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즐기며 지붕을 열고 달릴 생각이라면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딱딱한 지붕을 열 것인가, 부드러운 지붕을 열 것인가.
작금의 오픈카는 딱 두 가지다. 천으로 만든 소프트톱 오픈카와 철이나 플라스틱 등의 딱딱한 소재로 지붕을 올린 하드톱 오픈카. 천으로 된 오픈카가 훨씬 먼저 생겼고, 하드톱 오픈카는 2000년을 지나면서 대중화됐다. 그렇다고 천지붕 오픈카가 구형이고, 철 지붕 오픈카가 신형은 아니다. 최근 출시된 BMW 650i 컨버터블도 천 지붕을 덮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이런 오해도 있다. 천 지붕 달린 오픈카보다 딱딱한 지붕 덮인 오픈카가 훨씬 비싸다는 선입견 말이다. 변신 로봇처럼 지붕이 열리는 하드톱 오픈카에는 왠지 비싼 부품이 잔뜩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놀랍다. 7억7천만원짜리 롤스로이스 오픈카에 천 지붕이 달려 있고, 트랜스포머처럼 지붕을 여는 푸조 207CC는 단돈 3천4백10만원이다. ‘천 지붕’과 ‘철 지붕’은 높고 낮음을 겨룰 수 있는 부품이 아니다. 누가 비싸고 누군 싼 것도 아니고, 누가 앞서고, 누군 퇴보된 것도 아니다. 각각 고유의 명징한 특징이 있고, 그것 때문에 어떤 차는 철 지붕으로 갈아타고, 어떤 차는 천 지붕을 고집한다고 보는 게 옳다.
사실, 천 지붕 오픈카만 있던 1990년대에는 불편함이 많았다. 오픈카가 드문 시절이라 한눈에 주목을 받았지만, 적잖이 피해를 당했던 게 사실이다. 주차된 천 지붕을 칼로 찢는 사람들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천으로 된 지붕은 우산과 다름없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촐촐한 빗방울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차분한 봄비 아래에선 대략 낭만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한여름 폭우 속에선 비가 스며드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땡볕 아래선 에어컨을 켜도 시원하지 않았고, 칼바람 몰아치는 한겨울에는 지붕을 꼭꼭 닫아도 목덜미가 서늘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은 천 지붕의 취약한 내구성 앞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한다. 천 지붕은 소모품이었다. 몇 년을 주기로 갈아줘야 하고, 오래 쓰려면 코팅을 하고 별도의 세차를 하는 등의 ‘길들이기’와 ‘공들이기’가 필요했던 거다.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1999년, 딱딱한 지붕이 열리는 하드톱 오픈카, 푸조 206CC가 나왔다. 지붕을 덮으면 쿠페(coupe)처럼 보이고, 지붕을 열면 카브리올레(cabrioret)처럼 보인다고 해서 차 이름 뒤에 CC라는 영문자를 붙였다. 유리와 철판으로 만든 딱딱한 지붕은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칼로 찢을 수도 없고, 코팅할 필요도 없으며, 방음과 보온 등에 두루 뛰어난 지붕이었다. 게다가 이 철제 지붕이 열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서 감탄스러웠다. 출시 초기에는 사람들이 모여 이 광경에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자동차 회사들은 속속철 지붕 오픈카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벤츠와 BMW를 비롯, 폭스바겐과 볼보, 닛산, 토요타, 미국의 크라이슬러까지도 앞다퉈 하드톱 오픈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꽤 잘 팔렸다.
하지만 모든 자동차 회사가 하드톱 오픈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오픈카 잘 만들기로 유명한 사브는 2003년에 신형 9-3 컨버터블을 내놓으면서 검은색 천 지붕을 고수했다. 뛰어난 디자인으로 유명한 아우디 역시 신형 A4 카브리 올레를 내놓으면서 고전적인 천 지붕을 붙였다. 당시 아우디의 디자인 총책임자였던 발터 드 실바는 “철로 만든 지붕을 얹은 하드톱 컨버터블은 A4의 아름다운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하드톱 컨버터블 기술은 아직도 보완할 것이 많다”며, “아우디의 치밀한 완성도에는 아직 못 미치는 기술”이라고 일축했다. BMW도 2003년에 6 시리즈 컨버터블을 내놓으면서 천 지붕을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GT카(그랜드투어링 카,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여행에 쓰이는 고성능 차)의 특성을 극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천 지붕이 필수였다”고 말했다. 천으로 만든 지붕은 철로 만든 지붕보다 가볍다. 청바지를 접듯 차곡차곡 접어 트렁크 속으로 넣기 때문에 트렁크 공간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는다. 대륙을 여행하는 GT카의 경우, 커다란 짐을 실어야 하므로 트렁크가중요하다. 가벼운 천을 접어 넣기 때문에 간결하고 빠르게 접고 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포르쉐 박스터에 달린 천 지붕은 시속 50km에서도 10초 만에 지붕을 열고 닫을 수 있다.
반면 하드톱 컨버터블은 늘 크고 무거운 것이 문제다. 철이나 플라스틱, 심지어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차곡차곡 접어도 부피가 커서 트렁크가 넓고 커다래야 한다. 그 때문에 하드톱 컨버터블들은 엉덩이가 다소 거대해지곤 한다. 하드톱 컨버터블인 볼보 C70의 전면은 콤팩트 세단처럼 경쾌하지만, 지붕을 접어 넣는 엉덩이는 준대형 세단처럼 펑퍼짐하다. 게다가 지붕을 접어 넣으면 트렁크에 트롤리 백 하나도 집어넣지못한다. 게다가 딱딱한 부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하드톱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음매가 헐거워지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견고하게 조립해도 자동차라는 물건 자체가 각종 진동을 일으켜 덜렁거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제대로 만든 컨버터블엔 아직 천 지붕을 올리는 것이 정석이다. 구조가 간단하고 부피가 작아서 아름다운 보디라인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가벼우면서 내구성이 좋은 천도 많이 개발됐다. 천 아래에 여러 겹의 소재를 겹쳐 소리와 열을 모두 차단하기도 한다. BMW 650i를 비롯, 아우디 A5 컨버터블, 벤츠 E클래스 컨버터블, 포르쉐, 재규어,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아름답고 성능이 뛰어난 오픈카들은 여전히 천으로 된 지붕을 열고 닫는다. 진짜 오픈카를 찾는다면 아직은 부드러운 지붕을 접고 펼치는 ‘천 지붕’ 컨버터블이 정답이겠다. 아름답고 완성도가 뛰어나며, 지붕을 접었을 때나 덮었을 때두루 트렁크가 여유롭기 때문이다. 차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하드톱보다 가격적인 메리트를 기대해도 좋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기후와 도로 여건상 지붕을 열고 달릴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장마가 있고, 황사나 매연 때문에 공기도 좋지 않은 데다가, 결과적으로 시원하게 달릴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후와 도로 여건, 치안 문제 등을 두루 감안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철 지붕을 얹은 하드톱 오픈카가 제격인 것 같기도 하다. 천 지붕과철 지붕, 정말로 좋은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