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름다움이 시작된 곳,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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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1, 2010

글·사진 김범수(라이프스타일 객원 에디터, http://pat2bach.blog.me)

헤이안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무려 1천74년 동안 영화를 누린 일본의 오랜 수도이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재만도 17개, 공식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사찰 1천2백여 개, 매년 찾아오는 여행자 수 5천만 명. 수치상으로는 세계 그 어느 관광지보다도 화려하지만, 교토의 첫인상은 소박함과 예스러움 그 자체였다. 물소리와 바람 소리 외에는 한없이 고요한, 과거의 일상과 현재의 일탈이 공존하는 곳. 대도시와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느림의 도시 교토의 풍경은 각박한 삶에 지친 현대인의 메마른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 충분했다.


  



   



   



   




Hoshinoya Kyoto

만약 일본이 고유의 문화를 그대로 지켜오면서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면, 지금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조성한 호시노야는, 그 모습이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그렇다고 현재도 아닌 시간적으로 무척 모호한 공간이다. 아라시야마에 위치한 호시노야 교토 리조트는 이제 오픈한 지 1년 남짓 된 신생 료칸이지만, 실제로는 1500년대 모모야마시대에 스미노쿠라 요이라는 부유한 상인의 개인 별장으로 지은 곳을 리노베이션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호시노야의 가장 큰 매력은, 배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 아라시야마의 명물 도게쓰교 인근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오이 강(오이가와)을 거슬러 올라가 20분 후쯤 료칸에 도착한다. 구름이 자욱하게 낀 이곳의 풍경은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통스러움과 모던함이 이상적으로 어우러진 료칸의 시설도 무척 고급스럽고, 인근에 아라시야마 공원과 치쿠린(竹林), 덴류지 등 관광 명소도 풍부하며, 두부, 소바, 가이세키 요리 등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kyoto.hoshinoya.com/en

Kiyomizudera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교토의 명소, 기요미즈데라. 관광객의 입장에서 기요미즈데라를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고고한 매력을 지닌 기요미즈데라 혼도(본당)의 모습과, 이 사찰에서 내려다보이는 교토의 절경 때문만은 아니다. 고조자카, 산네이자카, 니넨자카, 네네노미치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의 풍경이 교토 내에서도 가장 교토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기요미즈데라의 본당에는 산의 경사면에 세운 ‘부타이’ 라 부르는 거대한 베란다가 있다. 부타이는 단 하나의 못도 쓰지 않고 1백72개의 나무 기둥을 교차시켜 만들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 때문에 세계적인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오래된 사찰답게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가지 스토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토와노나키’ 라 불리는 세 갈래의 물줄기.

3개의 물줄기는 각각 성공과 사랑, 장수를 의미하는데, 이 중에서 두 가지만 선택해야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든 것을 갖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뜻인 듯한데, 1m가량 되는 긴 바가지를 사용해 물을 마시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잇는다. 기요미즈데라는 야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데, 노을을 보고 내려와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걷는 기분도 무척 고즈넉하다.

Ginkakuji

일본 미의식의 원류라 불리는 긴카쿠지. 긴카쿠지(은각사)는 여러 면에서 킨카쿠지(금각사)와 비교된다. 금과 은의 대비로 보나, 건물의 화려함으로 보나, 금각사가 은각사보다 위상이 더 높긴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긴카쿠지를 더 선호한다. 긴카쿠지는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젠’ 이나 ‘다도’의 미학을 아는 이에게만 그 아름다움을 허락한다. 그 때문에 긴카쿠지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고, 킨카쿠지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입구에는 풀 한 포기 없이 온전히 모래만으로 후지 산과 물을 형상화해낸 고게쓰다이(달맞이 사구),  자로 잰 듯 정확한 각도로 이랑 무늬를 낸 모래 정원이 있는데, 그 정확하고도 세밀한 솜씨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도, 향도 등 일본 미의식의 원류라 불리는 긴가쿠지는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고아한 매력을 지닌, 참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www.ginkaku-ji.or.jp

