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들여다보는 글로벌 미술의 풍경
2 2016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0상공화국> 전시 풍경.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작가 35명이 인간의 신체를 주제로 예상치 못한 ‘비밀’을 폭로한다.
3 오마키 신지, ‘에코-크리스털화(Echoes Crystallization)’.
4 에로, ‘무제(untitled)’, 118.5Χ113.5cm.
5 서용선, ‘자화상(Self Portrait)’, 53Χ45.4cm Acrylic on Canvas, 2014.
6 한홍수, ‘지젝에 따른 신체 없는 기관(OwB selon Z)’, 유화, 162Χ130cm, 2015.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남근인 ‘몸’을 보여준다.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남근인 ‘미사일’을 보여준 왕두 작가와 대비된다.
7 그자비에 루케치, ‘엄지(Pouce)’, 60Χ60cm N°1/4, Medical Scanner, 2007. 엄지 속에 디지털 산수화를 펼쳐놓았다.
8 펑정지에, ‘중국 여인 초상화 연작 B(Chinese Portrait B Series No.19)’, 유화, 91Χ91cm, 2006.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성, 내면과 외면 등 양쪽을 동시에 보려고 하니 자연스레 외사시가 된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
9 김형기, ‘존재의 표정(Be-ing Space)’, 80Χ80Χ180cm, Video Installation, 4 LCD Screen, Computer, Metal Structure, 2012.
먼저 <빛, 생명, 물질-광주작가전>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광주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 광주는 역사적으로 깊은 어둠을 잘 아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기에, 빛과 생명에 대한 이들의 감성은 남달리 예민하고 깊이가 있다. 광주 작가 25명이 ‘물질(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 등)’을 사용해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빛’을 발산하면서 ‘생명’을 감싼다. ‘광주 작가전’은 가장 근원적이며 포괄적인 주제인 ‘빛, 생명, 물질’에 천착하면서 ‘마크로코슴(대우주)’을 노래한다. “우주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라”라는 백남준의 우주 오페라를 상기시킨다. 더욱이 올해는 이미 세 번의 우주 오페라 ‘위성중계 미디어 아트 작품’을 지휘한 백남준의 서거 1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백남준 작가가 국제적인 미술 향연인 비엔날레를 개최하기 위한 장소로 광주를 먼저 생각하고 그 산파 역할을 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제1회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에 개최).
반면 세계 곳곳에서 온 35명의 ‘국제전’ 작가들은 그들의 ‘0상’을 마음껏 펼치며 ‘인간의 신체’라는 ‘미크로코슴(소우주)’을 다루고 있다. ‘신체’라는 주제를 선정한 것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주제를 통해 작가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다르게 표현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작가들의 신체 표현을 보면서, 그동안 몰랐던 또 다른 신체 단면을 알려주겠다는 의도다. 요제프 보이스, 니키 드 생팔, 자크 빌르그레, 아르망, 펑정지에, 오마키 신지, 모리무라 야스마사, 다니엘 퍼먼, 방혜자, 권순철, 서용선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35명의 작가가 그들 고유의 국적을 초월해 0상공화국 국민으로서 참여한다. 전시 제목 ‘0상공화국’은 무엇을 의미할까? ‘0상’은 일반적인 의미의 ‘공상(空想)’이기도 하며, 조어적 의미로 ‘공간’이나 비움(空, vide)에 대한 이미지(像, image)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모든 편견이나 선입견을 유보하고, 0(zero)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이는 현대 예술 사조 중 하나인 ‘다다(Dada)’의 정신을 되새겨보자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는 무한한 ‘0상’의 자유를 예술과 삶에 도입한 다다이즘 탄생 1백 주년을 맞는 해다. 다다이스트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죽음, 폭력, 등이 만연한 것을 보면서, 당시까지의 모든 사상, 전통, 문화, 예술을 그 근본부터 철저히 재고해보자는 취지에서 1916년 취리히에서 다다 선언을 했다. 1세기가 지난 현재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고, 끔찍한 테러가 여기저기에서 발생하고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다다이스트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이념, 이에 따라 취한 행동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이 다시금 요청된다.
또 다른 의미의 세 번째 미사일이 있다. 한국에서 채 한 살이 되기 전에 프랑스로 입양된 여류 작가 다프네 난 르 세르장의 ‘사드(SHAAD : Sad High Altitude Area Defense)’가 그것이다. 한국에 대한 그의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감동적이다. 영어 이니셜로 ‘사드(THAAD :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동음이의어 언어 유희로 작품 ‘사드’는 시작된다. 고래 싸움에서 한국을 보호하고 싶은 작가의 애정 어린 손이 드리워 있다. 작품 배경이 되는 지도는 일제의 폭압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독일 지도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 일제나 외국의 정치적 외교적 침략에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작가는 손으로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 이처럼 한국뿐만 아니라 전쟁과 폭력의 위험 아래 있는 모든 나라와 희생자들에게, 작가의 손을 드리워 보호하고 치유하려는 마음은 예술의 가장 근본적이며 숭고한 본질이기도 하다.
펑정지에의 ‘중국 여인 초상화 연작 B(Chinese Portrait B Series No.19)’에는 젊고 섹시하고 아름다운 중국 여성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여성의 외사시(外斜視) 눈동자는 관람객이 오래 바라보는 것조차 불편하게 만든다. 펑정지에 작품에 등장하는 이 완벽할 뻔한 여성은 이처럼 항상 외사시로 두 면을 본다. 예술과 자본, 고상함과 천박함, 고전(민속 예술과 언어)과 현대(대중 예술과 광고),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성, 삶과 죽음, 내면과 외면, 청색과 홍색 등 양쪽을 동시에 보려고 하다 보니, 펑정지에 그림 속 인물들의 눈은 자연스레 외사시가 된다. 이 고의적인 어색함과 불편함을 강조하는 펑정지에의 ‘외사시의 미학’은 사실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다. 전시장에는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제프 보이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굵고 낮게 울리며, 생전에 선보인 그의 퍼포먼스를 떠오르게 한다. 이외에도 한국의 산하를 닮거나 오래된 고목을 닮은 듯한 얼굴을 그린 권순철, 메디컬 스캐너를 이용해 사람 엄지 속에 디지털적인 산수화를 펼쳐놓은 그자비에 루케치, 울퉁불퉁한 물고기 얼굴로 사람을 형상화한 모로코 출신의 작가 사디 아피피, 인간의 제스처를 프랑스식 우아함으로 형상화한 알랭 클레몽, 알록달록 원색을 사용해 여성 신체의 경쾌함과 즐거움을 재현한 니키 드 생팔 등 모두 신체를 통해 작가들의 독특한 0상을 풀어나간다. 아예 주저앉아 명상하듯 오랫동안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