸손을 배울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RT+CULTURE ′20 Summe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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