Tetsugakunomichi

긴가쿠지의 입구에 놓인 다리에서 난젠지 근처까지 약 2km에 달하는 산책로인 데쓰가쿠노미치(철학의 길).  ‘철학의 길’ 이라는 이름은 ‘일본의 괴테’ 라고 불리는, 교토대학의 저명한 교수이자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하던 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철이나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철의 절경은 수많은 인파를 부른다고 하니, 오히려 성수기를 피하는 것이 철학의 길 다운 한적함을 느끼기에 좋을 듯하다. 아주 천천히 걷는다면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 길의 끝에는 ‘교토의 절경’이라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 ‘난젠지’ 가 나타나고, 난젠지 입구 옆에는 교토에서 가장 맛있는 유도후(두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준세이’가 있다.

Kitcho

올해로 창업 80주년을 맞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아라시야마 깃초. 미슐랭 3스타를 판단하는 기준을 ‘직접 찾아갈 만한 가치가 충분할 정도로 우수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exceptional cuisine, worth a special journey)’ 이라고 할 때, 레스토랑 그 자체는 물론이고 주변 풍경 역시 너무나도 아름다워, 기꺼이 그 레스토랑을 위해서 여행을 떠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아라시야마 깃초가 아닐까 싶다. 역사적인 사찰인 덴류지와 낭만적인 지쿠린을 지척에 둔 아라시야마 깃초는, 전 세계 그 어느 레스토랑보다도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할아버지이자 창업주인 데이치 유키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난 1995년부터 아라시야마 깃초를 책임지고 있는 3대 오너 셰프인 구니오 도쿠오카는 깃초를 찾는 손님들에게 일생에 한 번뿐인 경험을 안겨줄 수 있도록, 모든 부분에서 완벽을 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깃초를 경험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완벽’ 그 자체. 단 한 가지 단점은 역설적이지만 너무나도 완벽하다는 것. 도무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기 때문에, 오히려 매력이 반감된다고나 할까? 살면서 꼭 한 번은 경험해 봐야 할 레스토랑 목록에 아라시야마 깃초를 추가해도 좋을 것 같다. www.kitcho.com/kyoto

Kikunoi

올해로 창업 1백 주년을 맞은 기쿠노이. 기쿠노이의 음식을 깃초와 비교한다면, 가이세키라는 최소한의 형식만 일치할 뿐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셰프의 스타일 때문. 현재의 오너 셰프인 요시히로 무라타 씨는 3대째 계승자이다. 그는 가이세키 특유의 정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하긴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한 가이세키의 형식을 과감히 생략한다. 대신 그의 음식에는 힘이 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창의력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에 대한 강한 열정이 느껴진다. 특히 무라타 셰프는 식재료의 근원을 짚어가며, 창의적인 조합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워낙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고, 이곳의 계절별 메뉴를 담은 꽤 두꺼운 책자가 있을 정도로 모든 메뉴가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계절감을 담은 핫슨과 알배기 은어구이의 맛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인 셰프가 일하고 있어 좀 더 친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이곳의 장점. www.kikunoi.jp

Hyotei

효테이는 4백 년 전 난젠지 근처에서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차를 대접하던 찻집(tea house)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이세키의 시초를 센노 리큐라는 다례(tea ceremony) 창시자의 철학에 기반을 둔 요리의 형태라고 할 때, 14세기에 찻집으로 문을 연 효테이야말로 가이세키의 원류에 가장 가까운 요리를 내는 집이라 할 수 있다. 4백 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경외감마저 들게 하는, 그 옛날 선인들이 차를 마시면서 서로 시를 주고받았을 바로 그 방에서,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과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한가로이 날갯짓을 하는 나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신선들이 노니는 곳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라는 수식어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효테이의 시그너처 디시인 달걀 요리 하나만으로도, 오랜 전통에서 우러나오는 손맛을 경험해볼 수 있다. 4백 년의 역사가 담긴 효테이의 맛과 서비스가 어떤지 경험해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코스 요리를 권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아침에만 맛볼 수 있는 ‘아사카유’도 괜찮은 대안이 될 것이다. www.hyotei.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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