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세상을 바꾼다. 지금은 진보와 아름다움, 가장 혁신적인 형태로 떠오른 유선형 디자인을 불과 50년 전만 해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지? 유선형 디자인의 혁신을 이끈 비행기의 곡선은 르코르뷔지에와 월터 도윈 티그 등 건축가와 산업 디자이너들이 극찬했으며, 자동차와 제품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온통 모서리로 가득했던 세상이 돌고래처럼 매끈한 유기적인 곡선 덕에 얼마나 멋들어지게 바뀌었는지, 유선형 디자인의 변천사를 탐구한다.
19세기 말에 나온 최초의 전화기는 지금의 전화기와는 판이하다. 그 모양은 럭셔리한 가구에 가깝다. 로코코 스타일로 장식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보기 흉한 금속 울림통은 노출되어 있었다. 30년 정도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지멘스와 벨 같은 회사에서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인 전화기의 원형을 제시했다. 이처럼 새로운 개념의 물건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 물건 자체에 대한 신기함 때문에 그 물건의 부적절한 모양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 물건에 대한 낯섦이 사라지고 친숙해질 때 비로소 사회는 그 물건의 합리적인 외관을 찾기 시작한다. 자동차 디자인의 역사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그 모양은 마차와 똑같았다. 말이 끄는 것이 아니라 자체 동력이 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자동차는 엔진 룸이 따로 생긴 것 정도를 빼고는 마차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동차 디자인에 가장 큰 자극을 준 것은 바로 비행기였다.
비행기는 전화기나 자동차 같은 물건과 근본적으로 다른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전화기는 가구처럼 만들면 되고, 자동차는 마차처럼 만들면 된다. 새로운 개념의 물건이지만, 그 물건을 디자인할 때 의지할 만한 전례가 있다. 또 형태가 조금 부적절하다고 해도 작동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어떤가? 하늘에 떠다녀야 한다는 그 절박한 기능의 요구는 최적의 형태를 찾도록 강요한다. 의지할 만한 전례도 전혀 없다. 그 결과 비행기는 첫 등장부터 이 세상의 그 어떤 물건과도 연관성이 없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다. 게다가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늦게 발명되었지만, 디자인은 더 빠르게 진화해나갔다. 1903년에 최초의 비행기로 등장한 동력 비행기와 그로부터 32년이 흐른 1935년에 첫 운항에 들어간 혁신적인 DC-3의 디자인은 천지개벽이랄 수 있을 정도로 판이하다.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비행기의 놀라운 진보에 찬사를 보냈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르코르뷔지에는 “비행기야말로 시대에 뒤처진 우리의 의식을 비난하는 손가락”이라고 했으며, 미국에서 산업 디자인 전문 회사 시대를 연 월터 도윈 티그는 “금세기가 창조한 그 어느 것보다도 미적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전율의 기계”라고 찬양했다.
건축가와 산업 디자이너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움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가진 이들이다. 그들이 미적으로 압도당한 DC-3의 디자인은 어떤가? 바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조화로운 비례가 특징인 유선형의 동체다. 비행기는 단지 안전하게 나는 문제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짐을 싣고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빨리 날아야 한다는 사회와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자 기술은 빠르게 극단으로 나아갔다. 이미 1920년대에 각이 지고 뼈대가 있는 기존의 동체로는 바람의 저항으로 가벼운 비행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부드러운 곡면으로 대체하려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또 냉각을 위해 노출시켰던 엔진에 유선형 덮개를 씌웠다. 이어 날개 밑에 매달았던 이 유선형 덮개를 날개 속에 파묻는 진보가 일어났다. 이는 성능 면에서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매끄러워져서 비행기는 더욱 일체형이 되었다. DC-3는 그때까지 이루어진 이런 모든 연구와 실험이 낳은 열매다. 각진 면과 날개 지지대 같은 유기적이지 않은 형태는 사라졌다. 동체의 외곽선은 마치 돌고래의 몸처럼 끊어짐이나 막힘 없이 앞부분부터 뒷부분까지 부드럽게 이어졌다. DC-3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리벳(동체의 강철판 사이를 연결하는 못으로, 대가리가 반구 형태다) 대가리조차도 평평하게 만들어 동체에서 어떠한 도드라짐도 허용하지 않았다. 문손잡이도 안쪽으로 감추었다. DC-3를 본 윌터 도윈 티그는 이렇게 감탄했다. “짧은 포물선과 긴 곡선, 직선과 약간 휜 직선 등으로 이루어진 이 항공기의 선은 힘과 우아함을 나타낸다. 이보다 더 사람을 흥분시키는 현대 디자인은 결코 없다.”
