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23-24 Winter SPECIAL] 이해하고 이해받기 위한 여정_Interview with 마뉴엘 솔라노(Manuel Sol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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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3, 2024

글 김민서(프리랜스 에디터)

“건강이 회복되었길 바랍니다. 제 답변이 기사 작성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시간 내서 저에게 관심 가져주고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자가 독감에 걸린 탓에 어렵게 조율한 인터뷰를 서면으로 변경하고 당일 약속을 취소한 무례한 상황으로 미안함에 마음이 불편한 어느 날, 갤러리를 통해 작가의 서신을 전달받았다. 어쩐지 포근한 온기와 미소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작가의 다정하고 세심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함께 온 인터뷰 답변을 읽으며 다시 한번 ‘마뉴엘 솔라노(Manuel Solano)’라는 이름을 마음속에 새겨보았다. 호기심이 애정과 관심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심리학자 리처드 앳킨슨과 리처드 시프린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에는 감각 기억, 단기 기억, 장기 기억 등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저장하는 감각 기억은 지속 시간이 짧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라진다. 여기서 살아남은 감각 기억의 정보는 단기 기억으로 이동하고, 이를 장기 기억으로 옮기려면 반복이라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기 기억도 사실은 불완전하다. 하나의 사건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하고 시간이 지나며 살이 더해지고 왜곡되는 건 우리가 일상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일이지 않은가. 예술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이런 불완전한 기억을 보완해주는 도구였다. 사진기가 없던 시절, 그림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재연했다. 눈으로 본 장면뿐만 아니라 쉽게 잊어버리는 희망을, 슬픔을, 기쁨을 예술이란 행위로 기억하고 기록했다. 예술은 망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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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으로 새겨지는 기억
기억에 관한 설명이 길어진 것은 멕시코 출신 작가 마뉴엘 솔라노(b. 1987)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20대 중반 인체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합병증으로 시각이라는 중요한 감각을 잃은 작가는 붓이 아닌 손끝의 촉각에 의존해 그림을 그린다. 작품 소재는 자신의 기억. 시각을 잃기 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발굴하고 재구성하고 복원한다. 장기 기억에 저장된 장면이 캔버스 위에 태어나며 촉각이라는 새로운 감각 기억이 되는 셈이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남들보다 ‘보는’ 감각이 뛰어났을 그가 갑자기 시력을 잃고 감당했을 좌절감과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 현실을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암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볼 수 없어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현재 작가가 찾은 방법은 벽에 캔버스 천을 펼치고 못과 핀, 줄로 윤곽을 잡은 뒤 손으로 그 모양을 따라가며 물감을 칠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때 스튜디오의 팀원들이 세심한 피드백을 주고 필요한 모양을 배치해주며 캔버스를 늘이거나 조색을 도와준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이런 작업 방식을 찾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친구 도움을 받아 붓으로 유화를 그려보았는데 너무 느린 데다 붓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캔버스나 물감의 양을 느낄 수 없었어요. 또 일반 캔버스 위에 지금의 방식인 핀, 끈 등을 사용하고 손으로 물감을 칠해보기도 했지만 핀이 캔버스에만 붙어 있어 쉽게 흔들리고 떨어져 제대로 작업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벽에 캔버스 천을 붙이고 못으로 고정하는 지금의 방식을 시도했어요. 꽤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그려본 적 없는 질감이나 형태가 있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력을 잃은 지 7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최선의 작업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 때문에 작품 크기가 대부분 큼지막한 편이고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곳곳에 난 작은 구멍을 볼 수 있다. 한 작품을 그리는 데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어가기에 작품 하나도 허투루 시작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억에서 끄집어낸 단편적 이미지를 더욱 소중하게 그려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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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어도 보이는 기억
서울 삼청동에 자리한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에서 1월 14일까지 열리는 마뉴엘 솔라노 개인전 <파자마(Pijima)>는 제목처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입는 파자마같이 아늑하고 연약하며 순수한 감성을 담은 전시다. 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동명의 작품 ‘Pijama’(2023)에는 빨간 파자마를 입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어린 마뉴엘이 있다. “이 작품은 어머니가 찍어준 사진에서 시작됐어요. 샤워를 마치고 어머니가 만들어준 파자마 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잠자기 전에 하는 샤워가 오히려 제 잠을 깨우고 활기차게 만들었다고 하셨어요. 그때 우스꽝스럽고 장난스러운 모습이 표현되었고요. 이번 전시작들은 저의 어린 시절을 기반으로 실제 사진이나 기억을 참조합니다. 저의 장난기 가득하고 감각적이며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릴 적부터 뛰어난 기억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각종 과자가 들어 있는 인형 피냐타를 방망이로 치는 ‘Big Bird(빅 버드)’(2023), 절친과의 귀여운 입맞춤 현장을 포착한 ‘Mi Primer Beso(나의 첫 키스)’(2023), 티라노사우루스 복장을 한 남동생을 촬영하는 엄마를 그린 ‘Sunbeam o el disfraz de Tiranosaurio(햇살 또는 티라노사우루스 의상)’(2023) 등은 모두 마뉴엘의 어릴 적 추억이다. 작가의 가족이 캠코더로 촬영한 기록물 ‘La Patita(암컷 새끼 오리)’(2020), ‘As A Child(어렸을 때)’(2015)에는 실제 어린 마뉴엘이 등장한다. 작가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듯한 이번 전시는 언어도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도 다른 한 사람에 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도 한때는 대중문화와 같은 외부 자극에 매료된 평범한 젊은이였다. 시각장애를 겪으며 새로운 대중문화를 흡수할 기회가 줄었고, 자연스럽게 흥미가 사라졌다. “시각적 결과에 집중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제 기분과 아이디어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 작업이 항상 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시각을 잃고 나서 깨달았어요.” 외부 관찰 같은 시각적 정보 수집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 남과 다른 자신을 알아채고 성 정체성에 고민이 많던 그에게는 내면을 표현하며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마뉴엘 솔라노는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가는 트랜드젠더다). 작품이 때때로 장난스럽고 유머가 있더라도 무엇보다 진지한 주제라는 것을 알아주길, 그는 강조했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저를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면 저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죠. 저의 장난스러운 모습, 성적 취향과 아름다움, 감각과 스타일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관람객도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될 것이고요. 우리는 모두 똑같고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ART + CULTURE ’23-24 Winte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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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Front Story_타이베이 비엔날레(Taipei Biennial) 2023_<Small World>_나와 너, 그들의 이야기… 우리의 화두  보러 가기
03. 가장 사적인 ‘취향 페어링’을 찾아서  보러 가기
04.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도시 자체로 ‘문화예술 특별구’  보러 가기
05.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세상의 시선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예술  보러 가기
06.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고전부터 컨템퍼러리까지 아우르는 월드 클래스 컬렉션과 기획전  보러 가기
07.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비엔나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새 랜드마크들  보러 가기
08.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차근차근 보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는 미술 시장 보러 가기
09. Interview with 마뉴엘 솔라노(Manuel Solano)_이해하고 이해받기 위한 여정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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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호시노야 구꽌(HOSHINOYA Guguan)__물, 바람이 만나는 계곡의 휴식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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