이처럼 비행기의 공기역학적 진화를 지켜본 디자이너들은 모두 그 힘과 조형에 자극받았다. 특히 유선형은 단지 스타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보증해주었다. 따라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를 자동차에 응용하고자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직업을 잃은 항공기 엔지니어들은 1920년대에 독일에서 상자형 자동차에서 벗어나 공기저항을 줄이고자 위에서 보면 물방울처럼 보이는 자동차를 개발했다. 그러나 공중을 날아가는 비행기와 달리 자동차에는 지면의 마찰이 더 큰 저항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런 유선형 형태는 성능을 개선시켜주지 못했다. 오히려 실내 공간의 낭비를 가져올 뿐이었다. 그뿐 아니라 초기 유선형 자동차는 조형적으로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유선형 자동차의 커다란 진전은 1930년대 미국에서 실현되었다. 1930년대의 미국은 경제 공항 직후 바닥으로 떨어진 경제를 ‘디자인’으로 일으키려는 대단히 강력한 열망이 있었다.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이러한 열망을 갖고 혁신적인 자동차를 개발했다. 크라이슬러는 기존의 자동차를 대상으로 풍동 실험을 한 결과 엔진과 객실로 구분된 기존의 사각 형태 자동차는 비효율적이라고 보고,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를 디자인했다. 라디에이터 그릴 부분을 둥글려 경사지게 했고, 앞 유리창도 뒤로 살짝 기울였으며, 펜더(흙받기)를 차체로 좀 더 흡수해 전반적으로 자동차는 유기적인 하나의 몸체가 되었다. 1934년에 생산되기 시작한 이 ‘에어플로(airflow)’는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혁신적이었다. 그런 탓에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1937년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이 차는 이후 자동차 디자인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많은 회사가 이 실패한 자동차를 모방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선형 스타일로 디자인된 자동차들은 공기저항을 그렇게 크게 감소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충분히 속도감 있어 보였다. 결국 당시 자동차에 적용된 유선형 스타일은 비행기의 그것과는 달리 속도감을 상징하는 스타일일 뿐이었다.
에어플로의 실패는 잠시뿐이었다. 1930년대에 유선형 스타일은 급속도로 번졌다. 자동차는 물론 공기저항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물건에까지 유선형 스타일이 적용되었다. 유선형의 원래 뜻은 ‘공기를 통과할 때 저항을 최소화하고자 계산된 물건의 형태’ 다. 따라서 비행기나 기차, 자동차와 같은 이동 수단이 아닌, 움직이지 않는 물건에 적용된 유선형이란 기능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유선형 스타일은 냉장고, 세탁기, 타자기, 토스트기, 심지어는 연필깎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 유선형을 촉발한 것이 비행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세기 초반 비행기는 첨단 기술의 상징이었다. 또 그것은 미래의 개인용 이동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당시에는 비행기도 자동차처럼 다가올 미래에 개인화될 거라는 기대로 충만했다. 따라서 비행기의 이미지는 곧 지금보다 풍요로운 미래의 이미지이며, 진보의 이미지이기도 했다. 또 유선형은 속도와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유선형 스타일이 수많은 제품에 적용된 것처럼 ‘유선형(streamline)’이라는 단어의 뜻도 확장해갔다. 사람들은 “유선형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유선형으로 정치를 한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저항을 뚫고 나간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진보적이며 미래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우월함의 상징이 된 유선형 스타일을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1930년대 중반부터 GM의 디자인 디렉터를 맡은 할리 얼은 성능과 무관하게 순전히 스타일로서 유선형을 럭셔리하게 적용한 차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선형’이라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에게 고양된 생활양식을 약속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유선형 스타일을 유행시킨 또 하나의 주역은 바로 기술이다. 대량생산되는 비행기나 자동차에 적용된 유선형은 철판 가공 기술이 그만큼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금속을 두들겨서 유선형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것은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다. 철판을 금형 틀 안에 넣고 기계로 압력을 가해 부드러운 곡면을 대량으로 생산함으로써 비로소 유선형은 보편화의 길을 갈 수 있었다. 또 당시 베이클라이트(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식으로 ‘뻬꾸라이트’라고 발음하기도 함)라는 유기화학 재료가 개발되었다. 이것은 액체 상태로 금형 안으로 들어가 고체 상태로 사출 성형하는 재료다. 이로써 부피가 작은 제품의 경우 자유로운 형태의 디자인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새로운 재료와 가공 기술이 발달하자 과거 미래적인 이미지를 그림으로만 표현했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산업 디자이너로 도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들이 그림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독특한 모양의 물건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로써 미국에서는 ‘산업 디자인 컨설턴트’라는 전문적인 분야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들 유선형 제품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바로 번쩍거리는 표면 질감이다. 자동차의 표면은 크롬 도금되어 거울처럼 모든 것을 반사시키고 지문이 묻어날 정도로 요란한 광채를 자랑한다. 베이클라이트로 사출 성형된 제품 역시 다른 재료와 견주어 표면이 훨씬 매끄럽고 빛난다. 이렇게 이음매 없이 매끄럽고 번들거리는 표면은 유선형과 결합해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미래와 진보의 이미지’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 제품을 소유하는 것은 곧 앞선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것이었다. 기업들은 스타일 감각이 뛰어난 산업 디자이너들에게 의뢰해 미래와 진보의 스타일을 제품에 입혔다.
비행기에서 비롯되어 자동차와 제품에 광범위하게 적용된 유선형 스타일은 결국 기능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강화하는 데 더 기여했다. 그건 일종의 과시적 형태였던 것이다. 이런 상징적이고 과시적인 스타일링은 오늘날의 제품 디자인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오늘날 이음매 없이 모서리가 매끄럽고 부드러운 스마트폰을 보라. 이 역시 미래적이며 앞선 라이프스타일을 소유해보라고 충동하는 모습이지 않은가.
6 보온병, 헨리 드레이퍼스 디자인, 1936년.
7 스쿠터, 해롤드 반 도렌 디자인, 1933년.
8 탁상용 램프, 월터 도윈 티그 디자인, 1939년.